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 12도의 날씨, 고향친구와 전어를 구어 먹는 맛
▲ 친구가 가져온 전어를 화덕에 구웠다.
전어를 걸머지고 먼 길을 찾아온 친구
영하 12도, 그러나 임진강변에 북풍이 불어오면 체감온도는 더욱 낮아진다. 첫눈이 오는 날(12월 1일) 밖에 놓아둔 관음죽, 천리향을 마저 들여 놓았다. 크고 작은 화분이 무려 40개나 되니 우리 집 겨울 거실은 마치 식물원을 방불케 한다.
화분에 물을 줄 때는 넘치지 않도록 하면서도 충분하게 온 정신을 집중해서 주어야 한다. 정신을 가다듬고 화분 하나하나에 정성을 기우려 물을 주고 있는데 뜻밖의 손님이 찾아왔다.
▲ 작은 식물원을 방불케 하는 우리 집 겨울 거실
"아니, 웬일이야. 이렇게 추운 날씨에 연락도 없이 오다니…"
"하하, 우리 사이에 연락은 무슨, 그냥 오면 되는 거 아닌가?"
"그렇긴 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걸어오려면 얼마나 추운데."
"춥긴, 이렇게 껴입고, 걸치고, 모자를 쓰고 잰걸음으로 걸어오니 덥기조차 하네. 하하."
친구 응규가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왔다. 금주에 한 번 오겠다고는 했지만 이렇게 추운 날 연락도 없이 먼 길을 오다니. 서울 상도동에 살고 있는 그가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이곳 연천까지 오려면 무려 4시간은 족히 걸려야 한다. 그런데다가 버스와 전철을 여러 번 갈아타야 하므로 결코 쉬운 걸음이 아니다.
시간상으로 지리산 섬진강 보다 더 먼 길인데...
서울 친구 집에서 이곳 연천 임진강변에 있는 동이리 마을까지 오려면 전에 내가 살았던 지리산 구례 섬진강변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서울 강남에 있는 남부터미널에서 구례읍까지는 고속버스를 타면 3시간 10분이 걸리고, 용산역에서 KTX를 타면 2시간 54분이 걸린다.
그런데 이곳 연천 임진강변에 있는 우리 집은 거리상으로는 가깝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4시간이 넘게 걸리니 시간상으로는 지리산 섬진강 보다 더 멀다.
▲ 노량진역에서 소요산역까지는 전철로 1시간 33분이 걸린다.
친구가 동이리 우리 집까지 오는 교통을 살펴보면, 우선 상도동 그의 집에서 10여분을 걸어 나와 버스를 타고 노량진역으로 간다(20여분). 노량진역에서 전철을 타고 소요산역까지 오는데 1시간 30분이 걸린다. 소요산역에서 전곡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20분). 전곡에서 다시 동이리로 오는 버스를 타야 한다(20분). 그리고 동이리 마을회관 버스정류장에서 우리 집까지 약 3km의 거리를 걸어서 와야 한다(30분).
그 시간을 합산해보면 버스와 전철을 타는 시간만 해도 대략 2시간 30분 이상이 걸리고, 버스정류장에서 우리 집까지 걸어오는 시간 30분을 합치면 3시간이 넘게 걸린다.
어디 그뿐인가? 버스와 전철을 기다리는 시간을 감안하면 아무리 빨리 와도 족히 4시간이 넘게 걸린다. 4시간이면 요즈음 부산이나 목포까지도 충분히 갈 수 있는 시간이다.
▲ 전곡에서 동이리로 가는 버스는 2시간~4시간 간격으로 드문드문 있다.
더욱이 소요산역으로 오는 전철은 1시간에 두 차례밖에 없다. 한 번 놓치면 30분을 더 기다려야 한다. 또한 전곡에서 동이리 마을로 오는 버스는 2~4시간에 1번꼴로 있다. 그러니 버스를 한 번 놓치기라도 하면 몇 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친구는 우리 집으로 오는 대중교통 시간대를 수첩에 기록하여 놓고 그 시간에 맞추어 버스와 전철을 타고 걸어서 종종 우리 집까지 오곤 한다. 그런데 이렇게 추운 날 그 먼 길을 오기는 처음이다.
▲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전어구이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렇게 추운 날은 연락을 해야지."
"운동 삼아서 걸어왔어. 형, 여기 전어를 좀 가져 왔는데 점심 때 구어 먹을까?"
"웬 전어를?"
"응, 지난 번 소래포구에 갔다가 싱싱해서 형이랑 함께 먹으려고 좀 사왔지."
"와아, 오늘 같은 날 적새에 구어 먹으면 닦이겠는데? 마침 점심때가 다 되었으니 화덕에 구어서 소주나 한 잔 할까?"
"그거 조오치!"
우리는 밖으로 나가 야외 화덕에 불을 지피고 적새에 전어를 올려 굽기 시작했다. 춥고 조용하던 집안이 갑자기 고소한 전어구이 냄새와 함께 따뜻한 생기가 돌았다. 전어에 소금을 뿌리니 소금이 툭툭 튀며 더욱 고소한 냄새와 함께 입맛을 돋운다.
"형, 이거 식기 전에 먹어야 해."
"여부가 있나?"
▲ 적새를 들고 와 전어구이를 뜯어 먹으며 소주 한 잔 마시는 맛이란...
우리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전어를 뜨거운 적새에 놓은 채로 들고 거실로 왔다. 그리고 전어를 한 마리씩 들고 뜯어먹으며 소주를 한잔씩 마셨다.
"이거 정말 둘이 먹다가 하나 죽어도 모르겠네!"
"형, 사는 재미가 바로 이 맛 아니겠어?"
"자네 말이 맞네. 그런데 이 전어 머리와 뼈는 고양이를 주어야겠어."
"고양이도 오랜만에 생선 맛을 보겠군. 이 추운 날 고양이들은 얼마나 배가 고플까?"
이 추은 날 고양이들은 얼마나 배가 고플까?
나는 전어머리와 뼈를 모아서 고양이 밥통에 부어 주었다. 어디서 왔는지 곧 검은 고양이가 찾아와 전어머리를 맛나게 먹는다. 아마 녀석은 전어를 구울 때부터 냄새를 맡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얼마나 배가 고픈지 아예 고개를 처박고 정신없이 전어 뼈를 발라 먹는다. 검은고양이는 전어를 다 발라 먹고 나서야 비로소 고개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는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 전어 뼈를 정신없이 발라먹고 있는 검은고양이
요즈음 우리 집에는 검은 고양이와 표범색깔을 한 고양이가 번갈아 찾아온다. 오후에는 현관 문 앞에 멸치를 말려 두었는데, 표범고양이가 한 참을 먹어치우도록 모르고 있었다. 아내가 기겁을 하며 빨리 멸치를 거두어 오라고 닦달을 해서 안으로 들여 놓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고양이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녀석은 멸치를 놓아둔 자리를 몇 번이나 어슬렁거리며 거실 쪽을 향해 살살 눈치를 보곤 했다. 보통은 사람을 보면 줄행랑을 치는데 녀석은 현관주변을 한동안 떠나지 않고 어슬렁거렸다. 얼마나 배가 고프면 저럴까? 전어 뼈라도 좀 나누어 주었으면 좋겠는데 그건 검은고양이가 벌써 다 먹어 치우고 없다.
▲ 녀석은 전어를 다 발라 먹고 난 다음에야 힐끗 나를 쳐다보았다.
"이 담에 올 때는 저 고양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생선을 좀 더 사와야겠는데."
"하하, 그건 좋지만 오늘처럼 그냥 걸어오지는 말게. 고양이 밥까지 사오는 친구 마중을 나갈 테니 꼭 연락을 하고 오게나."
응규는 나에게 둘도 없는 소중한 고향친구다. 그러니 이렇게 추운 날 걸어오게 해서는 아니 된다. 추운 날 감기라도 걸리면 어떠하겠는가. 그가 온다면 전곡이나 소요산역까지라도 마중을 나가야 한다. 지금처럼 연락도 없이 불쑥 찾아오면 도리가 없지만...
친구는 2박 3일 동안 머물다가 오늘(12월 4일)떠났다. 11시에 이른 점심을 먹고 그를 자동차에 태워 동이리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주었다. 그는 동이리 버스정류장에서 11시 55분에 출발하는 전곡 행 버스를 탔다.
"형, 이거 잘 먹을 게."
버스에 오르며 그는 등에 진 배낭을 흔들어 보였다. 그 배낭에는 이번 가을 텃밭에서 수확을 한 서리태 콩이며, 쌈배추와 양배추가 가득 들어 있었다.
▲ 버스정류장이 있는 동이리 마을회관.
여기서 우리 집까지는 약 3km의 거리로 빨리 걸어와도 30분이 넘게 걸린다.
"무겁기만 하지 먹을 게 있어야지."
"무신 그런 소리를. 형의 정성이 가득 들어 있는 귀한 무공해 농산물인데."
나보다 두 살 연하인 친구는 나를 부를 때 꼬박꼬박 형이라고 부른다. 참으로 고마운 친구다. 이 추운 날 먼 길을 마다않고 이 오지까지 찾아온 것만 해도 고마운데, 거기에 싱싱한 전어까지 짊어지고 오다니.
동이리 마을회관에서 버스를 탄 친구는 전곡-소요산역-노량진역-상도동 집까지 무려 네 번이나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고 집으로 가야 한다. 그는 내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찾아와 나를 돕곤 한다. 이런 고마운 친구가 있으니 오지에 살고 있더라도 나는 외롭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