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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고, 그 오만한 춤 속으로!-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탱고를...

찰라777 2007. 8. 10. 08:23


탱고, 그 오만한 춤 속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탱고를...

 

 

춤은 만인 언어인가?

 

탱고!

보기 위한 춤인가? 추기 위한 춤인가?

탱고는 흔히 보기위한 춤이라고들 말한다.

허나, 춤을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제로 추어 보는 것이 그 진수를 느낄 수 있으리라. 더구나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탱고의 발상지가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오늘밤 탱고의 발상지에서 탱고 춤을 보기도 하고 추어보기도 하며 아르헨티나의 문화에 흠뻑 젖어보기로 했다.

 

Milhouse Hostel에서는 밤이 되자 카페의 의자를 모두 치우고 무도장으로 만들었다. 식탁을 치우자 홀은 그럴듯한 무도장으로 변한다.  밤 8시가 되자 탱고 교수라고 하는 마리아노 Mariano가 남자 한 사람, 여자 한 사람의 탱고댄서와 함께 나타났다. 마리아노는 짧은 턱수염을 기른 40대의 중년남자였고, 두 사람의 댄서는 정말로 춤꾼처럼 생긴 날씬한 몸매를 가지고 있는 젊은이 들이다.

 

호스텔에 묵고 있는 20여 명의 젊은이 들이 탱고레슨에 참여를 했다. 먼저 마리아노가 탱고를 추는 이론을 간단히 설명을 하고, 곧이어 두 젊은 탱고 댄서들이 시범으로 춤을 추어 보였다.

 

멋지다!

관중은 모두 숨을 죽이고  두 댄서의 몸놀림과 현란한 발놀림 속으로 빠져들어 간다.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고 오만하게 펼쳐지는 춤의 유희! 치고 빠지는 발놀림, 땅에 닿을 듯 늘어지는 여인의 허리… 두 댄서의 춤 속에서 강한 에로티시즘이 느껴진다.

 

춤은 고대로부터 만국의 언어다. 원시시절부터 사람들은 언어 대신 몸짓으로 대화를 하고 구애를 해왔다. 머리, 이성, 의식은 비판 속에 간격을 두고 서로 떨어져 있다. 그러나 몸, 감성, 무의식은 거리가 없다. 직설적이다. 솔직하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육체의 부활보다 성령의 부활을 강조하는 기독교 교리, 육신을 공으로 보고 정신의 윤회를 역설하는 불교의 교리 등 종교의 교리는 정신을 추구하고 몸을 불신해 왔다. 종교는 몸을 죄악시 하거나 하찮은 것으로 내몰았다.

 

▲탱고 교습에 앞서 탱고춤 시범을 보이는  아르헨티나의 탱고 댄서

 

그러나 몸은 신선한 것이다. 진리를 담는 그릇이 아닌가. 그래서 과거에도 그랬지만 언어의 노래보다 몸의 노래, 즉 춤의 언어가 매체를 통해 청중을 휘어잡고 있다. 춤의 가수 마돈나가 그렇고, 한국의 '비'도 춤의 가수다.

지금 눈앞에는 환상적인 댄서의 몸동작이 펼쳐지고 있다.

곧추 세운 각진 팔 동작,

차가운 얼굴 표정,

고정된 시선...

이 모든 것들이 오만하게만 보인다. 그런데도 저 오만한 춤 속에서 강한 에로티시즘을 떠올리게 됨은 왜일까?

 

사실 탱고는 브루스나 람바다, 살사 등에 비하면 남녀 사이의 노골적인 신체 접촉이 적은편이다. 상체와 목을 꼿꼿이 세우고 상대와 적당한 거리를 둔 채 탱고음악의 리듬에 따라 춤을 추는 것이 탱고 춤이다. 그럼에도 탱고하면 에로티시즘을 연상케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오히려 역설적인 동작에서 비롯된 것일 게다. 상대방과 한껏 춤을 즐기면서도 오만한 거리, 냉랭한 시선, 각진 동작이 에로티시즘의 갈증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닐까?  

 

탱고는 다리와의 전쟁인가?

 

탱고의 또 한 가지는 현란한 발놀림이다. 서로의 가랑이 사이로 다리를 날렵하게 집어 넣었다 뺐다 하면서 스쳐지나가는 동작이 사람의 애간장을 태우게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또 흔히 탱고를 일명 ‘다리 사이의 전쟁’이라고 말한다.

 

다리 사이의 전쟁은 노골적인 접촉이아니라 서로가 갈증만 더해 가는 스침일 뿐이다. 때문에 탱고는 에로티시즘을 만끽하는 것이 아니라 춤꾼 사이에 흐르는 팽팽한 긴장이 보는 이로 하여금 오히려 애태우는 에로티시즘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탱고는 추는 춤보다는 보는 춤으로 통한다.

 

댄서의 시범이 끝나고 우리는 남녀가 짝을 지어 탱고 레슨에 들어갔다. 세계 각지에서 온 젊은이들이 자연스럽게 파트너를 이룬다. 물론 나의 파트너는 아내이다. 여자 파트너가 적어 남자끼리 파트너를 이룬 경우도 있다. 오만한 시선을 아내에게 보낼 찬스다.

 

젊은이들은 마리아노와 댄서의 지도에 따라 곧잘 춤을 잘도 춘다. 그러나 나는 오만한 시선은 커녕 발이 걸려 넘어질것만 같다. 춤의 문외한인 나와 아내는 애꿎게도 상대방의 발만 냅다 밟는다. 스텝이 서로 엉킨다. 이내 아내가 춤 교습을 포기를 선언한다. 

“난 도저히 못하겠어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요.”

 

▲유스 호스텔 홀에서 탱고 레슨을 받고 있는 젊은 여행자들

 

이를 보다 못해 여자 댄서가 나에게로 온다. 그녀는 왼손으로 나의 허리를 가볍게 쥐고, 오른 손은 옆으로 치켜 뻗은 채 자연스럽게 스텝을 유도한다. 얼굴은 서로 엇갈리게 한다. 그녀의 날렵한 허리가 나의 손에 부드럽게 느껴진다. ‘여인의 향기’가 저절로 느껴진다.

 

실수로 스텝이 엉키는 것이 탱고다?

 

처음에는 스텝이 자주 엉키더니 점점 발이 자유로워진다. 스텝이 엉킬 때마다 내가 미안해 하자 그녀는 웃기만 한다. 즐겁다. “아하, 춤이란 이런 것이로구나!” 우둔한 나의 다리가 그녀의 유도에 따라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경쾌하다. (사진: ▲영화 여인의 향기의 한 장면)

 

If you make a mistake, if you get all tangled, you just tango on.”

(실수를 해서 스텝이 엉키면 그게 바로 탱고라오)

 

몇 판의 곡이 끝나자 마리아노 교수가 청중을 향해 말한다. 서로들 다리가 엉켜 넘어질듯한 장면이 여러번 연출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유명한 탱고 영화 ‘여인의 향기(Scent of a woman)’에 나오는 대사를 인용하며 스텝이 엉키는 실수를 괘념치 말라고 한다.

 

90년대에 인기 폭발했던 영화 ‘여인의 향기’. 주인공인 시각 장애자인 알 파치노가 죽음을 위한 여행 중 마지막 삶의 쾌락을 맛보고 싶어한다. 그는 어느 레스토랑에서 애인을 기다리는 한 아름다운 여인에게 춤을 청한다. 앞을 보지 못하면서도 세련되게 춤을 리드하는 알 파치노의 의연한 춤 장면은 청중에게 감동을 먹여주기에 충분했다. 이 영화에서 탱고는 단순한 춤이 아닌, 인생에 대한 비유로 사용되기도 한다.

 

 

탱고의 기원은 밀롱가다?

 

2시간동안의 탱고 교습이 끝나고 우리는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겼다. 밤 10시인데도 레스토랑은 만원이다. 경제가 어렵다고 하는데도 가리는 흥청거린다. 다분히 아르헨티나적인 모습이다.

 

포도주를 곁들인 저녁을 먹으며 마리아노 교수의 탱고 강의는 계속 이어진다. 그는 카세트에 탱고의 기원을 담은 테이프를 장착하고 음악을 틀어주며 탱고의 기원에 대하여 열강을 한다. 물론 음악이 나올 때마다 레스토랑의 좁은 공간에서 두 댄서가 시범을 보여준다.

 

 ▲ 보카지구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겨 탱고 강의는 이어지고...

 

탱고의 기원은 어디에 있는가?

마리아노 교수는 탱고의 역사를 진지하게 얘기 한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일찍이 ‘남미의 파리’가 되기를 열망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팜파스에서 나오는 밀과 육류를 부의 원천으로 그들은 풍요로움을 가꾸어 나갔다. 1930년대부터 지하철을 건설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국회의사당을 건설하기 위하여 이태리 대리석 한 장과 소 한 마리를 바꾸기를 주저 하지 않았다.

 

‘불레바르'라 불리는 세계에서 가장 널찍한 파리 식 도로를 건설하고, 핑크 빛 대통령궁, 호화로운 교회, 오페라하우스, 노천카페와 부티크 쇼핑가인 플로리다 거리를 건설하며 그들은 ‘남미의 파리’가되기를 주저 하지 않았다. 교향악, 오페라, 연극, 캉캉 춤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 히트한 모든 공연이 뉴욕을 거쳐, 부에노스아이레스로 들어왔다.

 

허지만 흥청망청 거리는 찬란함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19세기 말 신대륙의 부를 찾아 유럽에서 몰려든 농업이민자들이 뜻을 이루지 못하고 하나 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일용 잡부로 몰려들었다. 갑자기 늘어난 인구는 부에노스를 대도시 단숨에 탈바꿈하고 말았다.

 

이민자들이 타향살이의 설움을 주로 달랜 곳은 부에노스의 포구에 접해 있는 보카 지구다. 그들은 타향살이의 설움, 고독, 향수를 음악과 춤으로 달랬다. 그리고 그들은 탱고를 탄생시켰다. 항구 도시 리스본의 알파카지구의 선술집에서 파두(Fado)에서 탄생한 것처럼…

 

 ▲오만한 태도, 냉랭한 눈, 각진 팔과 다리가 오히려 에르티시즘을 자극한다.

 

보카의 카미니토 거리는 탱고의 메카다. 현란한 원색으로 덧칠해진 서민의 애환이 담긴 거리. 고달픈 항구의 삶이 수평선 넘어 황혼으로 사라지면, 노동자들은 어두운 선술집으로 몰려들어 술잔을 기울이며 휴식을 취했다. 그들은 선술집에서 술을 파는 여인들과 춤을 추며 외로움을 달랬다.

 

“탱고에 가장 많이 영향을 준 음악은 밀롱가를 들 수 있지요.”

 

마리아노는 카세트에 새로운 테이프를 넣고 밀롱가라는 음악을 선보인다. 두 댄서가 다시 밀롱가에 맞추어 시범을 보인다. 탱고와 비슷하다. 밀롱가는 다시 폴카, 마주르카, 왈츠 같은 춤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따라서 어떤 춤이나 시간적이고, 공간적인 문화가 녹아 있는 것이다. 

 

“밀롱가는 원래 팜파스에서 살고 있었던 가우초라는 아르헨티나 카우보이들이 추던 춤이었습니다. 그 춤이 도시의 뒷골목으로 들어와서 탱고로 변신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탱고는 초기에는 아르헨티나 토착민들에게서 냉대를 받았다. 선술집에서 하층서민들이나 잡부들이 추는 춤이었으니 파리의 고급사교계에서 춤을 추던 상류층들은 당연히 탱고를 경시했다는 것. 초기의 오늘날의 정제되고 세련된 탱고와는 거리가 멀었다. 초기 탱고는 즉흥적인 연주에 따라 결투를 하듯 거칠고 투박한 동작은 아르헨티나 중상류층의 정서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1910년 이후부터 유럽에 상륙한 탱고는 앙헬 비욜도라는 전설적인 작곡가에 의해 공연을 가지면서 유럽 인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며 인기가 폭발하기 시작했다. 탱고가 인기를 끌게 된 것은 공개적인 장소에서 몸을 가장 밀착시킬 수 있는 커플 춤이었기 때문이라는 것.

 

 

밤을 잊은 탱고의 메카, 보카지구

 

 “자, 이제 역사 공부는 그만하고 전통 탱고의 진수를 보러 밀롱가에 가 볼갈까요?”

 

아르헨티나의 식사 시간은 매우 길었다. 12시가 다 되어서야 디너는 끝이 났다. “이거 졸리는데 어디로 가자는 거지요?” “아마 아르헨티나 인들이 즐겨 찾는 탱고 카바레로 가자는 것인가 봐.” 밀롱가(Milonga)는 아르헨티나의 전형적인 탱고 클럽이다.

 

▲탱고의 메카인 보카지구의 허름한 건물. 원색의 페인트를 칠한 모습이 이채롭다.

 

택시를 타고 간 곳은 보카지구의 어느 허름한 창고처럼 생긴 건물이다. 어두운 조명이지만 원색으로 칠한 벽이 현란하다. ‘oo밀롱가’라는 간판이 결려있는 2층으로 들어가니 다소 어두운 실내는 춤을 추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자욱한 담배연기에 아내는 우선 질리고 만다. 홀의 중앙에서는 수많은 남녀들이 탱고의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추고, 바로 옆에 있는 바에서는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떨고 있다.

 

기념으로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건장한 사내와 다가와서 제지를 한다. 사진은 절대로 찍을 수 없단다. 호스텔에서 실습을 한 젊은이들은 나름대로 파트너를 찾아 홀 속으로 사라진다.

 

“도저히 더 이상 못 있겠어요.”

“그럼 그만 돌아가자고.”

 

마리아노에게 숙소로 가겠다고 말하니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밤의 무대가 시작되는데 벌써 가느냐고 말한다. 밤을 새며 놀려고 해도 힘이 없다. 동양인인 나를 30대로만 보고 있는 마리아노는 이해를 하지 못 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린다.

 

숙소에 돌아오니 새벽 2시다. 한 방에 있던 이태리에 서 온 친구는 아침 6시에 들어 왔단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밤은 길다. 밤은 흥청거리고 아침은 조용하다. 밤을 잊은 그대에게란 표현이 딱 맞는 곳이라고 할까? 내일은 내일이고 오늘을 즐기려고 하는 낙천적인 국민성을 조금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키스가 부드러워서,

그 칼부림이 격해서,

죽음의 이별이 있어서,

사랑의 단 맛이 있어서,

그리고, 나는 탱고가 되었네.

그게 화려하고 강해서일세.

삶의 조각이 담겨있네

죽음의 조각도 담겨 있네.

 

-나는 왜 이렇게 노래하는가? 중에서, 쎌레도니오 플로레스 Celdonio Flores-

 

 

※ 호스텔에서 탱고 레슨 장면 [동영상]

  

*동영상을 감상 하실때에는 우측 상단에서 음악을 중지시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