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구니에 가득 찬 행복
<해땅물자연농장>입구에 있는 원두막에서 홍려석 원장님과 잠시 휴식을 취하며 환담을 나누고 있는데, 흰나비 한 마리가 펄럭이며 날아오더니 붉은 엉겅퀴 꽃 위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나비들은 어쩌면 저렇게 가볍게 몸을 놀릴까? 나비는 꽤 오랫동안 포즈를 취하고 있다. 나는 카메라를 들고 가까이 가서 주둥이를 처박고 꿀을 빨아먹는 나비를 찍었다. 녀석은 내가 사진을 찍는 줄도 모르고 엉겅퀴의 꿀에 푹 빠져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호랑나빗과 속하는 <모시나비>다. 날개의 길이는 6cm 정도 되고 몸체에는 회백색의 긴 털이 부숭부숭 나 있다. 날개에 비늘가루가 적어서 반투명하다는 데서 <모시나비>란 이름이 붙여진 나비다. 정말 녀석은 모시처럼 반투명한 날개를 가지고 있다.
원두막 앞에는 20여개의 엉겅퀴가 마치 해땅물자연농장의 파수병처럼 나란히 도열하여 서 있다. 엉겅퀴 꽃이 피자 갖가지 나비와 벌들이 찾아와 단 꿀을 빨아먹으며 휴식을 취하곤 한다. 해땅물자연농장은 농장이라기보다는 야생화 단지 같은 느낌이 든다. 그 정도로 농작물 사이에 야생화가 가득 피어 있고, 수많은 벌과 나비들이 여기 저기서 꿀을 빨아먹고 있다.아름다운 풍경이다.
▲엉겅퀴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향제비나비 오늘, 홍 선생님의 부인 최윤정 씨는 금년 들어 두 번째 수확을 해서 회원들에게 발송을 한다고 한다. 지난 5월 11일, 1차 수확으로 이미 회원들에게 한 번 보낸바 있다. 그녀는 야생화가 만발한 야채 밭에서 이것저것 여러 가지의 야채를 뜯어냈다. 그 모습이 마치 바구니를 들고 야생화가 만발한 정원을 산책하고 있는 것처럼 평화롭게 보였다. ▲ 바구니를 들고 야생화가 만발한 야채밭을 거니는 최윤정 씨 금년에는 예년보다 한 달 정도 수확이 빨라졌다고 한다. 예년 같으면 6월 초에나 첫 수확을 했는데, 금년에는 5월 초부터 수확을 하고 있다. 그만큼 농사가 잘 된 것이다. 10여 년 동안 줄기차게 자연농사를 지어 온 홍 선생님의 정성을 하늘과 땅과 물이 알아준 것일까?
"드디어 선생님의 정성을 하늘이 알아주는 모양이지요?"
"글쎄요. 전 아직도 모르겠어요. 앞으로 농사가 어떻게 될지.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곳에서 농사를 지은 지 5년이 되는 해부터 조금씩 수확이 늘어나고 있어요. 아마 <데바>께서 조금씩 허락을 해주는 것으로 밖에 생각이 되지 않습니다." ▲숲속의 요정이 출현 할 것만 같은 산밭 풍경
그는 농사가 되고 안 되고는 <데바>의 허락이 있어야 한다고 가끔 말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데바란 누구인가? <핀드혼 농장 이야기 The Findhorn Garden Story>란 책을 보면 데바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히 나온다.
'<데바deva>는 산스크리트어로 '빛나는 존재'란 뜻이다. 데바는 아래로는 땅의 요정으로부터, 위로는 최고급 대천사에 이르기까지 전체 천사군의 일부분으로 지상에서 인간과 함께 진화의 노정을 걸어왔다.
데바들은 우리 주변의 모든 존재들의 원형을 품고 있으면서 그것들이 물질계에 현현할 수 있도록 필요한 에너지를 인도, 조정하고 있다. 광물이나 식물, 동물, 인간의 물질체는 모든 데바계의 작용을 통하여 에너지가 현현하여 생겨난 것이다.
데바들을 식물의 형상을 만드는 '설계자'라고 한다면, 땅의 정령이나 요정들과 같은 자연령(nature sprites-4원소의 정령)이나 원소를 구성하는 엘리멘탈(elemental-흙, 물, 불, 바람 )들은 '기술자'로서 데바에 의해 만들어진 청사진을 가지고 에너지 통로를 통해 식물의 형상을 만든다(핀드혼 농장 이야기 127페이지 인용).' 그는 금년에는 어쩐지 농사가 예년보다 잘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한다. 모든 야채들이 예년보다 더 튼튼하게 잘 자라고 있기 때문이다.
"홍 선생님의 지극한 정성을 데바가 인지를 하고 야채가 잘 자라도록 허락을 해준 모양이지요?"
"글쎄요. 그런데 분명한 것은 같은 토양일지라도 어떤 야채이든 정성을 들인 만큼 그 반응이 오는 것은 확실한 것 같아요. 똑 같은 토양에 심었는데도 정성을 좀 덜 들인 야채는 생장이 매우 더디게 자라는 것을 지난 10여 년 동안 여러 번 체험을 했거든요. 결국 자연농사는 풀과 작물과 자연령들과 꾸준히 교감을 하면서 지극히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것을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같은 토양에서 정성을 들여서 키운 배추와 그렇지 않는 배추의 생장 상태를 보여 주었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같은 토양인데도 의붓자식처럼 다소 열외에 심은 배추가 생장이 더뎌 매우 왜소하게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런 경험을 수차례 경험 하면서부터 그는 데바의 존재를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싱싱한 야채를 바구니에 가득 채울 때가 가장 행복해요!"
홍 선생님 부인은 여러 가지 채소를 하나씩 따서 바구니에 정성스럽게 담았다. 청상추, 적상추, 적치거리, 청치거리, 다홍채, 청경체, 적오크, 청오크, 적로메인, 청로메인, 겨자채, 루꼴라… 상자에 담겨지는 싱싱한 야채의 종류를 헤아려 보니 무려 열두 가지나 되었다. "사모님, 잎을 하나하나 따서 수확하는 작업이 힘들지 않으세요?" "결코 쉬운 작업은 아니지만 수확을 할 때가 가장 기뻐요! 이렇게 싱싱한 야채를 바구니에 가득 채워 담을 때가 가장 행복하거든요."
▲ 싱싱한 야채를 하나씩 다서 바구니에 가득 채울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최윤 정 씨 여러 가지 야채를 한 땀 한 땀 따 담다보니 바구니에 건강한 야채들이 가득 채워졌다. 그 모습이 마치 행복을 바구니에 가득 채워 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바구니에 담은 야채를 상자에 차곡차곡 담아서 정성스럽게 포장을 했다. 저 야채를 먹는 사람들은 주로 어떤 사람들일까? 싱싱한 채소를 열두 가지나 받아먹는 사람들도 분명 행복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이 야채를 주로 어떤 사람들에게 보내지요?"
"저희 농장에서는 연회원제로 회원을 한정하여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약 15명 정도의 회원님들에게 한 달에 세 번 꼴로 밭에서 야채를 뜯은 즉시 직송을 하고 있습니다. 수확량이 적다보니 무작정 회원을 늘릴 수도 없어요. 작년에 통계를 보니 6월부터 10월까지 한 달에 세 번 정도, 약 15회를 보내 드렸어요."
1회 보내는 양은 4식구 기준으로 볼 때 2~3회 이상 먹을 수 있는 양(3~4kg)으로, 이를 가격으로 환산하면 대략 3~4만 원 선이다. 자연농으로 지은 야채는 비료와 농약을 일체 쓰지 않기 때문에 세포가 촘촘하고 웃자라는 경우가 없어 일반 관행농법으로 지은 야채보다 냉장고 오래 저장(1개월~3개월)을 할 수가 있어 '잘 썩지 않는 야채'라고 말한다. ▲ 1회에 3~4kg(4인가족기준 2~3회 먹는 양)를 산지에서 직송한다.
6개월 간(5월~10월) 1~2주에 한 번꼴로 직송을 하면 대략 15회 이상을 보내게 된다. 이를 가격을 환산하면 1년에 약 50만 원 정도가 된다는 것. 따라서 금년부터는 연회비를 50만 원을 받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형편에 따라 분할 납부를 받기도 한다고 한다.
가격 책정은 일반 친환경농산물가격에 50% 정도를 더 받는다. 일반적으로 친환경농산물이란 저농약, 무농약, 유기농산물로 나누어지는데,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관리하는 친환경농산물인증제도 기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저농약농산물(권장하는 화학비료의 1/2 사용, 유기합성농약 안전사용기준의 1/2 이하, 유기합성제초제 사용금지, 가축분뇨비퇴·액비 부숙사용 등)
▷무농약농산물(권장 화학비료의 1/3 사용, 유기합성농약 사용금지, 가축분뇨퇴·액비 완전 부숙 사용, 제초제사용금지, 농약잔류허용기준 1/20 이하 등)
▷유기농림산물(화학비료, 유가합성농약. 제초제 일체 사용 금지, 유기·무항생제축산물 기준에 맞는 사료를 먹인 농장에서 유래된 가축분뇨퇴·액비 완전 부숙 사용 등)
그러나 이곳 <해땅물자연농장>에서는 일반 유기농산물 재배를 뛰어넘어 밭도 갈지 않고, 풀도 뽑지 않는 자연 상태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다만 이곳 밭에서 돋아나는 풀만 자라면 베어서 그 자리에 놓아 둘 뿐이다.
그러므로 잡초와 함께 정성을 들여 지은 야채를 가격으로 환산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풀과 함께 야생의 상태에서 야채를 키우기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들기 때문이다. 해땅물자연농장을 방문해서 농사를 짓는 과정을 직접 보지 않고는 선뜻 회원으로 가입하기도 어렵고, 가입을 시키기도 어렵다고 했다. 그는 자신의 경제사정도 좋지않은데, 이렇게 자식처럼 정성을 들여 지은 야채를 암과 투병을 하고 있는 경제사정이 어려운 두 친지에게 무료로 보내주고 있다.
열두 가지나 되는 채소를 부지런히 손놀림을 하며 포장상자에 담던 최윤정 씨는 한 뭉치의 채소를 나에게 건네주며 오늘 점심에 이 채소로 쌈을 한 번 먹어보라고 했다. 나는 그 귀한 채소를 황송한 마음으로 받아들고 집으로 가져와 식탁에 올려놓았다.
"여보, 맛이 어떻소?"
"뭐랄까? 뭔가 꽉 찬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야채 줄기까지 맛이 달달해요!"
나는 아내와 함께 금방 가져온 싱싱한 야채로 상추쌈을 맛있게 먹었다. 잡초들과 함께 야생에서 자란 채소라서 그런지 일반 채소와는 뭔가 맛이 확실히 다른 것 같았다. 산에서 채취한 야생의 산나물을 그대로 먹는 맛이랄까? 나는 신선한 야채로 쌈을 한 입 가득 싸 먹으며 바구니에 싱싱한 야채를 가득 채울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최윤정 씨의 행복한 미소가 떠올렸다. 바구니에 가득 찬 행복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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