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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잉카의 성스러운 계곡 순례(1)-피삭

찰라777 2006. 12. 30. 11:43

잉카의 성스러운 계곡 순례(1)

 

 

피삭 일요시장

 

▲잉카의 성스러운 계곡은 쿠스코에서 출발하여 우루밤바 강을 따라 멀리 마추픽추까지 이어진다.

 

▲피삭-칼카-유카이-우루밤바-울란타이탐보-모라이-살리나스-친체로 로 이어지는 잉카의 성스러운 계곡 손례는 옛 잉카의 유적과 생활상을 그대로 들여다 볼수 있다 (노란선은 필자의 순례지).

 

 

쿠스코의 아르마스 광장은 언제나 여행객들로 붐빈다. 아침 일찍 ‘잉카의 성스러운 계곡 Valle Sagrado' 순례와 다른 잉카의 유적지로 나서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든다. 마추픽추는 이미 널리 알려진 여행코스로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가 보지만, 잉카의 성스러운 계곡을 여행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버스에 오르니 동양인은 오직 나와 아내뿐이다.

 

'잉카의 성스러운 계곡'은 ‘우루밤바 계곡 Valle Urubamba'이라고도 부르는데, 우루밤바 강을 따라 계곡과 산언덕에 주변에 흩어져 있는 잉카 제국의 유적이나 마을을 순례하는 여행을 말한다. 대부분 잉카의 유적을 끼고 형성되어 있는 마을에는 작은 시장과 문화 등 옛 잉카 시대의 생활상이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잉카의 향기가 여과없이 묻어나는 곳이다.

 

피삭Pisaq의 일요시장, 잉카의 작은 마을들인 코야Coya, 라마이Lamay, 칼카Calca, 유카이Yucay, 우루밤바Urubamba, 수수께끼의 거석이 남아있는 울란타이탐보Ollantaymbo, 친체로Chinchero, 계단식 밭 경작재배 시험지인 모라이Moray, 암염을 생산하는 살리나스Salinas 등.... 이 지역을 차례로 순례하다보면 옛 잉카의 문명과 생활을 제대로 체험을 할 수 가있다. 그리고 왜 쿠스코를 잉카의 수도로 정했는가 하는 의문도 한가닥 풀리게 된다.

 

쿠스코를 출발한 버스는 옛 잉카의 꼬불꼬불한 도로망을 따라 덜컹거리며 산 언덕을 기어간다. 쿠스코의 유적지를 순회하는 버스는 대부분 열악한 고물이다. 펑크가 나지 않을지 심히 염려스럽다. 산은 높고 계곡은 험준하지만 경관만은 일품이다.

 

 

▲미로같은 켄코 유적지. 퓨마를 숭배하는 돌 조각 유적이 남아있다.

 

 

버스는 ‘켄코 Quenqo’라는 유적지에서 잠시 정차를 한다. ‘켄코’는 케추아어로 ’미로‘라는 의미다. 돌을 깎아서 만든 6미터가 넘는 퓨마 조각을 중심으로 반원형의 벽이 둘러져 있다. 뒤쪽에는 황제가 앉았던 옥좌와 제단이 있다. 퓨마를 섬기는 일종의 우상숭배의 유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켄코를 출발한 버스는 붉은 빛이 도는 산을 지난다. 안내원의 말로는 이 지역이 ‘푸카푸카라Puka Pukara’(케추아어로 ‘적색’이라는 의미)라는 요새라고 한다. 탐보마차이 근처에 있는 이 지역은 ‘붉은 요새’라는 별명이 있는데, 쿠스코의 북쪽 을 굳게 지키기 위해 만들어 놓은 요새다. 이 지역에는 발견되지 않는 유적이 많다고 한다. 이 지역만 구경을 하는데도 며칠이 걸린다고 하는데, 표고가 워낙 높아 걸어서 돌아보는 것은 엄두가 나지 않는다.

 

 

▲'붉은 요새'라 불리는 푸카푸카라는 붉은 빛이 도는 쿠스코 북쪽을 지키는 요새다

 

 

달리는 차창 밖으로 간간히 보이는 초가지붕위에 황소 모형을 한 인형이 보인다. 황소는 가옥의 수호신으로 가족과 집을 지켜 주십사 하는 원주민의 순박한 기원을 담고 있다. 도로 옆 산등성이에는 옥수수 밭과 붉은 흙이 드러난 계단식 밭 들이 여러 가지 형태로 모자이크를 이루고 있다.

 

나무 한그루 보이지 않는 민둥산이 뾰쪽뾰쪽한 봉우리들을 하늘로 내밀고 있다. 산봉우리는 하얀 모자를 쓴 듯 눈을 이고 있다. 쪼글쪼글한 산줄기는 잉카의 성스러운 계곡을 호위라도 하듯 우루밤바 계곡으로 병풍처럼 이어져 있다. 버스는 아슬아슬한 절벽을 타고 내려와 강가에 있는 어느 마을에 우리들을 퍼 내 놓는다. 버스에서 내리니 가벼운 현기증이 난다. 고산증세다.

 

 

 ▲산등성이에서 바라본 피삭 마을 전경. 계단식 밭이 이색적이다.

 

 

성스러운 잉카의 계곡에 자리 잡고 있는 피삭Pisaq 유적지는 쿠스코에서 30km떨어진 작은 마을로 목요일과 일요일에는 시장이 선다. 인근에 있는 원주민들이 갖가지 식료품이나 손으로 만든 일용품을 가지고 와서 물물교환을 하거나 팔고 있다. 시장으로 가는 골목에는 원주민들이 손수 만든 민예품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다.

 

그저 구경만 해도 즐겁다. 마을광장에는 야채, 고기, 의류, 일용품들을 팔고 있는 모습이 1950년대를 전후한 우리나라 장터와 흡사하다. 의류는 모두 원색으로 색깔이 강열하다. 뽀예라스(원주민 전통치마)를 입고 둥근 전등갓처럼 생긴 모자를 쓴 원주민 여인들의 표정이 듬직하고 안정감을 준다. 여인들은 대부분 키가 작고 통통하다.

 

 

 

 

 

 

▲피삭 일요시장 이모 저모

 

 

원색의 이상한 복장을 하고 있는 원주민들의 모습에서 잉카의 옛 모습이 들여다 보인다. 라마를 끌고온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땅바닥에 털프덕 앉아서 원단을 짜고 있는 할머니 모습도 보인다. 원색의 천을 두루고 여러가지 색깔로 수를 놓은 모자를 쓰고 있는 할머니의 표정은 마냥 편하고 즐거워 보인다.

 

그 주변에는 돼지들이 꿀꿀거리며 자유롭게 달려다닌다. 아이를 등에 업고 민예품을 파는 아주머니, 소라를 붕붕 불어대는 아저씨... 사람들은 물건을 사라고 조르지도 않고 그냥 그렇게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다.

아, 이 얼마나 자유롭고 여유로운 정경인가! 


“정말 시간을 잊어버리겠어요! 여긴.”
“당신도 과거로 회귀한 여인처럼 보이네!”

 

사람들의 표정은 순박하다 못해 다정 다감하다. 마을 중앙광장에 이르면 야채와 생활용품을 파는 사람들로 시장은 더욱 활기를 띤다. 배추, 무우, 당근, 파, 고추...사람이 사는 곳은 어디를 가나 다 비슷한 야채들을 재배하여 먹고산다.

 

등에 보따리를 짊어진 여인들의 모습과 천을 휘감아 아이를 등에 업은 여인들의 모습이 퍽 이채롭다.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사람들은 다소곳이 포즈를 취해준다. 아직 때기 묻지 않은 순박한 모습  그대로다. 도회지 풍경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무언가 다른 기류가 이곳에는 흐르고 있다.

 

 

 

 

 

 

▲일요일이 되면 피삭 마을광장은 갑자기 활기를 띤다. 원주민들은 각자가 지은 농산물, 

생활용품 등을 들고 나와 물물교환을 하거나 판다. 50년대를 전후한 우리나라 장터와 비슷하다.  


 

아이를 등에 업고 있는 민예품 가게에서 아내는 무엇인가를 흥정하며 산다. 피삭 일요시장을 구경하다 보면 먼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난 느낌이 든다. 안내원이 버스로 돌아오라고 일러준 1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강냉이 맛도 일품이다. 햇빛을 많이 받아서인지. 알이 굵고 맛이 다르다. 시간이 되어 버스로 몰려든 여행객들의 입에는 어김없이 잉카의 강냉이가 물려 있다.

 

 

▲잉카의 옥수수로 하모니카를 불고 있는 아내는 점점 먼 잉카의 과거회귀하고 있다.

 


“모두들 잉카의 하모니카를 불고 있군.”
“강냉이를 물고 있는 표정이 정말 재미있어요.”

"잉카의 천연 하모니카 부는 당신 모습이 제일 일품인데..."

"크아! 에고."

 

여행객을 태운 버스는 다시 가파른 언덕을 올라간다. 그러나 덜컹거리던 버스가 마침내 일을 내고 만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버스는 급정거를 한다. 타이어가 파스가 난 것이다. 쿠스코를 출발할 때부터 우려했던 일이 드디어 일어나고 만 것이다.

 

큰 일 날 뻔 했다. 아차 잘못하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불귀 귀신이 되고 말뻔한 사고다. 그러나 잉카의 신이 돌보아 주었음인가. 다행히 아무런 불상사가 없었고, 상당한 시간이 걸려 버스 기사는 겨우 타이어를 교체하고 다시 시동을 걸어 가파른 언덕을 덜덜거리며 올라간다.

 

 

▲절벽으로 이어지는 길에서 갑자기 펑크가 난 버스. 휴! 큰 일날뻔 했다. 

 


버스에서 내려 가파른 길을 1km 정도 걸어가니 피삭 유적지가 계단식 밭과 돌로 쌓은 성 안에 오랜 비밀을 간직한 채 산등성이에 놓여있다. 파란 하늘과  초록의 계단 밭 사이에 천년의 비밀을 머금고 있는 유적지는 방문객을 먼 과거로 회귀시켜놓고 만다. 분홍빛 안산암들로 차곡차곡 쌓아올린 인티와타나Intihuatana(태양을 잡아 매 두는 곳) 신전이 신성한 계곡을 흘러가는 우루밤바 강을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다.

 

유적지는 인티와타나를 중심으로 우물과 정원이 있고, 신전 밑에는 주민들이 살았던 마을이 지붕은 사라지고 돌담만 사각형의 형태로 허물어진 채 남아있다. 마을 양 옆에는 계단식 밭이 첩첩이잉카의 유적지를 도열하듯 둘러쳐져 있다.

 

거기, 바위밑에는 빨간 선인장 꽃이 한 송이 피어있다. 꽃은 천년의 무게를 안고 홀연히 피어나 길손을 반기고 있다. 저 꽃은 잉카의 비밀을 알고 있겠지.

 

 

 

 

 

 

 ▲피삭 마을에서 300m 고지위에 세워진 유적지. 태양의 신전인 인티와타나, 옛 마을, 계단식 밭이 운집해 있고, 우물과 정원도 있다. 한떨기 빨간 선인장 꽃이 천년의 비밀을 알고 있는 듯 고고히 피어있다.


피삭 유적지는 페루의 어느 곳에 있는 유적지보다 몇 배나 더 큰 규모의 도시였다고 한다. 유적지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은 과히 일품이다. 우루밤바 강을 휘돌아 잉카의 성스러운 계곡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강은 계곡을 흘러내려와 마을과 들판을 지나고 잃어버린 도시의 이름들과 사라져 버린 잉카인들의 이름을 노래하며 끝없이 흘러가고 있다.

 

멀리 만년설을 끼고 있는 6000m급 안데스의 봉우리들이 잉카의 성스러운 계곡을 호위하고 있다. 우루밤바 강은 아마존의 눈섭에 해당하는 상류다. 계곡을 휘몰아 흘러가는 강물은 아마존 계곡과 티티카카 호수로 나누어지는 해발 4300m의 아브라 라 라야 Abra la Raya가 근원지라고 일러주며 안내원이 우쭐한 모습을 취한다. 그도 그럴것이 이 성스러운 강물이 아마존을 이루고 티티카카 호수를 이루는 근원지라는 것.


우리는 태양신전을 숨바꼭질을 하듯 이리저리 끼어다니다가 다리도 쉴겸 태양의 신전에 덜프덕 앉았다. 멀리 안데스의 고봉위로 한가닥 구름이 쉬어간다. 아내가 준비한 커피 포트에서 차를 따른다. 잉카의 유적지에 앉아 여유롭게 마시는 커피 한잔에 모든 시름이 사라지는 듯 하다.

 

서울을 출발하여 북유럽, 러시아, 동유럽, 포르투갈 그리고 여기 남미의 페루까지 숨 가프게 달려왔던 여정이 모두 한순간에 멈추어 버린듯 하다. 

방아착이다!

잉카의 성스러운 계곡은 우리들의 마음을 영원토록 쉬게 하려고 하는 마력이 있는가 보다.

 

"당신, 지금 어디에 있지?"

"그냥 여기에 있어요!"

 

그렇다!

그냥 여기에 있다!

과거는 흘러가 버리고,

미래는 아직 돌아 오지 않은 시간이다!

후회도 두려움도 없다!

우린 오직, 그냥 여기에 있을뿐이다.

 

 

▲시간이 멈추어 버린 잉카 신전에서의 커피 한잔은 모든 것을 잊게 하고 말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