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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순 노모가 계신 고향으로, 무궁화호 타고 갑니다

찰라777 2014. 2. 1. 07:49

구순 노모가 계신 고향으로, 무궁화호 타고 갑니다

전통시장에서 장 보고, 세뱃돈 만 원씩 주고...
14.01.30 16:57l최종 업데이트 14.01.30 16:57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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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오는 날 배낭을 걸머지고 차례상 장을 부부가 다정하게 걸어가고 있다(봉천동 골목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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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30일)은 섣달 그믐날, 내일은 정월 초하루 설날인데 비가 추적추적 내리네요. 그래도 고향으로 가는 사람들과 설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바쁘기만 합니다.

서울 봉천동 골목시장에 장을 보러 갔습니다. 설날은 아이들과 함께 지내기 위해 경기도 연천에서 서울 아이들 집으로 옵니다. 연천이 춥기도 하지만 우리들이 오는 편이 더 편하기도 하고, 아이들은 만난 다음에는 고향으로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봉천동 골목시장엔 설 차례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장을 보러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비가 내리는 것에 아랑곳 하지 않고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흥정을 하며 나물, 과일, 떡, 생선, 대추, 밤, 명태 등 차례상에 올릴 음식을 사느라 분주했습니다.

아내와 나도 이것저것 설날 음식에 필요한 것들을 조금씩 샀습니다. 10여만 원 어치를 샀더니 몇 개의 비닐봉지가 가득 찹니다. 전통시장은 아무래도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비해 값이 싸군요.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장을 보는 재미도 있고요.

시금치 두 단 1000원, 밤 한 봉지 5000원, 대추 한 봉지 3000원, 떡국 한 봉지 3000원, 두부 한 대 2000원, 돼지고기 한 근 5900원, 조기 두 마리 6000원, 사과 5개 5000원, 명태 두 마리 5000원 등. 10여만 원 어치를 사고 나니 봉지가 무거워져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이 듭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민족의 대명절인 설날 차례상만큼은 푸짐하게 차려 놓고 조상님께 차례를 지내고, 가족들과 어울려 푸짐하게 음식을 나누어 먹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백화점처럼 화려하고 정갈하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전통시장은 오랜 추억을 떠올릴 수도 있고, 물건 값도 백화점에 비해 월등 저렴하여 장을 보는 마음도 편합니다.

전통시장에서 차례상 장을 보는 마음

한국소비자물가 감시센터에서 조사를 한 바에 의하면 금년 설 차례비용은 4인 가족 기준으로 전통시장 18만4000원, 백화점 31만1000원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각 가정마다 장을 보는 기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우리 집을 기준으로 하면, 전통시장인 이 봉천골목시장에서 10만 원 어치를 사고 나니 설 차례 음식을 그런대로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양손에 들린 비닐봉지가 제법 무겁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양손에 장을 본 비닐봉지를 들고 봉천동 언덕길을 올라갑니다. 그 봉지에는 가족의 꿈이 들어 있고, 행복이 깃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부부는 아예 배낭을 걸머지고 와서는 배낭 가득히 물건을 사 넣고, 그러고도 모자라서 손에 봉지를 들고 있군요. 두 부부가 장을 보고 우산을 받고 나란히 가는 모습이 무척 행복해 보입니다.

"두 분 보기에 참 좋아 보입니다. 골목시장의 어떤 점이 좋은가요?"
"골목시장은 싸기고 하고요, 물건도 싱싱해요."

저 부부는 집에 도착하면 장을 본 비닐봉지를 풀어 놓고 설 차례 음식을 준비하기에 부산해지겠지요. 우리 집이라고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우리 집은 봉천동 하고도 살피재 꼭대기에 위치한 아파트 12층에 있습니다. 하늘과 거의 맞닿는 높이에 있지요. 우리 집 거실에 서면 관악산이 코앞에 닿는 듯 가까이 있습니다.

숨을 몰아쉬고 언덕길을 올라와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서니 온 몸에 땀이 쫙 배어듭니다. 운동이 따로 없네요. 장을 보고 언덕길을 올라오면 그게 바로 운동이니까요. 아내는 장을 보아온 물건들을 싱크대에 늘어놓고 차례 음식을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나는 시금치를 다듬어 잡채를 만드는 아내에게 넘겨주었습니다. 잡채를 볶는 냄새가 구수 하게 집 안에 풍겨옵니다. 오늘 점심은 잡채로 대신할 예정입니다. 우리는 설날 차례를 미리 지내고 아이들에게 세뱃돈도 미리 주었습니다. 뭐 다 큰 아이들에게 무슨 세뱃돈이냐고 하겠지만, 새해 더욱 건강하고 행복한 마음을 가지라는 뜻으로 만 원짜리 한 장씩을 넣어서 줍니다.

 


무궁화호 열차 타고 고향 갑니다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고향을 가는 마음이 포근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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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오후에는 목포행 완행열차를 타고 고향엘 갑니다. 설날 기차표 예매를 인터넷으로 했는데 다행히 무궁화호 열차를 예매를 하는 행운을 갖게 되었거든요. 아침 6시 땡 하고 인터넷을 접속을 했는데도 내 순번이 15만5000번이 넘더군요. 끈질기게 기다려서 겨우 무궁화호 티켓 두 장을 왕복으로 끊을 수 있었습니다.

KTX 특실도 좌석이 몇 개 여분이 있긴 했는데, 우리는 무궁화를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KTX는 소요시간이 3시간 19분, 무궁화호는 4시간 52분으로 거의 배 이상이 걸리지만, 반면에 요금은 KTX 6만2600원, 무궁화호 2만6600원으로 배로 쌉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궁화호를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2월 1일 목포에서 서울로 오는 무궁화호는 5시간이나 걸려 밤 12시 29분에 도착을 하지만 그래도 기차를 타고 고향을 다녀올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기만 합니다. 인도나 남미 등지를 배낭여행을 할 때에는 12시간은 보통이고 어떤 때는 24시간 기차를 탄 적도 있었기에 5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는 시간이 아닙니다. 배낭여행을 통해서 느리게 사는 법을 터득했기 때문이지요.

갈 수 있는 고향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아내와 내 나이도 명절에 고향을 오고 갈 나이는 지났지만, 그러나 고향에는 우리들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계시는 늙은 장모님이 계십니다. 장모님은 설을 쇠면 89살이 되시는데 치매기가 있어서 어떨 때는 우리들도 잘 못 알아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가면 손을 붙잡고 마냥 흐뭇해하십니다. 누구라는 것을 정확하게 기억을 하시지는 못하지만 느낌으로 다 아시는 것이지요.

나이가 팔순을 넘어서면 내일 어찌 될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돌아가시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찾아뵙는 것이 자식 된 도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 어머님은 오래전에 돌아가셨고, 그래도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 장모님이 계신다는 것 자체가 행복한 일 아니겠습니까?

오늘 밤 늦게 도착을 하면 장모님께서 우리들을 제대로 알아보실지가 궁금하기만 합니다. 그래도 우리들의 손을 부여잡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실 장모님을 생각하면 저 역시 마음이 저절로 흐뭇해지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