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꽃이 피면 생각나는 섬진강변 혜경이 엄마
영하 10도의 강추위 속에 피어난 국화를 바라보며...
▲영하 10도의 추은 날씨에도 청초하게 피어 있는 국화꽃. 이 국화는 3년 전 섬진강변에서 살다가
임진강변으로 이사를 올 때에 구례 수평리 마을 이웃집에 살던 혜경이 엄마가 선물로 준 것이다.
어제 첫눈이 내리더니 오늘 아침(12월 2일)에는 수은주가 곤두박질하여 영하 10도 밑으로 뚝 떨어지고 말았다. 거기에다가 바람까지 강하게 부니 최전방 오지인 임진강변의 체감온도는 영하 14~15도는 족히 될 것 같다. 정말 춥다.
▲ 석고처럼 딱딱하게 얼어 있는 로지 배추
모든 것이 꽁꽁 얼어 있다. "어제 배추를 다 뽑을 걸 그랬나?" 아침에 일어나서 가장 먼저 마음이 쏠리는 곳은 몇 포기 남겨 둔 배추다. 자식처럼 키운 배추를 이렇게 추운 엄동설한에 그대로 두다니… 시험 삼아 언제까지 버티나 하고 몇 포기 남겨 둔 것인데 이렇게 강추위가 몰아치니 배추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배추밭에 가보니 역시 배추 전체가 석고처럼 딱딱하게 얼어있다. "아이고, 배추야 정말 미안하구나! 이를 어쩌지?" 땅이 녹으면 배추를 뽑아야겠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후회스럽다. 그런데 폭설과 한파에 얼어버린 배추를 모두 폐기처분해야 하는 농부들의 심정은 어떨까?
▲ 언 땅에서도 독야청청 씩씩하게 자라나고 있는 시금치
꽁꽁 언 땅에서도 시금치는 푸름을 간직한 채 씩씩하게 자라나고 있다. 연약한 잎사귀가 사그라지지 않고 싱싱하게 자라나고 있는 시금치를 보자 용기가 생긴다.
"너는 영하 10도에서도 벌거벗은 채 푸름을 간직하며 생존하고 있는데, 이렇게 옷을 많이 껴입고서도 춥다! 춥다! 해서는 아니 되지…"
"그러게 말이요. 쥔장님 용기를 내세요."
시금치가 춥다고 겁을 먹고 있는 나를 보고 핀잔을 주는 것 같다. 시금치를 보자 옷을 두껍게 입고도 춥다고 오그라드는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허리를 쭉 펴고 하늘을 향해 두 팔을 힘차게 벌려 본다. 표고버섯나무를 살펴보고 뒤꼍으로 돌아가니 앗, 불사! 처마 밑에 물받이용으로 받쳐두었던 큰 플라스틱 통(고무다라)에 얼음이 땡땡 얼어 가득 들어 있지 않은가!
▲ 처마 밑 플라스틱 통에 땡땡 얼어붙은 얼음. 내년 봄에나 녹을까?
지붕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쓰기 위하여 받쳐놓은 물통이다. 며칠 전에 비가 온 것을 깜박 잊고 비우지 못 했는데, 밤새 물이 꽁꽁 얼어 통째로 붙어 있다. 통을 움직여 보니 꿈적도 하지 않는다. 내년 봄에나 녹을까? 그러니 오지에 살면 결코 방심을 하지 말고 집안을 꼼꼼히 살펴보아야 한다.
또 나를 놀라게 하는 친구가 있다. 그것은 현관문 앞 토방에 핀 국화다. 어쩌면 저렇게도 아름답게 피어 있을까? 이 강추위를 무릅쓰고 연보라색으로 청초하게 피어있는 국화는 모든 시름을 잊게 한다. 활짝 핀 국화를 바라보자니 문득 구례 섬진강변 수평리 마을에 살고 있는 혜경이 엄마가 생각난다.
▲ 영하 10도의 날씨에도 화사하게 피어난 국화.
홀로 꿋꿋하게 험한 세상을 헤쳐나가는 혜경이 엄마는 이 국화 같은 여인이다.
이 국화는 3년 전 구례 섬진강변에서 이곳 임진강변으로 이사를 올 때에 혜경이 엄마가 챙겨준 국화가 아닌가! 꽃을 가꾸기를 너무나 좋아하는 아내와 혜경이 엄마는 가끔 자신들이 키우는 꽃이나 화초를 서로 선물을 하곤 했다. 이사를 오던 날 혜경이 엄마가 선물로 준 국화가 해마다 이렇게 피어나 황량하기만 집안 분위기를 훤하게 밝혀주고 있다.
"혜경이 엄마, 고맙소!"
나는 남녘 하늘을 향해서 이 아름다눈 꽃을 선물해준 혜경이 엄마에게 감사의 말을 중얼거렸다. 이 엄동설한에 꽃을 보게 해준 그녀가 얼마나 고마운가! 그런데 혜경이 엄마는 젊은 시절에 남편과 해어져 홀로 살고 있다.
남편이 없는 집을 지키며, 병든 시아버지와 시어머니의 똥오줌을 다 받아내면서 죽을 때까지 수발을 들었던 효녀 며느리다. 요즈음 세상에서는 참으로 보기 드문 며느리다.
효녀상을 두 번이나 받은 그녀는 딸 둘을 시집보내고 꿋꿋하게 살고 있다. 정말로 국화 같은 여인이다! 저 국화를 볼 때마다 험한 세상을 헤쳐 나가며 살고 있는 혜경이 엄마가 생각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