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우리들도 고향이 그립다. 고향을 떠나온지 벌써 몇 개월째인가. 우리는 방랑자처럼 지구촌을 표류하여 돌아오다가 이스터 섬까지 오게되었다. 어찌 고향이 그립지 않겠는가? 여행 중에 고향과 가족이 그리우면 한국의 하늘을 바라보곤 했다. 사람들은 고향이 그리우면 고향의 하늘을 바라본다.
만약에 모아이 석상들도 고향이 있다면 똑 같은 심정이리라. 모아이들이 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지 그 해답이 바로 이 아나케나 유적지에서 나왔다고 한다. 아나케나 유적지는 1978년에 복원이 되었는데, 그 때 석상들의 흥미로운 '응시'를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다.
'나우나우Naunau' 모아이들은 오랫동안 쌓인 모래 덕분에 잘 보존되어 있어서 석상들은 어제 넘어진 듯 상태가 아주 좋았고, 여기에서 매우 흥미로운 점이 발견되었다. 즉, 주먹 크기의 30점 가량 되는 산호가 부서진 석상들 근처에 흩어져 있었던 것.
산호들은 잘 다듬어져 있었고, 네 개의 조각들을 모아 맞추자 30cm 길이의 타원형 물체가 나타났다. 눈알의 홍채, 즉 원반형의 붉은 화산 응회암 덩어리를 넣을 수 있도록 가운데가 뻥 뚫려 있었고, 뒤쪽 윗부분에는 홍채를 끼우는 홈이 패어 있었다. 눈은 석상의 눈구멍에 딱 들어맞아서 아래쪽에 있는 홈에 끼우면 떨어지지 않도록 경사가 져 있다.
"모아의 눈은 별을 응시하고 있었다!"
부서진 산호를 모아 맞추던 세르지오 라푸는 모아이의 눈이 정확히 별을 응시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스터 섬의 모아이는 별에서 불시착한 외계인들이 만들었다는 에리히 폰 다니켄의 엉뚱한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모아이의 눈. 정말 자신의 고향인 별나라를 응시하고 있을까?
모아이 석상들이 모두 하늘을 응시하고 있는 것은 자신들이 타고온 UFO의 고장으로 불시착한 외계인들이 자신의 고향인 별나라에 가지못하게 되자, 고향의 별을 그리워하며 별을 바라보는 모아이 석상을 만들었다는 것.
또 어떤 사람들은 석상들이 '빚독촉에 좆기듯 근심 걱정이 너무 많아 허공을 응시'하고 있다고도 했다. 독자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 하신지? 의견을 한번 적어보면 재미있는 발상들이 나올법도 한데...^^
하여간 아후에 있는 모아이들은 다소간의 차이는 있어도 모두들 이런 모아이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원래 이스터 섬에는 산호가 없다. 그래서 섬사람들은 산호를 인근 해안에서 채취를 하거나 흑요석으로 눈을 만들었다고 한다.
아나케나 해변
△아나케나 해변에 있는 나우나우 모아이 석상. 이곳에서 모아이의 눈이 발견되었다.
'아나케나Anakena' 해변에 도착을 하니 백사장이 보이고 야자수 나무가 시원하게 드리워져 있다. 이스터 섬에서 처음으로 보는 모래사장과 야자수 나무다. 백사장에는 섬사람들이 수영을 즐기고 있다. 아이들의 조잘거리는 소리가 파도에 묻혀서 들려온다.
자동차를 세우고 나무 그늘로 들어가니 라파누이 원주민들이 그늘에서 고기를 구어 먹고 있다. 돌을 네모로 세워 장작으로 불을 지펴 그 위에 석쇠를 얹어 놓고 있었다. 그리고 석쇠 위에 감자 같은 것을 넙적넙적하게 썰어서 펼쳐 놓고 고기를 굽고 있었다. 라파누이들의 오랜 야생의 전통처럼 보인다. 고기 굽는 냄새가 아주 맛있게 풍겨온다.
아나케나 만은 호투 마투아 왕이 그의 일가족들을 데리고 처음으로 상륙했던 해안으로 알려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역대 호투 마투아 왕은 67개의 '롱고롱고 서판'(상형문자가 새겨진 나무 서판)을 가지고 왔다고 한다. 역대 왕들은 이 해변에 왕궁을 짓고, 롱고롱고를 배우는 학교도 있었다고 한다.
야자수 그늘을 따라 '나우나우Naunau' 석상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야자수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이 푸른 바다에 투영되며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일곱 개의 석상들이 마치 형제간처럼 다정하게 서 있다. 네 개의 석상들은 푸카오란 돌모자를 쓰고 있는데, 키가 작은 세 개의 석상은 목이 부러지거나 몸뚱이마저 일부가 달아나고 없다.
만고풍상을 겪은 듯한 나우나우 모아이들이 어쩐지 다정하게 보인다. 모자를 쓴 모습하며 손을 다소 곳이 배 아래로 모아놓고 있는 모습이 먼 태고시절의 할아버지 조상을 만난 느낌이 든다. '할아버지 저 왔어요.' '왜 그리 오랜만에 왔느냐?' 우리는 그렇게 무언의 대화를 주고 받았다.
△호투 마투아 왕을 기리는 모아이 석상. 석상 기단에는 '콘티키'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언덕에는 또 하나의 석상이 먼 하늘을 응시하며 외롭게 서 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가까이 다가가보니 석상은 원래는 매우 위엄이 있는 모습이었을 텐데 지금은 만고풍상을 겪어온 세월이 말해주듯 지쳐 보이는 모습이다. 이 석상은 이스터 섬의 초대왕인 호투마투아 왕을 기리는 석상이라고 한다.
석상 아래 기단에는 '콘티키'라는 글씨가 적혀 있다. 노르웨이 인류학자 토르 헤예르달이 이 석상을 복원하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콘티키'는 고대 남미에서 숭상했던 태양신의 이름이자 헤예르달이 페루에서 하이티까지 타고 항해를 했던 발사 뗏목의 이름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미 노르웨이 콘티 박물관에서 그가 타고 갔던 발사를 본 적이 있었다.
아이들의 티 없는 조잘거림 소리는 언제나 즐겁다. 그것은 파도와 바람-자연소리에 함께 어울려 들여오는 순백의 오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