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룽 라 고개에서 시샤팡마를 바라보며...
▲해발 5050m 라룽라 패스. 고원 넘어 시샤팡마(8027m)설산이 보인다.
해발 4,400m에 위치한 올드 팅그리(Old Tingri, 老 定日)는 중니공로(Friendship highway)마을 중 에베레스트와 초오 유와 가장 가까이 있는 마을이다. 중리공로는 라싸에서 시작하여 네팔국경 우정의 다리까지 약 760km에 이르는 티벳 고원 길이다. 그중 팅그리는 넓은 고원에 펼쳐져 있으며 중부 티벳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마을이다.
그러나 아침저녁으로 강한 바람이 불어와 걷기조치 힘이 든다. 이곳에서 숙박을 하려면 방한복을 준비해야 한다. 이 지역은 난방장치가 거의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점심식사를 했던 암도여관(安多旅館)은 4인실이 20위안을 받고 있었다. 방과 침대는 열악하다. 이 지역 숙소는 대부분 에베레스트 트레킹이나 등산가들이 하루 밤 머물고 가는 곳이다.
올드 팅그리를 출발하여 고개를 넘어가자 라룽 라(Lalung-la, 5050m) 고개에 접어들었다. 차량은 계속하여 꼬불꼬불한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마치 천상으로 올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미스터 초이, 저기 보이는 산이 시샤팡마.”
“시샤팡마?”
“에스.”
깡파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자 눈 덮인 시샤팡마가 손에 잡힐 듯 바라보였다. 시샤팡마(Shashapangma 8,027m)는 중국의 티베트 자치구 남부 히말라야 산맥에 위치한 히말라야 8000미터급 14좌중에서 가장 낮은 산이다.
▲시샤팡마(8027m)
▲라 룽라 고개(5050m)
시샤팡마라는 이름의 유래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초원 위에 높이 솟은 볏>, <일기변화가 극심한 산>이란 해석도 있지만 <지연적인 이유로 동물들의 고기와 맥주를 만들고 남은 술지게미>라는 긴 이름의 해석도 있다. 이 뜻은 사샤팡마의 눈사태로 마을이 초토화 되자 사람들이 주변에 흩어진 죽은 동물의 시체(시샤)와 술찌꺼기(팡마)를 주워 먹고 살았는데, 그때의 고통스런 기억을 바탕으로 <시샤팡마>란 이름을 붙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우리는 라룽 라 고개에 잠시 멈춰서 내렸다가 바람이 워낙 강하게 불어와 감당을 하지 못하고 출발을 서둘렀다. 길은 라룽 라 고개에서 잠시 내려가는 듯 하더니 곧 다시 가파른 언덕길을 올라갔다. 고개턱에 올라서자 울긋불긋한 타르초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깡파, 여긴 어디요?”
“여긴, 통 라.”
“통 라? 잠시만 세워주어요. 포토타임을 위해.”
“오케이.”
▲통 라 고개(5150m)
▲통 라 고개(5150m)
여전히 바람이 강하게 불어왔다. 통 라(Tong-la 혹은 Yakrushong-la, 5,150m)는 라싸에서 800km, 니얄람에서는 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에서도 고원위에 우뚝 서 있는 시샤팡마 설산이 보였다. 돌무더기를 쌓아 올린 곳에는 마니차 바람개비가 휙휙 하고 돌아갔다.
사진을 몇 컷 찍고 있는데 깡파가 손 시계를 가리키며 빨리가자고 재촉했다. 벌써 오후 5시다. 팅그리에 오기 전에 자동차가 고장이 나서 2시간 정도 지체를 하다보니 예정일정보다 많이 늦어지고 있었다. 이곳에서 네팔 국경도시 장무까지 가려면 한참을 더 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슬아슬한 천길 낭떠러지 길을 지나 국경 도시 장무로
▲니얄람에서 장무로 가는 천길 낭떠러지 길 파곡하 계곡
통 라를 지나자 자동차가 낭떠러지로 떨어지듯 줄 곳 내리막길이 계속되었다. 안내서를 보니 통 라 5,150m, 니얄람 3,800m, 장무 2,300m, 돌라헤트 600m로 급강하를 하는 내리막길이다. 지프는 아슬아슬한 내리막길을 곤두박질치듯 내려갔다. 뭐랄까? 마치 번지 점프를 하는 느낌이 든다.
▲라싸에서 장무까지 가는 우정공로 고도
거의 길도 없는 비포장도로를 강파는 속도를 높이며 내려 갔다. 지프가 널뛰기를 하듯 굴러간다. 오금이 재릴 정도로 아찔하지만 스릴이 넘쳐흐른다. 그러나 강파는 태평스럽게 휘파람을 불다가 이내 노래를 불렀다. 어디서 저런 여유가 흘러나올까? 사나이 중의 사나이다!
니얄람에 도찾하기 전까지는 황량한 내리막길이다. 깡파는 노래를 부르다가 갑자기 디스코 음악을 틀면 엉덩이까지 들석 거렸다. 니얄람에 거의 도착할 무렵 <밀라레파 수행동굴>이란 이정표가 보였다. 들리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지만 시간이 없다. 깡파는 니얄람에서 장무까지 가는데도 1시간이 더 덜린다고 한다. 아아, 밀라레파!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여기까지 와서 밀라레파 수행동굴을 그냥 지나치다니 아쉽기만 하다.
▲니얄람-파곡하 계곡의 아슬아슬한 길
니얄람 마을을 지나자 삭막했던 고원 풍경이 끝나고 마침내 푸른 밀림이 나타났다. 지프는 수목이 우거진 천 길 낭떠러지를 지그재그로 아슬아슬하게 곡예를 하며 내려갔다. 더구나 길은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다. 니얄람에서 장무까지는 약 30km가 되는데, 3800m에서 2300m로 급강하를 하는 천길 밀림이다.
우리는 계곡의 물소리가 들리는 길에서 화장실 용무도 볼겸 잠시 휴식을 취했다. 놀랍게도 계곡에는 가지가지 꽃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거의 온대우림에 속하는 파곡하 계곡에는 봄기운 이 완연하다. 물소리와 아름다운 야생화꽃을 보자 아내가 긴장이 풀린듯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역시 꽃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휴우~ 이제야 좀 편하게 숨을 쉴 만 하네요!”
“정말 그러네!”
▲파곡하 계곡에서 잠시 한 숨을 고르고 있는 아내. 신선한 공기와 계곡의 물소리, 습기가 온 모공으로 촉촉히 젖어 들었다.
매우 위험한 길이지만 환상적인 파곡하(波曲河) 계곡이 펼쳐진다. 황량한 티벳고원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다. 울창한 밀림, 환상적인 운무, 계곡의 물소리. 폭포소리…, 희박한 산소 때문에 고무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던 육신이 촉촉이 습기에 젖는다. 온 몸의 모공으로 습기와 산소가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다.
▲파곡하 계곡의 아름다운 야생화
초모랑마 베이스캠프가 인간이 살기 어려운 천당이라면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진 이곳은 인간이 살기에 적당한 지옥이다. 밀라레파는 니얄람을 <지옥으로 가는 문>이라고 했다는데, 이는 밀라레빠 같은 도인이나 하는 소리다. 나 같은 중생은 역시 낮은 곳에서 살아가야 하는 속물인 모양이다.
정신없이 곤두박질을 하며 내려오다 보니 계곡 위에 집들이 보였다. 네팔과 중국의 국경 도시 장무에 도착한 것이다. 장무(Zhang mu, 2300m)는 온화한 기후에 수목이 무성하여 <속세를 벗어난 무릉도원>이라 불린다. 장무에 도착을 하자 네팔과 중국을 오가는 트럭들이 줄지어 서 있다. 두 나라를 오가는 단 하나의 길이기에 물동량을 실은 트럭들이 트래픽 잼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깡파는 기분이 좋은 듯 경쾌한 음악을 틀었다.
▲국경도시 장무 도착. 붐비는 트럭들
중국과 네팔 국경이 아이에 파곡하 하천이 흐르고, 그 위에 <우의교>란 다리가 있다. 두 나라 국경 부근 주민들이 왕래를 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다. 어두워진 시간에 도착을 한데다가 몸뚱이는 솜방망이처럼 피곤하여 바로 숙소를 잡고 잠을 자기로 했다.
깡파는 다음날 아침 다시 라싸로 출발을 한다고 한다. 우리는 깡파와 함께 중국식당에서 만두를 먹었다. 깡파와는 내일 아침 다시 만나기로 하고 도미토리를 60위안을 주고 침대로 나가 떨어졌다. 초모랑마 베이스캠프에서 긴 하루였다. 장무는 라싸에서 장장 833km, 올드 팅그리에서 150km 떨어진 곳이다. 이제 길고 긴 티벳고원의 여정이 막이 내려지고 있다. 내일은 네팔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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