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이근후 박사님께서 페이스북을 통해서 “불쑥 찾아가도 되나요?”하고 댓글을 다셨다. 나는 “박사님 언제라도 대환영입니다.” 하고 댓글을 달았다. 박사님과 댓글로 대화가 이어졌다.
“14일(금) 비가 안 오면 단백질 보충하고 모닝커피 마시러 갈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박사님, 비가와도 오세요. 비 오는 날 모닝커피 맛이 제격이거든요 ㅋㅋㅋ."
“운전자가 허락하면 찾아뵙겠습니다. 내비게이션 주소 주세요.”
“네, 출발하시면서 연락주세요. 요즈음 임진강 물도 귀경할 만 합니다. ㅎㅎ.”
"UN 구호품? 이래 놓고 못 가면 ㅋㅋㅋㅋ. “
“여기 휴전선에 UN 수재난민 구호품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꼭 오셔요 ㅋㅋㅋㅋ.”
박사님과의 연락은 뭐 이런 식이다. 휴대폰이 없으신 박사님께서는 이메일로 연락을 주시거나 요즈음은 주로 페이스북으로 소통을 한다. 언제나 짓궂을 정도로 유머어가 철철 넘치는 박사님을 생각만 해도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박사님은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말 수는 적어지고 있지만 생각은 늘 유머로 가득 차 있다. 박사님의 댓글 중 단백질 보충은 우리 집 살구나무의 살구벌레를, 모닝커피는 왕징면 ‘화이트다방’에서 먹었던 모닝커피를, 그리고 UN구호품은 박사님이 오실 때마다 가지고 오시는 라면이나 쌀을 뜻한다.
내가 휴전선을 지키고 있으니 위문품이나 구호품을 준비해야 하신다는 혜학 넘친 유머다. 몇 해 전 그 추운 겨울날 러시아 털모자를 쓰시고, 위문품이라며 라면을 한 상자 들고 오셨던 추억을 떠올리며 나는 속으로 쿡쿡 웃었다.
그런데 지금은 장마가 져서 임진강 물이 넘치니 UN구호품이 필요할 거라는 유머를 던진 것이다. 정말 박사님은 그의 저서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란 제목처럼 늘 유머와 혜학이 넘쳐흐르신다. 그런 박사님을 떠올릴 때마다 나 역시 행복한 웃음이 저절로 빙그레 나온다.
나는 9.11사태가 발발했던 2001년 이근후 박사를 따라네팔에 의료봉사활동을 갔던 적이 있었는데, 그 인연이 지금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내 일생에 박사님과 같은 분을 알게 된것이 큰 행운이다. 박사님은 네팔과 40년 가까이 의료봉사활동과 문화교류를 하고 계신다. 나 역시 이근후박사님과 함께한 네팔 의료봉사 활동을 계기로 네팔어린이를 위한 작은 장학사업에 7년 동안 관계하고 있다. 그러니 나는 박사님으로부터 <봉사>라는 행복바이러스가 전염된 샘이다.
어떻든 나는 아내에게 박사님이 방문하신다는 소식을 전했다. 아니 윤허를 받는 거다. 뭐든지 아내의 윤허가 떨어져야 행동을 할 수 있다. 아내는 내심 점심 걱정을 있었다. 이곳 휴전선 인근은 딱히 먹을 만한 식당이 별로 없다.
박사님께서 즐겨 드시던 홍합짬뽕집은 불이 나서 몇 해전 문을 닫았고, 군남호수조절지 앞에 있던 장보고 매운탕집도 얼마 전에 문을 닫았다. 황해냉면집이 있는데 그 집도 주인이 바뀐 뒤로는 냉면 맛과 꿩만두 맛도 영 변해버렸다.
14일 날 아침 아내는 집에 있는 반찬에 삼겹살로 상추쌈을 준비하자고 했다. 나야 뭐 아내만 좋으면 대 찬성이다. 나는 텃밭에 가서 상추를 따고 삼겹살을 구을 적새를 준비했다. 정자에 상을 차릴까 하다가 밖의 기온이 너무 뜨거워 거실 바닥에 상을 차리기로 했다. 나는 오래된 상을 꺼내 먼지를 닦고 흰 종이를 깔았다.
그렇게 준비를 하고 있는데 어떤 여인으로부터 전화가 한통 왔다.
“박사님과 함께 지금 출발했는데요. 내비게이션에 12시 48분 도착이라고 뜨네요.”
“네에, 몇 분이 오시지요?”
“네 사람이 갑니다.”
“천천히 오세요.”
14일, 1시가 조금 넘어 박사님 내외분과 동서분 내외빈이 함께 금가락지를 찾아오셨다. 박사님께서 금가락지를 방문하신 것은 이번이 네 번째다. 박사님은 홍합짬뽕집을 찾다가 좀 늦었다고 하셨다. 복더위에 집에서 점심을 준비하는 수고를 끼치지 않게 하려고 홍합짬뽕집을 찾은 뒤 그 식당에서 우리를 부를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그 집이 불이 나더니 망했는지 문을 닫았습니다.”
“허허, 저런 불난 집은 원래 더 불같이 일어난다고 했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그렇게 농담을 하시며 우린 집에 있는 반찬으로 준비한 반찬에 삼겹살을 구어 먹었다. 박사님은 내외분께서는 맛있다고 하시면서 밥 한 그릇을 깨끗이 다 비우셨다. 차린 것도 없는데 맛있게 드시니 즐거웠다. 식후에 커피 한잔을 하며 우린 이런 이야기 저런이야기로 이야기 꽃을 피웠다. 박사님은 거의 침묵을 하고 계시고 이동원 선생님께서 달변으로 분위기를 띠우셨다.
박사님은 갈수록 말을 아끼시기도 하지만 이동원 선생님 앞에서는 더욱 말 수가 적어진다. 말하자면 “침묵은 금이다!”라는 원칙을 더욱 고수하시며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거다. 말을 아끼시며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시는 박사님의 모습이 참으로 진지하다. 원래 나이가 들수록 말이 많아지는 것이 상례인데 박사님은 그 반대다.
나는 그런 박사님의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나는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 말이 너무 많다고 늘 아내로부터 지적을 받는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입에 자물쇠를 걸어 잠그라”는 티베트 스님의 가름침이 떠오른다. 귀양살이를 하며 묵언정진을 하면서 집필활동에 더욱 정성을 쏟으셨던 정약용 선생님의 모습도 떠오른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입단속을 잘해야 할 것 같다. 요즈음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않고 막말을 서슴없이 내 뱉는 정치인들을 보면 참으로 한심하기 그지없다.
“최선생, 거기 백다방이 지금도 문을 열었을까요?”
“아마 열었을 겁니다.”
"그럼 백다방에 가서 모닝커피나 한잔 합시다."
백다방은 왕징면사무소 근처에 있는 <화이트다방>을 말한다. 6.25전쟁 때 미국의 화이트 소령 나무로 다리를 건설하며 북진을 하였는데, 그 화이트 소령의 이름을 따서 <화이트다리>란 이름이 지어졌고, 그때부터 화이트 인근에는 화이트 다방, 화이트 부동산, 화이트 펜션 등 '화이트'라는 이름을 붙인 간판이 많이 생겼다.
그러나 그 역사의 현장인 화이트다리>는 철거해 버리고 대신 콘크리트 다리를 건설하면서 <임진교>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최소한 <화이트다리>라는 이름이라도 남겨두어 역사의 현장을 간직했으면 좋을 텐데 아쉽기만 하다. 이 박사님은 금가락지에 오실 때마다 추억의 이트다방에 들러 추억의 모닝커피를 한잔 마시고 가셨다.
“모닝커피는 옛날에 부자들이 마셨던 커피지요. 내가 젊었을 때 다방에 가면 모닝커피를 마시고 싶었는데 돈이 없어서 마시지 못했어요. 둔 많은 동네 유지들이나 마시던 커피였어요. 허허허.”
오후 3시경 화이트다방으로 가기 전에 우리는 금가락지 앞마당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흔들의자에 앉아서 씩 웃으시는 노구의 박사님이 어린애처럼 천진하게 보였다. 박사님과 나는 12년 터울의 돼지띠다. 나는 그런 박사님을 바라보면서 나도 나이 들어가며 박사님처럼 마음을 비우고 즐겁게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금가락지를 떠나 왕징면에 있는 화이트 다방으로 갔다. 그런데 화이트 다방이 문이 잠겨있었다. 혹시 배달을 나갔나 하고 간판에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돌렸더니 서울에 잠깐 일을 보러 가셨다고 한다. 박사님은 잠시 우정리 우체국으로 엽서 한 장을 부치러 가셨다. 우리는 아쉽지만 군남홍수조절지로 가서 물 구경을 하기로 하고 군남홍수조절지로 향했다.
그런데 군남홍수조절지 근처에는 찻집이 없다. 나는 차의 방향을 허브빌리지로 돌렸다. 아무래도 허브빌리지에서 차라도 한잔 하고 해어지는 것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허브빌리지는 문이 열려 있었다.
“아니, 연천에 이런 곳도 있었나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정말 전혀 몰랐어요.”
“네, 전에 전재국씨가 운영했던 곳인데 나라에서 압류를 하여 운영하다가 최근에 개인에게 넘어갔다고 하는군요.”
“아,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허브빌리지군요!”
뭐 이런 대화를 하며 허브빌리지를 돌아보고 우린 찻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다시 이야기꽃을 피웠다. 허브빌리지는 임진강변 17,000여 평의 규모에 지중해 풍으로 허브정원을 꾸며 놓은 아름다운 정원이다. 허브가든을 비롯하여 허브온실, 펜션, 한식 양식 레스토랑 등을 갖춘 아담한 휴양지다.
그렇게 커피를 마시다 보니 저녁 6시가 다 되어 갔다. 우린 허브빌리지 정부장의 안내로 펜션을 구경했다. 그리고 초리 한식당에서 허브 비빔밥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박사님은 임진강의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보며 저녁식사를 맛있게 드셨다. 연천 허브빌리지는 자연과 문화가 경계 없이 어우러지는 수수한 허브향이 넘치는 곳이다.
"최 선생, 오늘 참 즐거웠소. 백다방에서 모닝커피르 마시지 못해서 좀 아쉽지만, 대시 아름다운 허브빌리지를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사님, 다음엔 꼭 화이트다방에서 모닝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해달라고 화이트다방 마담님께 전하겠습니다. 오늘 적적한 금가락지를 찾아주시고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사님 일행과 함께한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시간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땅거미기 지고 어둑해질 무렵 우리는 허브빌리지를 나왔다. 그리고 박사님 일행과 헤어졌다. 언제나 적게 바라고 적은 것에 만족하며 즐겁게 살아가시는 박사님의 모습에서 노년의 아름다운 향기를 느낀다. 무쪽록 더욱 건강하시고 오래오래 사시며 우리들에게 즐거운 혜학과 지혜를 가르쳐 주시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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