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저 긴 귀 말이지. 그게… 섬의 구전에 의하면 이 섬에는 귄 귀를 가진 사람들과 짧은 귀를 가진 두 부족들이 살았다는군."
"그러면 짧은 귀 모아이도 있어야 하지 않은가요?"
"그런데 긴 귀는 상류계층이고, 짧은 귀는 하류계층이어서 상류계층인 긴 귀를 모델로한 모아이가 많다는 것이 섬에서 내려오는 구전이래."
"설마… 그럴 리가?"
이스터 섬을 돌아다니다 보면 모든 것이 수수께끼처럼 보인다. 아내도 나도 허클베리 핀이나 톰 소여처럼 호기심 덩어리에 빠져 들어가기는 마찬가지다. 아내가 물으면 낸들 어찌 태고의 수수께끼를 알 재간이 있겠는가? 그러나 이스터 섬은 워낙 가보 싶었던 곳인지라 인터넷에서 자료 수집은 물론, 이스터 섬에 오기 전에 나는 섬에 대한 몇 가지 책을 읽었었다.
참고로 이스터 섬을 여행하고자 하는 분들을 위하여 내가 읽었던 책을 이곳에 밝혀둔다. 존 플렌리/폴반의 '이스터 섬의 수수께기The Enigmas of Easter Island', '카트린/미셀 오를리아크의 '이스터섬', 사진작가 이해선의 '모아이 블루'. 그리고 여행가이드 북은 Lonely Planet의 'Chile & Easter Island'에 의존했다. 따라서 여기에 실린 내용도 이들 책에서 상당부분 인용된 것들이 많음을 밝힌다.
△모아이들의 귀는 한결같이 길다. 섬의 구전에 의하면 '긴 귀'는 상류계층이고,
'짧은 귀'는 하급계층이어서 모아이를 상류계층인 긴 귀들이 디자인했다고 하는데,
그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아나케나해변의 나우나우 모아이 귀도 모두 예외없이 길다)
아내와 단 둘이서만 여행을 하는지라 아내는 주로 물었고, 나는 책에서 읽은 내용들을 더듬어 내거나 가이드북을 펼쳐 들고 답을 했다. 그러니 나는 아내의 보호자겸 여행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해 내고 있는 샘이다. 그 때문에 나 역시 공부를 해야 했으므로 얻는 것도, 남는 것도 많았지만....
나우나우 석상들의 귀가 모두 입가에까지 길게 내려뜨려져 있는 것을 바라보면서 아내가 이상 한 듯 모아이의 귀에 대해서 물었다. 모아의 귀를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같이 길다. 사실, 모아이의 귀가 모두 긴 것도 하나의 미스터리다.
섬의 구전에 의하면 이스터 섬에는 귄 귀를 가진 '하나우 에에페Hanau Eepe'와 짧은 귀를 가진 '하나우 모모코Hanau Momoko'란 두 주민이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 두 부족 간에는 항상 갈등이 있었다는 것.
토르 헤예르달은 '귄 귀'의 주민들은 최초 개척자들로 아메리카 인디언의 자손들이며, '짧은 귀'의 주민들은 좀 더 나중에 도착한 폴리네시안들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전설에서 이스터 섬 주민들이 남아메리카에서 건너왔다는 연관성을 찾으려 했다.
△라노 라라쿠 채석장에 침묵하고 있는 긴 귀의 모아이들.
이들이 침묵을 깨고 말을 한다면 진실이 밝혀질텐데....
헤예르달은 긴 귀의 사람들이 귓불을 길게 늘인 다음 구멍을 뚫어 원형 장신구를 매달았다고 보았다. 그것은 유럽인들이 첫 상륙을 할 때까지 남아 있던 관습이었다. 그러나 17개월 동안 이스터 섬에 머물며 연구를 했던 루틀리지 여사는 긴 귀가 귀를 늘이는 관습이 아니라 본래 귀가 긴 것을 지칭하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구전에 의하면 17세기 이 두 부족 간에 전쟁이 일어났는데, 짧은 귀가 '포이케 도랑의 전투'에서 긴 귀 한 명만을 남기고 모두 학살했다고 한다. 폴리네시안인 짧은 귀 부족이 긴 귀를 가진 아메리카 원주민을 물리치고 전쟁에 승리하여 그 때부터 섬의 주도권을 잡았다는 것.
그러나 또 다른 설은 귀와 관련된 폴리네시아인들의 단어들을 단호히 부정한다. 긴 귀는 '넓은/힘센/뚱뚱한 사람들'로 상류 계급에 속하고, 짧은 귀는 '날씬한 사람들'로 하류 계급에 가르킨다는 것.
이는 폴리네시아에는 체격의 크기와 비대함을 지도력이나 마나(mana, 영적인 힘)와 연관시킨 통념에 의해서 분류한 것이다. 긴 귀가 연단을 디자인 했고, 짧은 귀는 석상을 만들었다는 것. 그래서 모아이의 귀는 상류계급인 장이족이 이를 디자인했기 때문에 길게 만들어 졌다는 것…… (사진 : 짧은 귀의 폴리네시안)
하여간, 섬의 구전을 고고학적으로 맞추어 보려는 시도는 실로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내용들을 뒷받침 할 만한 자료가 없어 신뢰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이런 구전들은 19세기부터 지금까지 생존해 있는 극소수의 원주민들로부터 이삭 줍듯 조금씩 모아온 것들이다. 이 시기는 전쟁이나 질병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부족의 문화와 역사에 얽힌 집단의 기억을 거의 잃어버린 상태였다.
△모아이가 입을 열면 진실이 밝혀질텐데..., 그는 여전히 침묵을 하고 있다
가장 그럴듯한 가설은 호투 마투아(대부라는 뜻)라는 이름을 부여 받은 영웅이자 족장의 지휘 하에 폴리네시아로부터 한 번의 식민화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호투 마투아는 하나우모모코(짧은 귀)의 족장이지만 하나우 에에페(긴 귀)의 죄수들도 섬에 데리고 왔고, 짧은 귀들은 아나케나 해변에 정착을 했고, 긴 귀들은 포이케 반도에 정착했다는 것.
그러나 두 명칭은 분명 '가냘픈'과 '땅딸막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이들의 인종이나 문화가 달랐음을 드러내는 증거나, 혹은 정복자와 피정복자, 고매한 신분과 미천한 신분이라는 역사적인 기록도 전혀 남아있지 않아 '귄 귀'와 '짧은 귀'의 전승도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고고학자와 역사학자, 섬의 여행자들이 온 갖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를 밝히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수수께끼의 진실은 밝혀지지않고 있다. 그러나 대체적인 고고학적 기록을 살펴보면 이스터 섬은 새로운 문화적 영향이 갑자기 외부에서 유입되지 않고, 끊임없이 원주민들에 의해 발전되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