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모도 보문사 눈썹바위에 올라 서서
오랜만에 석모도에 있는 보문사를 찾았습니다. 전에는 외포항에서 페리를 타고 갔는데 요즈음은 다리가 놓여 자동차로 바로 갈 수 있게 되어 있더군요. 자동차로 다리를 건너가니 편하기는 하지만 배를 타고 가면서 새우깡을 날리면 갈매기들이 날아들어 쪼아 먹던 멋스런 풍경을 볼 수가 없어 아쉬웠습니다.
10년 전에는 뱃머리에서 새우깡을 날리며 갈매기들과 함께 석모도로 건너왔던 추억이 납니다. 배가 끊기면 하루 밤을 자고 와야 하는 낭만(?)도 없어져 버리고… 편리한 만큼 아름다운 낭만은 없어지고 말지요. 하하.
○ 2008년 1월 10일 강화 석모도로 가는 추억의 갤러리
2008.1.10
보문사를 가기 전에 목이 말라 <노을 내리는 아름다운 집> 카페에서 카푸치노 한잔을 마셨습니다. 이 카페는 오래 전, 아마 10년도 더 지난 연초에 지상스님과 호주 멜버른에서 오신 지나 엄마랑 함께 온 기억이 납니다. 그 때의 아름다운 추억이 풍경 속에 피어납니다 ….
그때나 지금이나 카페는 그대로 변함없이 아름답군요. 나이가 들면 추억을 먹고 산다고 했던가요? 아름다운 추억은 아름다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카푸치노 한잔에 담긴 추억을 곱씹으며 보문사로 갔습니다. 보문사 입구에는 산나물 등을 파는 할머니들이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 있는데, 다만 그 때에는 아무것도 가리지 않는 추운 노상에서 팔았는데, 지금은 천막을 치고 보다 나은 환경에서 장사를 하고 있군요.
○10년 후 다시 찾아간 카페
보문사는 낙가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어 다소 가파른 길을 올라가야 합니다. 무릎이 좋지 않는 아내는 올라가기를 포기하고 할머니들의 노점상에서 쇼핑(?)을 하겠다고 하여 두 아이들과 함께 보문사로 올라갔습니다.
보문사는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양양 낙산사, 금산 보리암, 강화 보문사)의 하나이지요. 이 절에는 다음과 같은 창건설화가 전해내려 오고 있지요.
635년 4월(신라선덕여왕), 석모도 삼산면에 살던 한 어부가 바다 속에 그물을 던졌더니 인형 비슷한 돌덩이 22개가 올라왔습니다. 고기 대신 올라온 돌덩이에 실망한 어부는 그 돌덩이들을 즉시 바다에 던져버리고 다시 그물을 쳤지만 역시 건져 올린 것은 돌덩이였으므로 다시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날 밤, 어부의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서 귀중한 것을 바다에 두 번식이나 던졌다고 책망하면서, 내일 다시 돌덩이를 건지거든 명산에 잘 봉안해 줄 것을 당부했습니다. 다음날 어부는 그물을 던졌더니 역시 22개의 돌덩이를 건져 올렸습니다.
어부는 그 돌덩이들을 노승이 일러준 대로 낙가산으로 옮겼는데, 현재 보문사의 석굴 부근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돌이 무거워져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어부는 “바로 이곳이 영장(靈場)이구나!” 하고는 굴 안에 단을 만들어 그 돌덩이들을 모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고려 초기에 금강산 보덕굴에서 관음진신을 친견한 회정대사가 이곳에 와서 불상을 살펴보니, 가운데 좌상은 석가모니불이고, 좌보처는 미륵보살, 우보처는 제화갈라보살이었고, 나머지는 18나한상과 송자관음이었다고 합니다. 회정은 22존 중 삼존불과 18나한은 석굴 속에 모시고, 송자관음은 따로 관음전을 지어서 봉안한 다음 이 절을 낙가산 보문사라고 하였습니다.
22분의 석상을 바다에서 건져 올린 일화와 함께 이 석굴 법당은 기도 영험을 많이 보여 신통굴로 불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보문사는 1년 내내 기도객들이 끊이지를 않고 몰려들고 있습니다.
<낙가산 보문사>란 편액에 걸린 일주문을 들어서면서 일심(一心)으로 정진수행 하겠다는 마음을 내 봅니다. 일주문을 들어서니 웅장한 극락보전이 나타납니다. 극락보전에는 아미타부처님과 좌우 협시로 대세지보살,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고, 상단 뒤편으로는 3,000분의 옥부처님이 모셔져 있어 법당이 장엄하게 보입니다.
극락보전 좌측에는 거대한 향나무가 용틀임을 하며 자라고 있습니다. 수령이 600년을 넘은 이 향나무는 높이 32m, 둘레 2.8m에 달하는 원형으로 6.25당시 죽은 것 같이 보였다가 다시 소생을 하였다고 합니다. 이 향나무는 석실과 범종각 사이 바위틈에서 자라고 있습니다. 향나무 뒤에 있는 석실로 들어가 오체투지 3배를 하며 낮은 마음을 내 봅니다.
보문사가 관음성지인 동시에 나한신앙의 대표적 도량이 된 것은 바로 이 석실에 있는 나한상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보문사 석실은 우리나라에 흔치 않는 석굴사원입니다. 불단 양 옆의 인등을 따라 뒤편으로 돌아가니 석조 부처님 탱화가 모셔져 있습니다.
석실 좌측에는 와불전과 오백나한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천인대에 모셔진 와불전은 석거모니부처님 열반 당시의 모습을 모셔 놓았습니다. 신장이 10m인 열반대는 부처님 뒤로 1m정도의 공간이 있어 주위를 돌면서 참배를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와불전 옆으로는 오백나한상과 33관세음보실 사리탑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3층 석탑으로 조상된 사리탑은 33분의 관세음보살님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리탑을 감싸 안으며 오백나한상이 장엄하게 모셔져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오백나한상 하나하나가 모두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보문사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낙가산 눈썹바위 중턱에 새겨진 마애관세음보살입니다. 대웅전 옆 419계단을 따라 올라가봅니다. 급경사로 된 계단을 오르다 보니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기도 합니다. “관세음보살”을 입속으로 나지막이 외우면서 한계단한계단 올라가다 보니 어느덧 눈썹 바위 밑에 인자하게 새겨진 관세음보살님 앞에 다다르게 된 자신을 발견합니다. 눈썹바위 아래 마애관세음보살조상이 웅장하게 나타납니다.
눈썹바위 밑에서 바라보는 서해바다의 경치가 장관입니다. 특히 이곳에서 바라보는 석모도 일몰은 최고의 낙조로 꼽히기도 합니다. 수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붉은 해와 노을을 바라보노라면 그야말로 무아지경에 빠지고 맙니다. 무아지경에 빠져 관세음보살상 앞에 엎디어 삼배를 올려 봅니다.
이 마애관음좌상은 1928년에 배선주 스님이 보문사가 관음성지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금강상 표훈사의 이화응 스님과 더불어 새긴 것으로 높이 920cm, 너비 330cm에 달하는 거상으로 이는 관음보살 32응신과 11면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눈썹바위가 마치 지붕처럼 돌출되어 있어 비바람으로부터 관음보살을 가려주고 있습니다. 두 손을 모아 정성스럽게 정병(淨甁)을 받쳐 들고 연화좌대에 앉아 있는 모습이 투박하기는 하지만 서민적으로 보여 마음이 푸근해집니다.
10년 전 1월 10일, 지상스님과 함께 이곳에 올라 참배를 했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세월은 흘러갔지만 석불은 그대로 남아있어 나그네를 반기고 있습니다.
서해바다로 떨어져 내래는 환상적인 일몰을 바라보며, 저 아름다운 일몰처럼 내 인생도 아름다운 노년을 보낼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
○ 2008년 1월 10일 보문사 추억의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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