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라파스에서 만난 수호천사(1)-호텔 컨티넨털의 두 모녀

호텔 컨티넨털의 두 모녀

 

▲라파스  호텔 컨티넨텔을 운영하고 있는 우리들의 수호천사 밀렌카의 부모(좌)와 밀렌카(우).

‘신의 손길’은 아직 우리를 저버리지 않았나 보다.

라파스에 도착을 하자마자 만난 택시강도란 가혹한 운명의 화살이 우리를 엄청난 충격과 고통을 안겨주어 여행을 그만 두느냐, 계속하느냐 하는 혼돈스런 ‘주저’를 안겨주었지만, 반면에 고통스런 여행자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수호천사들을 만났으니 말이다. 볼리비아에서 첫 번째로 만난 천사가 바로 호텔 컨티넨털의 두 모녀 밀렌카Milenka와 마리나Marina이다.

호텔 컨티넨털은 밀렌카의 아버지가 사장이고 그녀의 어머니와 딸인 밀렌카가 함께 운영하는 작은 호텔이다. 남미의 작은 호텔들이 다 그러하듯 이름만 호텔이지 사실은 우리나라 모텔보다 못한 호스텔 수준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만난 밀렌카와 마리나는 하늘에서 특별히 파견된 수호천사들처럼 우리들을 보살펴주고 어루만져준다. 그것은 강동이 넘치는 ‘신의 손길’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강도를 만날 때도 있지만 이렇게 친절한 사람도 만난다. 리마에서는 레스토랑에서 아내의 약이 든 작은 배낭을 도둑을 맞았으나 페루의 관광경찰 마르틴Martin의  보살핌으로 아내의 약을 다시 구하여 여행을 계속 할 수 있었는데, 이곳 라파스에서는 천사와 같은 밀렌카 가족을 만나게 되었으니 세상에 죽으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다. 우리가 전생에 택시강도에게 빚을 졌다면 밀렌카 가족은 전생에 우리에게 빚을 졌을까?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자. 어쨌든 아내는 한시 바삐 볼리비아를 떠나자고 한다. 론리 플래닛 가이드북을 보니 칠레 아리카로 넘어가는 버스는 8시간이 걸리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는 72시간이나 걸린다. 페루로 가는 노선은 몇 개가 있으나 이미 여행을 한 나라이므로 다시 갈 필요는 없다. 우리들의 당초 계획은 라파스에서 포토시를 거쳐 우유니 사막에서 칠레 아타카마사막으로 넘어가려고 했었다.

그러나 아내는 마치 영화 '프루프 어브 라이프 Proof of Life' 인질처럼 한 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 밖에 없는 모양이다. 아내의 의견대로 몸서리쳐지는 라파스를 한 시라도 빨리 탈출(?)하기 위해 일단 여기서 가장 가까운 칠레 아리카로 넘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는 칠레로 넘어가는 버스편을 알아보기 위해 호텔 프론트로 내려갔다. 프론트에는  마음씨가 좋아 보이는 여직원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맞이한다. 타원형의 얼굴에 마치 오누이 같은 다정한 표정이다.

“여기서 칠레의 아리카로 넘어가는 버스가 있나요?”

“아, 잠시 만요. 시간표를 한번 체크를 해볼 게요… 음, 내일 오전 6시 30분, 7시 30분 그리고 12시 30분에 출발하는 버스가 있군요.”

“그럼 지금이라도 터미널에 가면 버스표를 살 수 있을까요?”

“오늘은 너무 늦었고요… 내일 아침 일찍 나가면 표가 여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 때 아주머니 한분이 2층에서 내려온다. 그녀를 본 순간 나는 고향의 낯익은 아주머니를 만난 기분이 든다. 옅은 갈색 톤의 파마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다소 뚱뚱한 몸매에 웃음 띤 얼굴은 어쩐지 고구마처럼 친근하고 포근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한다.

“저희 어머님이세요.”

“아, 그래요.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온 초이라고 합니다.”

“오, 아주 먼 나라에서 오셨군요. 마리나에요. 만나서 반가워요!”

“네, 여기선 아주 먼 곳이지요. 밀렌카, 아침 7시 30분차가 좋겠습니다. 우리가 그 시간에 늦지 않게 떠나도록 좀 깨워 주십시오.”

“염려 마세요. 아침에 일찍 깨워드리지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어, 부인은 좀 어떠신가요?”

밀렌카가 근심어린 표정을 지으면서 나를 바라본다. 호텔에 들어 올 때 눈이 퉁퉁 붓도록 울고 있었던 아내를 보았던 것.

“아, 네… 시간이 좀 지나면 괜찮아지겠지요.”

“혹,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요?”

“그게… 사실은 라파스에 도착하자 말자 택시강도를 만나 수중에 현금을 몽땅 털리고 말았거든요.”

“오, 마이 갓!”

밀렌카와 그녀의 어머니 마리나는 동시에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정말 미안하군요. 라파스에서 그런 일을 당하다니… 요즈음 페루 인들이 볼리비아로 넘어와서 그런 좋지못한 행동을 한다고 들었는데…”

“페루 인들이요?”

“네, 신문에서 보았어요. 어쨌든 라파스에서 그런 끔찍한 일을 당하다니 정말 미안하군요.”

“아, 아닙니다. 할 수 없지요. 그런데… 경찰에 신고를 하고 싶은데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기꺼이 도와 드리지요. 그러나 경찰에 신고를 하더라도 그들을 잡기는 아주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도 일단은 경찰에 신고를 하고 싶군요.”

“제가 일단 경찰서에 전화로 신고를 해드리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 근처에 현금을 찾을 수 있는 은행의 ATM 머신이 있나요? 수중에 현금이 한 푼도 없어서요…”

“네, 건너 광장에 가면 있긴 있는데, 저녁이라 위험하니 내일 아침에 가서 찾으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지만 당장 저녁을 사먹을 돈이 없어서요.”

“걱정 마세요. 여기, 제가 잔돈을 좀 빌려드리지요.”

“아이고, 너무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밀렌카는 안타까운 표정을 가득 지으며, 20볼리비아노를 나에게 내민다. 밀렌카의 어머니 마리나는 더욱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밀렌카가 준 돈을 들고 길거리에 나가서 빵과 우유를 샀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가 아내에게 내밀었지만 아내는 도대체 먹을 생각을 하지 않고 누워만 있다.

“인슐린을 맞고 약을 복용하려면 뭘 좀 먹어야 하지 않겠소.”

내가 우격다짐으로 다그치자  아내는 겨우 빵 한 조각에 우유를 마시고는 다시 돌아눕는다.

“일단 경찰에 신고를 해달라고 했어. 그러나 큰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아.”

“…….”

“내일 아침 칠레 아리카로 가는 버스가 아침 7시 반에 있다고 하니 그 차를 타고 칠레로 넘어가자고.”

“……”

침묵만 지키고 있는 아내. 답답하다. 시간이 가지 않는다. 긴 밤이다. 세상이 얼음처럼 차갑게만 느껴진다. 마치 홍수가 지나간 땅에 빙하가 덮치듯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이런생각 저런 생각으로 상념에 젖어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새벽녘에야 가까스로 잠이 들었다.

떠나는 것도 마음대로 안 되다니…

 

▲라파스 메인 버스 터미널 Terrestre

잠시 눈을 부친 것 같은데, 누군가가 우리들의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어보니 밀렌카의 어머니다. 시계를 보니 아침 6시 가 좀 넘었다. 그녀가 약속대로 우리를 깨우러 온 것이다. 어제 밤에 우리는 배낭도 풀지 않고 그대로 두었기 때문에 세수만 하고 배낭을 멘 채 마리나를 따라 나섰다.

마리나는 호텔 문 앞에 택시를 대기시켜놓고 있었다. 그러나 택시만 보아도 움찔해진다. 마리나는 긴장된 우리를 바라보더니 우리와 함께 버스터미널까지 동행을 해주겠다고 한다. 마리나와 함께 택시를 타고 터미널에 도착을 하니 6시 30분이 조금 지나가고 있다. 마리나가 매표소로 가서 티켓을 문의하자 7시 30분 버스는 일정이 취소가 되어 버렸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아내 표정은 다시 울상으로 변하고 만다.

다음 버스는 12시 30분에 있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12시 30분에 출발하는 표를 샀다.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터미널에서 기다리겠다는 아내를 겨우 달래서 호텔로 들어왔다. 그곳에서 기다리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기 때문이다. 호텔에서 휴식을 취한 우리는 다시 12시에 터미널로 갔다. 이번에도 밀렌카의 어머니 마리나가 동행을 하여 우릴 도와주었다. 그러나 12시 30분에 출발을 하기로 한 버스가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1시경에 출발을 한다고 한다. 버스에 무슨 문제가 있나보다. 이 버스도 제대로 출발을 할 수 있을는지 심히 염려가 된다. 우리는 마리나와 함께 터미널에 있는 식당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점심을 먹은 후  버스에 올랐다.

“마리나. 정말 고마워요! 우린 결코 당신을 쉽게 잊지를 못할 거요.”

“천만에요. 남은 여행을 무사히 끝내길 기도할게요.”

“감사 합니다!”

마리나의 손을 잡고 아내는 눈물까지 글썽인다. 짧은 만남, 아쉬운 이별! 우리는 버스에 올라 마리나에게 손을 흔들며 이별을 아쉬워했다. 마리나도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계속 손을 흔들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모든 승객이 좌석에 앉아 버스가 출발 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버스는 엔진을 부릉거리기만 할뿐 도대체 움직이질 않는다. 마리나는 우리가 출발하는 것을 끝까지 보려는 듯 창밖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운전수가 엔진 뚜껑을 열고 뭔가 손을 보며 부산을 떤다.  어딘가 단단히 고장이 난 모양이다. 아내와 나는 마음이 초초해져 가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태평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아마 이런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모양이다. 이윽고 버스차장이 올라오더니 이 버스는 고장이 나서 출발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아내는 다시 울음보를 터트리며 볼멘소리로 말한다.

“떠나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게 하다니…”

“정말 할 말이 없군.…”

아내는 다른 버스를 알아봐서라도 오늘 중으로 라파스를 떠나자고 한다. 마리나가 끝까지 우리 곁에 남아서 마치 자기일처럼 미안해 하며 우리들을 보살펴 준다. 그러나 마리나와 함께 아무리 터미널을 뒤져 보아도 오늘 중으로 칠레로 넘어가는 버스는 없다. 결국 우리는 다음날 아침 6시 30분에 출발하는 칠레 버스인 ‘ Tur Bus’ 티켓을 구입한 뒤 만신창이가 된 심신을 안고 다시 호텔 컨티넬탈로 돌아왔다.

도대체 버스터미널과 호텔 사이를 몇 번을 들락거리는가! 라파스를 떠나는 것이 이다지도 어렵단 말인가. ‘평화’ 라는 뜻을 가진 라파스는 우리에게 차라리 ‘지옥’과도 같은 도시라는 생각이 든다. 버스까지 이렇게 엿을 먹이다니… 내일도 떠날 수 있을는지 의문이다.

“참, 미스터 초이! 이 근처에 한국음식점이 있어요.”

“여기서 가까운가요?”

“네, 아주 가까워요. 잉카식당이라는 곳인데 5분정도 걸어가면 됩니다.”

“아, 그래요! 그럼 오늘 저녁은 거기서 먹어야겠군요.”

“그러세요. 아내의 마음도 달랠 겸.”

“고마워요. 밀렌카!”

밀렌카는 마치 우리들의 아픈 마음을 속속들이 읽고 있는 듯 한국음식점까지 안내 해주는 친절을 베푼다. 두 모녀에게 아무리 감사하다는 말을 해도 부족 할 것 같다. 반가운 마음으로 방으로 들어가 지쳐 누워있는 아내에게 한국음식점으로 가자고 했지만 아내는 모든 게 귀찮은 모양이다.

“누어만 있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안치 않소.”

“그냥 아무데도 가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여보, 그러지 말고 기분도 전환 할 겸 잠시 산책을 한 후 한국음식점에 저녁을 먹자고.”

“제발, 날 이대로 그만 내버려 두세요.”

“은행에 가서 돈도 좀 더 찾아야 하는데… 그럼 나 혼자 나갔다 와?”

“은행이요? 혼자 가면 위험 할 텐데...”

“그러기에 함께 가자는 것 아닌가.”

나는 아내를 겨우 추스르고 달래서 밖으로 나왔다. 버스터미널에서 오늘 쓸 볼리비아노만 조금 찾아서 쓸 돈도 없었던 것. 그런데다 우리는 라파스 시내를 구경은커녕 탈출을 하려고만 했기 때문에 아직 아무데도 시내를 제대로 본 곳이 없었다. 그러나 저녁시간까지는 아직 해가 많이 남아있다.

 

 

밖으로 나오니 오후의 강열한 태양이 라파스의 거리를 찬란하게 비추이고 있다. 태양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온 세상에 공평하게 볕을 내리쬐어주고 있다. 우리는 밀렌카가 준 지도를 한 장 들고 오르락내리락 하는 라파스의 거리를 걸었다. 마치 우리나라 성남시의 상대원동과 하대원동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기분이 든다. 거리의 모습도  비슷하다. 여긴 영낙없는 상대원동과 하대원동 같아.

그러나 평지도 숨이 찬데 오름길은 더 숨이 차다. 거리는 이상한 물건을 파는 노점상들로 가득 차 있다. 보지도 듣지도 못한 묘한 물건들이 지천에 널려 있다. 저절로 호기심을 동하게 하는 거리다. 침울하기만 했던 아내도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거리를 걸으면서 점차 마음이 누그러지는 모양이다.

“저기 잉카식당이 보이는군!”

“그 한국식당 말인가요?”

“응. 좀 더 산책을 하다가 저녁에 저기 가서 한국음식을 먹으며 기분전환을 좀 하자고.”

“정말이네! 그렇게하지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