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성스러운 땅 라싸여!
5월 18일 11시, 드디어 우리는 ‘신들의 땅 라싸에 발을 내딛었다! 골무드에서 고물 폭스바겐을 타고 출발한 지 21시간 만에 도착한 성스러운 대지에 엎디어 감사의 키스를 했다. 얼마나 기다리고 그리워했던 땅이던가? 아내와 나를 여기까지 오게한 모두에게 감사를 드렸다. 서울을 출발한 지 33일 만에 도착한 성스러운 땅이다.
오늘은 음력으로 4월 11일이다. 한국에서는 4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이 이미 지나갔지만 이곳 티베트의 부처님 오신 날은 음력 4월 15일이다. 아내와 나는 티베트에서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기 위해 오체투지를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갖은 고행을 무릅쓰고 라싸에 입성을 했다.
티베트 불교에서 ‘라Lha'는 ’하늘 신神'을 의미한다. 따라서 ‘라싸Lhasa'는 ’신들의 땅, 성스러운 땅, 천신의 땅‘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라싸에 도착을 해보니 우리가 라싸까지 오는 동안 했던 고행은 매우 사치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라싸의 거리는 티베트 각지에서 수천km를 오체투지를 하며 걸어온 순례자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니주를 돌리며 바코르를 돌고 있는 순례갰들
그들의 모습은 하나 같이 남루한 행색이었다. 다 헤진 옷, 부르튼 손, 검게 그을린 피부, 피골이 상접이 된 육체… 그런데도 그들의 표정은 매우 밝아 보였다. 영혼의 땅 라싸 성지에 도착했다는 기쁨이 그들을 충만감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우리는 상기된 표정으로 서서히 야크호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여보, 숨이 차요.”
“그러니 아주 천천히, 천천히 걸어야 해요.”
티베트 중앙부 야룬트포 하류지역 해발 3700m에 위치하고 있다. 때문에 라싸에 도착한 사람들은 모두 저절로 느림의 미학을 터득하게 된다. 몇 발자국을 띠는 데도 숨이 찬다. 모두가 느리다. 때문에 시간이 거꾸로 흐르듯 라싸의 거리는 정지되어 있다.
인구 4십6만 명(2007기준)이 살고 있다는 라싸는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물결이 천천히 소용돌이치는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오체투지를 하거나 마니주를 돌리며 포탈라 궁을 가운데 두고 시계방향으로 바코르(순례코스)를 돌고 있다. 그것은 마치 사람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육중한 지구 자체가 천천히 움직이는 느낌이다.
▲순례자들로 입추의 여지없는 라싸의 거리
라싸는 조캉 사원을 중심으로 ‘파르콜八角街’ 형태의 환상도로가 펼쳐져 있다. 7세기 티베트를 통일한 토번 왕조 제33대 송첸캄포는 라싸를 티베트의 수도로 정하고, 641년 당나라 문성공주를 티베트의 제2왕비로 맞이할 정도로 국력이 막강했다.
파르콜을 중심으로 한 구시가지는 어느 정도 옛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중국의 지배하에 건설된 서쪽의 신시가지는 시멘트 빌딩들로 채워지고 있어 볼품없는 현대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때 막강했던 토번 왕국은 역사의 부침속에 나라를 잃고 신음하고 있다.
“날씨는 별로 춥지가 않네요?”
“그렇군. 지금은 티베트의 봄 아니요?”
고원의 평지에 세워진 라싸는 의외로 온화한 기후이다. 라싸는 연 평균 기온이 8 °C로 엄동설한과 무더위에서는 자유롭다. 연간 3000시간 이상이나 일조량이 비추어 ‘햇볕 도시’라고도 부르기도 한다.
연간 강수량도 426.4mm로 비도 적지 않게 내린다. 비는 주로 밤중에 내리고, 낮에는 햇볕이 쨍쨍 비춘다. 그러나 라싸의 날씨는 예측불허다. 햇볕이 쨍쨍하다가도 금방 구슬 같은 우박이 내리기도 한다. 그러므로 항상 재킷을 준비하고 다녀야 한다.
우리는 순례들의 물결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불과 몇 미터 안 되는 야크호텔이 아득히 멀게만 느껴졌다. 더구나 무거운 배낭을 등에 지고 있는지라 조금만 힘을 주어도 숨이 찬다. 가다 쉬다 가다 쉬다를 반복하며 야크호텔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