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섬진강일기

지리산 만복대에서 만복을?

찰라777 2011. 11. 16. 16:22

 지리산 만복대에서 만복을?

수평리 마을 사람들과 함께했던 이별등산

 

 

 

 

11월 12일.

서울에 집을 구해 놓고 다시 지리산 구례로 내려 왔다. 내일 동네 사람들과 등산을 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다음 주 월요일에 이사를 하게 되니 이번 등산이 고별 등산이 되는 샘이다. 산을 좋아 하는 마을 사람들과 매주 등산을 하기로 약속을 하고 산행을 하다가 이사를 하게 된 것이다. 토요일 날 좀 늦게 출발을 했더니 평소에 3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가 6시간이나 넘게 걸렸다.

 

 

수평리 집에 돌아오니 그 새 텃밭에 있는 배추와 무가 더욱 튼실하게 자라 있다. 배추는 속을 더 깊게 하고 무의 허리통은 더욱 굵어 져 있다. 아내는 이사를 가기 전에 김장을 해야 한다며 싱싱한 녀석들을 만족한 듯 바라본다. 뒤꼍으로 돌아가 보니 참나무에 버섯 싹이 엄청 나 있다. 날씨가 아직 덜 추운 탓이다. 텃밭에는 노란 국화와 우리가 그동안 심었던 나무들이 잘 자라나고 있다.

 

 

 

"이 아까운 나무들을 다 어떻게 하지요?"

"화분만 가지고 가고 나머지는 두고 가요."

"얼마나 정성을 들인 나무들인데. 다 파가지고 갈 거예요."

 

 

하긴 그렇다 . 거름과 물을 얼마나 정성스럽게 주었던가. 그 덕에 텃밭에는 나무와 꽃, 야채들이 생생하게 잘 자라나고 있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잘 먹이고, 거두어야 한다는 이치를 체험으로 느낀 시간들이었다. 아내는 화분에 물을 주고 나는 버섯과 블루베리나무에 물을 주었다.

 

 

11월 13일.

 

 

▲정령치 고개에서 바라본 지리산 반야봉

 

 

수평리에 지내는 하루하루가 아쉽고 새롭다. 새벽에 일어나 108배를 하고 밖에 나가보니 안개가 자욱하다. 안개 낀 것으로 보아 오늘 등산을 사기에는 좋은 날씨일 것임에 틀림없다. 아침 8시 30분에 등산을 가기로 약속을 했으므로 도시락을 준비하고 등산장비를 챙겨놓고 있는데, 개울 건너집 수정이 엄마한테 서 전화가 왔다. 아침에 갑자기 일이 생겨 30분 늦게 출발을 하자는 것. "30분 아니라 1시간이라도 기다려야지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조금 있으니 혜경이 엄마가 등산복 차림으로 걸어왔다. 허구한 날 일만 하는 혜경이 엄마도 오랜만에 등산을 간다고 하니 마음이 들 떠 있었다. 그녀는 너무나 일을 많이 하여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병원에 진찰을 하였더니 등산이나 걷기 운동을 많이 하라는 의사의 충고를 받았다고 한다. 그대로 일만 하면 허리가 굽어져 버릴 거라고 하면서.

 

 

▲이별등산을 함께했던 수평리 마을 이웃사람들

 

 

그런 혜경이 엄마에게 아내는 등산을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가자고 약속을 받아냈다. 우리의 사부님이 건강해야 할 것이 아니겠느냐고 하면서. 혜경이 엄마가 마땅한 등산화가 없다고 하자 아내는 구례장에 가서 등산화 한 켤레를 사와서 혜경이 엄마에게 선물까지 했다. 그렇게까지 하면 함께 등산을 갈 것이 아니냐고 하면서. 그녀는 아내가 사준 보라색 산발을 신고 아이들처럼 환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 집으로 왔다.

 

 

곧 이어서 수정이 엄마 부부가 왔다. 무슨 일이 일어났냐고 물어 보았더니 이거야 정말, 웃지 못 할 정말 놀라운 일이 새벽에 일어났었단다. 수정이 엄마 네는 집에 토끼를 키우는데 족제비가 토기를 자꾸만 잡아간다고 했다. 그제 밤에도 토끼 다섯 마리를 족제비가 물어가 버렸다고 했다. 어제 새벽에도 낌새가 이상하여 토끼우리로 가보니 족제비 녀석이 토끼를 물어가고 있더란다. 선배 씨는 그래서 낫을 들고 족제비를 좇아가서 낫으로 족제비를 내려친다는 것이 그만 자심의 머리를 찍고 말았다는 것.

 

 

▲삼행읗 다가가 쉬엄쉬엄 휴식을...

 

 

마침 토끼를 물고 있는 족제비 꼬리가 짹짹이에 붙어 있어 미처 도망을 가지 못하고 있었단다. 그래도 차마 날이 선 낫 쪽으로 내려치지는 못하고 낫을 뒤집어 낫 등거리로 족제비를 내려 쳤는데, 앗 불사! 세게 내려치려고 낫을 한껏 뒤로 젖힌다는 것이 자신의 뒤통수를 낫으로 찍고 말았단다. 낫이 앞으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자신의 뒤통수에 박혀 버렸다는 것. 정말 큰 일 날 번했다.

 

 

머리에서 낫을 빼는 사이에 족제비는 도망을 쳐 버리고 피가 뚝뚝 떨어지기에 손을 대보니 머리에 구멍이 뚫려 피가 쏟아져 내리더란다. 그래서 부랴부랴 구례 읍내 병원 응급실에 가서 바늘로 꿰매고 왔다고 했다. 의사가 움직이지 말고 안정을 하라고 해서 오늘 등산을 포기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우리와 마지막 등산을 하는 날이어서 늦게라도 나왔다고 했다. 모자를 벗겨보니 정말 꿰맨 자리에 붕대를 붙이고 있었다.

 

 

▲족제비를 잡다가 머리를 다치고도 등산을 감행한 선배씨의 호연지기

 

 

그러면서 그는 이제 괜찮다고 하며 하늘을 보고 너털웃음을 웃었다. 그런 부부를 바라보면서 나는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엄살이 많으면 병원이나 집에서 꿍꿍 앓고 있을 텐데 하늘을 보고 웃는 그의 호연지기가 부럽기도 했다. 그는 수십 년 째 우체국 집배원을 하고 있다. 우리는 매주 그들과 함께 등산을 하기로 약속을 하고 있었다.

 

 

"아니, 그럼 집에서 안정을 취하시지 않고……"

"이제 피도 안 나오는데 괜찮아요. 자 갑시다."

 

 

그렇게 해서 선배 시 부부, 혜경이 엄마, 우리 부부 그리고 가다가 노경이 엄마를 태웠다. 노경이 엄마는 3년 전 남편을 여위고 엄한 시어머니 밑에서 살아가고 있어 마실이나 산보를 가기가 쉽지가 않은 처지였다. 시어머니가 문 앞에 추상 같이 서서 배낭을 지고 나가는 60이 다 된 며느리를 감시(?) 하고 있었다. 그 엄한 표정이 감히 범접을 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그래도 등산을 허락해 주시니 고마울 뿐이다.

 

 

▲어려운 입장임에도 등산에 합류한 권여사

 

 

아이고, 그런데 노경이 엄마가 너무 급히 등산화를 제대로 신지 않고 나오다가 등산화 끈에 밟혀 그만 앞으로 꼬그라지며 넘어지고 마는 것이 아닌가? 어디 다치지나 말았으면 좋겠는데… 그녀는 다행히 다시 일어나서 자동차에 탔다.

 

 

"어디 다치지는 않았어요?"

"네 괜찮아요."

 

 

이렇게 해서 우리 일행은 여섯 명이 되었다. 우리의 등산대장인 오준모 씨는 오늘 작업이 잡혀 있어 부득이 참여를 하지 못했다. 다음 주면 우리가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어 모두 바쁘고 어려운 처지이지만 시간을 내어 함께 마지막 산행을 하려고 하는 그 마음이 눈물이 나도록 고마웠다. 나는 성삼재를 넘어 정령치 고개로 차를 몰았다. 선배씨의 안내로 만복대를 오르기로 했던 것.

 

 

"그래도 만복대에 가서 만복을 빌어야 하지 않겠어요. 찰라님 부부가 건강하고 다음에 꼭 지리산으로 다시 오라고."

"허허, 고맙소. 만복대에 만복을?"

"만복대는 만 가지 복을 지닌 봉우리이거든요."

 

 

▲해발 1172m의 정령치 고개 휴게소

 

 

정령치 고개에 도착을 하니 안개가 자욱이 끼어 있다. 높이 1172m의 정령치(鄭嶺峙) 고개는 제법 날씨가 쌀쌀하다. 남원시 주천면과 산내면에 걸쳐 있는 고갯길. 서산대사의 <황령암기黃嶺庵記>에 의하면 마한의 왕이 진한과 변한의 침략을 막기 위해 정鄭씨 성을 가진 장군을 파견하여 나라를 지키게 했다고 하여 '정령치'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곳이다

 

 

정령치 주차장에 차를 파킹하고 산에 오를 채비를 했다. 모두들 멋진 첨단 지팡이를 짚고 있는데 나와 아내만 나무로 된 지팡이다. 우리도 첨단 스틱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 그 스틱만 사면 잃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각초 스님이 20년 전에 운악산 현등사에 계실 적에 준 지팡이를 즐겨 들고 다닌다. 그런데 이 지팡이를 그만 이곳에서 잃어버리고 말았다. 잠시 반야봉 사진을 찍는 사이에 돌아보니 누가 가져가 버리고 없다. 내가 얼마나 아끼고 좋아했던 지팡이인데. 허지만 어쩌랴. 헉! 누구 가져갔는지는 모르지만 잘 사용을 해서 도道와 건강을 찾기를 바란다. 아내는 다래나무로 된 지팡이를 들고 왔다. 이 다래나무 지팡이는 6년 전에 내가 삼봉 휴양림에 숲 해설을 다닐 적에 가져온 지팡이다. 다래나무 지팡이는 매우 가렵고 튼튼하다.

 

 

▲정령치 고개에서 바라본 반야봉이 안개에 가려 실루엣처럼 아련하다

 

 

정령치 고갯마루에 서니 동쪽으로 노고단과 반야봉을 거쳐 천왕봉에 이르는 봉우리들이 유장하게 펼쳐진다. 안개에 쌓인 반야봉이 더욱 신비감을 자아내게 한다. 남쪽으로는 성삼재와 왕시루봉, 서쪽으로는 바래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길게 뻗어있다.

 

 

우리는 휴게소에서 뜨거운 커피를 한잔하고 산행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파른 나무 계단이 시작되었다. 나무계단을 올라서니 완만한 육산이 포근하게 이어지고 있다. 며칠 사이에 훌훌 옷을 벗어 버린 산하는 속이 훤히 다 들여다보인다. 숲의 정직한 모습이 차라리 솔직해서 좋아 보인다.

 

 

▲초입 계단부터 헉헉대기 시작하다.

 

 

낙엽과 앙상한 가지 사이로 안개에 싸인 산의 경치가 실루엣처럼 번진다. 나무와 낙엽에서 나는 냄새는 고소하고 정신을 맑게 해준다. 그런데 아내는 오늘 산행이 유난히 힘들어 보인다. 우리는 다른 일행들 뒤에 쳐져 천천히 숨을 고르며 산행을 했다. 가다 쉬고 가다 쉬고…… 그런 우리를 일행은 중간 중간에 기다려 주었다. 머리를 다친 선배 씨도, 넘어진 노경이 엄마도 잘도 걸었다.

 

 

조릿대 군락지를 지나서 만복대 중간점에서 아내는 더 이상 걷지를 못하겠다고 했다.

"여보, 너무 무리를 하지 말아요. 그만 여기서 쉬기로 합시다."

"당신만 다녀오세요. 저는 여기서 쉬고 있을 게요."

"어찌 혼자만 두고 가겠나? 함께 있어야지."

"남들은 다 잘 가는데 왜 나만 이렇게 힘들이요?"

"허허, 여긴 1000고지가 넘는 산이야. 그러니 무리를 하지 말라야지. 사실 나도 힘이 들어요."

 

 

 ▲훌훌 벗어버린 산

 

 ▲조릿대 군라지를 지나며

 

 ▲ 사슴뿔처럼 생긴 참나무

 

▲정상을 포기할까 말가 망서렸던 지점

 

 

그러나 아내는 잠 시 쉬더니 다시 일어섰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걷다보니 어느 듯 만복대 정상에 이르렀다! 먼저 가 있던 일행들이 우리를 보고 뜨거운 갈채를 보내 주었다.

 

 

"정말 대단하시네요!"

"각하 파이팅!!!"

 

 

어쨌든 우리는 1438.4m의 만복대 정상에 닿았다. 만복대 정상에는 등산객들이 쌓아 올린 돌탑이 있다. 아내는 그 돌탑 아래 털썩 주저앉았다. 지친 모습이지만 그래도 정상에 오른 희열을 느끼고 있다.

 

 

 

▲그래도 정상에 올라선 기쁨에 넘쳐

 

 

▲용감한 선배씨와 함께 만복대에서

 

 

만복대 정상에서 우리는 합장을 하고 저마다 기원을 했다. 머리를 다친 선배 씨 부부도, 넘어진 노경이 엄마도, 등산을 시작한 혜경이 엄마도, 그리고 우리 부부도 저마다 마음에 등불 하나 켜고 무언가를 기원을 했다.

 

 

눈을 감고 기도를 하는 순간 박영석 대장이 갑자기 떠올랐다. 작은 산을 오르기에도 이렇게 힘이 든데 고인이 된 박영석 대장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우리는 작년 10월 네팔에 가는 비행기에서 그를 만났었다. 우리는 '자비공덕회' 봉사 차 네팔 칸첸중가 오지마을 학교에 컴퓨터 10대와 장학금을 전달하러 가던 참이었다. 그 대 박대장도 네팔 어린이들을 돕는 일로 네팔에 간다고 했다.

 

 

▲만복대 가는 길에 늘어선 억새능선

 

 

▲고 박영석대장이 갈대 사이로  어른거린다. 박대장의 명복을 빌며...

 

 

그와는 에베레스트 관련 행사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작년에 힐톤 호텔에서 열렸던 사마르칸트 데이(에베레스트 등정자 모임)에서도 만나 함께 저녁을 먹기도 했다. 그런 그가 고인이 되어 버렸다니 도저히 실감이 나지를 않는다. 어디선가 그 듬직하고 둥근 얼굴이 금방 나타날 것 같기만 하다. 나는 고 박영석 대장의 명복을 만복대에 빌었다.

 

 

"부디 좋은 곳에 다시 태어나 멋진 인생을 다시 시작하소서."

 

 

저마다 기원을 하고 기념 촬영을 했다. 기념 촬영을 하고 돌아서는 순간 아내가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다리에 힘이 풀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만 것이다. 아내는 고통스런 표정을 지었다. 팔뚝을 걷어 보니 껍질이 벗겨져 피고 줄줄 흘러내렸다. 나는 배낭에서 후시딘 연고와 반창고를 꺼내 아내의 상처를 감아주었다. 

 

 ▲만복대에서 고사를 지내는 선배씨

 

 ▲맛있는 점심 도시락

 

▲우정의 물잔으로 축배를..

 

 

"허허, 이런! 머리를 찍히고, 넘어지고… 우리 모두 더 정성으로 만복대에 치성을 드려야 갰네요."

"그러게 말이요."

 

 

선배 씨가 다시 하늘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우리는 만복대 정상아래 억새밭에서 도시락을 꺼내 들고 점심을 먹기로 했다. 선배 씨는 점심을 먹기 전에 빨간 고추와 파란 고추, 그리고 반찬, 밥알을 돌 위에 놓고는 정말로 지극정성으로 절을 했다.

 

 

"만복대 산신령이시어, 나쁜 일은 모두 거두어 가시고 좋은 일만 일어나게 하소서."

"선배 씨의 정성으로 오늘 산행이 무사히 진행되고 있네요."

"허허, 복을 지어야지요. 복은 남이 주는 것이 아니니 스스로 지어야만 하겠지요."

 

 

만복대 산신령께 고사를 지내고 우리는 만복대 억새 능선을 내려다보며 점심을 만나게 먹었다. 억새 능선이 흘러내린 능선은 다시 성삼재와 노고단, 그리고 반야봉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만복대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의 애절한 전설이 전해내려오고 있다.

 

 

그런데 만복대에는 슬픈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애처로운 이야기. 만복대에 얽힌 전설 한 토막을 소개한다.

 

 

"한 여자와 남자가 있었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을 하다가 남자가 다른 여자에 빠져서 그 여자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게 되었답니다. 상심한 여자는 절망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자신의 유해를 만복대에 뿌려 달라고 했답니다. 자신을 사랑하다가 배반을 하고 떠나버린 그 남자에게. 뒤 늦게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 그 남자는 그 여자의 유언대로 그녀의 유해를 들고 만복대를 찾아 그 여자의 영혼을 드넓은 언덕 이에 뿌려 주었다고 합니다. 먼 훗날 후배들이 찾아가서 그 여자가 바람으로 흩어진 그 자리에 솟대를 세우고 돌아갔답니다."

 

 

 

▲만복대에서 내려다 본 억새능선

 

 

그 솟대를 세운 자리가 지금의 만복대이다. 만복대에는 등산객들이 쌓아 올린 작은 돌탑이 하나 서 있다. 마치 그녀의 영혼처럼 돌탑은 만복대를 지키고 있다.

 

 

오후가 되니 바람이 차다. 성삼재에서 올라오는 등산객들이 만복대에 닿아 환성을 지른다. 안개는 점점 짙어져 갔다. 우리는 하산을 서둘렀다. 바람이 점점 거세게 불어왔다. 안개 속에 하늘거리는 억새가 황상적인 실루엣을 연출한다. 무사히 정령치 고개에 당도하자. 선배씨가 말했다.

 

 

"저기 심원마을 하늘 아래 첫 동네에서 막걸리 한잔 하고 가지요?"

"아니 머리를 다친 사람이 어찌 술을."

"한 잔 정도야 어쩌겠어요. 그냥 해어지지가 그래서요."

"그래요. 잠간 들렀다 가지요."

 

 

 ▲만복대에서 내려다 본 정령치고개-팔랑치-바래봉으로 이어지고 있다.

 

 ▲바위에 선 등산객 위로 가마귀가 날아가고 있다.

 

▲만복대 억새 능선을 걸어오는 선배씨

 

 

우리는 심원마을로 갔다. 심원마을 끝집에 도착하여 선배 씨는 송어회와 더덕구이를 시켰다. 집주인이 선배 씨와 아는 사이여서 더욱 친절하고 서비스를 여러 가지를 해주었다. 더덕주, 작약주, 부침개도 서비스로 해주었다. 그는 심원마을에 편지를 배달하는 임시 집배원 역할도 하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하늘아래 첫 동네인 심원마을에서 이별주를 마시며 산행의 회포를 풀었다.

 

 

우늘 등산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것 같다. 선배씨는 만복대에 흰 눈이 폭폭 내리던 날 꼭 다시 한 번 등산을 하자고 말했다. 혜경이 엄마도, 권여사도 덩달아 맞장구를 쳤다. 서로들 자기 집에 내려와 며칠을 묵어도 좋으니 제발 내려와서 함께 등산을 하자고 했다. 성삼재 고개를 넘어 노고단을 내려오는데 이들의 뜨거운 가슴 때문에 내내 가슴이 먹먹해졌다. 고마운 사람들. 다시 내려와 그들과 즐거운 산행을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