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추픽추의 "굿바이 보이"
▲ 마추픽추에서 우루밤바 강으로 내려 가는 뱀처럼 꼬불꼬불 한 길을 버스는 돌아가고
굿바이 보이는 가로질러 내려간다.
“여보, 그만 일어나요?”
“응?”
“여기가 어딘데 등만 대면 잠을 자는 당신의 그 솜씨는 알아주어야 해요.”
“어? 내가 잠이 들었나?”
누워있는 사이에 잠시 잠이 들었나 보다. 시계를 보니 12시가 다 되어 간다. 젊은 봉우리가 나를 굽어보고 있다.
“젊은 봉우리도 올라가지 못했으니 슬슬 걸어 내려가는 것이 어때요?”
“그거야 좋지. 내려가는 길이니…”
입구의 짐 보관소에서 배낭을 찾아 메고 우리는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 내려갔다. 뱀처럼 구불구불한 이 길은 발견자 빙엄의 이름을 따서‘하렘 빙엄 도로’라고 부른다. 도로는 13번이나 360도로 회전하며 구비를 진다. 미니버스가 먼지를 일으키며 비포장도로를 덜덜 거리며 지나간다. 저 미니버스를 타면 20분이면 역에 당도할 수 있다.
우리는 도로를 따라가지 않고 중간 중간 계단으로 만들어진 오솔길을 걸어 내려갔다. 밑으로 내려 갈수록 우루밤바 강물이 흘러가는 소리가 시원스럽게 들린다. 산들의 절벽은 점점 높아 보이고 사방을 둘러보아도 보이는 것은 울창한 나무한 산뿐이다. 필시 하렘 빙엄도 이 길을 통해서 마추픽추에 도달했을 것이다. 그의 기록에 의하면 이 지역은 뱀이 많다고 했다.
그 때 갑자기 두 명의 소년들이 오솔길을 뛰어 내려간다. 이름만 들었던 ‘굿바이 보이’들이다. 마추픽추에서 버스가 출발할 때에 손을 흔들며 ‘굿바이’하고 인사를 하던 소년들이다. 그들은 버스가 역을 향해 출발할 때에 함께 뛰어서 내려간다.
버스는 커브를 따라 내려가고 소년은 숲 속의 지름길을 뛰어 내려간다. 그리고 커브를 하나 돌 때마다 나타나서 버스를 통과하기를 기다렸다가 ‘굿바이’하고 소리를 지른다. 버스에 탄 사람들은 그 때마다 탄성을 지른다. 그리고 마침내 소년은 버스 보다 먼저 밑에 도착을 하여 잠시 세워주는 버스에 올라 인사를 한다.
버스에 잇는 관광객들은 소녀의 건각을 예찬하며 몇 푼의 헌금을 소년에게 던져 준다. 아무래도 처연하게만 보이는 잉카의 모습이다. 그들의 선조들 챠스키들은 왕명을 받들고 하루에 몇 백 km를 달려가지 않았던가. 하기야 저 구불구불한 길을 버스가 조금 느리게 돌아가고 소년은 지름길로 뛰어내려 가면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멋진 연출이 가능하기도 하지 않을까?
“느리지만 우리도 굿바이 소년이 되어볼까?”
“아서요. 그러다간 다쳐요 다쳐! 저걸 아무나 하나요?”
부리나케 뛰어가는 잉카의 소년 흉내를 내며 내가 달려갈 자세를 취하자 아내가 말린다. 그러나 어쩐지 굿바이 소년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슬픔의 그늘이 떨어지고 있다. 잃어버린 공중도시! 그리고 잃어버린 잉카의 유산은 어디에 있는가!
뱀의 길을 따라 내려오니 우루밤바 강물이 거세게 흘러 내리고 마추픽추는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천혜의 자연요새다. 아무도 발견할 수 없었던 공중도시라는 말이 더욱 실감나게 한다.
▲마추픽추 아래 우루밤바 강에서 올려다 보면 마추픽추는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다리를 건너고 우루밤바 강을 따라 푸엔테 루이나스 역에 도착을 하니 먼 과거의 잉카 시대에서 문득 현실로 돌아온 느낌이 든다. 역사에는 기념품 가게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고 선로를 따라 음식점들이 들어서 있다. 엘 톨도 음식점에 도착한 우리는 잉카의 맥주 한잔에 늦은 점심을 먹었다. 맥주 한 잔에 잉카의 전설이 녹아내린다.
▲푸엔테 루이나스 역 철길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맥주한잔에 여독을 풀다. 시장 풍경이 그런대로 돌아 볼만하다.
음식점은 철길을 따라 늘어서 있다. 철길 아래로 시장이 형성되어 있고 갖가지 기념품을 판다. 점심을 먹고 시장을 배회하다가 한국에서 온 여행자들을 만난다. 오랜만에 만난 한국인들이 너무 반갑다. 15일간의 패키지 남미 여행을 떠나온 여행자들이란다. 오랜 여행 길에 고국이 그립고 한국말에 배가 고픈 아내는 그들과 인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눈다.
"아니, 이 나이에 두 분만 이렇게 여행을 다니시나요?"
"네."
"와, 대단하십니다. 한국을 떠난지 얼마나 되셨나요?"
"3개월이 다 되어가고 있어요."
"아이고, 피곤하지 않으세요? 우린 10일째인데 벌써 피곤해서 죽겠는데."
"피곤하기는 하지요. 그러나 바쁜 패키지여행과는 달리 슬슬 다니니 견딜만 합니다."
우리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자고 하는 분이 있어 함께 포즈를 취해 본다. 열차시간이 되어 그들과 헤어지자니 일순간의 만남이지만 마음이 착찹해진다. 협괴열차는 빽 기적소리를 지르며 쿠스코를 향해 서서히 출발한다. 깊은 계곡을 달려가는 기차가 마치 굿바이 소년 같다는 느낌이 든다. 아듀, 마추픽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