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온 예비 신랑부부
정초를 맞이하여 산골에 첫 손님이 왔다. 순천에 살고 있는 아내의 친구 영희 씨가 그녀의 남편과 딸 그리고 사위가 될 핸섬한 청년과 함께 이 지리산 산골 동네를 찾아 주었다. 가까운 곳에 친한 지기가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순천은 간전면에서 계족산을 넘어가는 새 길이 개통 되면서 매우 가까워 졌다. 구례읍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계족산을 넘어가면 청소골로 해서 순천시에 닿는다.
영희 씨는 원래 서울에 살다가 남편의 직장을 따라 순천에 내려와 산지 근 30년이 가까이 되는 걸로 알고 있다. 이번에 은행에 다니는 딸이 4월 달에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사위 될 사람이 장인 장모 될 사람에게 세배를 왔다고 한다.
신랑은 아주 남자답게 생기기도 잘 생겼고, 서글서글하여 영희의 씨의 사위 깜으로는 안성맞춤이다. 파란만장한 세월을 살아온 영희 씨는 아들도 없고 외동딸만 하나를 잘 키워 시집을 보내게 된 것이다. 아마 저 사위는 영희 씨의 아들 역할까지 톡톡히 해낼 것 같다.
▲자연석으로 축대를 쌓아올린 논두렁이 예쁘다 ▲대나무 샛길
나는 영희씨 남편과 예비 커플들과 함께 만수마을 쪽으로 산책을 갔다. 이런 시골이 처음이라는 신랑은 마을의 돌담길이며 대나무 밭을 거닐며 매우 신기하고 즐거워했다. 겨울의 들판은 삭막하다 그러나 모든 걸 훨훨 벗어버린 겨울 들판은 차라리 솔직 담백하다.
만수마을로 가는 길에는 소를 키우는 농장이 있다. 소들이 음매 음매 하며 소리를 지른다. 이곳은 아직 구제역이 전염되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소를 키우는 농부들은 불철주야 소를 돌보느라 아무 일도 못한다. 지난번에 남원으로 목욕을 갈 때에도 소를 키우는 오 씨는 목욕조차 가지 못했다. 만수마을에 도착하자 대나무 샛길로 접어든다. 유명 관광지가 아니면서 이처럼 소박하고 호젓한 길을 찾아보기란 그리 쉽지가 않다.
배용준 씨도 찾아왔던 만수마을
▲자연석으로 만든 만수마을 담장. 배용준 씨도 책을 쓰기 위해 찾았던 동네다.
"이 동네는 배용준 씨가 찾아온 동네야.'
"정말요?"
"그럼.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이란 책을 쓰면서 찾아 온 곳이지."
"아니 그가 여기까지 왔어요?"
인기 탤런트 배용준은 2009년도에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이란 책을 쓰기 위해 만수마을 찾아왔다. 만수마을은 조선말기 대학자인 매천 황현 선생님이 16년 동안 머문 곳이기도 하다. 또한 최근에는 천연염색작가 안화자 씨가 이곳에 머물고 있다.
하여간 배용준 씨가 이곳을 방문한 뒤로 봄이면 일본에서 배용준의 팬들이 찾아들기도 한다. 배용준을 사랑하는 일본 팬들의 열성은 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를 아끼고 그가 간 족적이라면 사족을 못 쓰고 찾아다니니 말이다. 순정파 일본 여인들의 대리만족을 시켜주는 희망이요 등대 역할을 해주는 배용준은 과연 한류의 주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살고 있는 만수마을과 중평마을은 자연석 돌담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계단식 논두렁도 모두 자연석 돌로 쌓아올려 운치가 그만이다. 대밭을 지나는데 꿩들이 푸드득 거리며 날아간다. 만수된장 공장의 항아리들도 정겹게 느껴준다. 몇 백 년을 묵었을 소나무들이 마을 어귀에 세월을 지키고 있다. 돌담 위에 새워진 흙집도 예스러운 멋을 풍긴다.
만수마을은 백운산 줄기를 뒤로하고 앞으로는 깎아지른 듯 서 있는 계족산이, 북쪽으로는 지리산 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다. 풍수를 모르는 내 눈에도 이곳은 매천 선생이 자리를 잡을 만한 수려한 풍광을 지니고 있다. 만수마을은 백운산 줄기에서 맑은 물이 사철 흘러 내려온다. 마을 사람들은 이 물을 받아 먹는다.
▲만수콩된장 공장의 항아리
"이렇게 소박하고 멋진 동네는 처음 봐요!"
"머리 아픈 일 있으면 자주 들리게나. 우리 방을 빼 줄 테니."
"정말요?"
"그럼."
만수콩된장 담장을 너머러 된장 항아리들이 옹기종이 모여 있다. 만수 마을을 한 바퀴 돌아 집으로 돌아오니 또 다른 손님이 와 계신다. 남원에 살고 있다다는 송 교수라는 분과 시인 한분, 그리고 박 선생님라고 하는 세 분의 손님이 거실에 앉아 아내와 함께 차를 마시고 있었다.
남원에서 온 세 손님
▲만수마을 입구에 서 있는 소나무
나는 뜻밖에 찾아온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며 인사를 했다. 이 세분은 내 블로그에 실린 글을 읽어보고 만수마을 매천 황현 선생 유적지를 다녀오는 길에 잠시 들렸다고 한다. 영희 씨는 예비 사위가 서울 갈 길이 바쁘다고 먼저 집을 나섰다.
우리는 새로운 손님들과 귀농이야기, 여행담으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인연이란 또 이렇게 맺어지는 것인가 보다. 역사학을 전공하신 송 교수는 남원에 홀로 내려와 계시고, 박 선생님은 지리산 자락에 보금자리를 틀고 계신다고 했다.
▲계족산
지리산 보이차를 세 주전자나 비우면서 우리는 이야기꽃을 피웠다.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어서인지 밤새도록 이야기를 해도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계족산으로 해가 늬엇늬엇 질 무렵 그들은 떠나갔다. 남원에 꼭 한번 들려달라는 박 선생님의 모습이 한 십년을 넘게 사귀어온 친구처럼 다정하게 느껴졌다.
"또 한군데 갈 곳이 있어서 즐겁군요."
"꼭 한 번 들려주세요."
정초에 고향의 산소에 갔을 때에 유난히 많은 까치들이 노래를 들려주더니 이곳 지리산 자락 산골 집에 정초부터 반가운 손님들이 찾아와 기쁘다. 매천 선생님이 말씀하신대로 초라한 '구안실(苟安室-누추하지만 그런대로 편안하게 지낼만하다는 뜻)을 찾아준 설날 정초 손님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20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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