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원도 잘 오지않는 오지에 살다보니....
지난주부터 싱크대 주변 부엌 바닥이 조금씩 물이 젖어들고 있었다. 물이 어디서 새는지 싱크대 주변을 이리저리 살펴보아도 그 원인을 쉽게 찾기가 어려웠다.
원선과 연결된 수도꼭지를 조금 열어 놓으면 물이 새지 않다가 조금만 세게 틀면 서서히 싱크대 주변 바닥이 젖어들곤 했다.
"도대체 물이 어디서 새지?"
"바닥이 축축해요. 저 싱크대 밑을 샅샅이 뒤져봐야 할 것 같아요."
싱크대 밑 가로막을 뜯어내고 전지를 비춰보니 아내의 생각대로 물은 그 안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상수도 원선으로 연결되는 호스와 꼭지로 연결되는 노즐 연결부위에서 물이 한 방울씩 똑똑 떨어지고 있었다. 노즐의 연결나사를 조여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랫집 연희 할머님이 잘 안다는 전곡의 수도수리점에 전화를 하여 수리를 해 줄 수 없느냐고 했더니, 너무 멀어서 갈 수 없다고 했다. 수도꼭지 하나를 교체해주기 위하여 하루 품을 들여서 갈 수 없다는 것. 몇 군데 더 전화를 해 보았지만 다 같은 이유로 회피를 하며, 철물점에 가서 부품을 사다가 직접 수리를 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내가 살고 있는 DMZ인근 연천군 동이리는 전곡에서도 20km 정도 떨어진 오지라서 잡다한 수리는 요청을 해도 잘 오지 않는다. 오가는 기름 값에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하루 품을 다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 하루 품삯을 다 주어도 올까 말까 할 정도이다.
또한 텃밭에서 수확을 한 농작물을 서울 아이들이나 친지에게 부치고 싶어 택배를 불러도 택배원들 조차도 오지 않는다. 때문에 직접 전곡으로 싣고 가야만 택배를 부칠 수 있다. 또 다른 지방에서 부친 택배도 당일 배달이 되지 않고 거의 3~4일 정도 걸려야 도착을 한다.
일전에 지리산 구례 해경이 엄마가 부친 감자도 3일 만에 도착했다. 왜 그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느냐고 택배원에게 물었더니 이곳은 최전방 오지라서 섬지방에 택배를 부치는 것과 같다고 하며, 배달도 월수금 혹은 2~3일 한 번씩 택배를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복잡한 싱크대 수도꼭지, 보기만 해도 머리가 지근거리네
하는 수 없이 전곡에 있는 철물점으로 가서 새는 부위만 부품을 교체할 수 없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철물점 주인은 수도꼭지 전체를 교체해야 한다고 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물이 새는 부위의 부품만 교체하면 될 것 같은데 거기에 맞는 부속품도 없고, 부속품을 일부분만 팔지 않는다는 것.
하기야 요즘은 자동차나, 문고리, 그 무엇을 수리 하더라도 부속품 일부는 수리가 안 되고 통째로 바꾸어야 한다. 통째로 바꾸면 작업은 쉽지만, 자원을 활용하는 측면에서 생각하면 매우 낭비적인 행위이다.
철물점 주인한테 수도꼭지 작업교습까지 받고...
물은 계속 새고, 수리공은 오지 못하겠다고 하고… 이를 어쩌지? 인터넷을 뒤져 싱크대 수도꼭지 교체하는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상세하게 나와 있지 않고, 있더라도 수도꼭지 사양이 제각기 틀려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노즐과 호스
싱크대 수도꼭지는 의외로 교체하기가 힘든 구조로 되어 있었다. 첫째, 작업공간이 매우 좁다. 둘째, 생각보다 부품구조가 복잡하다. 찬물, 더운물, 노즐 등 세 개의 선이 복잡하게 얽혀있고, 연결작업도 쉽지가 않다. 더구나 어둡고 좁은 공간에서 작업을 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래서 구례에 살 때에도 상하수도 관련 수리만큼은 너무 어려워서 손을 대지못하고 읍내에 있는 수리소에 요청을 하여 수리를 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곳은 돈을 주어도 오지않는다고 하니 어떻게 생각하면 지리산보다 이곳이 더 오지라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하지요?
"제가 조립을 하는 방법을 자세히 가르쳐 드릴테니 그대로 한번 시도해보시지요."
다행히 철물점 주인은 매우 친절하게 부품을 늘어 놓고 조립하는 순서를 하나하나 어떻게 연결하는지를 상세하게 일러주었다.
"이거… 성공적으로 작업을 완성하면 수업료를 톡톡히 내야겠는데요? 허허."
"교체하시다가 의문 나는 점이 있으면 언제라도 전화를 주시지요. 가까우면 제가 가서 좀 도와 드릴 텐데… 그 작업이 의외로 시간이 많이 걸리거든요."
화장실에서 사전 리허설까지 했지만...
▲바킹을 순서대로 잘 끼워야..
▲세 개의 선을 원선과 꼭지에 연결해야..
7월 3일 오후 3시, 나는 드디어 수도꼭지교체 작업을 시작했다. 철물점 주인이 일러준 대로 부품을 늘어놓고 화장실에서 순서대로 조립을 하여 사전 리허설(?)까지 해보았다.
일단 별 탈 없이 꼭지에 물이 콸콸 나오는 것으로 보아 리허설은 성공적이었다. 이대로만 잘 연결하면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이걸 순서대로 잘 연결해야지..
나는 대문 밖에 있는 수도계기를 잠가놓고 수도꼭지를 교체하는 본 작업에 돌입을 했다. 내일 손님까지 온다고 하니 오늘 중으로 수리를 해야 한다. 그러나 싱크대 밑은 작업공간이 너무 좁은데다가 어둡기까지 해서 작업을 하기가 매우 여려웠다.
가장 좋은 방법은 싱크대 전체를 뜯어내고 작업을 하면 좋겠지만 그건 보통 큰 일이 아니다. 또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문 밖에 있는 수도 원선 계기를 잠그고...
▲어둡고 좁은 공간에 거꾸로 누워 천지창조를 그리듯 미켈란젤로처럼 작업을 시작...
▲어두운 공간에는 전지를 키워놓아야 뭔가 보인다.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를 그리듯 거꾸로 누워 작업을...
할 수없이 좁은 싱크대 안에 전지를 켜 놓은 채 거꾸로 누워 작업을 시작했다. 말이 쉽지 어둡고 좁은 공간에서 스패너, 렌치, 스패너를 사용하기란 매우 힘든 작업이다. 거기에다가 호수 연결 나사부위가 너무 짧아 렌치에 잘 물리지가 않았다.
나는 마치 미켈란젤로가 로마의 시스티나 성당에 천지창조를 그리듯 거꾸로 누워 나사를 푸는 작업을 시작했다. 팔이 아프고, 고개도 아프다. 좁은 공간에 허리를 뒤틀 수가 없고 바닥이 울툴불퉁해서 등짝이 개긴다.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를 그리다가 목에 깁스까지 했다고 하던데... 그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나사를 풀고 조이는 작업이 이렇게 어렵다니...
렌치에 나사부위가 겨우 물렸지만 옆으로 돌릴 공간이 없다. 렌치에 물려도 나사가 자꾸만 헛돌아 가기만 하고 쉽게 풀리지가 않았다. 휠체어를 타고 있는 아내에게 나사가 헛돌아가지 않도록 수도꼭지 상단을 잡아달라고 했다. 아내와 나는 끙끙대며 수십 번을 시도한 끝에 겨우 나사를 풀어냈다.
"와, 성공이다!"
"풀어졌나요?"
"응, 겨우 풀어냈어."
"여보, 좀 쉬었다 해요?"
"오케이!"
▲겨우 풀어낸 나사
▲고장난 수도꼭지
▲노즐에 다는 추
나사 하나를 풀어내고 우리는 함성을 질렀다. 일이란 그런 거다.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해냈다는 성취감은 크다. 시계를 보니 저녁 7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무려 4시간동안이나 끙끙대며 우리는 겨우 나사 하나를 풀어내고 있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구 수도꼭지를 철거하고, 새로 사온 수도꼭지를 조립하기 시작했다. 새 수도꼭지는 나사 연결부위가 길어서 작업을 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다시 거꾸로 누워 싱크대 안에 수도꼭지를 조립을 하고 연결나사를 조이는데 성공했다.
연결호스가 짧다니......
이거야 정말, 산 넘어 산이네!
그런데… 원선으로 연결할 호스가 2cm 가량 짧았다. 이거야 정말! 산넘어 산이네! 우리 집 싱크대는 보통 싱크대 보다 다소 높다. 그런데다가 이번에는 연결 나사부위가 너무 길어 호스를 옆으로 돌리는 유도리가 없어져 선이 더 짧아지고 만 것. 철물점 주인의 말로는 이 규격은 국제 규격으로 어느 싱크대나 다 맞는다고 했는데…
▲애써 설치했는데 호스가 2cm 짧다니...
이마에 흘리는 진땀을 닦고 시계를 보니 밤 10시다. 철물점 문은 이미 닫혀 있을 것이다. 아침 7시에 문을 연다고 하니 내일 연락을 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리니 전곡에서 수리를 하러 오지 않는 이유를 이해를 할 수 것 같았다.
다음날 아침 7시(7월 4일), 철물점에 전화를 걸었더니 일단 부품을 가져와 보라고 했다. 뜯어낸 고장난 수도꼭지까지 들고 철물점으로 갔다. 임진강변에는 안개가 짙게 끼어 있고, 도로변에는 개망초가 마치 메밀꽃처럼 수없이 피어 있었다.
▲철물점 가는 길에 바라본 개망초
맥가이버 소리 두 번 듣다간 사람 죽겠군!
철물점에 도착을 하자 주인은 고장난 수도꼭지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이건 똑 같은 제품을 사야만 해결이 되겠는데요?" 그러면서 전곡에서 가장 큰 철물점을 소개해주며 그곳으로 가보라고 했다. 그러나 그 철물점에 도착하니 그곳은 아직 문이 열려있지 않았다.
손님은 곧 온다고 하고, 싱크대 수도를 사용하지 못하면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할 수 없이 그 옆에 있는 철물점으로 갔다. 철물점 주인은 가져간 구 수도꼭지를 요리저리 살펴보더니 "스프레이 꼭지와 연결하는 노즐선이 가장 고장이 나기 쉬운 부위인데요, 이 노즐만 한 번 갈아 써보세요." 하면서 노즐을 호스에다 연결해주는 친절까지 베풀어 주었다.
▲고장난 수도꼭지 호스에 새 노즐을 연결하고...
"호스가 짧으면 보조선을 연결해서 쓰는 방법도 있어요."
"아, 그거 좋겠군요. 그 제품을 하나 주십시오. 노즐을 교체하여 물이 새지 않으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으면 다시 와야 되니까요."
"그게 좋겠군요."
노즐 교체하여 물이 새지 않는다면 비용도 절감되고 좋겠지만, 혹시 모르는 일이니 새 수도꼭지도 하나를 여벌로 구입을 해서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시 작업을 시작하여 구 수도꼭지를 연결하는데 성공하였으나 수도꼭지는 여전히 물이 새고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번에는 꼭지를 올렸다 내렸다 하는 발브에서 물이 새고 있었다.
▲다시 연결 시도. 그러나 여전히 물이 샌다
"이런! 낭패군."
그 작업을 하는데 도 3~4시간이 훌떡 지나가고 말았다. 그런 와중에 아내 친구들이 삼화교를 지나고 있다고 전화가 왔다. 삼화교면 10분 이내로 우리 집에 도착하는 거리다.
"큰일 났네! 친구들이 거의 다 왔대요?"
"하는 수 없지. 다 고칠 때까지 화장실 물을 받아서 쓸 수밖에."
▲조립순서를 잘 지켜야 ...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씻어내며 다시 수도꼭지에 매달렸다. 여벌로 사온 수도꼭지는 노즐에 추가 달린 것이 아니라 노즐이 두 개인 코브라 형 수도꼭지였다. 노즐이 세 개일 때보다 작업이 더 수월했다. 낮 12시가 넘어서야 작업이 겨우 끝났다.
이런! 이번엔 제품불량으로 물이 새다니,,.
그러나... 다음날 아침 수도꼭지를 틀어보니 싱크대 꼭지밸브에서 물이 솟아나오며 내 얼굴을 세차게 때렸다. 이거야 정말! 사람잡네! 물이 왜 또 새지? 꼭지를 여기저기 아무리 조여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연결에 성공했으나 이번엔 제품불량으로 꼭지벨브에서 물이 샜다.
철물점에 다시 전화를 하여 그 상황을 전했더니 핸드폰으로 새는 부위를 촬영을 해서 전송을 해주라고 했다. 사진을 보아야 새는 부위와 원인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것. 물이 새는 부위를 촬영을 해서 철물점을 전송을 했더니, 철물점 주인은 이 제품은 불량품으로 가져오면 교체를 해주겠노라고 했다.
그러나 불량품 교환이 문제가 아니라 다시 고개를 쳐박고 작업을 해야 하는 것이 큰 일이었다. 좁은 공간에서 몸을 뒤틀다가 옆구리 갈비뼈까지 다쳐 통증이 심했다. 파스를 발랐지만 통증은 여간해서 가라앉지가 않았다.
▲새로 교환해온 코브라 수도꼭지
▲연결보조선을 사용 원선과 연결
▲드디어! 일주일만에 성공한 싱크대수도꼭지...
7월 9일에서야 전곡철물점으로 가서 불량품을 새 제품으로 바꾸어 온 나는 가까스로 다시 작업을 하여 수도꼭지 교체를 완성했다. 일단 물은 새지않고 콸콸 잘 나왔다.
"우와! 물이 너무 시원하게 잘 나오네요! 당신 너무나 수고 많이 했어요. 오늘부터 진짜 맥가이버로 대접을 해 드려야겠네요!"
"이거... 맥가이버 소리 두 번 듣다간 사람 죽겠군."
▲콸콸 쏟아져 내리는 수도꼭지
허지만 낭만은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한다
일주일이나 걸려 수리를 한 수도꼭지에서 물이 콸콸 나오는 광경을 바라보며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역시 집은 사람이 살면서 어루만져 주어야 한다. 물이 새는 것을 모르고 그냥 두면 누수가 되어 집은 그냥 망가지고 말것이다.
허지만... 도심의 아파트에 살 때에는 꿈에도 생각을 해 보지 못할 일들을 나는 해내고 있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하지만, 귀농귀촌은 결코 낭만이 아니다! 수도꼭지, 화장실 변기, 세멘대 수도 연결 등 이런 일들은 결코 쉬운 과목이 아니다. 이곳도 물이 알게 모르게 조금식 새고 있다. 다음에는 그 쪽에 손을 써야 한다. 그러니 오지에 살려면 정말 맥가이버가 되어야 한다.
"맥가이버 되기 정말 어렵네! 낭만은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