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꼍에 김장독을 묻던 어머님에 대한 향수
나는 혼자서 하기 힘든 일이 있으면 남겨두었다가 친구 응규의 도움을 받곤 한다. 농사짓기를 유독 좋아하는 응규는 틈틈이 나를 찾아와 내가 홀로 짓는 힘든 텃밭 농사를 거들어 준다. 이번에는 응규가 온 김에 함께 김장독을 묻는 원두막을 보수하기로 했다.
지난번에 짚으로 마람을 엮어 한 번 입히기는 했는데 그것으로는 좀 부족하다. 눈비가 새고 바람이 솔솔 들어와 김치가 얼어버릴 수도 있다. 그래서 원두막 전체에 비닐을 한 번 둘러쳐서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 짚으로 마람을 엮어서 그 위에 덧씌우고 나니 원두막이 제대로 완성이 되었다.
"이제야 제대로 인디안 집이 되었네."
"이 정도로 해두면 얼지는 않을 거야."
김치는 이미 지난 달 17일 날 담가서 김장독에 묻어두었다. 우리나라는 겨울철(12월~2월) 땅속 30cm 지점의 평균기온이 영하 1도라고 한다. 김치를 영하 1도 정도로 유지시키면 우리 몸에 이로운 유산균이 가장 왕성하게 산다는 것. 특히 시원한 맛을 내는 류코노스톡균의 경우 1㎖당 1000만개 이상이 산다고 한다.
"흠, 벌써 김치가 곰삭아 가는 냄새가 나는데."
"김치를 담근 지 보름이 지났으니 아마 어느 정도 익어가고 있을 거야."
벌써 김치가 익는 냄새가 났다. 땅속에 묻은 김장독은 김치가 천천히 숨을 쉬게 하여 은근하게 곰삭도록 하여 김치 맛을 제대로 내게 한다. 이것이 내가 김장독을 땅에 묻는 이유이기도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어린 시절 김장독을 묻는 어머님에 대한 향수 때문이다.
어머님은 김장철이 돌아오면 뒤뜰 응달진 곳에 서너 개의 항아리를 묻었다. 그리고 김장을 해서 그 속에 차곡차곡 묻어두었다. 눈이 내리는 날 김장독에서 곰삭은 김치를 한 개씩 꺼내 맛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흙구덩이를 파서 김장독을 묻고, 짚으로 원두막을 만들다 보면 고향에 대한 짙은 향수와 함께 어머님의 손맛이 생각나곤 한다.
이곳 연천으로 이사를 온 뒤 첫해에는 원두막을 짓지 않고 땅에 김장독만 묻고 그 위에 두꺼운 거적을 덮어 두었다. 그런데 너무 추어서 김장독 위쪽은 김치가 얼어붙고 말았다. 그래서 작년부터는 김장독 위에 원두막을 만들고 있다. 그렇게 하면 눈이 와도 김치를 꺼내기가 수월하고 보온이 되어 김치도 얼지 않는다.
"자네 덕분에 마지막 월동준비 잘했네. 다음에 눈이 올 때 한번 오시게. 그 땐 저 김장독에서 김치를 꺼내 돼지고기를 넣어 김치찌개를 폭폭 끓여 소주를 한잔 하면 맛이 기가 막힐 거야."
"아이고, 듣기만 해도 입에 침이 나오네,"
"눈이 내리는 날 김치찌개에 소주 한 잔 한 후 바둑을 한 수 두는 재미도 쏠쏠 하지 않겠어? "
"그거 좋지. 형한테 지지 않으려면 바둑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는데."
"여부가 있나. 실력을 연마하고 도전을 하시게나. 하하."
친구는 바둑을 무척 좋아한다. 이번에도 그와 바둑을 세 판을 두었는데 내가 두 판을 이기고 그가 가는 날 마지막에 한판을 이겼다.
"형, 바둑 잘 배웠어. 이긴 기분으로 가니 기분이 짱이네."
"하하, 그래? 다음에 올 때 또 전어 같은 걸 가져와도 말리지 않겠어."
"전어보다 더 맛있는 걸 가져올게."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군. 기대하겠네."
친구를 바래다주고 우체국에 가서 처남에게 배추김치를 한 상자 부쳤다. 김치를 위생 비닐로 겹겹이 싸고 스티로폼 박스에 담았다. 김치는 자칫 잘못하면 부풀어 올라 새어 날 수 있기 때문이다.
뭐, 돈으로 따지면 별거는 아니지만 무공해 김치이니 자연식을 좋아하는 처남에겐 좋은 선물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우체국 택배비도 은근히 올랐다. 부치는 삯이 7,500원이나 한다. 금년에는 배추가 풍년이어서 배추 값이 폭락하여 부치는 삯이 배추 값보다 더 비쌀 것 같다.
더구나 한 포기에 300 원 정도의 보상금을 받고 산지에서 폐기를 한다니 배추 농사를 지은 농부들은 얼마나 가슴이 탈까? 설상가상으로 폭설에 한파가 덮친 농가의 배추는 보상금도 받지 못한다고 하니 농부들은 망연자실을 할 수밖에 없다. 인위적으로 폐기를 하든 자연적으로 폐기를 하든 똑 같이 보상을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