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너무 가물다. 서울에서 이것저것 볼일을 보느라 5일 만에 금가락지에 돌아왔다. 금가락지에 도착하자 말자 아내는 꽃밭에 물을 먼저 주자고 한다. 나는 텃밭에 물을 먼저 주고 싶은데… 물을 주는 데도 서로 관심사가 다르다. 아내는 아름다운 꽃에 마음이 먼저가고, 나는 먹는 채소에 마음이 먼저 간다. 아내는 꽃밭에 정성을 쏟고, 나는 텃밭에 정성을 쏟는다. 물론 둘 다 물을 주는 것이 시급하다.
그 동안 땡볕에 얼마나 메말랐을까? 허지만 나는 아내의 말대로 했다. 그래야 편하다. 나는 아내가 정성들여 만들어 놓은 화단에 물을 듬뿍 주었다. 땡볕에 시달리며 고개를 푹 수그리던 꽃들이 물을 먹더니 금방 고개를 쳐든다. 비아그라가 따로 없다. 화초들에겐 물이 비아그라다. 산붓꽃, 패랭이꽃, 작약, 데이지 등 꽃들이 금방 미소를 지며 방긋방긋 웃는다.
꽃밭에 물을 먼저 주고 나는 호스를 길게 빼서 텃밭으로 갔다. 토마토, 당근, 양배추, 브로콜리, 비트, 상추, 시금치, 고추, 오이, 딸기 등등. 채소들이 왜 이제야 오느냐고 원망스런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면서도 물을 주자 금방 춤을 춘다. 녀석들은 내 자식들이나 다름없다. 심을 때부터 지금까지 포기 하나하나 내 손이 안간 곳이 없다. 때문에 나는 100여 평의 텃밭 전체 자라나고 있는 채소들의 상태를 쭉 끼고 있다.
가뭄 속에서도 브로콜리는 아이들 머리통만큼 커 있다. 브로콜리가 이렇게 잘 되기는 처음이다. 브로콜리는 시사주간지 <타임>이 뽑은 건강 슈퍼 푸드에 속한다. 시금치보다 칼슘이 무려 네 배나 많이 들어있고, 노화를 방지하는 비타민 E와 만병의 근원인 변비에도 특효가 있고 항암효과가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5일 동안 비운 사이에 너무 커서 수확시기가 좀 늦어져 버린 것 같다. 보통 4월 초에 심은 브로콜리는 6월 중순경에 수확을 하는데 이번에는 생장이 무척 빠른 것 같다. 브로콜리 수확은 꽃봉오리가 하나가 쌀알만큼 크고 꽃이 피기 전 지름이 12~13cm 정도 일 때 가장 알맞다고 한다. 그런데 브로콜리 지름이 족히 20cm는 넘어 보인다. 몇 봉오리만 따도 바구니에 가득 찬다. 이걸 잘 보관해야 하는데 어떡하나? 브로콜리는 2~3일만 지나도 금방 물러 버린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잘 씻어서 소금을 조금 넣은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식힌 다음, 봉지에 밀폐하여 냉장 보관하는 것이 오래두고 먹을 수 있다고 한다. 어쨌든 이렇게 커 준 녀석이 고맙기만하다.
양배추 역시 질세라 맹렬하게 크고 있다. 양배추와 브로콜리는 같은 배추과 속한다. 허지만 양배추는 잎을 먹고, 브로콜리는 꽃을 먹는다. 그래서 브로콜리는 꽃양배추라 부른다. 나는 지난 4월 4일 같은 시기에 밑거름으로 퇴비를 듬뿍 넣어 이 둘을 심고 한랭사를 씌워 애지중지 키워왔다. 그 동안 깻묵퇴비로 웃거름을 두 번이나 주었다. 그리고 물을 하루걸러 쉬지 않고 주었다. 둘 다 물을 매우 탓하기 때문이다.
집을 비울 때가 가장 문제인데 마침 또 내 친구 응규가 대신 집을 지키며 물을 주었다. 그렇게 정성을 들인 만큼 녀석들은 보란 듯이 자라나고 있다. 이제 양배추는 무성한 잎으로 겹겹이 감싸 안아가며 결구를 할 태세를 취하고 있다. 마침 23일에는 단비가 내려 양배추의 결구속도를 부추기고 있다.
사람이 주는 물과 하늘이 내려주는 단비는 그 효과가 크게 다르다. 천천히, 그리고 촉촉이 젖어드는 하늘 비는 그야말로 식물 등에게는 최고의 생명 줄이자 자양분이다. 지금 속도라면 양배추도 생장이 빨라 6월 중순경에는 수확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면사포 속에서 아직은 수줍은 듯 물끼를 함초롬히 머금고 있는 양배추가 귀엽기만 하다.
브로콜리와 양배추는 둘 다 금년 봄에 심은 채소 중에 대박을 안겨 줄 것 같다. 모종을 심고 한랭사를 바로 씌운 탓에 단 하나의 잎에도 벌레가 타지 않고 너무 깨끗하다. 처음에 양배추를 심을 때는 한랭사를 씌우지 않아서인지 떡잎부터 벌레에 뜯기고 줄기 끝까지 벌레들이 깡그리, 그리고 깨끗하게 뜯어 먹는 바람에 완전히 실패를 하고 말았다.
더구나 이번에는 밭고랑 사이를 크게 넓히고 포기 사이의 간격을 충분하게 두어서인지 병치레도 전혀 없이 아주 건강하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연천의 기후 탓도 한 몫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녀석들은 서늘한 기후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녀석들에게 물을 주며 자라나는 것을 보면 무한한 기운을 느낀다. 슈퍼 푸드답게 양배추와 브로콜리가 나에게 무한한 기(氣)를 불어 넣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브로콜리와 양배추 외에도 비트, 케일, 상추들도 매우 싱싱하게 자라나고 있다. 잎채소들은 벌써 잎을 여러 차례 뜯어 먹었는데도 금방금방 자라나 무한리필을 해준다. 이들에게 어떤 화학비료나 농약도 주지 않고 있다. 단지 퇴비와 물만 줄 뿐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무한 리필을 해주다니 참으로 고맙다.
내가 키운 채소들은 아내의 손을 거쳐 밥상에 올라온다. 아내는 아침에 잎채소 몇 잎을 따다가 샐러드를 풍성하게 만든다. 로메인, 케일, 양상추, 비트, 셀러리 등을 골고루 따와 견과류, 토마토, 피망 등을 골고루 넣고 소스로 드레싱을 하여 풍성하게 아침 식탁을 장식한다. 그 샐러드에 빵이나 고구마, 쑥가래떡을 몇 조각 곁들여 먹는 것이 우리들의 아침 식사다.
점심때나 저녁 식사도 아내는 텃밭에 나가 싱싱한 채소를 따와 쌈으로 올린다. 하얀 진물이 뚝뚝 떨어지는 신선한 채소를 바로바로 텃밭에서 조달하여 먹는 재미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이게 바로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는 맛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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