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펑펑 내리는 임진강을 걷다!
하늘에 휘날리는 수많송이 눈꽃 만다라
주상절리 적벽에 비경 이루고
임진강을 하얀 도화지로 색칠하여
남과 북을 연결하는 평화의 길 열어주네
평화의 누리길이여, 신의주까지 이어져다오
1월 3일. 지난 연말에 이사를 와서 임진강 동이리 마을에 3일째 머무는 날이다. 오전부터 날씨가 꾸무럭하더니 오후 2시 경부터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눈은 얼어붙은 임진강을 금세 하얀 도화지로 색칠을 하고, 앙상한 나뭇가지를 멋진 하얀 눈꽃으로 만들어 버린다. 과연 눈은 세상을 변화 시키는 마법사다.
▲임진강 주상절리에 내리는 눈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절묘한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눈꽃을 머리에 인 갈대와 하얀 도화지로 변한 임진강, 그리고 적벽 주상절리가 휘날리는 눈과 절묘한 조화를 만들어 내고 있다.
고개를 들어 금굴산을 바라보니 함박눈에 가린 나뭇가지가 그 나뭇가지 아래 들어선 별장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묘한 실루엣을 연출한다. 어느 겨울 북유럽 최북단 노르웨이 나르빅을 여행할 때 보았던 풍경처럼 절묘하게 보인다. 바람도 불지 않아 이런 추세라면 눈이 꽤 쌓일 것 같다.
▲북유럽 노르웨이 북극을 연상케 하는 풍경
이럴 때는 집안에 있으면 바보다.
여보, 이제 나이도 좀 생각하세요?
하하, 산책가는 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오?
산책도 산책 나름이지요. 아이고, 당신은 참 못 말려.
걱정일랑 말아요. 아직 눈길을 걷는 데는 자신이 있으니.
▲눈발에 흰모자를 쓴 옹기 항아리와 중공군사병처럼 유리창 비추이는 찰라의 모습
나는 미끄럽다고 불안해하는 아내의 만류를 뿌리치고 등산화 끈을 조여 맸다. 옷을 두껍게 입고 카메라 털모자도 썼다. 아내가 챙겨주는 벙어리장갑을 끼고 똑딱이 카메라를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니 영화에서 보았던 중공군 사병처럼 보여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마당에는 눈이 벌써 발목이 빠질 정도로 쌓여 있다. 하늘을 바라보니 수없이 많은 만다라가 춤을 추며 낙하를 한다. 환희의 만다라다. 눈은 장독대에 모자를 씌우고, 소나무를 눈 덮인 크리스마스 추리로 만들고 있다.
▲수천만송이 만다라가 되어 떨어지는 함박눈 ▲눈 덮인 크리스마스 츄리로 변하는 소나무들
마당을 지나 대문을 나서니 언덕진 골목에 눈이 하얗게 쌓여 있다. 나는 미끄러운 언덕을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음, 눈이 얼기 전에 빨리 쓸어야겠군. 나는 산책을 다녀와서 눈을 쓸기로 하고 아무도 다니지 않는 적막한 시골길에 뚜벅뚜벅 발자국을 찍기 시작했다. 사각사각 눈이 밟히는 소리가 들린다. 아무도 없는 눈길을 걷는 느낌은 걸어본 사람만 안다.
▲금세 하얀 눈이 쌓인 대문 밖 언덕길. 눈이 얼기전에 쓸어야 자동차가 올라 올 수 있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길은 적막하다
하얀 도화지로 변한 강 가까이에 다다르니 수많은 갈대들이 눈을 잔뜩 머금고 고개를 수그리며 도열해 있다. 브라운 색 갈대 잎에 쭉 뻗어 올린 줄기, 그 줄기 끝에 달린 갈대꽃은 흰 눈을 이고 다시 갈대꽃으로 피어나는 것 같다.
갈대 숲 사이로 비친 새하얀 임진강과 적벽의 주상절리(株狀節理)가 휘날리는 눈송이와 어울려 절묘한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잎이 져버린 마른 풀의 꽃받침에 피어난 눈송이는 목화송이 같기도 하고 하얀 국화송이 같기도 하다. 아아, 아름답다! 자연의 조화는 참으로 위대하다.
▲함박눈이 휘날리는 임진강 주상절리
▲마른 풀잎에 핀 눈꽃
나는 한 송이 눈꽃이 되어 눈 덮인 임진강을 유유자적 날아 다녔다. 우화등선(羽化登仙-몸에 사람이 날개가 돋아서 하늘로 올라가 신선이 된다는 말)이란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겸재(조선시대 화가)는 배를 타고 유유자적하며 우화등선(羽化登船)이란 수묵화를 남겼지만, 나는 한 송이 눈꽃이 되어 하늘을 날며 똑딱이 카메라로 임진강의 절경을 찍어내고 있다.
▲주상절리에서 떨어져 나온 돌밭이 눈을 덮고 잠들 자세를 취하고 있다.
눈이 내리는 임진강은 금방 어두워진다. 주상절리에서 떨어져 나온 돌밭을 걷다보니 이마에 김이 무럭무럭 올라온다. 풍화작용으로 둥글 몽실 해진 돌들은 눈을 머리에 이고 고요히 잠이 들 자세를 취하고 있다.
▲평화누리길 리본과 이정표
전쟁과 슬픔으로 얼룩진 임진강은 언제 그랬느냐는 듯 평화롭다. <평화누리길>이란 청분홍 리본이 하얀 눈 속에서 오늘 따라 더욱 돋보인다. 임진강에 더 이상 슬픔을 안겨주어서는 안 된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빗자루를 들고 대문 앞 눈을 쓸었다. 아무도 찾아 올 리 없지만 그래도 나는 눈을 쓸었다. 사람이 아니 오면 고라니라도 찾아오겠지……
(2012.1.3 눈이 펑펑 내리는 날 임진강에서 글/사진 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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