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맞이한 황홀한 일몰-호주를 떠나며
그랬다.
우리들의 세계 일주 여행도 이제 이렇게 저물어 가고 있었다.
호주에 도착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우리는 어느새 브리즈번 상공을 날아가고 있었다. 북유럽의 땅 끝에서 러시아-동유럽-포르투갈-남미-호주로… 지구를 돌아 돌아 헤맸던 우리는 홍콩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뭉게구름이 마치 비행기를 떠받치듯 숭얼숭얼 솟아올라 오고 있었다. 지나 온 여정도, 만났던 사람들도 바다와 산도 모두 구름 속에 묻혀 버렸다. 모든 것이 지나고 나면 뜬 구름 같은 것… 구름은 그렇게 나를 일깨워주고 있었다.
구름위에서도 해는 졌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구름은 신비한 장면을 연출했다. 구름들이 마치 빛을 향해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저 높은 곳에서는 메시아라도 나타날 것만 같았다. 메시아! 신이 우리들의 긴 여정을 무사히 마치도록 돌보아주지 않았을까?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의 화려한 오르간 화음이 마치 구름 속에서 피어나는 것 같았다. 푸가의 화음처럼 구름들은 빛을 향하여 연달아 뒤따라가고 있었다. 그것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D단조였다. 그리고 구름의 층마다 자유로운 선율이 높고 낮은 음을 뽑아내며 한군데로 향하고 있었다.
해가 점점 구름 속으로 기울자 붉은 노을이 하얀 휘장을 붉게 물들여 가기 시작했다. 하얀 구름은 붉은 시트로 변해가며 이내 화려한 침상을 깔아 놓고 있었다. 비행기의 날개 아래로 사라져 가는 해는 아름다웠다. 붉은 태양은 토카타의 전주곡처럼 화려하게 구름을 수놓으며 판타지아를 연출해 내고 있었다. 해가 구름 속으로 가라 앉아 버리자 이윽고 하늘도 어두워지고 말았다.
“우리의 황혼이 저렇게 아름다울까요?”
“물론이지.”
아내는 구름 속으로 사라져 버린 태양이 아쉬운 듯 서쪽을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생은 황혼이 아름다워야 해. 어두워진 하늘을 바라보며 나는 내 인생의 황혼을 생각해 보았다. 이렇게 아내와 함께 늦은 나이에 세계 일주를 하는 것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 인생인가? 갖은 고생을 다 했지만 모두가 저 아름다운 일몰처럼 아름다운 추억으로 되돌아왔다.
내 인생에 또 다시 이런 기회가 올 수 있을까? 아마 힘들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이번 여정은 나와 아내의 인생에 있어서 커다란 한 획을 긋는 여행이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여행.
곧 기내식이 나왔다.
아내와 나는 붉은 포도주 잔을 부딪쳤다.
식사를 마친 아내는 골드코스트의 조앤이 준 스탠리 인형을 부둥켜안고 이내 잠이 들었다. 스탠리와 함께 잠이든 아내를 바라보다가 나 역시 깊은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말았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높고 큰 침상에서, 태양과 구름이 깔아준 화려한 시트 위에서 잠들고 있었다.
(호주를 떠나며 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