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협정 64주년... 태풍전망 통일염원 콘서트를 가다
정전협정 64주년을 맞이하여 7월 27일(목) 오후 2시, 비무장지대(DMZ)에 위치한 태풍전망대(경기도 연천군) 야외 특설무대에서 제7회 '연천DMZ국제음악회'가 열렸다. 태풍전망대는 북한군 초소까지 거리가 불과 1,600m로 155마일 휴전선 중 북한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전망대다.
태풍전망대에서 열리는 통일염원음악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출입신청을 해야 하는 등 절차가 까다로웠다. 난는 DMZ국제음악회 사무국에 생년월일, 주소, 전화번호, 차량번호 등을 기재한 <태풍전망대기자출입승인출입신서>를 제출하여 사전승인을 받고 27일 오전 태풍전망대로 출발했다.
임진강을 따라 북쪽으로 갈수록 도로가 점점 좁아지고, 중면 면사무소를 지나니 민간인 출입을 통제하는 민통초소가 나왔다. 이 초소에서 주민등록증을 제시하고 태풍전망대 출입증을 받았다. 초소를 통과하자 도로가 더욱 좁아졌다. 임진강변을 따라 굽이굽이 펼쳐진 좁은 길은 굴곡이 심하여 마치 롤러코스트를 타듯 아슬아슬했다.
임진강평화습지원에서 우회전을 하여 비끼산 정상인 수리봉에 위치한 태풍전망대에 도착하니 오후 1시 30분이다. 주차장에는 차량들로 꽉 차 있고, 수리봉에는 벌써 많은 관객들이 붐비고 있었다.
가까스로 주차를 하고 가파른 언덕을 오르니 중턱에 '태풍전망대'란 표지석이 보이고, 그 건너편에는 <UN미국군전사자36,940위충혼비>가 우뚝 서 있다. 6.25 참전 시 전사한 미국군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워놓은 충혼비다. 얼마나 많은 무고한 젊은이들이 이 땅에서 피를 흘리고 쓰러졌는가! 충혼비를 순간 가슴이 찡하고 숙연해진다.
아아, 그들은 누구를 위하여 피를 흘리며 죽얶어 갔는가?
"히야, 저기가 북한 땅이라니 도저히 실감이 나지 않아요."
"그러게 말이요. 바로 코앞에 북한군 초소가 있다니 믿어지지가 않아요."
"남과 북이 철책선 하나를 두고 반세기가 넘는 동안 분단되어 있다니 참으로 안타깝군요."
관람객들은 육안으로, 혹은 망원경으로 철책선과 북한군 초소를 바라보며 놀라운 듯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태풍전망대에서는 임진강 건너편에 위치한 북한 초소를 육안으로도 관찰 할 수가 있다. 시계가 좋은 날에는 망원경 없이도 밭일하는 북한주민을 볼 수 있다.
음악제에 참여한 외국의 뮤지션들도 신기한 듯 한동안 북한군 초소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태풍전망대에서는 북쪽을 향하여 사진촬영을 금지하고 있다. 이 사실을 모르고 음악제에 연주자로 참석한 러시아의 막심 페도토프와 갈리나 페트로바도 신기한 듯 휴전선을 관찰하며 사진촬영을 하려고 하다가 우리 측 경비원에게 제지를 당하기도 했다.
태풍전망대는 서울에서 약 65km, 평양에서 약 140km 떨어진 비무장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휴전선까지는 불과 800m로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남방한계선과 북방한계선으로 갈라져 있다.
처음에는 군사분계선을 기점으로 2km 지점에 남방 한계선과 북방 한계선이 설정되었으나, 1968년 북한이 휴전선 가까이 800m 지점에 철책을 설치함에 따라, 우리나라도 1978년에 부분적으로 800m에 근접하여 철책을 설치하였다.
태풍전망대 입구에는 "당신의 손 끝이 평화에 닿길"이란 타이틀을 단 <DMZ Peace tree>를 세워 놓고 있었는데, 관람객들은 저마다 형형색색의 인장을 찍고 통일을 염원하는 메시지를 가득 채워놓았다. 나도 어지손가락으로 물감을 찍어 인장을 찍고 "통일염원"이라고 표시를 했다.
광장 중앙에는 하얀 성모상이 북쪽을 향하여 합장을 하고 있고, 실향민을 위한 망향비와 한국전쟁 전적비, 6.25참전소년전차병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그리고 광장 동쪽에는 법당과 종각이, 서쪽에는 교회가 들어 서 있다. 광장 좌측에 위치한 전시관에는 임진강 필승교에서 수습한 북한의 생활필수품과 일용품, 그리고 휴전이후 수십 회에 걸쳐 침투한 무장 간첩들이 이용한 침투 장비 일부가 전시되어 있다.
오후 2시 정각에 시작된 음악회는 바이올리니스트 피호영(한국)과 비올리니스트 에르완 리샤(독일)가 모차르트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이중주'를 서막으로 부드럽게 시작되었다.
이어서 니클라스 에핑거(독일)의 첼로 연주로 리게티의 '첼로 독주를 위한 소나타'가 연주되었다. 이 곡은 죄르지 리게티의 작품으로 헝가리가 공산화되는 것을 피해 1956년 빈으로 이민 오기 전까지 쓴 작품이다. 남북이 첨예하게 대립한 공간에서 베를린 장벽 등 분단의 아픔을 이미 체험한 독일 음악가 에핑거는 독특하고 열띤 독주로 관객들의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
독일 뮌헨필하모니오케스트로에서 수석첼리스트를 역임하고 뷔르츠부르크 국립음대 교수로 재직 중인 첼리스트 에핑거가 연주하고 있는 첼로는 1750년에 제작된 Gaspare Lorenzini명품으로 소리가 맑고 울림이 매우 컸다.
세 번째 연주자는 바이올리니스트 프레데릭 모로(프랑스)와 피아니스트 구자은(한국)이 슈베르트의 겨울나그네 중 우리들 귀에도 익은 '보리수'와 '우편마차'를 연주하여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마지막으로는 <러시아의 파가니니>라 칭하는 러시아의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막심 페도도프와 러시아의 피아니스트 갈리나 페트로바가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이졸데 '사랑의 죽음'과 무소르그스키의 전람회그림 중 '바바야가'를 연주하여 열화같은 갈채를 받았다.
이번 연주는 한국전쟁관련국인 러시아, 독일, 프랑스, 한국 등 솔리스트로 구성된 뮤지션들이 연주하는 음악이라는 국제적인 언어를 통해 지난 시간의 이해와 소통, 더 나아가 남북 분단의 종식을 통한 세계 평화를 염원함으로서 그 의의가 더욱 깊다고 할 수 있겠다.
국제적인 유명 뮤지션들이 연주하는 아름다운 선율은 바람을 타고 철책선을 넘어 남과 북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통일의 염원을 한층 고조시키는 것 같았다.
이날 음악회에는 김규선 연천군수를 비롯하여 이수성 전 국무총리(연천DMZ국제음악회 조직위원장), 제28보병사단장 윤의철 소장, 서민 연천경찰서장, 홍승표 경기관광공사 사장, 김영준 경기북부보훈지청장, 마이클 헤브러 미26지역대비상안전처장, 최승호 전 이집트 대사 등 관련 유지들과 200여명의 관객들이 참석했다.
특히 이날 음악회에는 6.25전쟁에 참전했던 고령 국가유공자 80여명이 함께하여 통일을 염원하는 음악회를 더욱 값지게 했다. 아울러 김영준 경기북부보훈지청장은 92세의 참전 유공자에게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청려장을 헌정하여 눈길을 끌었다.
연주회가 끝나고 김규선 연천군수는 인사말을 통해 "DMZ에 가장 인접한 접경지역에 위치하고, 가장 열악한 연천군에서 통일의 새로운 평화의 바람을 불어넣어보자는 바램으로, 분열과 갈등, 그리고 이념 등 모든 것을 초월하여 남북통일과 평화를 만들어보고자 DMZ국제음악제를 열게 되었다"며 "DMZ음악제를 통해서 북한주민에게도 남북통일과 평화의 메시지가 전달되어 남과 북의 평화와 통일이 기필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 가지 웃지 못 할 해프닝은 음악회가 열리고 있는 동안 북한군 초소에서 확성기로 방송한 음악이 옥에 티로 연주회를 방해하고 있었다. 북한 측에서 우리 측의 연주회 정보를 사전에 알았는지 시종일관 소음으로 연주회를 교란시켰지만 뮤지션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열띤 연주를 펼쳐 관객들의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
비무장지대에서 열리는 사상 초유의 음악회는 75분간 성황리에 진행되었다. 비가 올 듯 말 듯한 흐린 날씨 속에서 빗방울이 몇 방울 떨어지기도 했지만 다행히 더 이상 비는 내리지 않고 연주회가 끝날 때까지 참아주었다. 하늘도 통일염원을 응원해주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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