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비가 멎자 햇빛에 쨍쨍 내리 비쳤다. 농촌에서는 텃밭 농사를 짓던 큰 농사를 짓던 장맛비가 멎으면 할 일이 많다. 여러 가지 일 중에서도 비가 멎으면 잡초를 정리하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 잘 자라라는 농작물은 자라지 않는데 잡초는 왜 그리 쑥쑥 잘 크는지…
거름을 주는 것도 아니고 보살펴 주는 것도 아닌데 장마철이 오면 잡초 세상이 되고 만다. 잡초처럼 농작물도 잘 자라주면 얼마나 좋을까? 어제는 텃밭이 잡초를 정리했다. 잡초는 뿌리가 워낙 튼튼해서 뽑기도 힘들다. 그래서 나는 작물을 심을 공간만 잡초를 정리해 주고 고랑에 있는 잡초는 베어서 퇴비로 사용을 한다.
농작물을 심은 다음에는 잡초가 농작물의 키를 넘지 않도록 자꾸만 베어서 작물 옆에 놓아둔다. 그러면 그 잡초가 거름이 되어주고 가물 때는 습기를 보존해주는 역할도 한다. 잡초는 뿌리가 깊이 뻗어 땅 속 깊숙히 뻗어들어가 미네랄과 각종 영양소를 흡수하여 옆의 작물과 나누어 먹기도 한다. 그러니 잡초는 나쁜 것만은 아니다.
이렇게 착한 일도 하는 것이다. 나는 다만 작물과 잡초가 공생을 하도록 도와주는 역할만 하는 것이다. 작물보다 잡초가 조금 덜 자라게 잘라줄 뿐이다. 말하지면 잡초의 키가 작물보다 작도록 하여 햇빛을 덜 받게 하는 것이다.
잡초는 논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큰 길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진입로 양편에는 장마철만 돌아오면 그야말로 잡초들의 천국이 되고 만다. 길이 좁아서 자동차가 들어오기가 힘들 정도로 잡초들은 길을 점유한다. 그래서 해마다 장마철이 돌아오면 텃밭에 잡초뿐만 아니라 진입로 양편에 있는 잡초를 베어내는 일도 만만치가 않다.
우리 집은 동이리 원 부락에서 2km 정도 떨어진 금굴산 자락 외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에는 열 가구 정도가 있는데, 상주를 하며 살고 있는 집은 우리 집과 작년에 이사를 온 우리 앞집뿐이다. 앞집은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을 하시다가 은퇴를 하고 작년에 앞집을 사서 귀촌을 하신 분이다. 나머지 여덟 가구는 주말이나 혹은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오는 정도이다.
상주를 하는 집이 한 집 늘어나니 우리가 살기가 훨씬 편리해졌다. 우선 말동무가 생겨서 좋고, 밤에는 앞집에 불이 켜져 있으니 훤하기도 하지만 쓸쓸하지 않고 어쩐지 안정감이 든다. 선생님은 어찌나 부지런 하시던지 집에 물레방아도 만들고, 오작교도 손수 만들어 놓으셨다. 아침저녁으로 자전거도 타시고 날만 새면 정원에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하시면서 무언가를 하신다. 그러니 그저 왔다갔다 하시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도 심심치가 않다.
진입로 잡초를 베거나 유실된 신작로를 보수하는 일도 좀 더 수월해졌다. 혼자 상주를 할 때에는 진입로의 잡초를 베는 일, 유실된 신작로를 고치는 일 등을 나 혼자서 다 해내야만 했다. 다른 집들은 어쩌다 주말에 한 번 오면 자기 집에 있는 잡초를 제거하기도 바빠서 진입로 일은 생각지도 못한다.
그런데 앞집 교장선생님이 벌써 두 번이나 진입로 잡초를 베어내어 정리를 했다. 얼마나 고마운지! 나는 앞집으로 이사를 온 교장 선생님이 마치 천군만마를 만난 듯 기쁘고 즐겁다. 그러나 잡초는 곧 바로 다시 자라나서 무성하게 길을 막고 있다. 두 번이나 내가 모르게 풀을 깎은 교장선생님이 미안하기고 해서 오늘 아침에는 진입로 잡초를 베어내고 장맛비로 씻겨 내려간 길을 보수하기로 했다.
마침 서울에 살고 있는 친구 P가 방문을 했는데 그가 예초기를 돌려서 잡초를 깎기로 하고 나는 길을 보수하기로 했다. 예전에 시골 고향에서 농사를 지었던 P는 농사의 달인이다. 농사뿐만 아니라 예초기를 다루는 솜씨도 거의 달인 급이다. 혼자 죽으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다. 풀을 깎을 적시에 P가 왔으니 이 또한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농사의 달인 친구 P
P는 예초기에 기름을 잔뜩 넣어서 집 앞부터 잡초를 깎기 시작했다. 나는 곡괭이와 삽을 들고 장맛비로 씻겨 내려간 신작로로 갔다. 우리 집에서 100m 정도 떨어진 진입로는 미처 포장을 하지 못해서 해마다 장마철이 돌아오면 흙이 씻겨 내려가 길이 패이고 갈라져서 자동차 다니기가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나는 곡괭이로 길옆의 흙을 파서 삽으로 떠내어 패인 곳을 메우기 시작했다. 곡괭이질 한 번 하고 삽질 한 번하는데 구슬땀에 온 몸에 베인다. 그런데 마침 교장선생님이 자전거를 타고 아침 운동을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아니 혼자서 그 힘든 일을 하시면 어떡해요? 함께 하자고 말씀을 하지지 않고….”
“하하, 해마다 혼자서 했던 일인데요 뭘. 괜찮습니다.”
“그래도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고 이런 일은 함께 해야지요. 허허.”
교장선생님은 자전거를 세워두더니 삽을 들고 내가 파 놓은 흙을 떠서 패인 길을 메우기 시작했다. 정말 이렇게 고마울 데가! 교장선생님이 삽질을 하자 나는 없던 힘이 막 솟아났다.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던 곡괭이도 가볍게만 느껴졌다. 나는 흙을 죽죽 파 내려가고 교장선생님은 삽질을 해서 길을 싹싹 메워나갔다. 그런데 삽질을 하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아니 학교에서 삽질도 가르치시나요? 어찌 그리 삽질이 능수능란하시지요?”
“허허, 그런 건 아니고요. 법원리에 밭이 조금 있는데 매년 호박 구덩이를 파다 보니 남보다는 좀 낫지요.”
"아, 그러군요."
둘이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일을 하다 보니 금방 일이 끝나갔다. 일이란 함께 하면 이렇게 수월한 것이다. 비가 오면 곧 다시 씻겨 내려가겠지만 어쨌든 보기에 좋고 조금은 다니기에 편하게 되었다.
그래도 전보다는 길을 고치는 일이 훨씬 수월하다. 전에는 이장님 집에서 우리 집까지 200m 에 달하는 길이 비포장도로였다. 그래서 비만 오면 길 곳곳이 패이고 씻겨 내려가서 수시로 삽과 곡괭이를 들고 와서 보수를 해주어야 했다. 그런데 오늘 수리를 하는 50m 길만 포장을 하지 못해서 작년부터는 이 구간만 고치고 있으니 일이 훨씬 줄어든 것이다.
농촌의 진입로는 대부분 토지 소유자의 땅 일부분이 맞물려 들어가 길이 나게 마련이다. 이장님 댁에서 마지막 집인 홍씨 집까지 500여 미터 길이 거의가 다 토지소유주의 땅이 맞물려 들어가 진입로를 내서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뚫렸다. 그렇지 않으면 맹지가 되어서 사람이 살 수가 없다.
이 진입로는 군에서 작년에 포장 작업을 해 주었는데, 길을 포장을 하려면 땅 소유주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장님의 수고로 16사람의 소유주로부터 동의서를 다 받았는데, 이 50m 구간만 소유주와 연락이 닿지 않아 동의서를 받지 못해서 아직 비포장 상태로 있다.
자갈이라도 많이 깔아서 보수를 했더라면 이렇게까지 길이 패이지는 않을 텐데, 흙과 모래로만 덮여 있다 보니 비만 오면 씻겨내려가 매년 홍역을 치르고 있다. 땅 주인과 언젠가는 연락이 닿으면 해결을 꼭 해야 할 일이다. 일이 끝나갈 무렵 친구 P가 예초기를 능수능란하게 왱왱 돌리며 다가 왔다.
“와우! 친구 분 예초기 돌리는 솜씨가 보통이 아닙니다.”
“네, 저 친구는 농사일이라면 뭐든지 잘해요.”
P는 자신이 돌리는 예초기 소리에 우리들이 하는 말을 잘 알아듣지를 못한다. 그런데 예초기를 정신없이 돌리던 P가 “앗, 따가워!” 하며 주저앉고 만다. “저런, 벌이야. 빨리 도망을 쳐!” 예초기를 맨 P는 동작이 느려 도망을 쳤지만 벌써 벌침을 여러 번 맞은 모양이다.
“앗, 따가워! 나도 쏘였네!” P옆에서 삽질을 하던 교장선생님도 발을 절뚝거리며 줄행랑을 쳤다. 양말을 신지 않은 발을 벌에 쏘이고 만 것이다. 다행이 나만 좀 멀리 떨어져 있어 운 좋게 변을 면했다. P가 예초기를 돌리다가 그만 벌집을 건드려서 일이 커진 것이다. 벌들이 윙윙 저공비행을 하면서 자기 집을 건드린 적을 공격한 것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벌을 피해서 엎드려서 귓불을 털고 있는 P가 있는 곳으로 갔다.
“친구야, 몇 방이나 쏘였어?”
“아이고 따가워라. 한 댓 방 쏘인 것 같아.”
“그럼 병원에 가야겠는데.”
“뭐 이 정도를 가지고. 괜찮아. 나는 벌독에 비교적 강하거든.”
“아무리 강하더라도 다섯 방이나 쏘였으면 걱정이 되는데.”
“귓속으로 벌이 하나 들어갔는데 다행히 귀는 쏘지 않고 그냥 나갔나 봐. 허허.”
“아이쿠, 큰일 날 뻔 했네! 그래도 병원에 가 봐야 하지 않을까?”
“아니, 괜찮아. 다행히 땅벌인 것 같아. 말벌보다는 독이 덜하니 곧 괜찮아 질 거야. 공짜로 봉침 맞은 샘 치면 돼. 허허.”
“공짜 봉침 치고는 너무 센 것 아닌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말벌이 아니고 땅벌이었다. 벌을 쏘인 친구의 귀밑과 목 언저리가 벌겋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아무리 절친한 친구이지만 괜히 미안하다. 친구 도와주려다가 벌을 다섯 방이나 쏘였으니 말이다. 교장선생님이 절뚝거리며 다가오면서 우스갯말로 분위기를 잡았다.
“공짜 봉침도 맞고, 길도 고치고, 풀도 깎았으니 오늘 아침 울력은 댓길인데요?”
“하하, 그렇기는 하지만 공짜 봉침치고는 너무 세게 맞았네요. 교장선생님 덕분에 일을 아주 수월하게 잘 했습니다.”
“뭘요. 저는 조금 거들어 준 것 뿐인데요.”
온 몸에 땀을 흠뻑 뒤집어 쓴 채 우리는 유쾌하게 웃으며 집으로 향해 걸어갔다. 교장선생님은 벌을 쏘인 발을 절뚝거리며 자전거를 끌고 가고, P는 예초기를 걸머진 채 어슬렁 어슬렁 걸어갔다. 아직도 여러 방 맞은 봉침 때문에 정신이 얼얼한 모양이다.
곡괭이와 삽을 어깨에 걸머지고 그들을 따라가는데, 그들이 마치 전쟁터에서 돌아오는 개산장군들처럼 보였다. 비지땀을 흘리며 힘은 들었지만 기분은 상쾌하다. <울력>이란 이렇게 좋은 것이다. 샤워를 하고 아침밥을 먹는데 밥맛이 꿀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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