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8일, 아내의 복지카드를 교체하기 위하여 미산면사무소를 방문했다.
면사무소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나무가 있다.
내가 처음 미산면사무소를 방문했을 때부터
그것은 마치 한폭의 란처럼 아름답게 드리워진 소나무다.
그땐 이름표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보호수>라는 이름표가 붙여져 있다.
이 소나무는 해방이후 미산면 전 지역이 공산치하에 놓여 있다가 6.25가 끝난 1954년 11월 17일 유엔군이 지역을 수복을 하면서 마을 사람들이 심은 소나무다. 38선 북쪽에 위치한 미산면은 해방이후 북한의 통치하에 놓여 있었다.
1958년 6월 마을주민 장순하, 남궁무기 씨가 백석리 산 149번지 일원에 가서 7가지 소나무(수령30년생)를 파와 미산면사무소 수복 및 건립 기념으로 심은 소나무라고 한다. 그 당시 30년 생 소나무라면 한국전쟁을 겪으며 산전수전을 거친 역사 깊은 백년된 소나무다.
<보후수>라는 이름표가 붙여진 소나무에는 다음과 같은 신체조건이 붙어 있다.
수령 100년
수고 5m
나무둘레 13.5m
일곱가지의 소나무는 마치 잘 키운 분재처럼 꾸불꾸불 가지를 뻗으며 미산면사무소를 지키고 있다.
2013년 5월 뒤늦게 미산면에서 보호수로 지정한 이 소나무는 38선에 어린 100년 역사를 안고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미산면 일대는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몇 가지 역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금굴산 밑에 자리 잡은 <UN군 화장터>와 9.27수복 때 북진을 하면서 화이트 소령이 건설했다는 <화이트 다리>가 가장 대표적이다. 화장터는 그 흔적이 그런대로 남아 있지만, <화이트다리>는 철거하고 그 흔적이 없다. 다만 그 주변에 <화이트 다방> <화이트 펜션> <화이트 부동산> 등 화이트라는 브랜드를 가진 흔적들이 남아 있을 뿐이다.
목조로 된 화이트 다리는 임진강이 범람할 때마다 부서지는 등 문제가 되어 철거를 하고, 대신 <임진교>라고 이름지은 콘크리크 다리가 새로 건설되었다. 나는 이 사실을 알고 무척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라든지, <콰이강의 다리> 등 역사를 간직한 세계의 다리는 길이 보전을 하고 있는 곳에 반해, 북진을 하며 국토를 넓히는데, 큰 역할을 했던 <화이트 다리>는 철거는 물론 그 이름까지도 <임진교>로 바꾸어 버리다니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다.
관계 당국이 조금이라도 역사의식이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소한 임진교라는 이름 대신에 <화이트교>라는 이름이라고 남겨 놓아야 하지않았을까?
역사는 우리를 되돌아 보게 한다.
국토 수복 기념으로 마을 주민들이 미산면 사무소에 심었다는 소나무를 늦게라도 <보호수>로 지정하고 역사의식을 심어준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면민들이 면사무소를 드나들 때마다 이 소나무를 바라보면서 북한 치하에 놓여 있다가 되찾은 소중한 역사 의식을 느낄 수 있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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