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 배경무대로 떠나며…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영화 1001편 속으로...
만일 무인도나 남미, 혹은 아프리카 오지로 홀로 여행을 떠나게 될 경우 몇 장의 음반을 가져갈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음악을 선택할 것인가?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주인공 데니스의 선택은 모차르트였다. 모차르트의 유일한 클라리넷 협주곡인 <클라리넷 협주곡 A장조, K622>은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2개월 전에 작곡한 곳이다. 나는 이미 내 스마트 폰이 모차르트의 음악을 장착해서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하며 듣고 있다. 나는 점점 아프리카 초원 속으로 흠뻑 빠져들어가고 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는 배경음악으로 2악장 <아다지오>의 느린 선율을 흐르게 했다. 클라리넷이 만들어내는 서정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한 배경음악은 영화의 이미지를 잘 반영해주고 있다. 느리고 웅장한 오케스트라 연주는 드넓은 아프리카 평원을 상징하며, 그와 대비되는 클라리넷의 목가적인 소리는 아마도 주인공 데니스의 영혼이 아닐까? 영화 속에서 아프리카와 데니스는 오케스트라와 클라리넷 연주처럼 조화를 이룬다.
클라리넷 소리는 느리거나, 빠르게, 혹은 높거나 낮게 아프리카 대자연 속에 흐르며 자유로운 영혼을 노래한다. 데니스는 거대한 아프리카 평원을 떠돌아다니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이다. 그는 심지어 연인과의 관계에서도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하는 존재이다. 데니스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책을 읽고, 시를 읊으며 음악을 듣고 꿈을 꾼다.
그러나 클라리넷은 오케스트라 음향과 맞서거나 소리를 과장하지 않는다. 영혼의 자유를 구가하지만 데니스의 삶에 배인 쓸쓸함과 처연한 아름다움을 군더더기 없이 섬세하게 그려낸다. 대자연 속에 흐르는 클라리넷의 우수는 만년의 모차르트와 그의 죽음, 자유로운 영혼 데니스의 죽음까지도 암시하는 듯하다.
아프리카 종단여행을 며칠일 앞 둔 나는 아침저녁으로 산책을 하며 스마트 폰에 장착한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듣는다. 그리고 모차르트와 함께 시를 듣는다. 일직 시들어버린 시인을 애통케 한 그 젊은이는 누구였을까? 아프리카를 떠도는 자유로운 영혼 데니스, 그는 비행기 사고로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카렌은 그의 묘지 앞에서 사랑했던 데니스를 추모하며 시를 읊는다.
그대가 고향에 승리를 안겨주었을 때,
우리는 그대를 의자에 올려 앉히고 장터를 돌았지.
어른 아이들 일어서서 환호하는 가운데,
우리는 그대를 어깨에 올려 앉히고 집으로 갔네.
명민하였다 젊은이여, 영광은 금방 지나가고
더 이상 벌판에 머무르지 않네.
월계수는 일찍 자라지만,
장미보다 빨리 시들어버리는구나.
시의 내용은 재능 넘치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인생을 꽃피우지 못하고 일직 시들어버리는 것을 안타까워하는 영국 시인 A.E. 하우스먼이 지은 시다. 하우스먼은 보어 전쟁에서 죽어나간 젊은이들을 안타까워하며 이 시를 썼다. 조국을 위한 영광을 누렸으나 젊은 나이에 때 이른 죽음을 맞이한 그들을 한 편의 시로 추모했던 것이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배경이 된 1차 대전 중에 이 시는 더욱 사랑을 받았다.
카렌이 사랑했던 데니스도 이른 나이에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했다. 아직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힘든 카렌은 하우스먼의 시를 읽으며, 낡은 시집을 가슴에 안고 슬픈 눈으로 먼 아프리카 초원을 바라본다. 데니스와 함께 했던 초원, 아프리카 대초원은 아직 그대로 있다.
연인에게 다감한 배려를 할 줄 아는 남자. 아직도 한때 즐거웠던 데니스의 영상이 그녀의 눈에 아롱거린다. 데니스가 하얀 물병에 담긴 물로 머리를 헹구어주자 카렌의 얼굴이 밝게 빛난다. 그녀 앞에 서서 미소 짓는 데니스의 얼굴 뒤로 아프리카의 찬란한 태양이 넘실거린다. 이 장면은 <아웃 오브 아프리카>를 본 모든 여성들로 하여금 사랑을 꿈꾸게 하고, 당장이라도 연인과 이국으로 떠나고 싶게 할 정도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데니스는 카렌의 머리를 감겨주고 새뮤얼 콜리지의 시를 암송한다.
“하하 웃으며 그는 말했지. 모든 게 잘 보이는군. 악마는 노를 저을 줄 알지. … 잘 있어요, 안녕히. 그러나 그대와 결혼 축하객들에게 하는 말이라오. 사랑을 잘하는 사람이 기도도 잘 한다오. 그건 사람이나 새나 동물들도 마찬가지이지.”
카렌은 사랑했던 남자 데니스를 회상하면서 가슴 아파한다. 그리고 자신도 그를 소유하지 못했음을 인정한다. 그가 마사이 족에 대해 들려주었던 이야기는 데니스 자신에 대한 이야기나 다름없었다.
“마사이는 절대 길들여질 수 없어요. 만약 감옥에 가둔다면 곧 죽고말 거예요. 현실에만 충실하기 때문이죠. 미래라는 개념이 없어요.”
아프리카의 초원에까지 축음기를 가져가 모차르트를 감상하던 남자 데니스. 시와 자연, 그리고 자유를 사랑했던 그의 삶이 카렌의 눈을 통해 아름다우면서 애잔하게 펼쳐진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고독이다. 즉 외로움이다. 나는 치매노인들을 수용한 요양병원에서 3개월 동안 근무를 하며 그것을 여실히 보았다. 비록 치매로 정신이 오락가락하지만 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외로움이다. 치매 노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자신들에게 따뜻한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을 항상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가족이나 친척도 그들을 자주 찾아오지 않고, 찾아오더라도 치매노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지도, 해주지도 않는다. 그냥 얼굴만 보고 가기에 바쁘다.그래서 치매노인들은 더욱 슬프고 외롭다. 허지만 그 길은 우리 모두가 가야할 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인간들은 그것을 남의 일인양 외면한다.
데니스와 카렌도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은 영원하지 않다. 모든 것은 변한다. 카렌은 데니스의 영향으로 아프리카를 그 자체로 사랑하게 된다. 데니스는 카렌에게 “우리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다.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카렌은 그것을 모든 것을 잃은 후에, 데니스가 세상을 떠난 후에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데니스가 죽은 후 카렌은 모든 것을 원주민에게 나누어주고 조그만 가방 하나만 가지고 아프리카를 떠난다. 그리고는 고향으로 돌아가 17년 동안의 아프리카 생활을 정리한 글을 쓴다. 그것이 바로 소설 『아웃 오브 아프리카』이다. 나는 영화를 사랑한다. 그리고 아프리카를 떠나기 전 컴퓨터에 다운로드를 받아놓고 몇 번이나 되풀이해서 감상를 했다. 그래도 영화는 싫증이 나지 않는다. 아프리카 초원과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그리고 데니스와 카렌의 사랑이 흐르는 아프리카는 내 여행의 데미를 마지막 장식을 로망 여행이 될 것이다.
나는 3일 후면 영화 <아웃 오브 아프리카>의 무대 아프리카 초원으로 배낭여행을 떠난다. 여행은 영화 속의 배경인 케냐에서부터 시작될 예정이다. 그리고... 마사이마라, 킬리만자로, 잔지바르, 비토리아폭포, 쵸베국립고원, 나미비아 사막에 이어 아프리카 대륙의 끝 희망봉까지 약 한달 간의 아프리카 종단을 하게 된다. 나는 과연 데니스처럼 아프리카의 자유로운 영혼을 느끼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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