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 행 란 칠레 755 비행기가 산티아고 공항을 가볍게 이륙한다. 고도를 높여가는 비행기 아래로 산티아고의 건물과 자동차들이 점점 멀어져 간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빌딩들은 우글거리는 빈대처럼 보이고, 자동차와 사람들은 떼를 지어 기어 다니는 개미처럼 보인다. 그러다가 마침내 지상에 찍어 놓은 점들로 변하더니 시야에서 사라지고 만다. 저 좁은 공간에서 사람들은 웃고, 분노하고, 싸우고, 사랑하고, 미워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늘에 떠 있는 비행기를 보는 순간, 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이륙을 하는 순간, 그리고 하늘에서 비행기가 육지에 착륙을 하는 순간, 나는 항상 마음이 설레고 호기심으로 가득 차게 된다. 비행기는 6000미터 고봉들이 도열해 있는 안데스의 설봉 위를 날아가는 듯 하다가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는 태평양 상공을 날아가기도 한다.
그러다가 비행기는 바람이 심한 기류를 만나면 널뛰기를 하듯 흔들린다. 바람은 살아서 움직이는 비행기 맥을 쥐고 있는 듯 마음대로 비행기를 잡았다가 놓아 주었다가 한다. 안전벨트 사인이 점멸하고 승무원은 안전벨트를 매라는 기내 방송을 한다. 심하게 흔들리는 비행기가 안데스의 설봉위로 추락하지나 않을까? 그런 조바심이 순간 가슴을 섬뜩하게 한다. 이렇게 흔들거리는 파타고니아 행 비행기의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안데스의 험준한 산맥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문득 평생을 비행기와 함께 살아갔던 생텍쥐페리와 그의 소설 ‘야간비행’을 떠올린다.
“만약 내가 추락 한다면 정말이지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우글거리는 개미집 같은 미래는 나를 공포스럽게 한다. ……나는 원래 정원사가 되었어야 한다.”
이것은 생텍쥐페리가 마지막 비행을 떠나기 전에 남긴 편지중의 한 구절이다. 어쩌면 그는 ‘어린 왕자’가 사막의 한 가운데서 사선으로 넘어지며 자신의 별로 돌아가듯이 그도 그렇게 흔적도 없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를 원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지구와 다른 세계, 은하계의 작은 별에서 바오밥 나무와 비행기가 있는 조용한 별에 살면서 홀로 정원을 손질하며 고요한 인생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파타고니아를 처음으로 접하게 된 것은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Night Flight'을 읽고 나서부터였다. 생텍쥐페리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비행기다. 나이 12살이 되던 해에 그는 비행기 제작을 실험하는 프랑스 앙베리 비행장에서 비행기를 처음 타보고 그 짧은 순간의 벅찬 감동을 잊지 못하며, 언젠가는 스스로 비행기를 조종해보겠다는 상상을 한다.
해군사관학교 시험에 두 번이나 낙방한 그는 21살에 군에 입대하여 비행연대 수리공장에 배치된다. 그곳에서 그는 불법으로 조종술을 훈련받고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한다. 그리고 프랑스 항공사에 입사하여 수송비행사 자격증 취득한 그는 라테코에르 항공회사에 취직을 하여 툴루즈-카사블랑카 간의 정기 우편 항공기 조종사로 근무를 하게 된다.
그러나 그는 아프리카 행 첫 비행에서 사막에 불시착을 하고 만다. 그 첫 비행에서 호위 비행기가 한 대 있었지만 비행기가 너무 작아 비행사 세 명이 다 탈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권총 두 자루를 든 채 홀로 사막에 남아 불시착한 비행기 옆에서 하룻밤을 보낸다. 그는 사막의 하늘에 빛나는 별을 바라보며 사막의 아름다움과 고독을 알게 된다. 아마 이때부터 그는 ‘어린왕자’란 불후의 명작을 구상했을 것이다. 그의 이상은 오로지 “우편 비행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것”이었다.
1929년 아르헨티나 항공회사 지사장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온 생텍쥐페리는 부에노스에서 파타고니아 간 우편기를 조종하는 비행체험을 바탕으로 ‘야간비행’이란 소설을 발표한다. 야간비행은 파타고니아의 악천후를 무릅쓰고 남미의 땅 끝 우수아이아와 남극으로의 파타고니아 노선을 오가는 우편비행에 얽힌 이야기를 쓴 내용이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에 오래전에 읽었던 생텍쥐페리의 ‘야간비행’을 다시 한 번 읽었다. 정말이지 슬프도록 아름다운 문체로 장식한 야간비행은 무섭도록 고독하다. 주인공인 조종사 파비앵은 파타고니아에서 부에노스로 오며 무서운 폭풍을 만난다. 그는 시커먼 급류에 휘말려 자신의 손조차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결투하며 마지막 전문을 보낸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음……”
조종사에게 폭풍 속의 밤은 어느 항구로도 닿을 수 없고, 새벽으로도 이르지 못하는 속수무책의 밤이다. 끝없는 어둠 속을 무작정 흘러 다닐 수밖에 없을 뿐…… 비행기는 캄캄한 바다 위에 떠 있고, 그는 얼핏 폭풍의 틈새로 보이는 몇 개의 반짝이는 빛을 향해 올라간다. 그러나 그 구멍으로 들어가는 순간 조종사는 영원히 세상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정말 아름답군.’
폭풍 위에서 수없이 반짝이는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파비엥은 이렇게 중얼 거리며 생을 마감한다.
야간비행의 주인공 파비엥은 생텍쥐페리 그 자신이다. 군복무 시절 몰래 단독으로 비행을 하다가 사고를 내 영창을 갔던 첫 비행에서부터 마지막까지 수많은 위험한 사고가 뒤따랐지만 하늘을 날고자 하는 그의 열정을 꺾을 수는 없었다. 1944년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에 그는 5회만 출격한다는 조건으로 사정사정하여 정찰비행단에 복귀한다.
그리거 코르시카 기지를 출발하여 그르노블 - 앙시 상공으로 정찰비행을 떠난 후 그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그의 나이 44세였다. 당초 약속한 다섯 번보다 5회가 많은 열 번째 비행 날 그는 하늘에서 사라져 갔다. 1998년 9월, 프랑스 마르세이유 방돌 해안에서 한 어부가 그물망에 생텍쥐페리의 이름이 새겨진 팔찌가 걸려 나왔으며, 사람들은 그가 정찰비행 중 독일군에 의해 추락됐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인간은 자기 자신 속에서 목적을 찾을 수 없고, 인간이 지배하고 인간에 의해 구현될 수 있는 그 무엇이라 이름붙일 수 없는 것에 종속되고 희생하는 것이다. ‘나는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인간을 괴롭히는 것을 사랑한다’라고 역설적으로 말하게 한 이 ‘알 수없는 감정’을 발견하게 되어 기쁘다. 이것은 모든 영웅주의의 원천이다”
앙드레 지드는 ‘야간비행’의 서문에서 이같이 말한다. 우리는 항상 인간의 생명보다 더 값진 뭔가가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그런데 그것이 무엇일까? 어쩌면 이 세상에는 구해내야 할 무엇인가 다른 것, 인간의 생명보다 더 영속적인 무엇인가가 존재하는지도 모른 다는 것. 작가는 인간의 그런 면을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야간비행을 감행 하는 것이라는 것.
어째든 우리를 태우고 가는 비행기는 강한 바람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비행을 하며 곡예를 하듯 구름 속을 날아간다. 파타고니아에 진입한 비행기는 푸에르토몬트에 잠시 기착을 하여 숨을 고른 뒤 다시 이륙을 하여 남미의 땅 끝 푼타아레나스로 날아간다. 눈 덮인 안데스산맥과 태평양 사이를 곡예비행을 하는 조종사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비행기를 탈 때마다 나는 항상 이 무거운 기체를 하늘에서 조종을 하는 조종사들이 숭고하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무한한 존엄성마저 느껴진다. 어떻게 이 어두운 하늘을 손바닥 보듯 정확하게 날아갈까? 아무리 과학의 계기판을 따라 움직인다 해도 나에게는 그런 일들이 절대 불가능하게 보인다.
드디어 비행기는 고도를 낮추며 땅으로 내려간다. 바람에 기체가 심하게 흔들린다. 곧 어디론가 추락을 할 것 같은 기세다. 세상에 대한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오로지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하기만을 바란다. 기내의 승객들은 한 결같이 눈을 감고 있다. 그 모습은 가장 숭고한 무엇을 위해 기도를 하는 모습이다. 주 날개에 또 다른 날개가 위로 솟아나오고 비행기가 바퀴가 드디어 땅에 닿는다. 폭발 할 것만 같은 불안감이 일순에 스쳐 지나가는 듯 하는 순간에 비행기는 속력을 낮추고 아스팔트 위에서 안도의 숨을 고른다.
휴~ 살았다!
적어도 승객들은 말은 안 하지만 다들 그런 표정이다. 조종사는 보이지 않지만 그는 우리들의 생명을 땅위에 무사히 걷게 하는 숭고한 빛이라는 생각이 든다. 비행기 트랩을 나오는데 몸이 날아갈 듯 한 기세로 바람이 나를 집어 삼킨다.
정말이지…… 조종사는 세상을 밝히는 촛불이다!
나는 조정석을 향하여 이런 날씨에 내 생명을 땅위에 걷게 한 조종사에게 경이의 존경을 보내며 바람을 피해 남미의 땅 끝 도시 푼타아레나스를 향해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