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미루어온 아프리카 종단여행
아내를 집에 남겨두고 홀로 아프리카 여행을 떠나려고 하니 어쩐지 마음이 짠~ 하다. 공항으로 가는 리무진 버스만 타도 아픈 곳이 싹 나아버린다는 아내가 아니던가? 더욱이 아프리카 종단여행은 아내가 그토록 가고 싶어 했었다. 그런데…우여곡절 끝에 오늘 나 홀로 아프리카 종단여행을 떠난다. 여행으로 건강은 되찾은 아내의 유일한 취미와 희망은 여행을 떠나는 것 하나다. 여행을 떠나기 한 달 전부터 아내는 여행가방을 거실에 내 놓고 이것저것 짐을 싸며 마치 수학여행을 떠나는 소녀처럼 즐거워한다. 그때부터 아내의 온 몸에는 엔도르핀이 펑펑 돌며 생기를 찾는다. 나는 아직까지 아내를 집에 두고 홀로 여행을 떠난 적이 없다. 이번 여행도 당연히 아내와 함께 떠나야 했다. 그런데 아내가 챙겨주는 여행가방을 들고 홀로 여행을 떠나려고 하니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프리카 종단여행은 내가 오래전부터 그려왔던 버킷리스트중의 하나이다. 나는 1995년도에 튀니지를 경유해서 리비아 사하라사막 깊숙이 위치한 사리르(Sarir)라는 지역까지 다녀온 적이 있었다. 현지인의 이야기로는 사하라 사막 지하 깊은 땅속에 나일강이 200년 동안 흐르는 유수량이 1만 년 전부터 잠자고 있다는 것이다. 사하라 사막은 한때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토지였는데 지각변동에 의하여 물과 동식물이 함몰되어 사막이 되었다고 한다. 가다피 정권은 이 사막의 지하수를 끌어올려 북부 지중해 해안에 있는 도시와 농경수로 공급하기 위해 지름 4m, 길이 7.5m, 총길이가 4,000km에 달하는 리비아 대수로(Great Manmade River)를 건설하고 있는 중이었다. 당시 나는 한국의 동아건설은 리비아 대수로(Great Manmade River) 현장을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동아건설은 대수로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사리르 취수장에서 벵가지까지 955km에 달하는 송수관 라인을 건설하고 있었다. 지하 500m를 뚫으면 거대한 지하수에 닿은데, 리비아는 사하라 사막 곳곳에 1,300개 이상의 우물을 파서 무게 75톤에 달하는 송수관을 묻어 지중해 연안을 끌어들이는 대수로를 건설하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우물을 파는 과정에서 갖가지 화석이 발견된다는 점이다. 사하라 사막을 여행한 후부터 나는 아프리카 땅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1974년 미국의 고인류학자 도널드 요한슨은 에티오피아 하다르계곡에서는 인류 최초의 인간으로 추정되는 루시(Lucy)가 발견되었다. 키 120cm, 몸무게 20kg의 루시는 아프리카에서 최초로 발견된 사람 유인원이다. 나는 그의 저서 ‘최초의 인간 루시’를 읽으며 인류 진화의 수수께끼에 빠져 들어가며 아프리카 여행을 꿈꾸기 시작했다. 2001년 아내와 나는 터키와 그리스를 거쳐 이집트 일주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그러나 이집트는 어떻게 보면 온전한 아프리카 땅이라기보다는 지중해와 유럽에 가까운 문화를 가지고 있다. 아프리카는 크게 이집트 지역과 사하라 사막 이남의 이른바 ‘블랙 아프리카’지역으로 나눌 수 있다. 과거에 사하라 사막은 유럽인들에게 거의 통과 할 수 없는 천연 장벽이 되었다. 유럽인들이 이 천연장벽을 통과한 것은 포르투갈 인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를 건너 희망봉에 도달한 15세기 말이었다. 아랍의 지리학자들은 사하라 사막 남쪽 지역을 흑인들의 땅(Bilad-as-Sudan)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의 아프리카는 수단에서 열대와 적도를 지나 남부아프리카로 이어지는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흥미를 느끼며 가고자 하는 아프리카도 바로 이 지역이다.
나는 20년 전부터 진정한 의미의 아프리카 땅을 밟기 위해 아프리카 종단여행 계획에 착수했다. 아프리카 여행을 계획할 무렵 나는 잠시 라오스를 여행하다가 빙비엥에서 젊은 배낭 여행자를 만났는데, 그는 아프리카 여행에 앞서 티베트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어떠냐고 권했다. 티베트는 4000m를 전후한 고원지대이므로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여행을 하기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하면서.
듣고 보니 그의 설명이 옳았다. 우리는 아프리카 여행계획을 잠시 접어두고 80일간의 티베트 일주 여행을 떠났다. 티베트 여행을 다녀와서 우리는 다시 아프리카 종단여행을 떠날 준비를 서서히 진행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내가 갑자기 심장병이 악화되어 아프리카 여행은 또 다시 미루어지게 되었다.
급기야 아내가 심장이식까지 받게 되자 우리들의 모든 여행은 잠시 중단되어야 했다. 그러나 심장이식을 받은 지 1년 후 다행히 아내는 다시 여행을 떠나도 좋은 만큼 건강이 회복되었다. 나는 건강이 회복된 아내와 함께 제주올레길 240km 완주를 비롯하여 한라산 백록담, 지리산 천왕봉, 설악산 대청봉, 그리고 백두산 천지까지 등정했다. 그리고 급기야 해발 3~4000m가 넘는 히말라야를 넘으며 시킴과 부탄여행을 다녀오는 기염을 토해내기도 했다. 그만큼 아내는 여행을 하는데 지장을 받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게 회복되었다.
아내의 건강회복을 게기로 우리는 2014년도에 다시 아프리카 종단여행을 계획하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황열병 예방접종> 유효기간이 만료되어 또 다시 아프리카 종단여행의 발목을 잡았다. 10년 유효기간이 지나 다시 예방접종을 하여야만 하는데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는 아내는 황열병 주사를 맞으면 황열병에 걸릴 위험이 크다고 했다. 황열병 주사는 생약이기 때문에 면역이 약한 사람은 황열병 생균에 감염될 위험이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들의 아프리카 여행은 또 다시 좌절되었다. 이래저래 우리들과 아프리카 여행은 인연이 멀어진 듯 했다.
작년 12월 신당동 회봉이라는 토속음식점에서 부탄으로 배낭여행을 함께 떠났던 여행마니아들과 함께 저녁을 먹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병용 아우가 아프리카 여행을 꺼냈다. 그는 내 블로그에 게재된 세계일주 여행기 열열 독자로 블로그를 통해서 만난 사이다. 그는 남대문시장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데 몸이 셋이라도 부족할 정도로 매우 바쁜 사람이다. 그런데 내 블로그를 통해서 여행문화를 알게 되었고, 삶의 여유를 찾게 되었다고 한다. 새벽에 사업장에 나가면 컴퓨터를 켜고 제일 먼저 내 블로그에서 세계일주 여행기를 읽는 것에서부터 하루를 시작한다고 했다. 그리고 처음으로 온 가족 다섯 명을 이끌고 유럽여행을 다녀왔단다. 사업장을 단 하루를 빠져도 큰 일 나는 줄 알았는데 15일 간이나 비어도 아무 일 없이 사업이 잘 돌아가더라는 것.
그 후로 2012년 5월에는 나와 함께 15일간의 인도, 부탄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나로 인하여 점점 여행병에 물든 그는 1년에 한 번씩 한 달 정도의 배낭여행을 다닐 정도로 여행마니아가 되었다. 그런 아우가 대뜸 아프리카 여행 이야기를 꺼냈다.
“형수님, 찰라형님이 아프리카 여행을 가는 것을 윤허(?)해 주세요. 형수님과 함께 가지 못해 죄송하지만 내년엔 형님과 함께 꼭 아프리카 여행을 가고 싶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볼게요.”
“생각해 보신다는 말씀은 윤허를 해주신 것으로 간주하겠습니다. 하하하.”
“형수님이 가지 못할 형편 때문에 찰라 형님까지 아프리카 여행을 떠나지 못하게 해서는 안 되겠죠?”
그렇게 해서 나의 아프리카 종단여행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금년 7월에 떠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마침 동석을 했던 정애자 선생님이 따라나서겠다고 했다. 그리고 정 선생님 친구 한 분도 함께 합류하기로 하고, 병용 아우 6촌 동생 커플도 합류하기로 하여 6명의 소그룹이 형성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항상 아내와 함께 여행을 다녀왔다. 나 홀로 떠나는 여행은 단 한 번도 없다. 아내를 두고 나 홀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황열병 예방접종 때문에 아프리카 여행이 금단의 지역이 되고 말았다.
아프리카 종단여행, 어떻게 갈까?
어쨌든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나 홀로 떠나는 아프리카 여행이 되어버렸다. 아내의 허락이 떨어진 후 나는 아프리카 여행 준비에 착수를 했다. 처음에는 폴 서루(Paul Theroux)처럼 아프리카 종단 배낭여행을 계획했다. 처음 아프리카 여행을 가려고 할 때 나는 폴 서루의 여행기 ‘아프리카 방랑(Dark Star Bazzar)'에 푹 빠졌다. 그는 예순 번째 생일기념으로 이집트 카이로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까지 육로로 종단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여행기를 저술했다. 내가 폴 서루처럼 아프리카 종단 여행 이야기를 꺼내자 대뜸 아내가 말했다.
“여보, 고희를 넘긴 당신 나이를 좀 생각해 봐요. 에구머니, 언제나 철이 들까?”
아내의 말이 옳았다. 나는 이미 노인의 나이에 있지만 철없는 노인이다. 아니 아직도 마음만은 청춘이다. 아내의 말처럼 철딱서니 없는 노인이지만 이미 이집트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아부심벨까지 다녀왔으니 중복해서 갈 필요도 없다.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노매드 아프리카 여행사(Nomad Africa Adventure Tours)여행사를 통해서 떠나는 아프리카 트럭킹 종단여행이었다. 그러나 트럭킹 종단여행은 기간이 최소한 40일 이상이 걸렸다. 항공시간까지 합하면 45일 정도가 소요되었다. 아내는 여행기간이 너무 길고, 노인이 텐트에서 잠을 자고 트럭을 타고 다니는 것이 보통 고된 일이 아니며, 그러다가 병이라도 나면 큰일이라며 또 다시 브레이크를 걸었다. 듣고 보니 아내의 말을 들어서 손해 날 것은 없을 것 같기도 했다. 추위를 잘 견디지도 못하는 체질인데 40일이 넘게 야생의 텐트에서 잠을 잔다는 것이 무리는 무리다.
나는 다시 인터넷을 뒤지며 아프리카 배낭여행 상품을 찾아보았다. <인도로가는길>여행사와 <소풍투어>에서 26일짜리 배낭여행 상품이 있었다. 두 상품을 놓고 고민을 하다가 처음에는 소풍투어 상품을 선택하였다. 이는 전적으로 ‘최초의 인간 루시’영향이었다. 아디스아바바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인류 최초의 인간 루시를 꼭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또 소풍투어 일정에는 에티오피아 4박 5일과 세링게티 사파리투어가 포함되어 있었다. 허지만 킬리만자로 트레킹과 마사이마라 사파리가 빠져 있고, 전 일정 11회나 항공으로 이동 때문에 비용도 월등히 비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티오피아 일정이 매력이 있어 소풍투어를 선택하기로 했다. 허지만 문에가 생겼다. 에티오피아에 소요사태가 일어나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기 때문이다. 여행은 위험할수록 스릴과 재미가 있지만 극한 위험요소는 피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 차선책으로 선택한 것이 <인도로 가는 길> 여행사의 26일간의 아프리카 7개국 배낭여행 일정이다. 여행기간과 일정은 소풍투어와 거의 비슷한데 네 번의 항공이동으로 여행비용이 저렴했고, 세링게티 대신 마사이마라와 킬리만자로 등정이 포함되어 있다. 이 여행은 일종의 세미배낭여행으로 인도로 가는 길에서 항공과 주요교통, 숙소를 정해주고 길잡이가 동행하여 여행지에서 각자 기호에 맞는 여행을 선택하여 자유롭게 여행을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여행의 쵸이스가 있는 셈이다.
여행출발일자가 다가오자 나는 일행들과 함께 국립의료원으로 황열병 예방 접종을 하러갔다. 2003년 9월 18일 황열병예방접종을 맞은 증명서가 10년이 지나 유효기관이 지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 국립의료원 측에서는 황열병 주사는 한번만 맞으면 영구히 다시 맞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닌가? 1000원을 내고 기간연장 증명서만 재발급 받으면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황열병 접종 때문에 아프리카 여행을 갈 수 없었던 아내도 아프리카를 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정애자 선생님도 이 말을 듣고 놀랐다. 정 선생 역시 2007년도 접종을 했는데 1000원만 내고 증명서를 재발급 받았다. 허지만 나는 인천공항 검역소에서 접종을 했기 때문에 그곳에서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고 했다. 인천공항 검역소에 전화를 했더니 사실이었다.
그날 밤 나는 아내에게 이 사실을 이실직고를 했다. 그랬더니 아내의 표정이 갑자기 돌변했다. 그리고 자신도 갈 수 있는 여행인데 갈 수 없는 것으로 잘 못 알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허지만 아내가 이번 아프리카 여행에 합류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항공권 등 모든 예약 절차가 완료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다가 아내는 허리 디스크협착증과 무릎 관절이 좋지 않아 장기간 배낭여행을 하는 데는 무리가 있었다.
아내가 함께 가겠다고 때를 쓰면 어쩌나 하고 내심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아내의 태도가 의외였다. 아내는 순순히 나만 다녀오라고 너그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번 여행은 처음부터 이미 포기를 한 것이니 큰 선심을 쓰듯 너그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나는 홀로 아프리카로 떠나게 되었다. 아내를 집에 두고 내가 홀로 여행을 떠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어쩌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 일단 여행일자가 확정이 되자 나는 오래전에 구입한 론니플래닛 아프리카 편을 비롯하여 아프리카에 대한 책을 닥치는 대로 읽으며 아프리카 종단여행을 여유있게 설계하였다. 지난해 12월 부터 나는 본격적으로 여행준비에 착수하였다. 준비기간이 넉넉하였다. 깃털처럼 가볍게 여행가방을 싸려고 노력을 했지만 아프리카여행은 경험자들에 의하면 음식이 입맛에 맞지않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배낭이 좀 무거워졌다. 밑반찬과 인스탄트 식료품 등은 식료품점을 경영하는 병용아우가 챙긴다고 했다. 나는 소형 전시밥솥 등 식사도구류를 챙겨 넣었다.
이제 출발을 하는 날만 남았다!
참고로 내가 참고했던 아프리카에 대한 책을 소개한다.
-론니플래닛 아프리카편
-처음읽는 아프리카의 역사, 루츠 판 다이크, 웅진지식하우스, 2018.4.2.
-아프리카 신화, 지오프레이 파린다, 범우사, 2006.1.10.
-최초의 인간 루시, 도널드 요한슨, 푸른숲, 1996. 7
-아프리카 방랑, 폴 서루, 작가정신, 2011.9.26.
-아웃 오브 아프리카, 카렌 블리릭센, 열린책들 세계문학, 2009.11
-오브 아프리카,월레 소잉카, 삼천리, 2017. 2
-나는 늘 아프리카가 그립다, 이지상, 디자인하우스, 1992.12
-하쿠나 마타타, 쿠퍼 에덴스, 마음의 숲, 2007.6.23.
-아프리카 트럭여행, 김인자, 눈빛, 2006.6
우여곡절 끝에 떠나는 아프리카 종단여행!
아내여, 고맙소!
허지만 당신을 집에 홀로 남겨주고 떠나려고 하니
어쩐지 내 마음이 짠~ 하오.
당신을 집에 남겨두고 가게되어 마음이 짠하지만 잘 다녀 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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