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귀를 퐁퐁 뀌며 사랑을 알리는 노린재들의 세계
아침에 고추와 피망을 따러 텃밭에 갔더니 줄기에 웬 벌레가 숭얼숭얼 매달려 있다. 자세히 관찰을 해보니 노린재다. 고추를 따려고 하자 녀석들이 슬그머니 고춧잎 뒤쪽으로 숨어버린다. 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추 줄기마다 녀석들이 켜켜이 포진을 하고 있다.
노린재는 지독한 노린내 향기를 뿜어대고 식물의 즙액을 빨아먹어 농작물을 괴롭히는 벌레이다. 노린재는 육각형의 도형을 닮았다. 전체적인 모양은 난형, 타원형, 막대 모양으로 납작하며 뾰쪽뾰쪽하게 각이 져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노린재는 무려 35,000여 종이나 된다고 한다. 그 중에서 우리나라에만 서식하는 노린재만도 600여 종이나 된다고 한다.
녀석들은 기다란 주둥이를 식물에 꽂아 수액을 빨아 먹으며 작물에 피해를 준다. 평소에는 주둥이를 가슴 아랫부분에 접고 다녀서 좀처럼 보기 힘들지만, 즙액을 빨아먹을 때 자세히 살펴보면 주둥이를 앞으로 내밀고 즙액을 빨아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녀석들은 식물의 체관과 열매처럼 영양물질이 가득한 곳에 주둥이를 꽂는다. 우리 집 텃밭에도 토마토나 고추, 피망 등에 구멍을 뚫고 즙액을 빨아 먹는 노린재 때문에 작물의 피해가 점점 커지고 있다.
노린재는 손으로 잡으면 심한 구린내를 풍긴다. 노린재가 뀌어대는 방귀냄새 때문이다. 노린재들은 의사소통 수단으로 방귀를 뀐다고 한다. 매미나 여치처럼 울 수도 없고, 반딧불처럼 깜빡거릴 수도 없는 노린재는 노린내 나는 향기로 이성을 유혹한다고 한다. 즉 이성에게 사랑을 고백하기 위하여 방귀냄새를 풍기는 것이다.
노린재들이 살살 뀌는 약한 방귀는 동료노린재들을 불러 모으는 집합페로몬(동물 개체 사이에서 신호 전달을 위하여 이용되는 극소량의 화학 물질) 역할을 한다. 페르몬 냄새를 맡고 모여든 노린재들은 짝 짓기도 하고 먹이도 함께 먹는다. 그래서인지 우리 집 고추밭에도 노린재들이 무리를 지어 고추 줄기에 다닥다닥 붙어 있다.
노린재가 방귀를 뀌는 또 다른 이유는 생존수단 때문이다. 노린재는 천적이 나타나거나 위험이 감지되면 가차 없이 방귀를 쏘아 경고를 한다. 이 지독한 방귀냄새로 천적을 물리쳐서 자신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동료들에게 신호를 보내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다고 한다.
휘발성 방귀냄새는 주변으로 빠르게 퍼져 나가 천적의 침입을 동료들에게 알리고, 그 방귀냄새를 맡은 동료들은 재빠르게 대피를 하거나 잎 뒷면에 숨거나, 풀숲에 떨어져 내려 꼼짝달싹하지 않고 위기를 모면한다. 자신보다 동료를 먼저 생각하는 노린재들은 어쩌면 인간세상보다 서로 돕고 사랑하는 마음이 더 지극한 것 같다.
고춧잎 뒤로 돌아가는 노린재를 따라 잎사귀 뒤를 살펴보니 보석처럼 생긴 노린재 알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어찌 보면 다이아몬드나 루비처럼 아름답게 보이기도 한다. 노린재 한 마리가 저렇게 많은 알을 낳다니 상상을 초월한다. 어떤 것은 부화를 하여 옅은 흰색의 노린재 새끼들이 흰떡처럼 붙어 있다. 아휴~ 저 많은 알이 다 부화를 하면 작은 텃밭이 노린재 천국이 되어 버릴 것만 같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노린재 개체 수는 급격히 증가하며 농작물에 피해를 크게 주고 있다. 노린재의 개체 수가 이렇게 급격히 증가한 이유는 바로 지구 온난화로 인한 겨울철 고온 현상 때문이라고 한다. 논두렁, 밭두렁, 산 속 등에 월동을 하던 노린재가 겨울에도 죽지 않고 이듬해 모두 살아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노린재들로부터 어떻게 하면 피해를 줄일 수 있을까? 물론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약제 방제다. 그러나 노린재는 날개가 있어 약을 뿌리는 농민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다른 곳으로 훌쩍 날아가 버린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약효가 떨어지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러니 약을 살포 하는 것도 노린재를 막는 좋은 방법이 될 수가 없다.
다만, 노린재는 뜨거워질수록 활동성이 좋아지기 때문에 약제를 뿌리더라도 오전 시간에 뿌리는 게 좋다. 또 여러 농가가 동시 다발적으로 방제를 하면 효과를 더 크게 얻을 수 있다.
그러나 텃밭에 어떤 농약도 살포 하지 않는 나로서는 노린재를 퇴치할 특별한 묘안이 없다. 텃밭 수준의 작은 농사이기 때문에 손으로 잡아 줄 수밖에 없다. 두꺼운 장갑을 끼고 핀 세트와 페트병을 들고 고추 잎과 줄기에 붙은 노린재들을 잡아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녀석들이 어찌나 살살 잘 피하는지 한 마리를 잡는데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노린재들은 자신들을 잡는 나를 천적으로 알아챘는지 소리 없는 방귀를 퐁퐁 뀌어대는 모양이다. 줄기 뒤로 숨고 풀숲으로 주르륵 떨어져 사라져 버린다. 날씨는 점점 뜨거워져 찜통더위로 숨이 턱에 찬다. 나는 그만 노린재 잡는 것을 포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에그, 그래 너희들 잘 먹고 잘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