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형들의 이별
드디어..... 인형들의 이별이 시작되었다. 비록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인형들은 서로 이별을 아쉬워하며 슬퍼하고 있었다.
마티와의 인연
아침 8시 28분. 호주의 브리즈번에서 골드 코스트로 가는 기차는 정확히 예정된 시각에 출발을 했다. 우리가 골드 코스트로 가는 것은 그 유명한 서퍼스 파라다이스를 보러 가는 것도, 황금빛 모래사장을 보러 가는 것도 아니었다.
(사진 : 골드코스트 기차역에서 이별을 앞두고 있는 마티(앞쪽)와 스탠리(뒤쪽))
그곳에는 5년전에 유럽여행에서 만났던 조앤과 카멜이라는 두 여인이 살고있기 때문이다. 브리즈번에 도착을 하여 조앤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녀는 꼭 골드코스트에 들려달라고 '플리스please'를 연발했다. 유럽여행지에서 만난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우리는 서로를 기억하며 그리워하고 있었다. 여행지에서 순수하게 만난 여행자들은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어떤 텔레파시 같은 끈끈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유럽여행을 갔을 때 나는 여행의 일부를 다국적 투어에 참여를 했는데, 그 때 이 두 여인을 만났다. 조앤은 중등학교 체육교사이고, 카멜은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라고 했다. 그들도 방학을 이용하여 유럽여행을 오게 되었는데 우연히 우리와 같은 그룹에 끼어 여행을 함께 하게 되었던 것.
그 여행길에서 우리들 사이에는 서로가 잊지 못할 추억 한 토막씩을 간직하고 있었다. 베니스에서 우리는 은혼식 기념일을 맞이하게 되었는데, 그 때 조앤은 버스에서 장미꽃 한 송이를 우리에게 선물하며 "해피 애니버서리" 축하노래를 불러주었고, 우리는 베니스 부라노Burano 섬에서 조앤이 들고 다니는 Marty라는 인형을 위해 흰색 레이스를 한 장 사서 주었다. 마티는 조앤이 애지중지 아끼며 언제나 들고 다니는 귀여운 아기 곰 인형이다.
그 뒤 우리는 매년 크리스마스카드를 주고받으며 인연의 끈을 놓지 않았다. 카드를 보낼 때마다 조앤은 "From Jo, Carmel and Marty"라고 썼고, 나는 "To Jo, Carmel and Marty"라고 써서 그들에게 카드를 보냈다. 우리의 편지 속에는 언제나 마티의 존재가 있었고, 마티의 안부를 전하고 물었다. 마티 인형은 우리들에게 살아있는 존재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5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 우리는 지금 그들을 만나러 골드 코스트로 향하고 있었다.(사진 : 조앤과 6년 동안 가장 애지중지 아끼며 함께 지내고 있는 Marty의 멋진 포즈. 모자는 베니스에서 산것이다.)
호주 골드 코스트에서의 해후
브리즈번에서 골드 코스트까지는 1시간 정도 걸렸다. Nerang역에 도착하여 조앤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근무 중이라 픽업을 나가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며 서퍼스 파라다이스에서 만나자고 했다. 서퍼스 파라다이스 맥도날드 가게에 도착하자 조앤과 카멜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조앤의 품에는 Marty가 앉겨져 있었다.
"와우, 초이, 롱 타임 노씨!"
"이게 얼마만인가!"
우리는 서로를 포옹하며 해후의 기쁨을 나누었다. 조앤은 마티를 아내에게 건네주었고 아내는 마티의 입에 키스를 하며 마티와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유럽여행 시에도 아내는 마티를 자주 앉고 다녔기에 정이 듬뿍 들었던 것. 여행은 만남의 기쁨이 가장 크다. 세계일주를 하는 동안에도 가장 즐겁고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사람과의 만남이었다.
▲골드코스트 서퍼스 파라다이스에서 5년만에 다시 만난
조앤(맨 우측)과 카멜(맨 좌측) 그리고 Marty인형과 함께.
우리는 해변의 레스토랑에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마티는 멋진 모자를 쓰고 작은 핸드백을 매고 나왔는데, 모자는 유럽여행 때 베니스에서 산 것이고, 핸드백은 스코틀랜드에서 산 것이라고 했다. 조앤은 우리가 부라노 섬에서 사 주었던 레이스와 함께 찍었던 사진앨범까지 들고 나왔다. 우리는 유럽 여행을 추억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초이, 당신은 참으로 대단해요."
"뭐가요?"
"이렇게 아픈 아내와 함께 세계일주를 하다니."
"대단한건 내가 아니라 박이지요. 그리고 지금은 오히려 내가 아파요. 하하하."
"정말 그렇게 보이네. 호호호."
점심을 먹은 후에 우리는 조앤이 운전하는 자동차를 타고 골드 코스트 주변을 돌아보았다. 글자 그대로 황금빛 모래사장이 끝없이 이어지는 골드 코스트는 서퍼들의 천국이다. 서퍼스 파라다이스를 중심으로 총 78km에 달한다는 해변에는 1년 내내 관광객이 끊이지를 않는다.
마티와 작별을 고하는 스탠리 슬픔
은빛 파도가 부서지는 황금빛 모래사장을 걸으며 여행에 대한 추억담으로 우리는 시간가는 줄을 몰랐다. 그러나 이윽고 이별의 시간이 다가왔다. 조앤과 카멜은 우리를 Nerang역까지 데려다 주었다. 기차역에서 조앤은 인형 하나를 우리에게 건네주었다.
"스탠리Stanley라는 인형이야. Marty보다 한 살 더 먹었어."
"그럼 마티의 오빠?"
"응, 그런 셈이지. 이 스탠리를 골드 코스트에 온 기념으로 초이부부에게 선물하고 싶어요."
"아니, 그 소중한 인형을?"
"소중하니까 주는 거야. 초이부부의 행운을 빌며."
"조앤. 고마워요."
고맙고도 감사했다. 스탠리는 조앤이 7년간이나 함께 지낸 인형이라고 했다. 6살백이 마티는 여자 아기 곰이고 스탠리는 남자 아기 곰이라는 것. 그들은 자매처럼 조앤의 집 마스코트로 다정한 자매처럼 함께 지내왔다는 것. 카멜이 스탠리의 가슴에 호주 국기가 그려진 조그마한 마크를 하나 달아주며 말했다.(▲사진:골드 코스트 기차역에서 이별을 아쉬워하고 있는 마티와 스탠리)
"이 마크는 골드 코스트 시장이 나에게 선물로 준 것인데 초이 부부에게 주고 싶어요."
"아니, 그렇게 귀한 마크를?"
"그래도 스탠리와 함께 선물하고 싶어요."
"카멜 너무 고마워요!"
세상에서 무엇보다도 귀한 선물이었다. 비록 가격으로 따지면 얼마되지는 않는 것들이지만 그들의 풍습으로 보아서는 인형이나, 강아지, 기념품들은 두고두고 애지중지 아끼는 존재들이다.
"조앤, 스탠리를 보내는 마티의 표정이 울상인데 데려가도 될까?'
"괜찮아. 내 대신 스탠리를 잘 보살펴 줘요."
"저런, 스탠리도 슬픈 표정을 짓고 있네!"
그랬다. 드디어..... 인형들의 이별이 시작되었다. 비록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인형들은 살아있는 곰처럼 이별을 아쉬워하고 슬퍼하는 것 같았다. 기차가 출발을 했다. 우리는 스탠리를 차창에 세워들고 손을 흔들었다. 플랫트 폼에서 조앤과 카멜은 마티를 가슴에 앉고 우리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댔다. 스탠의 표정이 어쩐지 인형들의 표정은 더욱 스탠리는 그렇게 마티와 헤어져서 한국으로 왔다. 우리는 마치 입양을 하듯 스탠리를 소중하게 집으로 데리고 왔다.
(▲사진 : 한국의 우리 집으로 입양을 온 스탠리는 새로운 친구를 만났지만 여전히 고향의 마티를 그리워하고 있는 표정이다.)
낯선 한국으로 오게 된 스탠리는 우리 집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만났다. 25년간 우리 집 마스코트 역할을 하고 있는 '봉이인형', 그리고 작년에 태즈매니아에서 온 '악마인형(Tasmania Devil)' 등. 그러나 스탠리는 여전히 골드 코스트의 마티를 그리워하고 있는 표정이다.
스탠리가 마티와 해어진지도 벌써 5년이나 지나갔다. 내일 모래가 오면 크리스마스이고 스탠리는 우리 집에 입양을 한지 6년이 되어 간다. 호주에서 7년을 살았으니 스탠리는 13살의 성장한 소년으로 자라랐다. 그렇다면 마티의 나이는 12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스탠리는 마티를 더욱 그리워하는 것 같다. 언젠가는 다시 마티가 있는 그의 고향으로 스탠리를 데려다주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