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국경마을 탐보 퀘마도와 충가라를 넘다
라파스 엑서더스
▲아침 일찍 라파스를 떠나며 바라본 시내 풍경. 이것은 분명 하나의 엑서더스다!
이윽고… 버스가 터미널을 출발하여 복잡한 라파스의 시내를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도대체 몇 번 만에 버스가 제대로 출발을 하는가. 이것은 분명 하나의 극적인 엑서더스, 탈출과도 같은 것이다! 오늘 아침에는 마리나가 터미널까지 나오지 않았지만 호텔 앞에 라디오 택시를 불러서 안전하게 타고 가도록 배려를 해 주었다. 천사 같은 사람들… 우리에게는 눈물이 나도록 고마운 사람들이다.
아침 6시 30분. 라파스 버스터미널. 칠레의 'Tur Bus'는 정시에 출발을 한다. 볼리비아 버스와는 달리 칠레 버스는 깨끗하고 운전수와 차장도 복장을 아주 깔끔하게 차려 입고 있다. 뭔가 정리정돈이 잘되어 있고, 버스의 엔진소리조차 틀리는 것 같다. 고장이 나지 않고 목적지까지 잘 가리라는 믿음이 간다.
▲버스는 달팽이처럼 돌돌 감긴 길을 따라 해발 4km의 고원으로 올라간다.
버스는 달팽이처럼 돌돌 감긴 길을 돌아 커다란 원을 그리면서 마치 블랙홀 같은 라파스 시내를 빠져 나간다. 시내를 빠져나가는 길이 가파르다 보니 점점 고도를 높여가며 엘리베이션을 하고 있는 것이다. 밤에는 은하계의 별처럼 아름답던 엘알토의 불빛이 날이 밝은 아침에는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진드기처럼 앙상하게 드러나 보인다. 이처럼 풍경은 때와 느낌에 따라 달라져 보인다.
해발 4km의 고원으로 올라온 버스는 황량하기 그지없는 벌판을 달려간다. 칠레 아리카로 통하는 2차선 포장도로는 곳곳이 패어있고 중앙선도 없다. 라파스에서 500km 떨어진 태평양에 위치한 아리카까지는 버스로 10시간 정도 걸린다.
▲칠레 아리카로 가는 길은 황량하기 그지 없는 고원위의 험한 길이다.
아리카는 1879년 칠레와 벌어진 ‘태평양 전쟁’으로 바다에 접한 항구를 잃어버린 볼리비아의 영토다. 사실 볼리비아는 석유와 천연가스, 구리 등 풍부한 천연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이면서도 남미에서 가장 못사는 전락하고 만 나라다. 그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바다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1825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한 이후 200여 차례의 쿠데타로 190번이나 정권이 바뀔 정도로 불안한 정치가 더 큰 요인이 될 수도 있지만 어쨌든 국제교역의 핵인 항구를 잃어버린 손실은 매우 크다. 티티카카호수에 접한 티키나 마을에는 바다를 지키다가 전사한 에두아르도 아바로마의 동상이 세워져 있고, 동상 앞에는 ‘볼리비아는 바다로 가는 길을 요구한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을 정도로 바다를 되찾으려는 염원이 간절하다. 때문에 볼리비아는 바다는 없지만 티티카카 호수에 5천명의 해군이 주둔하고 있다.
안데스의 국경마을 탐보 퀘마도와 충가라
버스는 점점 고도를 높여간다. 도로에는 가끔 지나가는 대형트럭이 위태롭게 중앙선을 스치고 지나갈 뿐 자동차도 구경하기가 힘들다. 어쩌다가 양이나 소를 몰고 가는 원주민들이 보이고 구아나코나 라마들이 풀을 뜯다가 긴 목을 쳐들고 지나가는 버스를 구경한다. 그렇게 한 나절을 달려가는데 버스차장이 볼리비아 측 국경 검문소에 도착을 하였다고 말하며 여권을 들고 모두 내리라고 한다. 라파스에서 330km 떨어진 탐보퀘마도 Tambo Quemado 마을에 도착한 것이다.
▲볼리비아 측 국경마을 탐보 퀘마도 마을을 넘어가며(해발 4660m)
버스에서 내려 한발자국 움직이는데도 숨이 찬다. 탐보퀘마도는 해발 4660m 달하는 고지대다. 10여 채의 원두막 같은 집이 있고, 이민국 사무소, 세관이 있는 작은 마을에는 노점상들이 앉아서 기념품을 팔고 있다. 우리는 간단하게 출국절차를 밟고 볼리비아 국경을 통과한다. 이번 여정 중 우리를 가장 힘들게 했던 나라였지만 막상 떠나려고 하니 아쉬운 생각이 든다.
“여보, 우리를 그토록 힘들게 했던 볼리비아 땅도 막상 떠나려고 하니 아쉬워 지는구려.”
“그렇지만 저는 좋기만 한데요.”
“허허, 그래도 볼리비아 국경에서 기념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볼까?”
“그거야 좋지요.”
우리들을 가족처럼 돌보아 주었던 밀렌카 모녀와 잉카식당의 최보선 여사가 눈에 어른거린다. 심지어 우리를 괴롭혔던 택시강도까지도 이젠 한 장의 추억거리로 새겨지고 있다. 세상일은 지나고 나면 나쁜 일도 좋은 일도 다 추억의 한 장으로 남기 마련이다.
▲칠레 측 국경마을 충가라에 있는 라고 충가라(해발 4900m)
볼리비아 국경을 지나 5km 정도를 가니 국경검문소 충가라Chungara에 도착한다. 충가라는 볼리비안 국경보다 더 높은 해발 4900m에 위치하고 있다. 칠레의 국경검문소는 매우 까다로웠다. 짐을 모두 내려서 풀어보고 하나하나 엄격하게 검사를 한다. 입국 스탬프를 찍어주는 절차도 매우 느리다.
줄을 서서 내 차례가 되어 여권을 내밀자 세관원은 내 여권을 한참동안 이리 저리 들여다보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하며 어디론가 전화를 건다. 그리고 다른 세관원이 오더니 내 여권과 아내의 여권의 들고 나가버린다.
“아니, 왜 그러지요?”
“글쎄, 나도 모르겠네.”
세관원에게 이유를 물으니 밖에 나가 부를 때까지 무조건 기다리라고만 한다. 나는 불안 해 하는 아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니 코앞에 만년설에 뒤덮인 산이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다. 검문소의 바로 옆에는 충가라 호수Lago Chungara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호수에는 플라밍고들이 한가로이 먹이를 쪼아 먹고 있다.
“아니, 이곳에도 플라밍고가 있나 봐요!”
“아마, 저 호수가 소금호수임에 틀림없을 거야.”
호수 가까이 가서 손으로 물을 떠서 맛을 보니 역시 매우 짠맛이 난다. 플라밍고는 소금호수에서 번식하는 플랑크톤을 먹고 산다. 태양이 작열하는 안데스의 산맥은 역시 거친 바람이 불고 있다. 황량한 사막지대이지만 산에서 녹아내린 물이 5,000m 고지에 호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라고 충가라에 서식하고 있는 홍학 플라밍고
볼리비아 쪽 지역에는 볼리비아에서 가장 높은 산인 볼칸 사자마 Volcan Sajama(해발 6542m)을 중심으로 사자마 국립공원Parque Nacional Sajama이 펼쳐져 있고, 칠레 쪽에는 라쿠카 국립공원Parque Nacional Lauca이 이어져 있다. 화산지대인 이 지역은 온천과 간헐천이 수없이 솟아나고 있다. 소금호수에는 플라밍고 일종인 홍학과 물새, 안디언 갈매기, 콘도르들이 살고 있고, 라마, 알파카, 비쿠냐, 사슴, 여우들이 살고 있다. 그러나 이들 동물들은 생김새가 비슷비슷하여 구별하기가 어렵다.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데 한 참 만에 우리 이름을 호출하여 데스크로 가니 세관원이 마침내 우리 여권에도 스탬프를 찍어 준다. 내가 왜 그렇게 늦느냐고 되물었더니, 그는 자기가 근무하는 동안 한국인이 이 국경을 넘는 일이 처음 있는 일이라서 비자가 면제 되어 있는지 조회를 하느라고 늦었다고 말한다.
하기야 우리 같은 배낭족이나 이 험난한 국경선을 넘어가지 그 누가 이 국경을 넘어가랴. 볼리비아로 들어가는 여행객들도 드물거니와 거의 모든 여행객들이 비행기로 안데스 산맥을 넘어 칠레로 가기 때문에 그 세관원의 입장도 이해가 갈만하다.
▲안데스 산맥에 서식하고 있는 구아나코. 라마, 비쿠냐와 모습이 비슷하다
국경을 넘자 이제 아리카로 가는 급격한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아슬아슬한 절벽을 타고 곤두박질을 하며 내려가다 보니 오금이 저려 그만 오줌이 나올 것만 같다. 마치 행글라이더를 타고 급강하를 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여행은 때 아닌 곳에서 스릴과 재미를 만끽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지금이 바로 그렇다. 칠레의 국경선에서부터는 해발 5000~6000m의 안데스 산맥이 가파른 급경사를 이루며 갑자기 뚝 떨어지기 시작한다.
▲지금도 연기를 품어내고 있는 안데스의 활화산. 언제 푹발을 할지 모른다.
이곳 안데스 산맥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정경들이 펼쳐지고 있다. 화산 연기가 타오르는 산이 바로 가까이에 보이는가 하면, 주변은 풀 한 포기 없는 사막과 같은 메마른 지대다. 절벽을 거의 다 내려와 물이 흐르는 골짜기에 이르러서야 푸른 색깔의 나무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푸른 계곡을 지나가니 짠 바다 냄새가 코를 찌른다.
▲풀 한포기 없는 안데스의 사막지대
▲낮은 계곡으로 내려가자 드디어 초원이 조금식 보이기 시작한다
“바다냄새가 나는군요!”
“드디어… 태평양에 도착을 했군!”
우리는 마침내 칠레 최북단의 도시 아리카에 도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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