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토리아의 야생화처럼
아침 6시에 일어나 곤히 잠들어 있는 아내를 깨우지 않도록 살그머니 밖으로 나와 운동화 끈을 조여 매고 해변으로 나갔다. 해변의 아침은 상쾌했다.
6월의 풋풋한 바다바람이 얼굴을 간지럽게 했다. 바람과 함께 와르르~ 밀려오는 파도 소리, 끼~익 끼~익 갈매기 우는 소리가 희망을 몰고 오는 시사이드의 아침!
태평양을 바라보며 해변의 모래사장을 뛰었다. 생각 같아서는 바다 위를 달리고 싶은데……. 첨벙 첨벙, 물위는 뛰는 사나이. 내 마음은 벌써 아침태양이 떠오르는 바다 위를 달리고 있었다.
여기저기 아침을 뛰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전거를 탄 젊은 남녀가 재잘거리며 지나갔다. 풀잎처럼 싱그러운 아침. 단순한 아침. 이슬처럼 단백한 아침. 언제나 아침은 희망을 몰고 온다.
유스호스텔에 돌아오니 아내의 대갈일성!
"여봇! 라면이 다 퍼졌어요."
그런데 퍼진 라면이 왜 이리 맛있지. 퍼진 라면을 프프, 후루룩 먹고 나서, 간단한 짐만 챙기고 우린 그 유명한 오리건 코스트 북쪽을 향해 자동차의 엑셀을 힘차게 밟았다. 시사이드를 떠나 폰티악 그랜드에이엠은 US101번 도로를 기분 좋게 미끄러져 나갔다.
태평양 연안을 따라 남북으로 달리는 US-101번 도로는 드라이브 천국이다. 이는 탁 트인 이 해변을 직접 달려본 자만이 그 맛을 알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오리건 주 최북단 항구 아스토리아에서 남쪽으로 캐논 비치, 뉴포트, 브루킹스로 이어지는 오리건의 올드 코스는 최고의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다.
태평양의 거친 파도가 만들어낸 기암절벽, 조용한 항구 도시, 풍요로운 전원지대……. 올드 오레곤 코우스트는 전체길이 약 350마일로 1번 도로와 101번 도로를 숨바꼭질하듯 들락거리며 멕시코 국경 근처 산디에고까지 이어지는 천혜의 드라이브 코스다.
선셋 비치를 지나 북상하여 워싱턴 주와 경계를 이루는 아스토리아 항구에 들어서니 아름다운 다리가 컬럼비아 강 하류에 길게 뻗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스토리아는 로키산맥에서 포틀랜드를 거처 태평양으로 흘러내리는 컬럼비아강 하구에 위치한다.
아스토리아는 서부 로키에 아메리칸이 정착한 가장 오래된 도시다. 110년 전에 루이스와 클라크 부대가 정착하면서부터 개척된 지역으로 주변에는 컬럼비아 스테이트 파크, 캔비 스테이트 파크, 노쓰 헤드 등대, 롱비치 해변, 리더베터 포인트 스테이트 파크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때 묻지 않는 절경으로 가득하다.
영화 '프리 윌리(Free Willy)', 구니스(Goonies-얼간이들)등이 이 도시 주변의 아름다 운 바다와 강 그리고 절경을 배경으로 촬영되기도 한 곳.
아스토리아 다리는 길이가 약 7.5km로 철교 식으로 되어 있다. 바람에 휘청거리는 아찔함을 느끼며 철교 위를 달렸다.
다리를 건너니 바로 워싱턴 주 치눅이라는 조그마한 항구 도시가 나왔다. 한가한 카페에 들려 커피를 한잔 하며 이 곳의 명소와 길을 물었다. 뚱보아저씨가 친절하게 설명 해주며 상세한 해변 지도까지 주었다. 루이스 클라크 기념관과 노쓰 헤드 등대, 롱비치 해변이 가 볼만 하다는 것.
치눅(Chinook)에서 컬럼비아강 하류 건너편의 아스토리아를 바라보는 기분이 매우 상쾌했다. 6월의 시원한 바다바람과 함께 펼쳐진 탁 트인 풍경. 멀리 화물선이 부~웅 길게 뱃고동 을 울리며 지나갔다.
치눅을 뒤로 하고 101번 도로를 따라 이와코(IIwaco)라는 항구에 이르니 좌측으로 캔비 스테이트 파크라는 화살표가 보였다. 그 곳에는 이 일대를 최초로 탐험했던 백인 탐험가 루이스와 클라크(Luice & Clark Interpretive Center)의 기념관이 있다.
꼬불꼬불한 롱비치만의 해안 지방도로를 따라 바다로 나아가니 하얀 등대가 태평양의 푸른 바다와 함께 아름다운 여인의 허리처럼 길게 허리를 늘어뜨리며 서 있는데, 그 자연의 가공되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만 현기증이 날 정도.
등대까지는 걸어서 1.5마일이라는 이정표가 있었다. 파킹 로드에 차를 세워놓고 바다 로 향한 샛길을 걸어 올라갔다. 노쓰 헤드등대 주변
한 고개를 넘어 등대 앞 500여 미터 지점에 이르니 파란 초목에 넙죽한 하얀 꽃송이들이 만발한 야생화 밭이 태고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게 아닌가!
“오! 섬바디…….”
아내의 입에서 탄성과 함께 나온 소리였다. 아내는 벌써 그 섬바디 인가 뭔가 하는 꽃밭으로 뛰어가고 있었다. 사 진을 촬영하기에는 과히 환상적인 곳이다. 등대 앞 전체가 야생화로 뒤덮여 있었다.
아내를 모델로 때 아닌 사진 촬영기사가 되어 한동안 카메라의 앵글을 돌려대야 했다. 등대에 이르니 끝없이 펼쳐진 태평양으로부터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머리칼을 휘날렸다.
“오늘 당신은 정말 멋있는 모델이내!”
“흐음, 이 향기! 이렇게 자연스럽게 피어있는 야생화는 처음 봐요!”
‘야생화처럼 살자!’
야생화는 아무도 돌봐주는 사람이 없지만 이렇게 자생하여 살고 있다.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자생력을 길러야 한다.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것이야 말로 야생초들이 살아가는 비결이 아니겠는가?
등대 아래 벼랑에 는 파도가 부서지며 철썩 철썩 흰 물보라를 이루고 있는데, 푸른 바다로부터 '프리 윌리'와 같은 거대한 고래가 떠오를 듯한 착각에 사로 잡혔다.
루이스 센터의 서부 개척사를 돌아본 뒤 캔비 주립공원으로 향했다. 정심도 해결 할 겸. 캔비 파크에 이르니 해변에 수없이 많은 고목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프리윌리'에 나왔던 고목나무 해변.
파크에는 취사를 할 수 있도록 장소가 지정되어 있고, 간단한 캠프시설이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다. 버너에 불을 켜고, 라면 물을 끓이며 캠프 대에 준비해온 피클, 과일 등을 꺼내 놓았다. 김치가 없어서 좀 섭섭했지만 야외에서 먹는 한국라면 맛은 백미중의 백미.
역시 라면은 한국라면이 최고다. 일본 라면은 수프가 심심해서 잼벙이고, 중국라면은 허연 누들이지 라면이라고 할 수 없다.
점심을 해결한 뒤 해안의 고목위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여기저기 캠핑을 온 연인 들이 짝지어 수영복 차림으로 해변을 걷고 있었다. 갈매기가 평화롭게 날고 있었다.
휴지 한 장, 음식 찌꺼기 한 톨 발견할 수 없는 깨끗한 해변. 음식 썩는 냄새와 너덜거리는 비닐과 깨진 유리병, 그리고 고성방가의 아수라장인 우리의 동해바다나 해운대, 변산 해수욕장을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우울해진다.
이 들이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은 자기 몸을 돌보는 것보다 더하다. 따지고 보면 자연과 인간, 모든 살아있는 것들이 다하나가 아닌가! 배우자, 배워야 해. 이들의 자연을 사랑하는 지극한 마음을.
워싱턴 주 롱비치 주변의 관광지 파크에서 나와 103번 도로를 타고 롱비치 해안을 따라 계속 북상했다. 롱비치에는 리조트가 간간히 그림처럼 보일뿐 사람의 그림자도 만나기가 힘들었다. 너무 조용하니 썰렁하게 느껴질 정도. 그러나 숲이 우거진 해안도로는 천혜의 자연 그대로였다.
롱비치 반도와 윌라파 만사이의 호수 같은 바다는 국립 생태 자연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는 곳. 우리는 롱비치 반도의 맨 끝 리드베터 포인트까지 올라갔다.
“여보, 무서워요! 이제 그만 가지요.”
인적이 드믄 해변의 숲 속은 태고의 원시림으로 되어 있어 나도 역시 섬뜩한 기분이 들 정도로 으스스 했다. 차를 돌려 아내와 번갈아 가며 시사이드의 유스호스텔에 도착하니 저녁 6시. 오늘은 정말 멋진 해변 드라이브를 즐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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