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섬진강일기

구례구역에 내리면 누군가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을 것만 같다①

찰라777 2010. 8. 27. 11:52

구례구역에 내리면

누군가가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을 것만 같다

 

 

▲구례구역 

 

 

구례구역에서 기차를 타다

 

구례구역에 내리면

누군가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을 것만 같다

사람만이 아니다

 

아침 8시 31분, 구례구역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탔다. 오늘은 네팔 트리뷰반 대학 밀란 석가 교수의 전시회 초대를 받아 서울에 가는 날이다. 구례 섬진강변 산골 마릉에 내려와 살다보니 서울에 올라간다는 일이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다.

 

그러나 히말라야의 귀한 화가 밀란 교수를 초청하여 전시회를 여는 이근후 선생님(가족아카데미아 이사장)께서 사진을 찍어 달라는 부탁도 있고, 또한 밀란 교수의 가네시 전을 꼭 관람을 하고 싶기도 하여 아내와 함께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기로 했다.

 

밀란 교수는 석가족의 후예로 힌두 신 가네시에 대한 세계적인 연구자이며, 네팔 트리뷰반 대학에 단 하나 밖에 없는 불교학 교수 겸 화가이기도 하다. 또한 그의 부인은 샌드 만다라(Sand Mandala)를 제작 시연하는 전문가이다. 밀란 교수는 세종문화회관 광화랑에서 8월 11일부터 가네시에 대한 그림만 개인전을 17일까지 전시를 하고 부인과 함께 만다라 제작시연, 고려사이보대학 초청강연 등 활발한 활동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하여간 우리는 밀란 교수의 가네시 전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섰다. 이사를 하고나서 한 달에 한번 아니면 두 달에 한 번 서울에 다녀오기는 하였지만 이제 자동차를 몰고 서울에 가는 것이 더럭 겁이 난다. 그 동안에는 이런 저런 이삿짐을 옮겨 오느라 부득이 자동차를 몰고 갔지만 이번에는 아예 기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승용차를 몰고 가면 피곤하기도 하지만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 기름 값이며, 통행료를 합하면 최소한 15만 원은 넘게 들어간다. 그러나 기차를 타고 가면 낮잠도 잘 수 있고 비용도 훨씬 적게 들어간다. 그래서 앞으로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서울에 갈 때에는 기차를 타고 가기로 했다.

 

신호등이 없는 녹색 길

  

 ▲신호등이 없는 녹색의 길

 

▲사방이 푸르러 눈이 저절로 좋아진다 

 

배낭에 기차에서 먹을 간식거리와 읽을 책을 챙겨들고 우리는 아침 8시 31분에 출발하는 새마을호를 타기 위해 구례구역으로 갔다. 구례구역까지는 자동차를 몰고 갔다. 간전면 수평리에서 구례구역까지는 15km 정도 되는 데, 가는 길 내내 신호등 하나 없다.

 

순천으로 이어지는 865번 도로를 타다가 간전면 사무소가 있는 마을에서 좌회전을 하면 861번 도로로 이어진다. 이 길 오른 쪽에는 섬진강이 은은하게 흘러내린다. 양편에 벚나무터널을 이루고, 왼쪽에는 계족산, 오른쪽에는 지리산을 끼고 그 사이에 섬진강이 오선지처럼 흐르고 있다. 상쾌하기 그지없다.

 

"아빠, 이 파란 색만 보아도 속이 시원하고 눈이 좋아지는 것 같아요!"

 

지금은 유럽에 스케치여행을 떠나있는 둘째 경이가 댕기러왔다가 이 길을 따라 구례구역으로 기차를 타러가며 한 말이다. 경이의 말처럼 매일 파란색만 보며 지내여서인지 아침에 일어나도 눈에 눈곱이 별로 끼지않고, 방과 거실을 걸레로 닦내도 먼지가 별로 없다. 구례구역까지 논스톱으로 이어지는 길, 자동차는 마치 오선지에 악보를 그리듯 천천히 달렸건만, 20분도 채 안되어서 구례구역에 도착한다.

 

“세상에 이런 곳을 두고 왜 지금까지 서울에서만 살았을까요?”

“그게… 글쎄, 삶이란 다 때와 시절인연이 있는 아니겠소? 이제야 섬진강에 살아갈 시절이연이 우리에게 닿은 거겠지.”

 

섬진강변에 펼쳐지는 풍경을 신통방통한 듯 바라보던 아내는 왜 이제야 우리가 섬진강으로 이사를 왔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삶이란 먹고 사는 벌이가 있어야 하고, 가고 싶은 곳도 시절인연이 닿아야 하는 모양이다. 그 동안 먹고 사는 벌이를 위해서 서울에서 살아가야 하기도 했지만, 섬진강과의 시절인연도 이제야 닿은 것이 아니겠는가.

 

 ▲예절이 바른 고을 구례로 들어가는 입구인 구례구역

 

▲역사에 열리고 있는 지리산 사진전시회

  

▲돈을 받지않는 널널한 구례구역 주차장이 여유롭다

 

추억의 기차역에서

 

구례읍 쪽에서 섬진강을 지나면 바로 구례구역(求禮口驛)이다. 예절이 마른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뜻을 가진 구례구역은 놀랍게도 순천시에 속한다. 구례구역을 보는 순간 아지랑이 같은 향수가 피어오른다. 섬진강변을 따라 온 철길, 기다림과 그리움이 있을 것만 같은 모습이다.

 

"아주 널널한 주차장이군요."

"그러게 말이요."

 

한적하고 넓은 주차장에 주차를 시키고 역 안으로 들어가는데 평행선을 긋는 철길이 끝 간 데 없이 아스라하게 보인다. 서울과 여수로 가는 길, 아니 북한을 통해 몽골과 러시아, 그리고 유럽으로 이어지는 철길이 아닌가.

 

구례구역 안에는 지리산을 주제로 한 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젤에 받쳐진 사진들이 자연스럽게 갤러리를 연출하고 있었다. 지리산 등산을 다녀온 사람들과 보따리를 짊어진 구례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들기 시작했다. 역사 안은 에어컨디션을 가동하여 시원했다.

 

시차가 도착할 시간이 다 되어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데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제 시골역도 문명의 이기인 엘리베이터가 들어서 있었다. 엘리베이터는 플랫폼으로 올라가는 곳마다 설치가 되어 있었다.

 

여수에서 출발한 새마을호는 8시 31분 정각에 도착했다. "4호차 좌석번호 39~40", 지정좌석을 찾아가 자리를 잡으니 공간이 넓었다. 오히려 KTX보다 쾌적한 공간에 의자도 편했다. 

 

 ▲서울가는 새마을호를 기다리고 있는 한적한 구례구역

 

▲구례구역에 도착하는 새마을호 

 

 

 ▲새마을호 좌석이 KTX보다 넓고 편하다

 

"48년 전 석탄을 때는 완행열차를 타고 수학여행을 왔던 생각이 나요. 한 친구가 차멀미를 심하게 하여 목포에서부터 난간의 발판에 쪼그리고 앉아 구례구역까지 왔었는데…… 그 때 구례구역은 아주 작은 간이역이었어요."

"저런!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럼 그때부터 구례와 인연이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런지도 모르지요"

 

아내는 과거를 회상하듯 눈을 갸름하게 뜨고 추억을 더듬고 있었다. 아버님이 고등학교에 가는 것을 포기하라고 하며 대신 수학여행을 보내 주었다고 한다. 장녀인 아내는 밑으로 남자동생들이 셋이나 있어서 남아선호 사상이 뚜렷한 그 당시 아들들을 학교에 보내야 하니 여자인 아내는 중학교만 졸업을 하는 것으로 만족을 하라는 것이었다는 것.

 

이야기를 하는 동안 기차는 섬진강을 오른쪽에 끼고 달려갔다. 낮은 구름이 산허리에 걸려있고, 푸른 들과 초록이 우거진 나무들이 차창으로 지나갔다. 나는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기적적으로 제3의 삶을 살아고있는 아내를 바라보는 것 자체가 기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가 아닌 마치 다른 나라나 어느 혹성으로 떠나는 여행 길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생명이란 꿈과 같고, 환상과 같으며, 물거품과 같고, 그림자와 같으며, 이슬과 번개처럼  아주 짧은 것 같으면서도 또 이렇게 질긴 것이다. 그러니 찰나는 영원한 것이며, 영원한 시간도 또한 찰나 순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아내를 육신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아오게 되었다. 아내의 육신은 다른 사람의 장기가 들어가서 아내의 생명을 살리고 있다. 그러나 마음은 그대로이다. 마음과 육체는 영혼을 담는 그릇이다. 육체란 허망한 것이고, 마음은 영원한 것이라면, 마음과 육체가 합한 영혼은 이 둘의 업에 따라 윤회를 할 것이 아니겠는가? 말하자면 본인의 마음과 육체가 스스로 지은대로 현재와 미래에 과보를 받는 다는 것이다. 

 

문득 '상(相)을 취하지말고, 여여부동(如如不動)하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미혹에 끄달리지 말고 항상 깨어 있으라는 사자후다. 이는 시비를 하지말고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의 세상을 보라는 것이며, 아믕에 출입함이 없고, 어디에 향하거나 흔들림이 없어 일체 모든 것에 평등하다는 말이다. 놀라지않고 진솔하며, 바른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면 생사에 걸림이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인데, 사바세계를 상아가는 중생의 중생살이가 어찌 그렇게만 살아갈 수가 있겠는가?

  

▲곡성역에 승객들이 내리고 있다. 

 

엇! 망상을 멈추자. 기차는 곡성역에 도착했다. 곡성역은 '추억의 기차'로 뜨는 역이다. 요즈음은 '철로 위를 달리는 철로자전거'를 타러 연인들이 몰려들고 있다. 곡성역 가까이 가니 철로자전거를 타는 연인들이 줄지어 철길을 달리고 있었다.

-하편에 계속-

 

(2010.8.12 구례구역에서 서울로 가는 새마을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