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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파리 부에노스아이레스 - 좋은 공기다!

찰라777 2007. 7. 24. 10:12

남미의 파리 - 부에노스아이레스

팜파스 위에 펼쳐진 초원의 도시

 

 ▲핑크색으로 물들여진 대통령궁에 아르헨티나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좋은 공기다!”

(Que buenos aires son los este suelo!)

 

19세기 초, 페드로 데 멘도사와 함께 산초 델 캄포 Shancho del Campo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상륙하여 첫 발을 딛었을 때, 그는 대초원에 불고 있는 신선한 공기에 감동하여 외친 말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란 도시 이름은 이 말이 기원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오랜 항해 끝에 대초원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나면 누구나 그런 기분이 되리라. 그러니 이도시의 이름은 ‘좋은 공기다!’란 뜻을 담고 있다.

 

일설에 의하면 부에노스아이레스란 이름이 지중해의 칼리아리 섬의 전설적인 성모 ‘부엔 아이레 Buen Aire'에서 유래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이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건설한 멘도사가 믿고 있던 신앙이 성모 부엔 아이레였고, 그의 항해를 도운 성모를 기념하기 위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멘도사에서 버스를 타고  장장 15시간에 걸친 1100km의 긴 여정 끝에 부에노스아이레스 땅에 첫 발을 내 딛자 신선한 아침공기가 온 몸을 감싸고돌며 피부로 흠뻑 스며든다. 번개와 천둥이 치는 팜파스를 새우잠을 자며 밤 새 달려온 우리를 환영이라도 하듯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하늘은 맑게 개어 푸른 물감을 풀어 놓은 듯 도시의 하늘을 덮고 있다.(▲비온뒤에 말끔이 개인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거리)

 

비 온 뒤의 평화로운 아침이다! 상쾌한 탱고의 리듬처럼 도시의 풍경이 깔끔하고 질서가 정연하게 잡혀 있다. ‘은銀’이라는 의미를 지닌 ‘라플라타’ 강에 둘러싸인 부에노스아이레스는 과연 ‘남미의 피리’라고 불리어도 전혀 손색이 없어 보인다.

 

9시 30분, Retiro 터미널에서 내려 1.4페소를 지불하고 코스펠Cospel이라는 지하철 동전 티켓을 사들고 지하철 C선을 탄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수브테Subte(지하철)는 A, B, C, D, E 다섯 개의 노선이 있다. 이 지하철은 우리가 우마차를 타고 다니던 100년 전부터 건설된 것으로 아르헨티나의 오랜 저력을 확인할 수 있는 좋은 본보기다. 노선도를 보니 우리가 가고자 하는 숙소 Milhouse Hostel YH는 네 번째 정거장인 Av de Mayo 정거장에 위치하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지하철역 Subte Av de Mayo.

 

Mayo 역에서 내려 밖으로 나오니 한 눈에 다운타운의 거리가 들어온다. “좋은 시설이네요!” 호스텔에 들어서며 아내가 말한 첫 일성이다. 나는 그 소리가 마치 “좋은 공기다!”란 소리로 들려온다. 시티센터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호스텔로 들어서니 많은 젊은이들이 북적거리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더블 룸이 없어 도미토리에서 자야 하는데 남녀가 따로 구분되어 있어 아내와 떨어져서 자야 한다는 것이다. 아내는 시설도 좋고 도심에 있으니 괜찮다고 하며 이곳에 그냥 머물자고 한다. 아내는 2층으로 나는 3층으로 이산가족이 되어 방을 찾아간다.

 

샤워를 한 후 식당 겸 홀에서 아내와 재회(?)를 하여 커피한잔에 간단한 스낵으로 아침을 느긋하게 먹은 우리는 아이들에게 엽서를 썼다. 엽서를 쓸 때에는 언제나 고향의 집이 그립고 아이들이 그립다. 인간의 회귀 본능이리라.

  

엽서를 들고 프론트 데스크로 가는데 “Tango Lesson & Tour"라는 광고가 눈길을 잡아끈다. 호스텔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호스텔 홀에서 탱고 레슨을 무료로 해주고, 탱고 교수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아르헨티나 탱고에 대한 강의를 들은 후, 전통 탱고 무도장에 가서 현지인과 함께 탱고를 추기도 하고 구경을 하며 탱고의 밤을 만끽하는 코스라고 한다. 아내는 별 흥미가 없는 듯 한 표정이다. 그러나 나는 탱고의 나라 아르헨티나에 와서 꼭 한번 체험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저녁에 다시 와서 결정을 하겠노라고 말하고 호스텔 카운터에 엽서를 맡기고 다운타운 산책을 하기 위해 거리로 나갔다.

  

 

 

 ▲아르헨티나 역사와 정치의 산실 5월 광장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중심은 도로 폭이 144m 세계최대라는 ‘7월9일(독립일)의 거리Av 9 de Julio'와 정부청사가 운집해 있는 ‘Av de Mayo', 그리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명동이라고 불리는 Florida 거리다. ‘5월 광장Plaza de Mayo’에 들어서니 시야가 탁 트이고 분홍색으로 치장된 대통령 궁이 퍽 이색적으로 보인다. 비둘기와 새들이 대통령 궁 앞을 평화롭게 날고 있다. 5월의 탑 앞에서는 수십 개의 아르헨티나 국기를 수례에 싣고 기념품을 파는 소년이 있다. 5월 탑은 1810년 5월 혁명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운 탑이다. 거대한 야자수를 감고 올라간 넝쿨이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아내는 소년에게 다가가서 에비타 사진이 있는 엽서를 몇 장 산다. 아르헨티나의 독재자 페론 대통령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에비타! 우리에겐 ‘뮤지컬 에비타’로 더 알려진 에비타는 나이트클럽 댄서 출신에서 일약 아르헨티나 퍼스트레이디가 된 미모의 영웅이다. 에비타의 일생에 대해서는 후에 다시 쓸 기회가 있을 것이다.

 

 ▲아르헨티나 독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영국이민자들이 세운 영국탑

 

5월 광장 부근을 서성거리다가 우리는 지하철 C선을 타고 산마르틴 역으로 갔다. 광장으로 나가니 영국탑이 마치 런던의 빅벤처럼 우뚝 솟아 있다. 아르헨티나 독립 100주년을 맞이하여 영국에서 이민을 온 사람들이 세운 탑이라고 하는데, 1982년 영국과의 포클랜드 전쟁으로 상당부분이 파괴되어 있다. 그러나 지금 시계탑에서는 종소리가 맑게 퍼져 나오고 있다.

 

□ 산마르틴 광장의 거대한 거목나무

 

산마르틴 광장에서 플로리다 거리 쪽으로 가는 잔디밭에는 젊은이들이 웃통을 벗어 제치고 선 텐을 즐기고 있다. 거리에는 자카란다Jacaranda란 보라색 꽃이 바람에 하늘거리며 길손을 반기고 있다. 과연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산 마르틴 광장에는 보라색 자카란다 꽃이 싱그러게 피어 있다.

 

▲산 마르틴 광장에 있는 거대한 나무. 정말 엄청나게 크다! 

 

 ▲거목 아래서 선 텐을 즐기고 있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젊은이들

 

특히 광장의 위쪽에 있는 거대한 거목나무는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나무가 얼마나 거대한지 도대체 가늠이 되지 않는다. 잎사귀 모양은 고무나무Ficus 종류 같기도 한데 정확한 이름은 모르겠다. 이 거대한 나무 밑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웃옷을 벗은 채 누워서 쏟아지는 햇빛을 즐기고 있다. 나무는 이렇게 수천 년을 자라며 인간에게 무한한 혜택을 준다.

 

“이렇게 큰 나무는 처음 봐요?”

“나무의 정령이 당신을 반기고 있어요.”

“정말? 이 거대한 나무 앞에 서니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느낌이 들어요.”

“나무가 발산하는 보이지 않는 기가 우리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야. 저기 잔디에 누워 있는 사람들도 그걸 느끼고 있을 걸. 우리도 이 나무 밑에 앉아 나무의 기를 마음껏 받아보자고.”

 

나뭇가지가 얼마나 길게 뻗혀 있던지 굄목을 받쳐서 보호를 하고 있다. 아마 몇 천년은 살아온 듯한 나무다. 나무 밑에 앉아 물을 마시며 심호흡을 해본다. 나무는 먼 이방에서 온 우리를 반기기라도 하듯 찰랑거린다. 바람이 불때마다 푸른 나무 잎사귀가 술렁이며 춤을 춘다. 바람이 나무를 대신해서 잎새를 흔들며 소리를 내어 인사를 해준다. 좋은 나무에 좋은 공기다! 나무야 고마워!

 

 

□ 아르헨티나의 유행이 시작되는 플로리다 거리

 

나무 밑에 앉아서 한동안 더위를 식히다가 우리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명동이라 불리는 플로리다Florida 거리로 갔다. 플로리다 거리 초입에 있는 맥도날드 집에서 햄버거로 점심을 먹은 우리는 화려한 쇼핑가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산마르틴 광장에서 5월대로와 만나는 지점까지 이어지는 산책로에는 부티크, 기프트 숍, 레스토랑, 카페, 갤러리, 서점 등이 빼꼭히 들어 차 거리는 관광객과 포르테뇨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포르테뇨들이 아르헨티나 유행을 창조하는 플로리다 부티크 거리 

 

부에노스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멋있는 항구에 사는 사람들이란 뜻으로 스스로 ‘포르테뇨Porteno’라고 부르며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에 비해 월등한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어쨌든 아르헨티나의 유행은 이 거리를 찾는 포르테뇨들에 의해서 아르헨티나 전역으로 퍼져 나간다.

 

“여보, 나 저 가죽지갑을 사고 싶어요?”

“당신도 부에노스의 포르테뇨가 되고 싶은 모양이지?”

“그건 잘 모르겠고요. 가죽이 부드럽고 값도 싸서 그래요.”

“그럼 무얼 주저하시나. 사면되지.”

“저기 마테 차 컵도 사고 싶은데요?”

“아하, 저건 우리가 코펜하겐에서 만났던 아르헨티나의 여인들 둘리자매가 쓰던 차 종기 아닌가?”

“맞아요.”

 

아내는 아이들 선물로도 좋다며 작은 손지갑 5개를 고른다. 주인과 가격을 깎는 실랑이 끝에 320페소(약 12만원)란 거금을 주고 가죽지갑을 손에든 아내의 표정은 매우 만족스러워 보인다. 나는 탱고 CD 한 장과 마테 차 종기를 골라 아내를 향하여 흔들었다. 이번 여행길에 처음으로 거금을 들여 산 선물이다. 플로리다 거리를 산책하며 아이쇼핑을 실컷 하면서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

 

“난, 오늘밤 탱고 투어에 참여를 하고 싶은데 당신은 어때?”

“오전에 나갈 때부터 알아봤어요. 당신이 이런 기회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그럼 오케이라는 의미지?”

“좋으실 때로…”

 

탱고투어는 레슨, 저녁 식사 그리고 아르헨티나 전통 탱고 무도회장 견학을 포함하여 을 포함하여 1인당 70페소라고 한다. 140페소를 호스텔 카운터에 지불하고 티켓을 쥔 나는 아내를 바라보며 만면에 웃음 지어 보였다. 아내가 쇼핑을 하고 만족해하는 웃음과 견줄만한 나의 만족스런 표정이다. “그게 그렇게 좋아요?” “그럼! 좋고말고.” 오늘밤은 탱고에 젖어보는 거다.

 

흠, 좋은 공기다. 밤의 공기가 더욱 좋게만 느껴지는 부에노스아이레스!

내일 일은 내일로 미루고 나는 부에노스의 밤의 탱고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