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171]티티카카 호수로 가는 길-돌멩이 세레를 받다

찰라777 2007. 2. 21. 21:57

티티카카 호수로 가는 길

 

성난 데모군중이 던진 돌에 버스 유리창이 깨지고....

 

 

▲페루 전통무용하고 있는 원주민들 

 

 

티티카카로 가는 길을 기차로 갈 것인가 버스로 갈 것인가?
기차는 일주일에 4편이 출발하는데 기차를 타려면 이틀을 더 기다려야 한다니 버스로 가는 편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버스는 회사마다 출발시간이 다르다.


비바라틴 지배인은 기차는 기다려야 하고 버스 길이 막혔다고 한다. 우리는 마추픽추에서 도착한 다음 날 티티카카로 가는 기차표나 버스표를 지배인에게 부탁을 해 놓았었다. 푸노로 가는 길 어디서엔가 지방 사람들이 데모를 하며 길을 막고 있다는 것. 마치 우리나라에서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통행을 방해하듯이 정부에 무언가를 요구하며 차량의 통행을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럼 언제쯤 길이 열리지요?”
“글쎄요.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비바라틴에 머물고 있는 이군도 푸노로 가는 버스가 길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음날 쿠스코 중앙시장에서 쇼핑을 하고 돌아오는데 비바라틴 지배인이 부른다.

 

“길이 열렸데요. 오늘 밤 10시에 버스가 출발을 할 수 있답니다.”
“그럼 저녁에 출발하는 버스표를 준비해주세요.”

 

오늘밤에는 ‘페냐’로 가서 잉카의 전통 민속 공연을 보기로 되어 있었다. 페냐는 잉카 민속음악인 ‘폴클로레’를 들려주는 라이브 하우스다. 공연은 7시에 시작하여 9시경에 끝나므로 미리 짐을 싸 놓았다가 떠나면 된다.

 

페냐에는 많은 사람들이 벌써 입장해 있었다. 이곳은 폴클로레를 풀 코스로  즐길 수 있는 쿠스코 문화 센터다. 잉카의 전통 복장을 한 남녀들이 아르티프라노(고산지대)의 폴클로레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잉카의 악기는 대부분 타악기와 피리종류다. 그 중에서도 짧은 대나무와 긴 대나무를 차례로 가로로 묶어서 만든 안타라Antara의 소리는 가장 심금을 울린다. 안타라도 크기에 따라 칠리Chili, 토요Toyo, 산포냐Zanpona가 있는데 종류에 따라 소리도 다르다.

 

챠스키 복장을 한 소년이 소라고동 나팔인 푸투투Pututu를 불며 뛰어나온다. 흙으로 구어 만든 오카리나Ocarina 소리가 애간장이 끊어지게 한다. 동물의 뼈다귀로 만든 작은 피리 케나케나가 가슴을 파고든다. 완카르Wancar와 틴야Tinya라는 북이 쿵쿵 울리며 흥을 돋운다. 그런가 하면 판초 차림으로 연주하는 차랑고 소리는 잉카의 리듬을 타게 한다. 잉카의 춤과 노래, 그리고 폴클로레 음악에 젖어드는 시간이다. 페냐에서 나와 비바라틴에 도착하니 9시다.

 

“그동안 신세 많이 졌어요.”
“별 말씀을. 푸노에 있는 제가 아는 여행사에 두 분의 도착 시간을 알려 놓았어요. 아마 마중을 나올 겁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요. 저희들은 바람 부는 대로 정처 없이 떠다니는 방랑자거든요.”

 

비바라틴의 지배인과 작별을 고하고 버스터미널로 향한다. 버스는 10시 반이 넘어서야 출발한다. 언덕에 올라서니 쿠스코 시내가 깜빡거리는 전등불속에 점점 멀어져 간다.

 

지구의 배꼽이라는 쿠스코. 태양의 아들이라고 자처하는 그들은 자신들의 탯줄이 태양과 연결되어 있고, 그 탯줄을 묻은 땅을 배꼽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한 밤중에 쿠스코를 떠나게 되니 마치 정복자들을 피해 도망을 가는 잉카인이 된 느낌이 든다. 탯줄을 묻은 삶의 보금자리를 버리고, 생명을 부지하기 위하여 멀리 도망을 가야만 했던 잉카인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안내서에 의하면 쿠스코에서 푸노까지는 기차로는 12시간, 버스는 15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기차는 오전 8시에 출발을 하고, 버스는 대부분 밤에 출발한다. 4000m의 고지대를 달려가야 하므로 오늘 밤에도 고생을 각오해야 한다. 이틀을 더 기다려 낮에 달리는 고산열차를 타고 창밖에 비치는 안데스의 풍경을 바라보면서 가면 좋을 텐데,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느니 밤 버스를 타고라도 출발을 하자는 아내의 의견을 존중하여 밤 버스를 탔다.

 

버스는 덜덜거리며 안데스의 칠흑 같이 어두운 고산지대를 달려간다. 너무 어두워 밖은 모두 까만색 일색이다. 눈을 감고 잠을 청했지만 쉽게 잠이 오질 않는다. 아내 역시 다소 고통스러운 표정을 하며 고개를 의자에 기대고 있다. 그러나 커브가 심한 비포장도로는 승객들의 몸을 가만 두지 않고 도리질을 하게 만든다. 새벽 1시가 넘어 겨우 잠이 들었나 보다.

 

▲성난 데모군중이 던진 돌에 깨진 버스 유리창

 

 

갑자기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쨍 하고 들려 소스라치게 잠을 깼다. 유리창을 뚫고 돌멩이가 날아 들어온다.

 

“이크, 이게 뭐야!”
“모두 엎드리세요!”
“여보, 작은 배낭으로 등에 가리고 엎드려요!”
“이거 큰 일 났네!”

 

차장이 일어서서 엎드리라고 소리를 지른다. 승객들이 모두 의자 밑으로 고개를 들이 박고 엎드린다. 돌멩이는 계속 날아온다. 우려했던 데모가 아직 끝나지 않았던 것이다. 버스는 잠시 주춤거리다가 더욱 속력을 낸다. 버스는 비포장도로에서 널뛰기를 하듯 덜커덩거린다. 언덕위에서 돌멩이는 계속 날아온다. 피용 피용~ 돌멩이는 버스의 지붕을 총알처럼 때리거나 유리창을 부수고 안으로 날아든다. 어떤 승객은 등에 돌멩이가 맞아 “아야!” 하고 소리를 낸다. 전쟁터가 따로 없다. 이게 전쟁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한 참을 달려서야 우리는 돌멩이 세례를 피할 수가 있었다. 버스 차장이 스페인어로 뭐라고 하는데 잘 알아들을 수가 없다. 아마 지방의 군중들이 정부의 정책에 불만을 삼고 시위를 하는 그런 내용인 것 같다.

 

그래도 날이 샌다. 안데스의 봉우리들이 손에 닿을 듯 스쳐 지나간다. 라마의 무리들이 풀을 뜯다가 놀란 눈을 하며 산등성이로 뛰어간다. 돌멩이 세례가 언제였느냐는 듯 창밖의 풍경은 평화롭기만 하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시간이라는 파도 위에서는 저항을 하지 못한다. 시간의 파도 위에서 잠시 주춤거리다가 과거 속으로 묻혀 버린다.

 

▲바다처럼 넓은 티티카카 호수(해발 4000m)

 

“와, 호수다!”

 

누군가가 소리를 질러 창밖을 내다보니 티티카카 호수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호수는 햇볕을 받아 반짝거리며 바다처럼 물결이 출렁거리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티티카카에 도착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