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오늘은 2월 4일 입춘이다. 얼었던 대동강 물도 녹아 풀린다는 우수를 바라보는 절기이다. 목포에 계시는 장모님 곁에서 설을 보내고 4일 만에 구례 집으로 돌아왔다.
10여 년 동안 치매를 앓고 계시는 장모님은 아내와 나를 알아보았다 몰라보았다 하신다. 기억의 필름이 끊겼다가 이어졌다가 하는 것이다. 그런 장모님 곁에서 4일 밤을 자고 돌아서는데 영 마음이 아프다. 앞으로 더 자주 찾아뵈어야 할 것 같다.
구례 집을 들어서며 가장 간절하고 궁금한 건 집에 물이 나오느냐 아니 나오느냐다. 요 며칠 영상의 날씨였으니 제발 좀 물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대문을 들어섰다.
그런데……. 거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부엌에서 물이 콸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질 않겠는가! 강추위로 꽁꽁 얼어붙었던 수도 파이프를 녹여보려고 가진 애를 써 보았지만 허사였는데 기온이 올라가 물이 나오다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완풍기를 파이프에 대고 틀어보고, 드라이기를 돌려보기도 하고, 장작을 지펴 불을 놓아보기도 했지만 집 밖에 10여미터 설치된 수도 파이프는 꿈쩍도 하지않았다. 그런데 기온이 올라가니 슬그머니 얼음 사슬이 녹아난 것이다.
▲수도꼭지와 파이프를 천으로 싸매고 박스로 덮어 놓았지만 강취로 꽁꽁 얼어붙고 말았다.
"여보, 물이 나와요!"
나도 모르게 환호를 크게 지르며 거실로 뛰어 들어 갔다. 아내도 덩달아서 환호를 지르며 따라 들어왔다. 우리는 싱크대에 떨어지는 물과 물소리를 들으며 한동안 감격에 겨워했다. 물 한 방울에 이렇게 고마움을 느껴보기는 처음이다.
"여보, 화장실 하수구도 뚫렸어요!"
화장실에 들어간 아내가 큰 소리로 나를 부른다.
"어디?"
화장실에 들어가 보니 얼어붙었던 하수구 구멍에 녹은 얼음이 둥둥 떠올라 있었다. 기온이 올라가니 얼었던 물이 이렇게 녹아 나는 것을……. 새삼 계절의 변화에 따른 기후변화를 깊게 느낀다.
변기에 물도 잘 내려가고, 세면대에 물을 틀어 세수와 양치도 할 수 있게 되니 마치 천국에 온 기분이 든다. 집안에 물이 나오는 것과 얼어서 막혀 있는 것이 이렇게 차이가 나다니……. 아아, 살맛이 난다! 서울 생활에서는 느껴보지 못한 감격이다.
물이 나오니 그 모든 것이 순리대로 돌아가는 것 같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 물처럼 살아가는 노자의 가르침이 새삼 마음에 사무친다. 자연에 순응을 하고 자연의 섭리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뼈저리게 느껴진다. 한 방울의 물도 고맙게 여기며 아껴 써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해지는 순간이다.
입춘대길! 입춘일은 농사의 기준이 되는 24절기의 첫 번째 절기이다. 때문에 보리뿌리를 뽑아보고 농사의 흉풍을 가려보는 농사 점을 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 집 텃밭에 심은 보리는 워낙 추워서인지 나오다가 성장이 멈춰있다.
허지만 입춘 날에 물이 나온다는 것 자체 하나만으로도 금년 운은 대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이 순간만은 얼었던 수도가 녹아 물이 콸콸 쏟아져 내리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저 수도물이 콸콸 쏟아지듯 새해에는 경제도 풀리고 서민들의 주름살도 좀 더 펴졌으면 좋겠다. 얼음을 녹여준 태양과 자연에 감사를 드린다.
(2011. 2. 4 입춘 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