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덴사원으로 가는 버스는 아침 6시에 조캉사원 앞에서 출발한다. 5시 30분, 새벽공기를 가르며 야크 호텔에서 나온 아내와 나는 조캉사원 앞으로 걸어갔다. 벌써 순례자들이 줄을 지어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조금 늦었으면 만원이 되어 버스를 타지 못할 뻔 했다.
순례자들을 가득 싣고 조캉사원을 출발한 버스는 라싸대교를 지나 키츄강을 건넜다. 키츄강변에 펼쳐진 평원은 의외로 넓다. 이렇게 높은 고원에 이토록 넓은 평원이 펼쳐지다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간덴사는 라싸에서 50km정도 떨어진 해발 4200m의 방코르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때문에 간덴사원으로 가는 순례는 라싸에서 가장 높은 하늘 길로 가는 순례 길이다.
아침부터 날씨가 흐리더니 끝내 눈발이 휘날리기 시작했다. 라싸의 날씨는 예측불허다. 티벳의 날씨는 언제 눈이 오고, 우박이 내릴지 변덕스런 심술을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버스에 탄 순례자들은 염주와 마니차를 돌리며 '옴마니반메훔'을 끊임없이 염송하고 있다. 도대체 그들은 왜 이토록 기도에 열중할까? 온전히 기도로 살아가는 삶으로 보인다. 삶이 기도이고 기도 자체가 그들의 삶이다. 기도이 높고 깊은 산중에서 기도를 빼고는 살 수 없는 탓일까?
버스가 30여분쯤 달리자 간덴사원으로 오르는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키츄 강변 평야를 등지고 산위를 바라보자 뱀처럼 꼬불꼬불한 길이 아득히 이어져 있다. 가파른 길로 이어지는 지그재그 길은 마치 페루의 마추픽추를 오르는 길과 흡사하다. 덜덜 거리는 버스는 곧 숨이 멎을 것처럼 헐떡거리며 겨우 기어 올라간다.
산꼭대기에 걸려 있는 것처럼 까마득히 보이던 간덴사원이 점점 가까워지며 그 위용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간덴사원 앞에서 버스는 숨이 죽은 듯 부르르 떨더니 이내 시동이 멎었다. 사람도 숨이 멎으면 저 버스처럼 떨다가 죽을까? 순례자들은 도대체 말이 없다. 모두가 고요하게 침묵하며 마니차를 돌리면서 속으로 주문만 읊조릴 뿐이다. 닝마파의 위대한 명상가인 펠트랄 린포체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나는 은거할 준비가 되었으니 이야기하기를 완전히 멈춘다. 남들에게서 허물을 찾는데 내 마음을 쓰기를 그치고 대신 나는 안을 보기에 시간을 쏟는다. 삶은 정신적으로 방황하고 끝없이 이야기하는 데 쓰기에는 너무 짧다." -펠트랄 린포체-
▲침묵속에 오로지 주문을 외우며 간덴사원을 오르는 순례자들
순례자들은 모두 그런 모습이었다. 하늘에 걸린 간덴사원을 향하여 오로지 주문을 외우며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 남루한 차림이지만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순례의 길을 떠나는 그들의 모습은 모두가 도인처럼 보인다.
버스에서 내리니 갑자기 현기증이 일어나고 어지럽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은 해발 4.2km의 허공이 아닌가? 수직으로 서 있기가 힘이 든다. 인간이 수직한계(vertical limit)에 도달을 할 때에 그 것은 죽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K2봉에서 보여준 영화 '버티컬 리미트'는 인간의 한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정작 몸이 불편한 아내는 나보다 말짱하다. 내가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사이 아내는 성큼성큼 순례자들의 뒤를 따라 걷는다.
▲해발 4200m의 고산지역에서 나보다 더 잘 걸어가는 아내. 나는 현기증이 나서 비틀거리는데
아내는 성큼성큼 잘도 걸어간다. 여행을 할때 항상 하내는 주연이고 나는 조연이다.
아내는 걸을 때에는 거의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앞만 보고 걷는다. 내가 뒤에서 사진을 찍든 현기증이 일어나서 비실거리든… 도대체 아내는 어떤 여자일까? 하루에도 몇 번씩 저혈당과 고혈당이 오르내리며 혼절을 하기도 하지만, 일단 길을 나서면 경이로울 정도로 강한 정신력을 발휘하니 말이다.
▲하믈 길을 걷는 순례자들-간덴사원
현기증 속에서 바라보이는 방코르산의 풍경은 눈발과 안개에 가려 실루엣처럼 더욱 희미하게 보인다. 아득히 먼 선중에 실날같이 뻥어 있는 길, 하늘에 걸린 사원, 그위로 뻗어있는 산맥이 속세가 아닌, 별천지처럼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한다.
현기증 속에 아물거리는 풍경은 그저 신비하게만 보인다. 극락이 이런 세상일까? 티벳 순례자들은 이렇게 높은 하늘 길을 오로지 주문을 외우며 성큼성큼 잘도 걸어간다. 어떤 사람은 오체투지로 절을 하며 가는 사람도 있다.
▲현기증 속에 바라보이는 풍경은 별천지의 세상처럼 느껴진다.
현기증이 가라앉자 나는 몽롱한 상태에서 카메라의 앵글을 돌리며 천천히 아내의 뒤를 따라갔다. 여행을 할 때 아내는 언제나 주연이고 나는 조연겸 촬영 기사 역할을 한다. 간덴코라는 라싸의 그 어떤 코라보다도 걷는데 힘이 버거웠다. 나는 겨우 슬로모션으로 한걸음한거음 걸어갔다. 아내는 그런 길을 천천히 유영을 하듯 침묵 속에 계속 걸었다. 수행이란 어떤 의미일까?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육제적 한계를 정신력으로 극기를 하는 것이 수행일까?
▲기도 삼매경에 든 순례자
법당 앞에는 노인이 홀로 앉아 마니차를 돌리며 주문을 큰 소리로 외우고 있다. 마치 무아지경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법당 안으로 들어가니 라마승들이 법당 중앙 쪽에 앉아 역시 주문을 외우고 있다. 순례자들이나 스님들 모두가 매우 진지한 모습이다. 법당에는 간덴 사원을 건축한 총가파의 모습이 불상으로 세워져 있다.
▲간덴사원을 건립한 총카파(총카파(1357~1419)
간덴사(甘丹寺)는 티벳어로 "기쁘다", "즐겁고 유쾌하다"란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간덴사는 겔룩파의 본산으로 총카파(1357~1419)가 1410년에 건립한 사원이다. 15세기 무렵 티벳불교는 승려들이 계율을 소홀히 하고, 재물에 눈이 어두워 수행을 게을리 하며 사치스런 생활을 했다. 이런 티벳 불교의 모습을 보고 총카파는 개혁을 부르짖으며 계율을 재정비 했다.
1409년 총가파를 중심으로 겔룩파라는 종파가 탄생했지만 종파의 중심이 되는 사찰이 없었다. 이에 총가파는 절을 짓기 위해 땅을 보러 다녔다. 어느 날 그는 제자들과 지금의 간덴사가 있는 방코르 산에 이르렀다. 그 때 갑자기 바람이 강하게 불어오더니 그의 모자가 바람에 날려 산 정상으로 날아가 버렸다.
▲마니차를 돌리며 순례를 하는 티벳순례자들
모자가 날아간 것이 신의 뜻이라고 여긴 총가파는 모자가 떨어진 곳에 사원을 건립하기로 했다. 그가 완성한 사원이 그것이 지금의 간덴사원이다. 그는 항상 황색모자를 쓰고 다녔는데 그를 따르는 승려들도 자연히 황색모자를 썼다. 이런 모습을 보고 겔룩파를 '황모파'라고 부르기도 한다. 현재의 달라이 라마도 황모파에 속한다.
간덴 코라를 순례하는 간간히 현기증이 일어났다. 현기증이 일어나지만 마음만은 아무런 생각이 없고 단순해진다. 우리는 간덴 코라를 천천히 한 바퀴 순례를 하고 잠시 법당에서 휴식을 취했다. 순례들이 방코르산 정상을 향하여 천천히 올라가고 있다. 눈발이 휘날리는 길을 길게 열을 지어 올라가는 그들의 모습이 초연하게만 보인다. 방코르는 산에는 조장 터가 있다고 한다. 우리는 랑무쓰에서 이미 조장터를 보았기 때문에 정상을 오르는 것을 포기를 했다.
▲방코르산을 오르는 순례자들. 산위로 올라가면 조장터가 나온다
눈발이 점점 더 거세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방코르 산은 하얀 눈으로 뒤덮여 버렸다. 버스가 눈길을 제대로 내려갈 수 있을까? 자동차가 없을 당시에 순례자들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그걸 생각을 하면 문명이 발달한 지금과 걸어서 다녔던 시대와는 수행이 차이가 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순식간에 흰눈으로 덮여 버린 간덴사원
오후 2시에 버스는 간덴사원에서 출발했다. 다행히 이런 길에 익숙한 운전기사는 조심스럽게 눈길을 운전 하여 무사히 라사로 돌아 올 수가 있었다. 어떻게 보면 저런 운전기사야 말로 도인이다는 생각이 든다.
낡은 차량을 정비를 해서 곡예를 하듯 운전을 하는 솜씨는 도인道人이 아니고서는 하기어려운 일이아니겠는가? 간덴사를 순례하는 티벳인들이 모두 도인처럼 보인다. 우리는 그 아슬아슬한 눈길을 무사히 내려오게 운전을 한 운전기사에게 감사를 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