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낙숄 호텔 중국국제여행사에서 우리는 네팔로 넘어가는 여행 예약을 하였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여정은 라싸-얌드록초 호수-간체-시가체-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장무-네팔로 가는 4박 5일의 여정이었다. 교통수단은 운전수가 달린 지프차 한 대를 렌트하는 것이다. 물론 이 여정은 중국정부 당국의 여행허가서가 있어야 한다. 일행은 우리 부부, 하수목선생, 양군 이렇게 네 명이다.
사진작가 신 선생은 비행기를 타고 카트만두로 직접 날아가겠다고 했다. 우리들이 했던 여행은 몇 년 전에 한번 했다고 한다. 신 선생님의 항공료가 우리 여행비용과 함께 묶어서 계산하면서 상당히 할인을 받게 되었다. 신 선생은 그 돈으로 우리에게 저녁을 사겠다고 했다. 여행사에서 뜬금없이 윈난성 다리에서 만났던 털보를 만났다. 캐나다에서 홀로 여행을 떠나온 그를 여기에서 다시 만나다니. 인연이란 참으로 묘하다. 우리는 모두 함께 근처에 있는 한국식당 아리랑으로 갔다.
아리랑 식당은 라싸시내 복판 번화한 동북경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아리랑 식당 주인은 길림성에서 온 조선족 동포 이동화 사장이다. 그는 원래 운동신경 마비병이란 불치병을 치료하러 라싸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2년 동안 부인의 등에 업혀 병원을 전전하다가 ‘신들의 땅’인 라싸에 명약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2000년에 무작정 라싸로 왔다고 한다.
그리고 라싸의 고산지역에 있는 좋다는 약을 모두 먹어댔다고 한다. 그러던 그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남의 도움 없이 홀로 걷게 되었고, 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받아보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진단이 내려졌던 것. 기적은 찾는 자에게 일어나는 것일까? 건강을 되찾은 그가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한국식당 아리랑을 시작하게 된 것은 2004년 8월이라고 한다.
아리랑 식당에서 삼겹살에 김치찌개, 토장국 등을 시켜 놓고 오랜만에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곳에서 우리는 수미산을 간다는 어떤 시인도 만났다. 소주까지 한잔 곁들이자 각자의 무용담이 펼쳐졌다.
“다리에서 리장을 거쳐 샹그리라에 도착했지요. 그곳 식당에서 나는 운 좋게 중국인 여행자들을 만났어요. 그들은 차마고도를 통해 라싸로 간다고 하더군요. 그들이 몰고 온 지프차에 마침 자리가 하나 비어 있었어요. 그때다 싶어 함께 동승해줄 것을 요청했더니 그들은 쾌히 허락을 해 주더군요. 중국인들 틈에 끼어서 오니 공안원들의 검열도 수월하게 통과하여 무사히 라싸까지 오게 되었지요.”
매리설산을 넘어 차마고도를 타고 온 털보의 여행담이다.
“시닝에서 기차를 타고 골무드에 도착하여 버스터미널로 가자 어떤 남자가 나에게 접근을 다더군요. 그런데 그는 놀랍게도 중국공안원이었어요. 그는 나에게 라싸로 가려고 하지 않느냐고 물었어요. 내가 그렇다고 하자, 지금 바로 라싸로 출발하는 버스를 태워 줄 테니 자기를 따라 오래요. 약간 겁이 나기도 했지만 나는 그를 따라 갔어요. 그는 어떤 버스로 가서 뭐라고 운전수에게 이야기를 하더니 나에게 500위안만 주면 저 운전수가 라싸까지 데려다 줄 거라고 하더군요.
나는 반신반의 하면서도 그에게 500위안을 건네고 버스에 올랐어요. 버스는 출발하기 직전이었는데 빈 좌석이 없었어요. 운전수에게 내 좌석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그는 바닥을 가리키며 그곳에 앉아 가라고 하더군요.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어 그 공안원을 찾으려고 밖을 내다보니 그는 이미 사라지고 없더군요. 버스는 출발을 했고, 그래서 나는 버스 가운데 통로에 벌렁 누워버렸지요. 그리고 오직 수미산을 생각하며 잠을 청했지요. 그리고 한 숨 잘 자고 일어나 보니 라싸더군요. 하하.”
시인이 버스를 타고 온 무용담은 대단했다. 사각형의 얼굴에 의지가 굳어 보이는 시인의 표정은 단호했다. 그가 티베트에 온 목적은 오로지 수미산을 가기 위해서라고 했다. “거기, 수미산이 나를 기다라고 있네!” 그는 수미산을 바라보듯 고개를 들어 먼 시선을 보내며 시처럼 말을 읊조렸다. 그런데 그는 수미산도 여행 허가를 받지 않고 그냥 일반 버스를 타고 순례들 틈에 끼어서 가겠다고 했다. 참으로 무모할 정도로 가상한 용기였다.
양군도 시인과 비슷한 루트로 라싸에 잠입(?)을 했다고 했다. 시닝에서 돈을 몽땅 도난을 당한 많은 비용을 들여 여행허가서를 받을 돈이 없어 골무드 버스터미널을 기웃거리고 있었는데, 어떤 남자가 접근하여 역시 500위안을 받고 라싸로 가는 버스를 태워 주었다는 것. 그리고 비자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아 네팔로 넘어가려고 하던 차에 우리를 만나게 되었던 것. 그는 우리가 알고 있는 P선교사를 통해 한국의 부모님으로부터 여행비용을 송금 받고 우리와 네팔로 가는 여행에 동참을 하게 되었다.
골무드나 청두에서 라싸로 가는 여행은 통상 1500~2000위안을 주고 4박 5일에 해당하는 여행 허가서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운이 좋으면 이렇게 공안원의 눈을 피해 잠입이 공공연하게 가능하다. 공안원들이 뇌물을 받고 눈을 감아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스라엘 여행자들과 라싸로 가는 택시 한 대를 대절하여 골무드에서 라싸로 넘어왔었다.
삼겹살에 소주를 곁들인 여행자들의 무용담은 끝이 없었다. 긴 여행 중에 우연히 만난 한국의 여행자들과 오랜만에 회포를 푸는 자리였다. 사진작가 신 선생님은 알고 보니 부안에서 오랫동안 대대로 염전을 해오고 있었다.
“나는 아마 전생에 네팔이나 티베트에서 살았던 모양입니다. 다른 여행지는 눈에도 보이지 않고요, 자꾸만 자석처럼 이곳에 끌려서 여행을 오곤 합니다. 처음에 뭣도 모르고 수미산으로 여행을 갔었어요. 티베트의 순례자들 틈에 끼어서 수미산을 오르다가 고산병 때문에 죽을 뻔 했지요. 그래도 참고 또 참으로 수미산 아웃코라(바깥쪽 순례길)를 돌았어요.”
신 선생은 네팔과 티베트만 오가는 여행자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물사진을 찍는다. 그는 벌써 수차례 네팔과 티베트를 왕래하고 있었다. 금생에 몇 번이나 더 올 수 있을 런지 모르지만 체력과 여건이 닿는 그날까지 히말라야 지역을 여행하고 싶었다.
“오, 나의 수미산이여! 내 그대에게 다가가리라! 선생님 수미산에 여행대하여 좀 더 자세히 들려주세요.”
시인이 다시 고개를 들고 수미산을 바라보듯 외치며, 신 선생에게 수미산 여행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들려주라고 졸라댔다.
“성산 카일라스(수미산)는 6714m로 불교, 힌두교, 티베트 뵌교, 자이나교가 4대 종교가 가장 신성시하는 성산이지요. 또한 인더스, 갠지스, 알룽창포, 수투레지 4대 강의 발원지이기도 하고요. 수미산을 한 바퀴 돌면 일생동안 지은 업장을 씻어주고, 열 번을 돌면 500년 동안 윤회하며 지은 죄를 면할 수 있고, 108번을 돌면 해탈의 경지에 이른다고 해요. 나는 아웃코라를 돌다가 중도에 들것에 실려 내려오고 말았지요. 그러나 생전에 꼭 다시 한 번 도전하고 싶은 곳입니다. 아웃 코라는 해발 4670m 다르첸에서 시작하여 5470m 될마라를 넘어 총 53km를 도는 코라인데요. 보통 3일 만에 일주를 하더군요. 그런데 티베트인들은 단 하루 만에 순례를 하기도 한답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목숨을 건 순례길이 될 수도 있겠지요.”
“오, 저기 수미산이 보입니다. 내 결코 수미산을 오르고 말리라! 신 선생님 감사합니다.”
신 선생의 수미산 여행담에 시인은 감동을 하며 곧 수미산에 오르기라도 할 듯한 자세였다.
저녁 식사 값은 신 선생이 지불을 했다.
“선생님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소금 몇 가마 값을 탕진하셨네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이런 자리라면 소금 몇 십 가마를 쓰더라도 기분이 좋지요.”
털보의 익살에 신 선생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사실 오늘 저녁 값은 아마 소금 열 가마 값이 족히 넘을 듯하다.
우리는 모두 기분이 좋아져 아리랑 식당을 나와 각자의 숙소로 흩어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