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니바퀴를 물고 케블카는 덜커덩거리며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 코르코바도 산을 힘겹게 올라간다. 산정상까지 3.5킬로미터의 가파른 레일양쪽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나무들의 긴 터널을 지나 마침내 도달한 해발 710미터의 코르코바도 산정(山頂)!
얼마나 오랫동안 오고 싶어 했던 곳이던가!
그러나 그곳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구름과 안개가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천지를 덮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고개를 젖혀 하늘을 올려다보았건만 양팔을 벌리고 나를 반겨줄 줄만 알았던 그리스도 상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기다리자.
기다리면 보여주리라.
역시 기다린 보람이 있었던가.
높이 30미터, 팔길이 28미터, 무게 1145톤!
이윽고 안개가 서서히 걷히며 마치 부활을 하듯 거대한 그리스도 상이 하늘에서 안개를 타고 내려오며 모습을 드러낸다. 브라질 독립 100주년 기념으로 포르투갈이 선물을 했다는 그리스도 상은 리우데자네이루의 상징이다.
그리스도 상은 주름진 백색의 성의(聖衣) 자락위로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다소 고개를 수그린 채 사바세계를 굽어보고 있다. 수평으로 펼쳐든 두 팔은 무한히 뻗어나갈 기세다. 양팔위로 아득히 보이는 얼굴은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려는 듯 독생자의 독특한 외로움이 배어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모두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11:28)
그리스도 상은 침묵 속에 그렇게 말하고 있는 듯한 표정이다. 아스라이 보이는, 고뇌에 찬 얼굴은 백인도, 흑인도, 인디오도 아닌, 세상 모든 인간의 혼혈로 융합된 묘한 모습이다. 수세기 동안 혼혈로 이루어진 브라질리언을 닮은 모습일까?
끊임없이 흘러가는 안개와 구름 속에 그리스도는 모습을 나타냈다가 사라지곤 하면서 시시각각으로 모습이 달라진다. 고뇌, 슬픔, 우수, 자애, 연민, 사랑, 외로움…. 그것은 보는 자들의 마음을 투영하고 있는 탓이리라.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기쁨과 환희에 찬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암봉위에 서 있는 그리스도 상은 밤과 낮, 아침과 저녁, 맑은 날과, 흐린 날, 햇빛을 받을 때와 달빛을 받을 때, 계절에 따라 천의 얼굴로 변한다. 때로는 부활의 모습으로, 때로는 외로운 독생자의 모습으로, 때로는 기적을 행하는 구세주 같은 모습으로….
그리스도가 굽어보고 있는 산 아래,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가 다 다르다. 천의 얼굴로 변화하는 그리스도 상 밑에 천의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 백인, 흑인, 혼혈, 황색인종... 불빛이 호화로운 부촌과 흐릿하게 보이는 가난한 자들의 달동네까지… 그러나 그 어디에나 어두움은 차별 없다.
멀리서 바라보면 코르코바도 산 뾰쪽한 바위위에 선 그리스도 상은 마치 리우데자네이루의 모든 것들이 떠 받들고 있는 형상이다. 부자도 가난한 자도 사방을 에워싸고 그리스도상을 힘겹게 떠 받치고 있는 듯한 형상이다.
그러나 지상에 어두움이 내리면 라이트의 조명을 받은 그리스도상은 어두운 허공으로 둥실 떠오른다. 마치 승천을 하여 하늘로 올라가는 것 같기도 하고, 부활을 하여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 같기도 한 묘한 모습이다.
그런가 하면 조명을 받아 어두운 창공에 하얗게 드러나는 그리스도 상은 하나의 거대한 십자가로 변한다. 낮에는 죄진 자들을 징벌하고, 밤에는 이 세상의 모든 죄진 자들을 구하려는 듯 십자가를 진 구세주로 변하는 것일까? 그러나 그 어떤 모습도 그리스도 상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다르게 보이리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모두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나는 크리스찬은 아니다. 그러나 다시 그리스도의 이 말씀이 방랑자의 가슴을 친다. 지구의 반대편, 동방에서 온 이 방랑자도 과연 저 그리스도의 품에 안겨 쉼을 얻을 만큼 수고하고 짐 진 자들의 무리에 속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