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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주고 싶은 곳과 보고 싶은 곳의 차이

찰라777 2010. 2. 11. 20:27

  

사람들은 왜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페루의 마추픽추, 로마의 콜로세움을 그토록 보고 싶어 할까? 그것은 그 당시 건축이 불가사의 하다는 것과, 오래된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로마의 원형경기장인 콜로세움은 서기 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에 의해 착공되어 8년 뒤인 티투스 황제 때인 80년에 완공되었으니 올해로 2002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콜로세움은 반쯤은 허물어진 모습 그대로다. 안으로 들어가면 더욱 가관이다. 허물어진 채 아무렇게나 늘어서 있는 돌담들이 더욱 예스러운 정취를 풍긴다. 로마의 모든 건축물은 반은 허물어진 모습 그대로다. 이는 전쟁이나 다른 충격에 의해 무너진 것이 아니라 단순히 오래되어서 허물어진 것이라고 한다. 문제는 허물어진 성벽에 이끼가 끼고 고양이나 쥐가 들락거리는 콜로세움이 여전히 여행자들의 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페루의 마추픽추, 캄보디아의 앙코르 와트도 같은 맥락이다. 여행자들은 오래된 성터나 왕궁에서 수천 년 전의 전통과 문화를 느끼고자 유적지를 찾아간다. 그런 유적지는 오지말래도 기를 쓰고 찾아가는 것이 여행자들의 심리다.

 

이태리 당국은 허물어진 성터나 유적을 함부로 손을 대지 않는다. 오히려 허물어진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안간 힘을 쓰고 있다. 작은 흠집이 난 곳에 페인트 하나 칠하는 사람들도 모두가 고고학 박사나 그 방면에 전문가들이라고 한다. 그리고 떨어진 조각 하나를 복원을 하는 데에도 몇 년에 걸쳐 고증을 한 후 가장 원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복원이 가능할 때에만 손을 댄다고 한다.

 

만약에 콜로세움을 이태리의 현대적인 건축기술로 완벽하게 복원을 하여 놓았다면 어떻게 될까? 원형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시멘트를 발라야 하고 현대적인 건축자재를 써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2000년의 정취는 사라지고 현대화된 건물로 변하고 말 것이다.

 

 ▲2000년이 넘도록 원형을 유지하기 위해 안감힘을 쓰고 있는 로마의 콜로세움과 군 막사 토치카처럼 시멘트를 발라 졸속 건설된 동대문역사문화박물관. 물론 이 두 건물을 같은 선상에 놓고 대비할 수는 없지만 역사 유적은 함부로 손을 대서는 안된다는 것을 극적으로 느낄 수 있다.

  

<세계디자인수도 2010, 서울>을 구상하고 있는 요즈음, 최근에 복원된 동대역사문화공원을 다녀왔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와 공원을 건설하기 위해 구 동대문운동장을 허무는 과정에서 서울성곽을 비롯하여 조선시대의 많은 유물들이 발견되었다. 이에 서울시는 당초의 설계를 변경하여 축구장 일부를 <동대문역사문화공원>으로 꾸며 놓았다.

 

그런데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역사문화공원의 시설물부터 염증을 느끼기 시작한다. 동대문운동장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기 위해 건설된 구조물은 마치 군대 막사 토치카를 방불케 한다는 것이다. 너무나 전시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빠른 시일 내에 뚝딱 하고 건축해버린 것은 아닐까? 그래서인지 한 번 방문을 한 사람들은 두 번 다시 가고 싶지 않는 곳이라고 입을 모은다.

 

시멘트로 발라놓은 시설물로 들어가면 매캐한 시멘트 냄새가 코를 찌른다. 정원에 늘어놓은 돌이나, 우물 등의 유적도 인위적이고 졸속으로 꾸며 놓아 전혀 예스러운 정취를 느낄 수가 없다. 일제 강점기 왕세자의 결혼기념으로 운동장을 건설하기 위해 허물어 버린 성곽의 복원도 어쩐지 억지로 끼워 맞춘 듯 어색하다. 성터에서 발굴된 돌과 새로 깎아낸 돌로 이간수문과 142m의 성곽을 복원하여 놓았지만 전혀 조선시대의 성곽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구 야구장 터에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초현대식 건물로 짓고 있다. 세계적인 건축 설계자들에게 공모를 하여 당선된 이란 출신 여성 건축가가 설계한대로 짓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서울시는 이 건물을 파리의 에펠 타워나,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처럼 서울을 상징하는 랜드 마크로 삼겠다고 한다.

 

그러나 이 건축물의 모형을 보면 한국을 상징하는 그 어떤 것도 찾아볼 수가 없다. 좀 더 한국적인 냄새 풍기는 건축설계는 없었을까?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모형도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복원된 이간수문은 그 거대한 돌 하나만 보더라도 대단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굳이 오래된 돌에 새로운 돌을 끼워서 완전하게 복원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차라리 발굴당시 허물어진 모습 그대로가 훨씬 자연스럽고 역사적인 값어치가 있지 않을까?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안동 하회마을을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로마의 콜로세움과 동대문역사문화박물관을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역사적인 유적지는 너무 빠르게 보여주려고 하다가는 역사적인 정체성이 사라지고 만다. 특히 위정자들은 자신의 임기 내에 전시효과적인 치적으로 남기기 위해 서두르다가는 큰 오류를 범하기 쉽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자칫 보여주는 데에만 신경을 쓰다보면, 정작 보고 싶어 하는 유적지를 훼손만 하는 결과를 초래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자신의 생일을 맞이하여 안동의 하회마을과 천년고찰 봉정사를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여왕은 가장 한국적인 전통이 깃든 모습을 보고 싶었고, 가장 한국적인 맛을 풍기는 음식을 맛보고 싶었을 것이다. 여행자들은 현대적인 건축물을 보고자 결코 한국을 방문하지는 않는다.

  

청계천이나 새로 조성된 광화문 광장은 눈요기꺼리는 될지언정 진정한 여행지는 될 수 없다. 여행자들은 산업시찰이나 연수목적의 방문객과는 다르다. 그들은 가장 한국적인 곳, 가장 토속적인 맛을 물씬 풍기는 그런 음식을 원한다. 예컨대 여행자들은 광화문 보다는 북촌의 옛집을, 남산타워 보다는 오래된 서울성곽 길을 걷고 싶어 한다. 호화로운 뷔페보다는 피맛골의 냄비에 담겨 나오는 김치찌개나 안동하회마을의 헛제사밥 같은 먹거리를 더 인상 깊게 체험을 하고 싶어 한다.

 

보여주기 위해 새로 말끔하게 건축한 곳보다는 여전히 허물어진 성터나 로마의 콜로세움처럼 오래된 옛 모습을 보기 위해, 여행자들은 오늘도 로마로 벌떼처럼 몰려간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