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지평선>을 찾아서⑮
해발 4300m, 백망설산을 넘어서…
▲더친 바래사에 바라본 메리 쉐산
▲구름에 싸인 메리쉐산의 설경
아침 8시 20분. 커피 한잔에 보리빵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샹그리라에서 더친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20인승 작은 미니버스다. 길이 워낙 좁아 큰 버스는 다니기가 힘들다고 한다. 버스 좌석은 꽉 찼다. 대부분 티베트인과 중국인들이다. 이 도로는 운남성에서 차마고도로 가는 전장공로다. 험준한 산맥의 옆구리를 횡단하여 가파른 절벽과 협곡을 돌아가는 아슬아슬한 길이다. 햇빛이 눈부시다. 운전기사는 가락이 높고 긴 티베트 음악을 들려준다. 이제 도 다른 세계로 우린 여행을 떠나고 있다.
▲점점 깊은 협곡으로 이어지는 진사강(金沙江) 줄기. 상류에서 사금이 채취되었다고 한다.
지상에서 가장 험한 협곡의 하나
샴발라로 가는 길에는 물리적이고 영적인 많은 장애물이 있다. 구도자는 알맞은 안내인을 찾아내야 한다. 왜냐하면 제대로 길을 찾아가는 법은 이미 여행을 해본 자로부터 입에서 입으로 은밀히 전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안내인이 없다. 다만 이 길을 갔던 사람들이 기록한 문헌과 가이드북이 있을 따름이다.
프랑스의 여류 탐험가 <알렉산드라 다비드 넬> 여사는 이 길을 따라 최초로 티베트 라싸에 도착한 서양 여성이다. 당시 라싸는 금단의 땅이었다. 그녀는 다섯 번에 걸친 시도 끝에 마침내 걸어서 차마고도를 거쳐 라싸에 도착했다. 그리고 1927년 <영혼의 도시 라싸로 가는 길>이라는 여행기를 발표했다. 이 책은 제 14대 달라이 라마가 추천사를 쓰며 극찬할 정도로 유명한 책이다. 티베트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그녀는 100세를 넘긴 뒤에도 티베트 여행을 꿈꾸는 탐험가였다. 나는 이 길을 오기 전 그녀의 저서 <영혼의 도시 라싸로 가는 길>을 탐독했다.
▲차마고도 길에는 정방형의 초르텐 불탑과 불경을 개겨 넣은 타르초가 나부끼고 있다.
버스는 나파하이 초원을 지나 꼬불꼬불한 협곡으로 빠져 들어간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깊은 협곡이다. 지금까지 내가 세계의 여로 오지를 다녀본 길 중에서 가장 깊고 험한 길이다. 구름이 중턱에 걸려 있고, 아슬아슬한 비탈길 밑으로는 강물이 흐른다. 진사강이다. 진사강은 금사강(金沙江)이라고 불리기도하며 사금이 채취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차마고도는 산비탈로 가르며 실핏줄처럼 진사강을 따라 이어진다.
진사강을 따라가다
진사강은 양자강 상류 서쪽 끝에 있는 강으로 총 길이 2308km의 긴 강으로 칭하이성 남부에서 쓰촨성, 윈난성으로 거쳐 흐르는 강이다. 이 진사강을 따라 실핏줄 같은 차마고도가 이어진다. 차마고도는 중간 중간 거점 도시를 중심으로 삼강병류(三江幷流)라고 불리는 진사강, 란창강, 누강을 따라 실핏줄처럼 분포되어 있다. 삼강병류는 유네스코에서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산은 높고 계곡이 깊어 산허리를 버스는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한다. 짧은 거리에서 도로가 1000미터를 내려갔다가 다시 헉헉대며 1000미터를 올라오곤 한다. 그야 말로 아슬아슬한 스릴이 느껴진다. 이런 험한 길을 고물처럼 생긴 미니버스가 달려가는 것이 신통할 정도다. 버스는 어느 작은 마을에서 잠시 쉰다. 뻔즈란(奔子欄 :분자란)이라는 마을이란다. 뻔즈란은 티베트어로 <아름다운 강둑>을 의미한다고 한다.
▲옛 차마고도의 쉼터 뻔즈란마을
▲뻔즈란은 '아름다운 강둑'이란 뜻으로 고도가 낮고 기후가 비교적 온화하여 더친의 곡창지대 역할을 하고 있다.
차마고도의 거점 뻔즈란과 삼강병류
진사강 포구인 뻔즈란은 차마고도 시절 대상들이 쉬어가는 거점이었다고 한다. 이곳은 비교적 비옥한 토양과 따뜻한 기후로 더친현의 곡창지대라고 한다. 버스는 이곳에서 30분간 정차했다. 운전기사가 아침을 먹는 모양이다. 이윽고 버스가 다시 출발한다. 뻔즈란을 빠져나온 버스는 진사강을 왼쪽에 끼고 달려간다. 버스는 점점 더 고도를 높여간다. 약 30분정도를 달려가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희한한 풍경이 다가온다.
차마고도 사진에 약방의 감초처럼 꼭 나오는 그 유명한 <금사강제일만>(金沙江第一灣)이다. 삼강병류(三江幷流)라고 불리는 누강, 란창강, 금사강은 협곡을 따라 굽이굽이 흐르기 때문에 각 강마다 이름을 붙여놓았는데, 고깔처럼 생긴 삼각산을 진사강의 물줄기 휘몰아쳐 흘러 내리고 있다. 그 물줄기 위로는 실핏줄 같은 도로가 연결되어 있다. 쓰촨성으로 연결되는 도로라고 한다. 관광버스가 아니어서 공용버스는 멈추지를 않고 서서히 지나간다. 아쉽지만 차창으로 사진을 찍으며 눈도장을 찍고 지나갈 수밖에 없다.
▲고깔처럼 생긴 금사제일만, 진사강이 휘돌아치며 흘러가고 있다.
여러 세기 전 탄트라의 위대한 스승 파드마삼바바(Padmasambhava)는 히말라야 산에 있는 스물 한 개의 은밀한 골짜기를 지정하여 위험한 때에 신자들을 위한 은신처가 될 수 있도록 세상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각각의 골짜기는 특정한 위기가 일어날 때만 사용하게 되어 있었으며, 그 때가 오기까지 닫혀 있을 것이었다. 그중의 하나가 이곳 메리쉐산으로 가는 길이 아닐까? 그러나 이제 세상의 은밀한 골짜기란 없다. 개발이라는 명목 하에 모든 곳이 파 헤쳐지고 길이 뚫려있다. 이곳 더친으로 가는 길도 길이 넓혀지고 아스팔트가 깔리고 있다.
▲티베트 라마사원 동죽림사. KBS차마고도 다큐에 수유차를 소개하기도 했던 절
금사강제일만(金沙江第一灣)을 지나자 계곡 옆에 사원이 하나 나온다. 동죽림사(東竹林寺)다. 쑴첼링 곰파 보다는 작은 규모지만 더친현에 있는 주요 라마사원이라고 한다. KBS 차마고도 다큐에서 '수유차'를 소개하기도 했던 라마사원이다.
동죽림사를 오른쪽으로 끼고 버스는 갑자기 고도를 높여간다. 곳곳에 눈사태와 산사태가 나 있다. 산사태가 크게 나면 버스가 갈 수가 없다고 한다. 아찔한 낭떠러지의 연속이다. 모두가 협곡 아래를 바라보며 "아아, 와와~" 소리만 낸다. 협곡을 내려다보면 현기증이 일어나고 오줌이 찔끔찔끔 나올 것만 같다.
아아, 백망설산!
높은 고개턱을 넘으니 드디어 흰 도화지 같은 설산이 사방에 펼쳐진다. 승객들이 모두 "와와~" 하며 함성을 지른다. 세워달라는 것이다. 운전수도 쉬어가고 싶은지 고개턱에 버스를 세운다. 말로만 들었던 백망설산(白茫雪山 : 빠이 망 쉐 싼, 5430m)이다. 간판에는 백마설산(白馬雪山)이라고 적혀있다.
▲백망설산의 설경
▲백망설산 고개턱에 있는 타르초, 해발 4292미터
▲이곳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는 트레커들도 있다.
▲새가 되어 설산을 날고 싶은 마음.....
▲무균지대에서 화이팅을 외쳤다. 병마야 썩 물러가라!
▲백망설산의 기암괴석
이 고갯길은 해발 4292m이다. 전장공로를 통해 차마고도로 가는 가장 높은 지점이라고 한다. 버스에 쪼그리고 앉아만 있다가 눈길을 걸으려고 하니 다소 어지럽다. 그러나 기분만은 최고다. 이곳에서 야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백망설산 트레킹을 하러 온 사람들이다.
"한 마리 새가 되어 날아볼까?"
"호호, 어디까지 나는가 한번 볼까요?"
"하하, 한발자국도 못날겠네. 자 우리들의 건강을 위해서 화이팅이나 외쳐요!"
"화이팅!"
"화이팅!"
정말 한마리 새가 되어 날고 싶었다. 하얀 도화지 같은 설산에 서니 무균지대에 선 기분이다. 이곳에서는 메리쉐산이 조망되기도 한다. 시리도록 아름다운 설경! 우리는 날개를 단 듯 팔을 벌리기도 하고 눈을 집어 비벼보기도 했다. 그렇게 한동안 넋을 잃고 설경에 취해있었다. 버스가 부자를 울렸다.
▲홀로 자전거를 타고 가는 여행자
▲이렇게 높은 설산을 자전거를 타고 넘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해발 3550m의 더친에 도착
다시 버스를 타고 더친으로 가는데 그 험한 길을 자전거를 타고 가는 서양인이 보였다. 모두가 그 용감한 여행자에게 함성을 지르며 격려를 했다. 버스는 곧 해발 3550m의 더친에 도착했다. 샹그리라에서 168km 떨어진 더친. 더친에는 비회족 이슬람 정착민들을 비롯하여 12개 소수족이 살고 있다. 그러나 80% 이상이 티베트 족이다. 동쪽은 쓰촨, 서쪽은 티베트, 남서쪽은 미얀마가 있어 변경지역을 찾는 여행자들에게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더친에 사는 사람들은 이곳이야 말로 제임스 힐턴이 영감을 받은 샹그리라라고 주장한다. 티베트는 길을 따라 오라고 손짓을 하건만 우리가 여행을 당시에는 여행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우리는 밍융 빙촨으로 가는 버스표를 끊어 놓고 잠시 더친 마을을 산책했다.
▲물을 받아내는 깡통
▲멀리 메리쉐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더친으로 들어가는 골짜기 . 더친은 해발 3550미터의 깊은 협곡에 자리잡고 있다.
▲더친으로 들어가는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