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텃밭일기

맨몸으로 걷고 싶은, 향기 나는 정원

찰라777 2013. 6. 26. 02:12

  

향기 나는 정원

 

요즈음 나는 내 생애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사실 나는 얼마 전가지만해도 3평 텃밭농사를 짓는 것도 거의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왕초보 농사꾼이다. 그런데 내가 200여 평의 텃밭농사를 짓다니… 생각 만해도 내 자신이 신통할 뿐이다. 거기에다가 자연농사를 배운답시고 매일 <해땅물자연농장>에 출근을 하고 있으니 상상도 못할 생활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2백여 평의 텃밭에 40여 가지의 작물을 심어놓고 내 텃밭 농사짓기도 엄청 바쁜데, 자연농사까지 배우고 있으니 얼마나 바쁘겠는가? 더운 날씨에 해땅물 지연 농장에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나면 그대로 졸음이 쏟아져 온다. 그래서 글을 쓸 시간도 거의 없다. 아니 컴 앞에 앉기도 전에 눈이 감기고 만다.

 

 

 

허지만 나는 요즈음 내 생애 가장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기도 하다. <해땅물자연농장>에 가면 날마다 새롭다. 하루하루 변화를 느끼는 것 자체가 새로운 것이다. 사과밭 옆에 차를 새워놓고 사과밭과 연못 사이를 걸어내려 오면 향기로운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갖가지 잡초에서 피어난 야생화는 시각과 후각, 그리고 마음까지 자극을 한다.

 

 

 

이곳에 도착하면 모든 것을 훌훌 벗어버리고 그냥 맨 몸으로 걷고 싶고, 맨몸으로 일을 하고 싶다. 온 몸을 마치 에덴동산에 온 기분이랄까? 아담과 이브가 그렇게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에덴동산에 농약이, 비료가, 제초제가 있었겠는가? 그곳엔 천연 그대로 자연이 있었을 뿐이다. 선과 악이 없고 두려움과 희망까지도 없던 곳, 남자와 여자란 인식도 없었던 곳, 이른 바 지상 낙원이라고 부르던 곳이다.

 

 

그렇게 철없이 뛰어 놀던 아담과 이브에게 뱀의 유혹이 끈질기게 다가와 아담으로 하여금 사과 먹게 하여 남자와 여자를 알게 하여, 부끄러움과 수치심으로 몸을 가리게 된다. 여기서 나타난 뱀은 어떻게 보면 뱀은 지혜의 상징이자 사악함의 상징이기도 하다. 만약 뱀이 끝까지 이브를 유혹하지 않았다면 아담이 사과를 먹었을 리도 없다. 사실 뱀은 하나님의 시킨 대로 움직인 것이 아니겠는가?

 

 

 

반 데르 후스(Van der Goes)의 <인간의 타락>(1470)이란 그림을 보면 이브를 유혹한 뱀은 여자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남성보다도 여성의 원죄를 더 강조하고 있다. 이브는 자신이 먹을 사과를 따고 아담에게 줄 사과를 하나 더 따고 있다. 서로 공범을 하자는 것이다. 

 

금단의 과실을 따먹은 아담과 이브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다. 마사초(Asaccio)의 <낙원의 추방>이란 그림을 보면, 낙원에서 쫓겨나며 이브가 중요한 부분을 가리고 있는 반면, 아담은 얼굴을 가리고 있다. 둘 다 절망의 표정을 짓고 있다. 

 

 

둘 다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져 있다. 아담은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잘못을 했다는 생각에 감히 얼굴을 들지 못하고 한 없이 울고 있다. 자신의 주요한 부분을 가릴 생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에 차있다. 그런 점에서 이브보다 얼굴을 가린 아담이 더 큰 고통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고통은 지금도 아담의 후예들에게 이어지고 있다.

 

대천사 미카엘은 오른손에 칼을 들고 어서 빨리 낙원에서 나가라고 재촉을 하고 있다. 이들이 서 있는 땅은 풀과 나무가 있는 아름다운 땅이 아니라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없는 메마른 땅이다.

 

이제 아담은 노동으로 이브를 먹여 살려야 하고, 이브와의 모든 삶을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여자인 아담은 출산의 고통을 겪게 되고 생활고를 견뎌야 한다. 여기에서 인류의 고통의 역사가 탄생하고 있다.  

 

 

 

그런데 아담과 이브에 대한 재미있는 그림이 있다. 뒤러(Durer, Albrecht)의 <아담과 이브>(1509)란 그림을 보면, 낙원을 떠난 아담과 이브가 끝까지 사과를 하나씩 들고 있다. 그들 포정은 낙원에서 쫓겨난 것에 대하여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너무도 당당하게 몸을 정면으로 드러내고 있다.

 

더 이상 금단의 사과를 먹은 원죄에 대해서도 고통스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먹음직스러울 정도로 탐스러운 사과를 하나씩 들고 있다. 이들은 성경 속의 인물이 아니라 다시 태어난 현실 속의 사람들처럼 보인다. 어떻게 보면 르네상스 이후 인류가 진정한 역사를 재시작하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곳 <해땅물자연농장>을 산책하며 나는 가끔 아담과 이브를 생각하게 된다. 인류가 부끄러움이 없다면 맨몸으로 걷고 싶은 충동을 일어나게 하기 때문이다. 비료와 농약이 없는, 퇴비조차 주지 않는 <해땅물자연농장>은 향기 나는 정원이다. 향기가 나면서 먹을 수 있는 정원이 바로 <해땅물자연농장>이다.

 

 

어쨌든 인간이 홀랑 벗어버리고 알몸으로 있고 싶은 것은 원초적인 인간의 본능이다. 인간을 제외한 나무와 풀, 모든 생물들은 알몸으로 있지않은가? 

 

이렇게 향기 나는 정원을 산책하는 나는 행복하다.

내가 이곳에서 주로 하는 일은 낫을 들고 풀을 베고, 작물과 풀에게 물을 주는 작업이지만 내 마음까지 향기롭게 하는 정원에 들어서면 마치 에덴동산에 들어 온 느낌이 든다. 작물과 풀들과 대화를 하고, 이곳을 찾는 벌과 나비, 새들과 소통을 한다. 홍 선생님이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10시간 넘게 이 농장에서 작업을 하시는 것을 옆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운다. 희망과 꿈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내 곁에, 지금 이 순간에 있다.

 

<지금>을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진정 성공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아, 나는 벌거벗은 채 이 향기나는 정원을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