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인도네시아·발리

뱀의 해, 뱀 신의 축복을 받아 봐?

찰라777 2013. 1. 5. 12:24

날씨가 너무 춥군요. 이럴 땐 더운 나라 이야기를 읽는 것도  추위를 이겨내는 한 방법이 될 수 있겠지요. 180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적도상에 위치한 '신들의 섬' 발리여행기를 읽으며 추위를 잊어보세요.^^

 

 

우리는 석양이 질 무렵 해발 1600m 고지에 있는 '깃깃 폭포'에서 해변으로 계속 하강을 하여 따나롯 해상 사원에 도착했다. 마치 제주도 1100고지에서 서귀포로 내려가는 느낌이랄까? 발리 섬은 어찌 보면 제주도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미스터 초이, 따나롯 사원에서 기적의 성수를 마시고 뱀 신의 축복을 꼭 받아보세요."

"뭐? 기적의 성수와 뱀 신의 축복을?"

"네, 따나롯은 뱀의 신이 지키고 있는 신성한 사원이랍니다. 바위틈에서 솟아나오는 기적의 성수를 마시고, 뱀 신의 축복을 받으면 지혜의 문이 열리고 건강과 행운이 온다고 해요."

"아유, 그래도 난 뱀이라면 징그러워요."

"내년은 뱀의 해가 아니요? 성경에서도 지혜의 상징으로 은유되고 있을 정도이니 이곳 발리에서 뱀 신의 축복을 받는 것도 특별한 체험이 되지 않을까?"

 

 

 

사실, 발리는 이렇다고 할 만한 뛰어난 경관이나 놀랄만한 풍경은 없다. 그러나 곳곳에 산재해 있는 사원들은 발리를 지키는 수호신들이 모셔져 있으며,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전설과 스토리가 숨어 있다. 발리의 매력은 바로 발리 섬을 지키고 있는 '신'들에게 있다.

 

신에게 바쳐진 발리 섬은 사원마다 각기 다른 전설과 이야기를 지니고 있다. 이 신들과 전설 속에 발리사람들은 신들과 함께 공존하며 생활하고 있다. 그 많은 사원들 중에서도 바다의 신을 모신 따나롯 사원을 특별한 전설과 함께 기적을 일으킨다는 'Holy Spring  Water'가 솟아나오고 있다.

 

 

 

따나롯Tanah Lot 사원은 '바다의 사원'이라고도 불린다. 땅이라는 뜻의 'Tanah'와 물이란 뜻의 'Laut'가 합쳐져 바다위의 땅이란 뜻을 가지고 있는 이 사원은 간만의 차가 심해 아침이면 물이 차서 섬이 되었다가, 오후부터는 썰물로 빠져나가 걸어서 갈 수 있는 육지가 된다. 우리나라 서산에 있는 간월도와 같은 곳이랄까?

 

바다의 신이 모셔져 있는 따나롯 사원은 두 개의 초가지붕으로 된 정자가 있는데, 7층 사당은 상향 위디 와사를, 삼층 사당은 니라르따를 기념하기 위한 사당이다. 니라르따는 16세기 경 자바 섬에서 건너온 떠돌이 힌두 승려로 따나롯을 지나던 중 그 아름다운 경관에 반해 그곳에 사원을 건설하고자 주민들을 설득하였다.

 

 

 

그러자 그 지역의 통치자였던 베라벤이란 자가 주민들이 자신보다 니라르타를 따르는 것을 보고 질투심에 불타 그에게 이곳을 떠나라고 명령했다. 이에 니라르타 승려는 바위를 바다위에 던지고 나서 자신의 스카프를 뱀으로 바꾸는 신통을 부려 그곳을 지키게 했다. 니라르타의 신통을 지켜본 베라벤은 감격을 하여 니라르타를 추종하게 되었고, 니라르타가 던진 바위 위에 사원을 지었다고 한다. 지금도 바다 속에 잠들었던 신의 화신 흰 뱀들이 동굴 속에 나타나서 사원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따나롯 사원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야자수 그늘 아래 하얀 깃발이 만장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하늘은 무언가 신성한 기운을 내려주듯 어둠과 빛이 교차하고 있었다. 사원 안으로 들어가는 문에는 수많은 조각이 새겨져 있는데, 작은 칼을 든 힌두의 신 옆에 웃고 있는 듯한 뱀의 머리가 요상하게 보인다. 뱀파이어처럼 보이는 조각도 특이하다.

 

"저기 흔들리는 특이한 깃발이 꼭 용처럼 생겼지 않소?"

"아유, 나는 어쩐지 으스스하고 징그럽게만 보여요."

"하하, 벰의 신이 당신에게 건강을 축복하는 것 아니오. 발리에서는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펜조르라는 깃발이래요."

 

 

 

길가에는 펜조르(Penjor)가 깃발과 함께 도열해 있다. 펜조르는 코코넛 잎과 꽃으로 장식을 하고, 탈곡을 하지 않는 벼이삭과 코코넛 열매를 대나무에 매달아 매달아 세운 발리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장식물이다. 이 신성한 깃대는 발리에서 가장 큰 축제인 갈룽안 축제 기간 중에 집 앞에 세워 둔다고 한다. 발리사람들은 깃대의 정점을 용이라고도 해석한다. 따나롯 사원 입구에는 펜조르가 바다를 배경으로 신비하게 나부끼고 있었다. 마치 용의 머리가 흔들리는 것처럼…

 

펜조르가 휘날리는 입구를 지나가니 탁 트인 바다가 펼쳐지고 그 앞에 바위섬 하나가 나타났다. 바위섬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열을 지어 건너가고 있었다. 썰물 때인지라 그냥 건너 갈 수 있는데 밀물이 들면 건너가기가 쉽지가 않다. 그러나 물이 무릎 정도 밖에 차지 않아 밀물 때에도 건너 갈 수 있다고 한다.

 

 

 

 

"꼭 우리나라 서산 간월도 같군요."

"정말 그렇군. 저 섬에 뱀의 신이 흰뱀으로 변해 지금도 사원을 지키고 있다니 정말일까?"

 

아내의 손을 잡고 조심스럽게 섬으로 건너갔다. 더구나 아내는 몸이 성치 않아 중심을 잘 잡지 못해 미끄러워 자칫 잘못하면 넘어지기 쉽다. 섬에 도착하니 용암이 뱀처럼 물결치듯 묘하게 보였다. 용암에는 동굴이 하나 있는데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사람들이 바위에서 솟아 나오는 물을 마시고, 이마에 축복을 받고 있었다. 동굴 천장에는 "Holy Spring Water( Air Suci Taman Beji)"라고 쓰인 간판이 걸려 있었다. '기적의 성수'라는 표시이다. 바다 가운데 있는 섬에서 마실 수 있는 스프링 워터가 솟아나오다니 참 신기하다. 사람들은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다가 성수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발리 전통복장을 한 현지인으로부터 이마에는 밥풀 세례(?)를, 귀에는 천리향 꽃 세례를 받았다. 축복을 받는 짧은 그 순간 사람들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 모습이 자못 진지하고 성스럽게 보였다.

 

 

 

뱀 신의 축복이 징그럽다고만 하던 아내도 성수를 마시고 소년이 주는 밥풀 세례와 천리향 꽃을 귀에 꽂았다. 예띤 소년으로부터 축복을 받고있는 순간 아내는 모든 잡념을 내려 놓은 듯 너무 진지하게 보였다. 아내보다 더욱 좋아하는 분은 정 선생님이다. 그녀는 성수를 마시고 작은 병에 담기도 했다. 밥풀 세례와 천리향 꽃을 받는 모습이 마치 천진난만한 소녀처럼 보였다. 

 

드디어 사진기사 노릇을 하던 내 차례가 되었다. 바위에서 솟아나오는 기적의 성수를 한 모금 마시고 이마에 밥풀 세례와 귀에 천리향 꽃을 꽂고 나니 야릇한 느낌이 들었다. 의식이란 이렇게 사람을 신의 세계로 인도하는 모양이다. 인도나 네팔에서도 이마에 붉은 점을 찍어주는 축복을 여러 번 받기도 했지만 그 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 들었다. 바다의 신, 뱀의 신이 주는 축복, 기적의 성수, 향기가 천리를 간다는 천리향의 축복…

 

 

 

과연 뱀 신이 기적의 성수를 마시게 하고 지혜의 축복을 주는 것일까?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기적은 어떤 것을 굳게 믿는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여간 기적의 성수를 마시고, 뱀 신의 축복을 받은 아내가 좀 더 건강해졌으면 좋겠다는 염원도 했다.

 

구름이 끼어 일몰을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그러나 오히려 흐린 날씨에 거대한 파도가 하얀 물거품을 일으키며 부딪치는 섬의 모습이 오히려 어울려 보였다. 금년은 뱀의 해가 아닌가? 성서에도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태 10:16)고 했다. 이리떼들이 득실가리는 험한 세상으로 양 같은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다.

 

 

 

 

그래, 뱀의 사원에서 뱀 신의 축복을 받았으니 이제부터라도 뱀처럼 지혜롭게 살아보도록 노력해 보자. 뱀의 지혜를 가지고 현실을 바로 꿰뚫어보고 고난을 해쳐나가는 지혜를 갖지 않으면 험한 세상에서 온전히 살아남을 수가 없다. 우리는 바위에 걸터앉아 한동안 파도치는 바다를 바라보다가 어둑해질 무렵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