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지구의 배꼽-울룰루

찰라777 2008. 12. 15. 22:55

'지구의 배꼽’ 울룰루를 가다 

 

애버리진의 성소 울룰루는 태양의 기울기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색깔이 변화한다

 

 

 * 아침 일출시에 바라본 울룰루. 길이 3.6km, 너비 9km로 단일 바위로는 세계 최대라고 한다. 바위의 3분의 2가 땅속에 묻혀 있다.

 


호주 일정의 막바지였던 12월, 우리는 ‘지상에서 가장 고립된 도시’ 퍼스를 이륙하여 앨리스스프링스로 향했다. '세상의 중심'이라고 불리는 울룰루(Uluru)로 가기 위해서였다. 서호주의 아웃 백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붉은 사막뿐이다. 우리나라 남한의 100배나 큰 대륙이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태초의 땅이 저랬을까?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한 낮이어서 그런지 구름 한 점 없는 사막은 더욱 붉게 타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퍼스를 이륙한지 거의 3시간이 지날 무렵, “와~ 울룰루다!”란 함성이 들려왔다. 창밖을 내다보니 붉은 황무지 위에 마치 혹처럼 나와 있는 한 점의 바위돌기가 보였다. ‘지구의 배꼽’이라는 불리는 울룰루였다. (사진 : 항공기에서 찍은 울룰루)

하늘에서 내려다 본 울룰루는 내 주먹 크기의 작은 바위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원뿔형으로 보이는 붉은 돌기는 어떻게 보면 인간의 오장육부에 달린 간의 형태처럼 보이기도 하고, 또 다른 방향에서 보면 쭈글쭈글한 모습이 마치 어머니의 배에 붙어 있는 배꼽의 돌기처럼 보이기도 했다.

앨리스스프링스에서 하루 밤을 지낸 다음 날, 우리가 울룰루에 도착을 했을 때에는 섭씨 45도를 웃도는 혹서가 지속되고 있었다. 아웃 백의 12월은 지독하게 덥다. 살이 익어버릴 것만 같은 더위 속에서 ‘지구의 배꼽’으로 가는 길은 너무나 험난했다. 퍼스에서 비행기로 3시간을 넘게 날아와 다시 버스를 5시간을 타고 오는 동안 우리는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저녁 일몰시에 태양의 기울기에 따라 카멜리온처럼 여러가지 색깔로 변하는 울룰루

 


그러나 울룰루에 도착한 순간 우리는 그동안 쌓인 피로도 잊은 채 울룰루의 장엄한 풍경에 압도되고 말았다. 비행기에서 보는 것과는 사뭇 달랐다. “울룰루를 보지 않고서는 진정한 호주를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말이 실감이 나는 순간이었다. 태양의 기울기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색깔이 변화되며 마법의 성처럼 다가오는 울룰루의 풍경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시드니에서 2800km, 퍼스에서 3600km, 브리즈번에서 2300km, 다윈에서 2000여km 떨어진 울룰루는 호주 대륙 동서남북의 한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이처럼 대륙의 외곽 도시로부터 먼 오지에 위치하고 있지만, 지도를 보면 울룰루는 우연히도 호주 대륙의 한 가운데 솟아있다. 그래서 원주민들은 펀펀한 대지에 배꼽처럼 튀어나온 이 바위덩어리를 ‘지구의 배꼽’이라고 부른다. 

 
애버리진 ‘영혼의 성지’

울룰루는 토착민 애버리지니들이 가장 성스럽게 숭배하는 그들 ‘영혼의 성지’이다. 지난 2002년 시드니 올림픽 성화도 이 성소에서부터 출발하였다. 울룰루는 애버리지니의 언어로 ‘그늘이 지난 장소’란 뜻을 지니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황무지에서 그늘을 만들어주는 것은 오직 이 바위뿐이다. 신기하게도 그 주변에는 물이 있고 생태계가 공존한다. 길이 3.6km, 둘레 9.4km, 높이 348m로 파리의 에펠타워(324m)보다 높다.  단일 바위로는 세계 최대의 바위라고 한다. 그런데 이 바위의 3분의 2가 땅속에 묻혀 있다니 도대체 그 크기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새벽에 일출을 보기위해 나온 사람들. 어둠 속에서 점점 붉은 기운이 솟아나고 있다.

 


아득히 끝이 보이지 않는 지평선 위에 외딴 섬처럼 붕 떠 있는 거대한 바위 덩어리는 바위계의 ‘카멜레온’처럼 시시각각 색깔이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다. 아침 햇살 속에서는 진한 립스틱처럼 빨간 옷을 입고 있다가, 늦은 오후부터는 점점 검붉은 색으로 탈바꿈을 한다. 노을이 지는 저녁 한 때는 마치 고로 속의 쇳덩어리처럼 붉게 달아오르다가 해가 저물면 다 타버린 숯덩이처럼 검게 변해버린다.

지질학자들은 6억~9억 년 전에 호주대륙 중앙이 대부분 해수면 아래에 놓여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다가 서서히 퇴적층이 형성되며 수억 년 동안 지각변동이 일어나면서 오늘날의 모습으로 솟아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과학자들은 울룰루 지역의 암석 지층들이 빠르고, 거대한 크기의, 그리고 격변적인 홍수(노아의 홍수와 같은)에 의하여 생겨났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울룰루를 오른 사람들. 에버리진이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성지는 쇠말뚝이 박혀지고 등산객드로 오염되며 몸살을 앓고 있다.  

 

 
울룰루는 서양인들에게는 에어즈 록(Ayers Rock)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이는 영국 식민지 시절 호주의 총독을 맡았던 헨리 에어즈(Henry Ayers)의 이름을 따서 부르기 시작한 데서 기인한다. 허지만 울룰루는 이미 2만 년 전부터 애버리지니들이 이름을 지어 숭배해온 그들 영혼의 성소이다. 특히 전통적인 이 지역 토착민 아난구(Anangu)민족에게는 먼 옛날부터 민족 신앙의 현장이자, 그들이 추앙해 왔던 추쿠르파(Tjukurpa)법의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 왔다. 그래서 애버리지니들은 그들 영혼의 성소인 울룰루를 절대로 오르지 못하게 금기 시켜왔다.

그러나 백인들이 호주 대륙에 발을 들여 놓으면서부터 울룰루는 온갖 수난을 겪고 있다. 그들은 이 땅의 주인이었던 애버리지니들로부터 울룰루를 빼앗고, 그 이름까지 창씨개명을 하더니, 급기야는 정상까지 등산용 쇠말뚝을 밖아 관광지로 개발했다. 원주민들이 신성하게 여기는 성지까지 무차별하게 개발하는 서구인들은 언젠가는 신의 이름으로 징벌을 받지 않을까? 지금 울룰루는 수많은 여행객의 구둣발에 밟혀 더럽혀지는 오욕을 겪고 있다. 이는 마치 일제 강점기에 우리가 겪어야 했던 치욕과 비슷하다.



절대로 ‘오르지 말아야 할’ 울룰루

이튿날 우리는 울룰루 정상을 등산하는 대신 9km에 달하는 바위 둘레를 걸어서 한 바퀴 돌기로 했다.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애버리지니들이 애지중지 아끼는 성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갖출 것 같아서였다. 내 문화와 종교가 중요하면 무릇 남의 것도 소중하게 여겨줄 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울룰루 트레킹은 베이스 워크 사우스(Base walk south), 베이스 워크 노스(Base walk north), 말라 워크(Mala walk), 렁카타 워크(Lungkata walk)로 나누어진다.

 

 

*마치 조스의 입처럼 생긴 울룰루

 


혹서기에 거대한 바위를 한 바퀴 도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거의 한 나절이나 넘어 걸렸다. 그러나 가까이서 바라보는 바위는 더욱 기기묘묘했다. 어떤 것은 죠스의 입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떤 것은 사람의 뇌를 단층으로 촬영 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달의 표면이나 화성의 표면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곳이 있는가 하면, 사랑의 심벌마크 모양과 거대한 파도가 휘말려가는 물결처럼 보이는 바위모양도 있었다.

아내는 더위도 잊은 채 기이한 바위의 형상에 취해 연신 탄성을 토해냈다. 붉은 바위 위에 앉아 있는 아내는 마치 미지의 혹성에 불시착한 외계인처럼 보이기도 했다. 파도처럼 굽이치는 바위를 타며 우리들의 희망을 힘껏 외쳤다. 그것은 ‘여기에’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는 자유에 대한 기쁨이었다.


 

 

*사람의 뇌, 달의 표면, 파도 등 갖가지 모습을 하고 있는 울룰루는

지각변동설과 노아의 방주설 등  수억년을 지나며 생겨났다는 갖가지 설을 가지고 있다.

 

 
무티츌루 워터홀(Mutitjulu Waterhole)에 도착을 하니 신기하게도 바위에서 물이 철철 흘러내리고 있었다. 숲도 없는 바위 꼭대기에서 물이 흘러내리다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예전엔 애버리지니들이 ‘성수’처럼 여겼던 소중한 식수였다고 한다. 지금은 정상에 오른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와 오물, 구토 등이 빗물에 쓸려와 마실 수가 없는 물이 되어 버렸다. 원주민들이 ‘오아시스’처럼 소중하게 여겼던 생명의 물은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이렇게 오염되고 있었다. 사막에서 마실 물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우리는 아웃백을 여행하는 동안 내내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아웃백 부시워킹 투어에 참여한 우리는 밤에는 사막에서 텐트를 치고, 밥을 손수 해 먹으며, 야생에서 잠을 잤다. 이른 바 ‘야생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우리는 터득하고 있었다. 그토록 덥기만 했던 사막의 밤은 서늘했다. 우리는 앨리스스프링스에서 울룰루로 오는 중간 중간에 주어온 마른 막대기들로 모닥불을 지폈다.

 

 

 * 무티출루 워터홀에는 신기하게 물이 흘러내리고 나무들이 살고 있다. 이 물은 종전에는 애버리진이 성수처럼

마셨던 물이었으나지금은 등산객들이 바위에 올라가 오염을 시키는 바람에  마실수 없는 더러운 물로 별하고 말았다.  

 


칠흑 같이 어두운 사막의 밤하늘에 빛나는 별은 아름답다 못해 황홀했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하얀 메밀꽃 같은 은하수가 하늘가를 흐르고, 크고 작은 별들이 무수히 어두운 창공에 흩어져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스멀거리는 벌레들 때문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아내는 벌레가 무서워 내 품 속에 아예 안겨 있었다. 벌레들은 별이 빛나는 아름다운 밤에 잠을 자지 말고 반짝이는 별을 구경이라도 하라는 듯 더욱 기승을 부렸다. 벌레들과 공존하며 지새우는 야생에서의 밤은 그렇게 지나갔다.

우리는 하늘의 별을 바라보다가 새벽녘에야 꼬박 잡이 들었다. 짧지만 아주 단 잠이었다. 기분의 개운하고 피로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사람은 잠을 푹 자고나면 저절로 병이 낫기도 하고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잠을 자는 동안에는 오감이 차단되어 아무것도 먹지도 듣지도 않고 휴식을 취하게 된다. 오감이 차단된 뇌는 기분 좋은 알파(α)파를 발산시키고, 동시에 엔도르핀이 온 몸에서 분비된다.

 

 

* 어두어지는 울룰루의 하늘. 우리는 야생의 텐트에서 별을 바라보며 벌레들과 함께 밤을 새웠다.


 

'사랑의 성소'로 동경을 받고 있는 울룰루


이 알파(α)파는 우리가 깨어 있을 때에도 나올 때가 있다. 그것은 ‘사랑을 할 때’라고 한다. 사랑을 할 때 마음이 흐뭇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알파(α)파가 나오면서 동시에 엔도르핀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깨어 있을 때 우리가 할일’은 부지런히 서로를 사랑하는 일이다.

여행은 사랑이다. 남자와 여자 ‘둘만 떠나는 여행’은 저절로 사랑의 분위기를 연출하게 된다. 여행을 하는 동안에는 우리 뇌 속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모든 잡다한 번뇌들은 마치 포맷이 된 컴퓨터처럼 싹 지워지고 생각은 단순해진다. 스쳐지나가는 풍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고 저절로 사랑의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물론 싸워서 갈라져 오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아름다운 것만이 사랑이 아니다. 곳곳에 남아있는 추억, 기쁨, 아픔, 고통, 다툼 등 함께 살아온 삶의 얼룩이야말로 진실로 사랑이 아름다운 이유가 되지 않겠는가. 
  

 

 * 단일바위로는 세계 최대라는 울룰루는 둘레가 9km에 달하며  한바퀴 도는 데는 거의 한나절이 걸린다.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 도달하지 못할 사랑도 그 영혼의 면면에 흐르는 사랑은 아름답다. 영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가 그토록 일본인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남자주인공 ‘사쿠’가 죽도록 사랑했던 ‘아키’의 영혼을 죽은 후에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상영된 이후 울룰루는 일본인들에게 ‘사랑의 성소’로 각인되어질 정도로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우리들의 마음은 원래가 맑고 청정하다. 아무리 삶에 찌들어 얼룩이 진 마음의 창이라 할지라도 ‘사랑’이란 커튼으로 갈아 끼우면 우리의 삶은 엄청난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2009년은 소의 해다. 소띠 해는 여유와 평화의 해라고 한다. “천천히 걸어도 황소걸음”처럼 서로를 은근과 끈기로 사랑하며 살아간다면, 아름다운 사랑의 새해가 열리지 않겠는가. 생각해 보면 ‘세상의 중심’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단 둘이서 가까운 곳에라도 여행을 떠나 서로의 사랑과 희망을 힘껏 외치며 새해를 맞이하자.

 

 

 

(저물어 가는 2008년을 바라보며... 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