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방랑/108일간의세계일주

아키비! 아키비! [동영상]

찰라777 2008. 1. 29. 08:08

테레바카에서 길을 잃다

제주도의 오름같은 초원

 

 

     △제주도 오름 같은 초원에서 아기 말과 엄마 말이 평화롭게 풀을 뜯으며 유희를 하고 있다.

 

 

스즈키 고물차는 아나케나 해변을 떠나 비포장도로를 덜덜거리며 달려간다. 이스터 섬에는 일본 산 중고차들이 많은데, 대부분 영화 '라파누이'를 촬영할 때 쓰다가 섬에 남겨두고 간 차들이라고 한다. 그래도 사륜구동차라 힘이 좋아 울퉁불퉁한 흙길을 잘도 간다.

 

황량한 초원은 영락없이 제주도의 오름 길을 닮았다. 아후 아키비 석상으로 가는 길은 아나케나 해변에서 섬의 중앙부를 가로 질러 가다가 우회전을 하는 것으로 지도에 표시가 되어 있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석상은 보이지 않는다. 파도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섬의 중심부의 상당히 높은 지대에 올라온 것 같은데, 어디를 보아도 아키비 모아이는 보이지 않는다.

 

"꽤 높이 올라온 것 같은데 아키비가 보이지 않지?"

"지도를 다시 봐요?'

 

 

△아무리 다시 눈을 뜨고 보아도 제주도의 오름같은 초원인데 우리는 길을 잃었다.. 

 

 

자동차를 세우고 숙소에서 로저가 준 요술 같은 지도를 펴들고 보았지만 간선도로만 굵게 표시되어 있고, 세부적인 길은 표시는 되어 있지 않았다. 우리는 이 작은 섬에서 그만 길을 잃어버리고 만 것이다. 물어 볼 사람도 없다.

 

언덕의 초원에서는 말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다. 말들은 길을 알고 있을까?

엄마 말이 아기 말을 데리고 초원에서 유희를 하며 풀을 뜯는다.

사랑스럽고 평화로운 정경이다.

 

세상의 사랑은 저 엄마 말과 아기 말에서 오는 거야.

먹을 것 쟁여 놓을 생각도 안 하고 초원에 난 풀을 그저 뜯어 먹으며 되니까?

말 들은 도대체 걱정이 없어 보여.

 

 

 △"저 말들에게 길을 물어볼까?." 초원에는 바람과 말밖에 없다.

 

 

"저 말들에게 길을 물어 볼까?"

"애기 말이 너무 귀여워요!"

"정말이군! 까짓 거 길을 잃으면 어때. 이게 진짜 여행의 진수가 아닌가?"

"길을 잃은 덕분에 우리가 잔디에서 편히 쉬는 군요."

 

사실 우리는 길을 잃고 나서 한가로이 쉬어가고 있다. 우리는 높이 올라온 김에 산 정상까지 가 보기로 했다. 정상으로 가는 길은 길이 아닌 초원의 둔덕이다. 자동차의 자국만 나 있는 그런 길. 이러다가 자동차가 고장이라도 나면 꼼짝없이 걸어가야 한다. 전화도 인적도 없으니 말이다. 그러나 힘센 스즈키는 정상까지 잘도 굴러 간다. 점점 시야가 확 트이고 보이는 건 감청색의 푸른 바다뿐이다.

 

"와, 정상이다!"

"오, 저 망망대해!"

 

 

젖꼭지에 부는 바람

 

△이스터 섬은 크게 세 개의 화산이 터저 나와 생긴 섬으로 그 모양이 마치  젖꼭지처럼 생겼다

 

 

길을 잃은 덕분에 우리는 이스터 섬에서 가장 높은 테레바카Terevaka 정상까지 오른 것이다. 탄탄하고 봉긋한 모양이 '팹스 오브 쥐라'(Paps of Jura, 쥐라 산맥의 젖꼭지라는 뜻으로, 젖꼭지 모양으로 늘어선 둔덕)와 비슷하다. 테레바카는 섬에서 가장 높은 봉분으로 해발 510미터나 된다. 구름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삼각형 모형을 이루고 있는 이스터 섬에는 테레바카를 중심으로 세 개의 젖꼭지가 있다. 동쪽에는 410미터의 포이케Poike, 남서쪽에는 라노 카우Rano Kau로 300미터 높이다. 세 곳이다 분화구가 터져 생긴 꼭지 점이다.

 

테레바카 정상에는 작은 분화구가 세 개나 있다. 바람이 세차게 분다. 바람은 풋풋하고 공기는 청청하다. 짙은 감청색의 바다는 잠에서 막 깨어난 듯 태곳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어딜 보아도 바다뿐이다.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감동은 저절로 한 줄 서사시로 변한다.

 

△섬사람들은 '새새람'이 되고 싶었다. 섬에 오면 누구나 한 마리 새가 되어 날고 싶으리라.

 

  

우리는 푸른 바다를 날아온

한 쌍의 새라네.

 

사방이 바다인데 어디로 갈까?

지친 날개 쉬어 가세

 

우리는 푸른 하늘을 날아온

한 쌍의 새라네.

 

 

구름이 손에 잡힐 듯 지척인데 갈 곳은 멀다. 날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사방이 바다뿐인 이곳에서 섬사람들은 새고 되고 싶었겠지. 날개를 달고 푸른 하늘을 마음껏 날고 싶었겠지. 그래서 사람들은 해마다 '새사람bird man'을 뽑고, 새 그림을 그리고, 새 모형의 글자를 썼겠지.

 

바다, 하늘, 구름, 바람, 새, 돌로 만든 그리고 모아이 석상……

이스터 섬은 그런 곳이다. 섬은 이 다섯 개의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 거기에 하나를 더 한다면 '수수께끼'란 단어다. 지상최대의 수수께끼가 아직 풀리지 않은 채 잠을 자고 있다.

 

 

 

 

 

그대가 바람이면 나도 바람…

 

아무도 없는 곳에

바람이 붑니다.

 

영원의 바다에서 탄생한 바람은

파도를 일으켜 소리를 내고

하늘과 구름 사이를 오가며

내 영혼에 불을 지핍니다.

 

나는 한 마리 새가 되어

바람 따라

이 세상 끝까지 가고 싶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

바람이 붑니다.

 

그대가 바람이면 나도 바람…

 

 

 

 △길을 잃은 덕분에 우리는 테레바카 정상에 누워 편히 쉴 수있었다. 

여행은 길을 잃고 나서부터  우리는 여행의 진수를 알게되었다.

 

 

나는 사방 천지에 불어오는 바람을 카메라와 비디오 영상에 담았다. 보이지 않는 바람을 찍어댔다. 바람은 바다가 되고, 하늘이 되고, 내 마음에 혼 불이 되어 내 마음에 감겨졌다. 바람은 적막한 세상에 생명을 불어 넣듯 소리를 내며 영상으로 변해갔다.

 

바람을 영상으로 담다가 아예 거대한 테레바카 봉분에 길게 누워 눈을 감았다. 오직 바람 소리만 들려오는 곳! 눈을 감으니 하늘도 바다도 보이지 않는다. 그곳엔 모아이도 없다. 이제 바람 소리마저 아득히 멀어져 간다. 나는 바람과 하나가 되어 가고 있었다.

 

바람이 되는 기쁨!

그대가 바람이면 나도 바람!

 

 

아키비! 아키비!

 

 

 △섬에 있는 천여개의 모아이는 거의 바다를 등지고 있는데, 아키비 석상만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섬의 초대왕인 호투 마투아 왕의 고향인 폴리네시아 히바 섬을 응시하고 있다고 한다. 

 

 

테베바카 산에서 내려오다가 너무나 쉽게 아후 아키비Ahu Akivi 석상을 발견했다. 높은 곳에서 내려오며 바라보니 저절로 발견이 되었던 것. 허허로운 목초지에 일곱 개의 모아이가 멀리 바다를 향해 서 있다.

 

"어? 저기 아키비 석상이 있네!"

"이렇게 쉽게 찾는 걸 그리도 헤매다니. 바쁠수록 쉬어가며 돌아가라는 말이 실감이 나는군."

"헌데 다른 모아이들은 모두 바다를 등지고 있는데, 이 모아이들만 바다를 바라보고 있지요?"

"그건… 자 보자, 그건 호투 마투아 왕의 전설에 나오는 일곱 명의 사자를 기리기 위해서 그렇게 세워졌다는 군."

 

이스터 섬에 있는 모든 모아이들이 바다를 등지고 있는데 유독 아후 아키비의 모아이들은 모두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이는 호투 마투아 일행이 자신이 떠나온 고향 폴리네시아 히바(Hiva)섬을 가리키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들이 바라보고 있는 방향에는 폴리네시아의 파투히바 섬이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히바 섬은 이스터 섬으로부터 북서쪽으로 3,641km 머나먼 섬이다. 또한 이 모아이들이 응시하고 있는 방향은 춘분과 추분 일몰 방향이어서 천문학적인 성격도 곁들여서 세워진 것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다음생에서나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길을 잃고 만난 아키비 모아이는 더욱 정감이 갔다.

 

 

침묵이 감돌고 있는 모아이 석상. 그곳엔 바람만이 석상에 부딪치며 윙윙 소리를 내고 있다. 모아이가 바라보는 곳을 향하여 시선을 던져본다. 그러나 보이는 건 바다뿐이다. 바다! 어머니 같은 바다. 바다야 말로 만물의 근원이 아닐까?

 

잃어버린 길에서 찾은 아키비는 다른 어떤 모아이 보다 더 정감이 간다. 우리는 아키비 주변을 멤돌기도하고, 만져보기도 하고, 기대보기도 하면서 이별을 아쉬워했다. 언제 다시 이 모아이를 만나보겠는가? 아마 다음생에 만나볼 수 있지 알을 까?

 

"아키비 모아이님, 그 동안 편한히 계십시요."

 

우리는 아키비 모아이 석상에 절을 하고 초원의 길을 따라 다시 해변으로 내려왔다.

 

 

(이스터 섬에서 글/사진 찰라)

 

 

 

 ◆테레바카와 아후 아키비 모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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