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하늘에 내려다 보이는 홍콩의 밤 풍경 |
□ 밤 하늘의 허니문
오직 우리들만의 시간과 공간.
여행은 이래서 좋다. 모든
잡다한 코드가 우리들의 온 몸에서 빠져 나가고 오직 아내와 나만의 공간뿐.
이곳엔 뉴스도, 신문도, TV도.... 없다. 이제 우리
둘이서 망망대해와 허공을 달려가 보는 것이다. 밤 하늘에 흐르는 유성처럼. 이 별똥별 같은 부부별이 어디에 낙마를 할지 모르지만, 우리들의
새로운 허니문이 하늘에서부터 열리고 있다.
올해로 서른번째 맞이하는 허니문. 홍콩으로 날아가는 CX 419에는 거의가 젊은 꽃띠의
허니문 커플로 가득 차있다. 커플 티셔츠, 커플가방, 신발....... 입고 신은 그들은 얼굴마저 모두가 쌍둥이처럼 보인다. 9월의
결혼시즌이라서 그런지 기내는 커플들 일색이다.
“여보, 나이든 사람들은 우리들뿐인 것 같아요.”
“무슨 소릴. 우리도 이제
겨우 30살인데......”
아내와 내가 만난지 30년이 되었으니, 그때부터 나이를 세면 30살의 청춘이 아니겠는가? 실제로 우리가
만나는 외국인들의 대부분은 우리들의 나이를 30대로 본다. 그들과 대화를 하다가 아이들이 몇 명이나 되며 나이는 어떻게 되느냐고 물어오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큰 애는 30살, 작은 애는 28살 하고 말하면, 엉? 무슨 진한 조크를 하느냐고 믿지를 않는다. 당신
나이가 30대로 보이는데....... 하여간 서양인들은 동양인들의 나이를 매우 적게 보는 경향이 많다.
어쨌든 우리들의 나이는
30대다. 나이는 자기가 생각한데로 먹는다. 10살 먹은 아이가 어른행동을 하면 애늙은이가 되듯이.......
비행기 안에는
생각보다 좌석이 널널하게 비어있다. '원월드 티켓'으로 떠나는 세계여행의 길. 이번에 우리가 잡은 비행기 표는 4대륙을 320만원으로 가는
세계일주 항공권이다.
이 항공권은 총 20회를 탈 수 있고 한 대륙 당 4번을 탈 수 있는 옵션을 준다. 그 대신 오른 쪽으로
돌든 왼쪽으로 돌든 한 방향으로만 돌아가야 하고, 반드시 태평양과 대서양을 건너 세계일주를 해야 하는 조건이 붙어 있다. 세상에서 가장 값이
싸다는 비행기 표.
□ 시간은 화살처럼...
“여보, 비어있는 좌석이
아깝군요.”
“아까우면 당신 친구들 다 불러와요.”
“그랬으면 정말 좋겠는데......”
드디어 이륙한지 얼마 되지 않아
저녁식사가 나온다.
“드링크는 무엇으로 하실까요?”
“레드와인 플리스!”
와인도 한잔 먹어야지. 아내와 나는
글라스에 붉게 스며드는 포도주 잔을 들고 서로 마주 보았다.
“당신의 건강을 위하여
축배!”
“당신도요!”
여기저기서 와인잔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젊은 허니문의 꿈이 부딪치는 소리다. 제발 금실좋은 부부가
되어 다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와인 한잔에 기분은 고조되고, 하늘의 밤은 깊어간다.
술은 적당히 마시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것. 그 와인 한잔에 잠시 졸은 것 같은데 홍콩 공항에 착륙한다는 안내방송이 흘 러나온다.
“여보, 내릴 준비를
하세요.”
“아니 벌써요?”
우리는 허니문 부부들 사이에 끼어서 출구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마치 30대의
신혼부부처럼....... 홍콩의 밤. 그러나 곧 1시간 반 후에 다시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타야 한다.
세계일주
항공권은 싼 대신 이렇게 목적지를 우회하여 갈아타는 멀고먼 길이 다반사다. 하늘에서 별을 보며 노숙하는 부부별의 배낭여행 고행길이 드디어
시작되고 있는 것.
시간은 화살처럼 날아간다.
비행기가 허공을 나르는 것처럼. 별똘별이 하늘을 날으는 것처럼. 길은 어디로
가고, 세월은 어디로 흘러 가는가? 그걸 누가 알까? 오직 시간만이 알고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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