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166]라스트 잉카, 투팍 아마루

찰라777 2007. 1. 11. 08:19

까키노 델 잉카(3)

 

마지막 잉카 - '투팍 아마루'
'El Condor Pasa'에 얽힌 사연

 

▲안데스의 창공을 날고 있는 콘도르. 콘도르는 잉카의 전설적인 영웅이다. 

 

“와, 저 독수리 좀 봐요. 크기도 하네요!”
“어디? 정말 크군! 저건 남미의 새들 중에 가장 큰 콘도르라는 독수리야.”

 

느리게 가는 열차 위로 한 마리 콘도르Condor가 날개를 펴고 날아간다. 어찌나 크던지 마치 계곡을 덮을 듯 날개가 커 보인다. 페루에는 영웅이 죽으면 콘도르로 부활한다는 잉카의 전설이 있다. 남미의 콘도르는 보통 몸길이 1.3m, 무게가 10kg정도로 맹금류 주에서 가장 큰 새다. 주로 안데스 산맥의 바위산에 살며 절벽에 둥지를 틀고 산다.

 

엘 콘도르 파사...

이 때 원주민 가이드 한 명이 잉카의 피리로 ‘엘 콘도르 파사 El Condor Pasa'를 연주하기 시작한다. 애잔한 피리소리가 우루밤바 강을 달리는 열차 안에 울려 퍼진다. 승객들은 창밖을 날고 있는 콘도르를 바라보거나 혹은 음악에 취해 눈을 감고 있기도 한다. 

 

나는 달팽이가 되기보다는 차라리 새가 되겠소(I'd rather be a sparrow than  snail).
못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망치가 되겠소(I'd rather be a hammer than a nail)….
길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숲이 되는 게 좋겠소(I'd rather be a forest than a street)...
그래요.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틀림없이 그렇게 할 거에요(Yes I would. If I only could, I surely would).

 

철새는 어디로 날아가는가?
그러나 콘도르는 철새가 아니다. 빼앗긴 보금자리를 되찾기 위해 눈을 번뜩이며 안데스의 계곡을 날고 있는 것이다. 콘도르는 잉카인들의 전설적인 영웅이다. 멜로디는 달팽이보다는 새가 되어, 못 보다는 망치다 되어, 길보다는 숲이 되어 잉카의 보금자리를 되찾아 머물고 싶은 간절함이 묻어있다. 아직도 잉카의 후손들은 페루 곳곳에서 거의가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고 최하급 생활을 면치 못하고 있다. 도시의 빈민가에서, 안데스의 계곡에서, 잉카의 유적에서... 막일이나 행상, 포터 등으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정부의 요직과 경제권은 스페인 혈통의 백인들이 쥐고 있다.

 

엘 콘도르 파사는 '사이몬과 카펑클'의 노래로 더욱 유명해졌지만 원래는 잉카의 노래다. 잉카의 원주민 반란 지도자 ‘투팍 아마루 2세’를 기리기 위해 페루의 작곡가 로블레스 Daniel Aomias Robles가 1913년에 작곡한 오페레타 ‘콘도르칸키’의 테마음악이다.

 

투팍 아마루 2세....

그는 호세 가브리엘 콘도르칸키 Jose Gabriel Condorcanqui(1738~1781)의 별명으로 스페인의 200년 폭정에 분노하여 대규모 농민 반란을 일으킨 잉카의 지도자이다. 그는 1572년 스페인 정복자와 마지막까지 항거하다 처형당한 잉카제국의 마지막 황제 ‘투팍 아마루Tupac Amaru’의 이름을 따서 ‘투팍 아마루 2세’라 개명을 하고 약 1만 명의 반란군을 모아 지휘하며 잉카의 재건을 노렸던 라스트 잉카 지도자다.

 

그는 스페인 점령군을 ‘금을 숭배하는 강탈자’라고 선언하고 지방의 스페인 최고행정관 ‘아리아가’를 습격, 처형함으로서 반란의 불을 붙이며 잉카제국을 재건을 노렸으나 선진무기와 전술의 우위에 앞선 스페인군에 체포되어 1781년 처형을 당한다.

 

체포된 투팍 아마루 2세는 그의 아내와 동료들을 동반 사형 시킨 후 혀를 뽑고, 능지처참에 목을 자르는 가장 잔혹한 방법으로 처형된다. 그러나 잉카의 후예들은 위대한 용사 투팍 아마루 2세의 영혼이 콘도르가 되어 안데스의 창공을 날고 있다 것,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나타나 잉카의 후손들을 지켜 줄 것이라는 전설을 믿고 있다.

 

'엘 콘도르 파사'는 이처럼 잉카인들의 한과 희망을 담은 노래다.

스페인 침략자에게 삶의 보금자리를 빼앗겨 쿠스코를 버리고 쫓겨 숲으로, 더 깊은 정글로 숨어들어야 했던 절박함, 그리고 콘도르가 되어 재기를 노리며 안데스의 정글을 헤메는 한을 담고 있다..

 

잉카 최후의 빌카밤바는 어디에....

그러나 잉카인들은 어디론가 더 이상 떠나기보다는 고향인 숲을 지키는 콘도르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그들은 잉카 최후의 수도인 빌카밤바 Vilcabamba를 마추픽추에 건설하고, 그리고 다시 더 깊은 곳으로 제2, 제3의 빌카밤바를 건설하기 위해 마추픽추를 버리고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 어디론가…. 아직도 잉카 최후의 빌카밤바가 어디인지는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잉카의 후예들은 보금자리를 빼앗긴 한을 안고 이 길을 걸어서 갔다. 

 

지금 내가 기차를 타고 가고 있는 ‘잉카의 길’인 계곡과 정글을 그들은 맨발로 걸어서 갔다. 잉카의 마지막 황제 투팍 아마루가 그랬고, 라스트 잉카 지도자 콘도르칸키가 그 뒤를 이었고, 잉카의 후예들이 죽음을 결사하며 이 길을 따라갔다.

 

18세기 투팍 아마루 2세의 저항정신은 페루는 물론,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콜롬비아, 베네수엘라까지 파급되어 스페인 식민 체제를 흔들리게 하는 도화선이 되었으며 남미 독립운동의 선구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금세기 라스트 게릴라인 ‘체 게바라’도 투팍 아마루의 투혼에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투팍의 투혼 정신은 1984년 결성된 페루 좌파운동 단체인  ‘투팍 아마루 혁명운동’(MTRA-The Tupac Amaru Revolutionary Movement)과 ‘센데이 루미노소(빛나는 길)’의 게릴라 활동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단체는 페루의 반체제저항 단체로 1997년 일본 대사관을 126동안 점거하는 등 극 좌파 운동단체다. 그들은 신자유주의와IMF, 그리고 세계은행의 정책과 자유무역주의도 반대한다.

 

물론 그의 이름을 빌린 저항이 다 옳다고는 볼 수 없다. 그러나 페루는 제3, 제4의 투팍아마루가 계속 나타나고 있다.  2000년도 최초의 원주민계 혈통인 ‘알레한드로 톨레도’가 페루 대통령으로 당선된 것도 투파 아마루의 정신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마지막 잉카....

투팍의 정신은 콘도르가 되어 아직도 안데스 곳곳을 맴돌고 있다.
정글 속에, 도심의 빈민가에, 우루밤바 강물 속에, 잉카의 길과 숲속에서….

 

느리게 가는 기차...

창밖을 날고 있는 콘도르, 정글 속에서 뿜어 나오는 유칼립투스의 향기, 거기에 잉카의 후예가 들려주는 피리소리. 나는 마치 잉카의 노래와 정글의 향기를 타고 과거 잉카시대로 자꾸만 빠져 깊이 들어간다. 아주 깊은 계곡 속으로...

안데스의 깎아지른 절벽이 곧 손에 닿을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지나간다.

 

 ▲ '잉카의 길'을 트레킹 하기 위해 여행객들이 역사도 없는 'KM 104'역에서 내리고 있다.

 

 

10시 30분, 기차는 마침내 ‘KM104 역’에 정차를 한다. 쿠스코를 출발한지 4시간여가 지난 후다. 우리는 기차로 계곡을 단숨에 달려 왔지만 잉카인들은 몇 날 며칠을 걸려서 이곳에 당도 했을 것이다. 이제 우리도 여기서부터는 걸어야 한다. 잉카의 후예들처럼…

 

“킬로미터 백사역, 호호. 기차역 이름이 참 재미있군요. 모두 거리로 표시되어 있으니.”
“역 이름이 옛 잉카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느낌이 들어 어쩐지….”
“참 좋은 아이디어 같아요. 쉽게 거리를 파악 할 수도 있고.”

 

마추픽추로 가는 기차역은 쿠스코를 출발점으로 하여 모두 ‘KM 00 역’으로 명명되어 있다. 아마 거리로 역 이름을 지어 놓은 곳은 세상에서 이곳밖에 없지 않을까?

 

사람들은 역사도 없는 철길에서 그대로 배낭을 짊어진 채 내린다. 그 모습이 꼭 옛 잉카의 게릴라 반란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대 잉카인들은 이렇다 할 무기도 없이 맨 주먹으로 독립의 영혼을 불태우며 정글로 숨어들었을 것이다.

 

철길에서 내려니 우루밤바 강에 흘러가는 물소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몇 걸음 걷지 않아서 곧 강을 건너는 출렁다리가 나온다. 더욱 깊은 계곡 속으로 들어가는 외줄다리다. 우리는 마치 옛 잉카의 전사들처럼 출렁다리를 건너갔다.


 

 ▲.잉카의 길'로 가는 외줄 출렁다리를 건너며. 밑으론 우루밤바 강이 흐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