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임진강일기

거미줄에 덜컥 걸리고만 안개

찰라777 2012. 7. 4. 06:17

안개 속을 거닐다 보면

모두가 혼자이다!

 

 

새벽에 일어나니 임진강변에 안개가 짙게 깔려있다. 지척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임진강과 산, 나무, 들판이 안개에 덮혀 있다. 강물도 보이지 않고, 주상절리 적벽도 보이지 않는다. 모든 사물이 실루엣이 되어 흐늘거린다.

 

이른 새벽 나는 창문을 열고 안개 낀 텃밭 속으로 걸어 나갔다. 텃밭을 산책하다가 나는 그만 거미줄에 걸리고 말았다. 안개 색깔과 거미줄 색깔이 같으니 거미줄이 잘 보일 턱이 없다. 거미란 놈들도 참 부지런하다. 내가 거미를 닮았나?

 

 

▲거미줄에 걸린 안개가 마치 수많은 진주처럼 보인다.

 

 

그런데 거미줄에 걸린 안개가 참으로 신비하게 보인다. 미세한 물방울이 거미줄에 방울방울 걸려있다. 그 물방울을 확대해서 바라보니 수많은 진주가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하, 녀석들이 나에게 백진주, 아니 안개진주를 선물해주고 있네! 거미들은 참으로 정교하게 거미줄을 엮어놓기도 했다.

 

 

▲짙은 안개에 가려 거미줄 바깥세상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거미줄 바깥세상은 안개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 거미줄 속에 걸려 있는 나는 수많은 안개진주를 걸고 있는 샘이다. 이렇게 많은 진주를 내 몸에 걸어보기는 처음이다. 그러나 안개진주는 내 몸에 걸리는 순간 곧 물방울이 되어 땅으로 떨어지고 만다. 사람이 죽으면 이 안개진주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고 말텐데… 햇살이 비추이고 나면 모두 것이 툴툴 털어져나가고 유리알처럼 드러나고 말텐데…….

 

 

▲세상은 안개 베일에 가려 있다. 그러나 해뜨면 그 안개베일도 백일하에 드러나고 만다.

 

 

요즈음 세상을 보면 참으로 안개 베일 속에 가려 안개진주를 걸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안개정국, 안개장세, 안개펀드, 안개부동산, 안개경제, 안개거래, 안개 같은 사람……. 그러나 아무리 안개에 가려 있더라도 안개가 걷히면 모든 것은 백일하에 드러나고 만다.

 

 

▲안개 속에 가린 정자도 홀로 서 있다.

 

 

홀로 안개 속을 거닐다 보니 문득 헤르만 헤세의 <안개 속에서>란 시가 떠오른다. "안개 속을 혼자 거닐면 정말 이상하다/덩쿨과 돌은 모두 외롭고/나무들도 서로 보지 못한다/나의 생활이 아직도 활기에 찰 때/세상은 친구로 가득하였다/그러나 지금은 안개에 휩싸이니/ 그 누구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중략..../어둠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일 수가 없다/안개 속을 혼자 거닐면 정말 이상하다/살아 있다는 것은 고독하다는 것/사람들은 서로를 알지 못한다/모두가 혼자인 것이다."

 

 

▲안개 속에서는 호박도, 고추도, 수박도... 모두가 혼자이다.

 

 

아침의 텃밭은 모두가 혼자이다. 호박꽃도, 나팔꽃도, 능소화도, 옥수수도... 혼자이다. 고추도, 호박도, 토마토도, 수박도.... 혼자이다. 칡넝쿨도, 돌도 모두 혼자이다. 새들도 함께 있지만 서로를 보지 못한다.  

 

 

▲호박꽃도, 마팔꽃도, 능소화도, 옥수수도 모두가 혼자이다.

 

 

 

안개 속을 홀로 거니는 아침의 텃밭은 모두가 혼자이다. 서로가 서로를 보지 못하고 있다. 정말, 헤세의 시처럼 어둠을 전혀 모르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일 수가 없을 것 같다. 살아있다는 것은 고독하다. 옆집 사람도 우리는 서로를 알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새들도 함께 있지만 서로를 보지못하고 혼자이다.

 

   

(2012.7.3 안개 속을 거닐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