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텃밭일기

솎아내기의 갈등

찰라777 2013. 8. 13. 06:40

솎아내기의 갈등

 

 

지난주부터 김장배추와 가을상추 등 모종 솎아내기 작업을 했다. 육모 판에 파종을 한 새싹을 적당하게 솎아주는 작업이다. 씨앗의 파종은 보통 정식을 하고자 하는 수보다 2~3배 하게 된다. 씨앗이 발아가 잘되지 않는 것도 있고, 또 발아를 해도 상처가 나거나 기형으로 자라나는 새싹이 있기 때문에 많이 하게 된다.

 

 

 

 

이곳 자연농장에서는 먼저 육모 판에 씨앗을 파종을 하고, 다음에 72구 트레이 포트에 이식을 한다. 그리고 포트에서 잘 자란 모종을 로지에 정식을 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보통은 트레이 포트에 바로 파종을 하여 정식을 하지만 육모 판에 파종을 하여 솎아내기를 한 후 건강한 모종만 트레이 포트에 이식을 하면 보다 건강한 모종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김장배추 솎아내기 작업을 시작했는데, 정말이지 어떤 것을 뽑아낼지 갈등이 생겨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핀셋으로 하나씩 하나씩 뽑나내는 모종은 바로 생명이 정지되기 때문이다. 애써 파종을 한 씨앗이 세상을 향하여 생명의 노래를 부르면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났는데, 태어나자 말자 핀셋의 작란으로 황천길로 가게 되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것인가?

 

 

귀엽고, 생동감 넘치는 새싹들의 모습은 하나 같이 귀하게 보인다. 그러나 보다 건강한 모종을 키우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시켜주어야 한다. 보통은 2~3cm의 간격을 두고 파종을 한 씨앗보다 절반 내지는 3분의 2를 솎아내야 한다.

 

 

▲솎아내기전

 

 

▲솎아낸 후

 

 

처음으로 솎아내는 작업을 할 때는 어떤 새싹에 손을 대야 할지 그냥 망설여지기만 했다. 그 귀여운 생명을 뽑아내기란 내 생명을 죽이는 것 같은 아픔을 느끼게 된다. 식물이나, 동물이나, 사람이나 생명이 하나이기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그런데 어찌 무근 권리로 인간

이 이 어린 새싹들을 무차별하게 뽑아낼 수 있단 말인가?

 

 

그래도 작업은 해야 한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하다. 한 번 뽑아내기 시작을 하자 점점 생명에 대한 감정이 무디어 지고, 마침내는 아무런 생각 없이 솎아내기에만 몰두를 하게 된다. 좀 덜 자란 것, 상처가 난 것, 기형으로 생긴 것 등을 가차 없이 뽑아냈다.

 

 

▲핀셋으로 뽑혀 죽어가는 새싹

 

 

인간이란 참으로 간사하고 잔인하다. 비약적인 생각인지는 모르지만 나치가 유태인을 학살 할 때에도 이렇게 무자비하게 솎아내기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되자 갑자기 몸서리가 쳐진다. 한 번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 하면 점점 죄의식이 무디어진다고 하더니, 떡잎을 솎다 보니 이제 빨리 작업이 끝났으면 하는 생각뿐이다.

 

 

오늘은 상추 생채를 솎아내기를 했는데, 거의 3분의 2를 뽑아냈다. 뽑아낸 생채가 접시에 가득 나둥글고 있다. 내 손 끝에 든 핀셋의 작란에 따라 모종들의 생사가 이렇게 갈라지는 것을 바라보며 인간이란 잔인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을 다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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