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미노 델 잉카(2)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
▲쿠스코에서 마추픽추로 가는 백패커 열차에 승객들이 오르고 있다.
아침 6시. 쿠스코의 산 페드로 역에 도착을 하니 여행객들로 역사는 붐비고 있다. 컬러풀한 여행객들의 옷과 배낭으로 역사는 한 폭의 추상화를 연상케 한다. 파란 색에 노란 줄을 그어놓은 협궤열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검표원이 열차 난간 앞에서 차표를 체크한다.
우리가 탈 기차는 백패커 Backpacker 급으로 6시 15분 발 열차다. 요금은 왕복 57달러. 계절에 따라 요금은 약간 달라진다. 열차 등급은 세 가지가 있는데, 백패커보다 약간 고급인 비스타도메 Vistadome(117달러), 최고급열차인 하렘 빙엄은 547달러나 하는 호화열차다. 그러나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백패커를 타고가도 오늘 중으로 도착하면 되리라.
열차에 오르니 가이드 겸 포터인 어네스토Ernesto가 우리 좌석으로 와서 인사를 한다. 그는 다소 어눌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말을 건 낸다. 원주민답지 않게 피부색이 조금 하얀 편이다. 트레킹 그룹은 각 여행사마다 포터와 가이드가 다 다르다.
6시 15분에 출발하기로 한 기차는 40분이 되어서야 움직이기 시작한다. 남미 특유의 늑장 출발이라고나 할까? 이윽고 기차가 덜컹 소리를 내며 출발한다. 우리가 탄 기차는 8칸짜리 기차다. 우리나라 통일호 수준의 기차. 시설은 낡고 속도는 느리다. 기차가 역 구내를 빠져 나가 조금 느리게 기어가더니 이내 다시 뒤로 미끄러지기 시작한다.
“어럽쇼? 기차가 왜 뒤로 가지요?”
“뒤로 돌아서 가는 길이 있는 게 아닐까?”
그런데 뒤로 미끄럼질 치던 기차는 삐익~ 브레이크 소리를 내더니 다시 앞으로 천천히 올라간다.
“어? 기차가 다시 앞을 가네?”
“흐음. 학창시절 기차통학을 할 때 기차가 생각이 나는군.”
▲쿠스코 산 페드로 역에서, 기차가 출발하기 전에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에 시골에서 6년간을 기차를 타고 통학을 했는데, 그 당시 기차는 석탄을 때는 기관차였다.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달리는 기차. 지금은 전설 속으로 사라져 버린 추억의 기차가 되고 말았지만, 창고 궤짝 같은 열차 칸, 딱딱한 나무의자…. 기차는 언덕을 올라가다가 힘이 부치면 뒤로 한 참을 물러섰다가 다시 힘을 받아 언덕을 올차가곤 했었다.
그러나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는 쿠스코에서 급상승하는 경사를 타고 올라갈 수가 없어 지그재그로 오르락내리락 반복하며 고도를 조금씩 높여가는 것이다. 다섯 번 정도를 왔다갔다를 반복하며 기차는 겨우 언덕에 올라선다. 기차가 고개 정상에 올라서자 쿠스코 시내가 한눈에 아스라이 보인다. 정상에 오른 기차는 이제 점점 내리막길을 달려가며 속도를 제법 낸다. 쿠스코 보다 지대가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차의 속도에는 한계가 있다. 길이 워낙 꼬불꼬불한데다가 길이 험해서 마음 놓고 달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협궤가 좁아 커브를 돌거나 언덕을 오르내릴 때마다 기차가 마치 서울대공원의 88열차처럼 심하게 흔들린다.
▲기차는 커브를 돌 때마다 심하게 흔들리며 안데스의 협곡을 느리게 기어간다.
기차는 역도 아닌 엉뚱한 곳에서 가끔씩 정차를 한다. 그렇다고 어떤 설명도 없다. 기차가 설 때마다 승객들은 밖으로 나가 담배도 피우고 서성거린다. 어디선가 행상들이 몰려와 기념품을 판다.
그러나 기차가 달려가는 계곡은 깊고 공기는 신선하다. 깎아지른 계곡이 금방 손에 닿을 것만 같다. 기차는 점점 깊은 정글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키 큰 유칼립투스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원시림, 청정한 공기, 멀리 만년설을 머리에 이고 있는 설봉들이 파노라마처럼 느리게 지나간다. 심호흡을 하여 대자연의 신선한 공기를 흠뻑 마셔본다. 내 몸이 대자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승객들은 느린 기차의 난간에 기대어 사진을 찍거나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앞좌석에 앉은 여인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린다. 그녀는 보스턴에서 온 쇼라는 여자 여행객이다. 친구와 함께 짝을 지어 여행을 떠나왔다는데 어찌나 두 여자가 다정한지 오히려 이상하게 보일정도다. 아름답고 자유분방하게 보이는 두 여인은 혹 동성연애자는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우리나라 통일호 수준의 기차는 뒤뚱거리며 우루밤바 강을 지나간다.
2시간 쯤 달려가자 기차는 우루밤바 강을 끼고 달려간다. 안데스 산맥의 만년설에서 흘러내린 강물이 낮은 곳으로 내려갈수록 불어나고 물살도 거칠어진다. ‘아마존의 눈썹’에 해당하는 강물. 기차는 강을 따라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달려간다. 강물이 흘러가는 속도와 거으 비슷 할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