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 룡(黃龍)
▲황룔 오채지의 물빛
▲해발 4200m에 위치한 황룡 오채지의 물빛
해발 4200m에 위치한 황룡고사.
이곳은 티베트의 라사보다 높은 곳이다.
만년설이 덮인 계곡, 울창한 숲이 우거진 계곡에는
크고 작은 3,400여 개의 연못이 파노라마를 연출한다.
계단식 다랑논을 연상케 하는 크림색의 물빛 향연은
시공을 초월하는 신비로움을 선사해준다.
▲황룡고사와 오채지
▲황룡고사와 오채지
아침 7시 30분, 구채구에서 황룡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버스는 믿을 수 없는 고산지역을 덜덜 거리며 기어간다. 점점 고도를 높여 가는 버스. 이제 버스는 만년설로 덮인 설산을 기어간다. 이 지역은 티베트 라사보다도 높은 4000~5000m의 고원지대다. 5월인데도 갑자기 눈이 펑펑 내린다. 차창 밖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은 설경이다.
"이러다가 눈 속에 갇히는 건 아닐까요?"
"글쎄, 그러지도 모르지……"
▲구채구에서 황룡으로 가는 길
▲구채구에서 황룡으로 가는 길
▲구채구에서 황룡으로 가는 길. 5월에도 눈이 내리는 길은 위험하기만 하다.
여름에 내리는 눈. 고산지대는 그런 곳이다. 중국에서 가장 높은 명승지 중의 하나인 황룡은 해발 5160m의 옥취봉과 민산의 주봉인 5580m의 설보정 줄기에 놓여있다. 1년 내내 눈이 녹지 않는 만년설로 뒤덮인 곳이다. 사람이 사는 집은 보이지 않았으며, 아슬아슬한 도로에는 "사고다발", 안전 확보" 등 목숨을 위협하는 경고문만 보인다. 눈 때문에 당초 예정시간보다 1시간 지연 되어 10시 30분에 황룡에 도착했다. 구채구를 출발하여 3시간 만에 도착한 것이다.
▲황룡입구에는 튤립이 만개해 있다.
"와우~ 웬 튤립!"
"이런 산골에 튤립이라니…"
"이렇게 높은 지역을 걸어서 갈 수 있겠소?"
"가다가 못가면 내려오지요."
"흠, 산소통이 필요하겠는데?"
▲휴대용 산소통
황룡입구에 도착하니 튤립이 만개해 있다. 황룡입구는 해발 2000m 지역이다. 황룡고사는 해발 4200m에 위치한 도교사원으로 입구에서 약 7.5km 거리다. 우리는 큰 배낭을 관리소에 맡기고 휴대용 산소통을 꺼내 작은 배낭에 챙겼다. 오늘은 티베트로 가는 트레이닝을 톡톡히 하는 날이다.
황룡은 티베트어로 슬이차(瑟爾嵯)라고 한다. 수백 개의 호수가 황금색을 띠고 있어 황룡이란 이름이 붙어 졌단다. 안내도를 보면 황룡은 말 그대로 누런 용이 길에 용틀임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는 튤립이 도열한 꽃길을 따라 황룡고사로 가는 오솔길을 따라 올라갔다. 오솔길은 전나무와 가문비나무 등 침엽수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이름 모를 고산 야생화가 길손을 반긴다.
"여긴 터키 파묵깔레를 연상케 하는군요."
"그렇군. 작은 파묵깔레 같네?"
황료고사를 올라가는 길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작은 연못들이 수없이 많았다. 마치 작은 다랑논을 연상케 한다. 이런 연못이 수천 개가 줄줄이 늘어서 있다. 우리는 숨을 헐떡이며 천천히 올라갔다. 가마를 타고 가는 사람들도 있다. 저 가마를 메고 가는 사람들은 도대체 심장이 얼마나 튼튼할까?
▲분경지
▲분경지
▲세신동
▲세신동. 황룡사로 올라가기전에 목욕재계를 했다는 곳
▲야생화
▲쟁염지
크림색의 분경지는 못 속에 고목들이 그대로 잠겨 있다. 10개의 채지(彩池-연못)는 바닥과 벽이 모두 유황색이다. 세신동(洗身洞)은 석회암절벽에 작은 동굴들이 뚫려있다. 황룡사로 가는 참배자들은 이곳에서 목욕재계를 하고 참배를 했다고 한다. 쟁염지에 다다르니 연하고 밝은 파스텔 톤의 석회연못이 이채롭다. 연못에 담긴 오묘한 푸른 물빛이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전 여기서 쉬고 있을게요."
"그래? 괜찮아 당신."
"숨이 치긴 한데 좀 쉬면 괜찮을 거예요."
아내는 쟁염지의 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겠다고 한다. 음, 도대체 왜 이런 힘든 길을 올라가는 거지. 다랑논 사이로 해발 5580m의 설보정 설산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온다. 아름답다. 자연은 위험한 만큼 아름다움을 안겨준다. 저 산을 오르고 싶다는 충동이 느껴진다. 그래, 거기에 산이 있으니까 산에 오르는 거야.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참 명언이다. 저곳에 산이 있고, 아름다움이 있으니까.
▲쟁염지
▲황룡중사
황룡고사로 올라가는 길
황룡중사는 염불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당간주 하나만 외롭게 절을 지키고 있을 뿐 경내는 썰렁하다. 삼존불이 봉안된 라마사원은 승려들도 보이지 않는다. 승려대신 녹슨 마니차가 부처를 호위하듯 서 있다.
고도가 점점 높아져 숨을 쉬기가. 어렵다. 드디어 황룡고사에 도착했다. 천인합일, 인간요지(天人合日, 人間瑤池). 하늘과 땅이 합쳐진 곳에 사람과 아름다운 못이 있네. 황룡이 그랬다. 황룡이 있는 민강 상류지역이 문헌에 나타난 것은 기원전 2000년 쯤 삼황오제시대라고 한다.
하(夏)나라를 세운 우왕이 무주에 홍수가 나자 도우러 왔는데, 이때 황룡이 배를 등에 업고 강을 건너도록 도와 홍수를 다스렸으며, 황룡은 훗날 도를 닦아 신선이 되어 떠났고, 후세인들은 황룡사를 지어 그의 공적을 기렸다는 것. 그 황룡은 쑹판현경내 대둔촌 중의 강족 도인이었으며 후세인들은 그를 황룡진인(黃龍眞人)이라 불렀다.
▲황룡고사
▲황룡고사
▲오채지의 물빛
▲오채지의 물빛
해발 4200m. 옥취봉을 뒤로 하고 수림이 빽빽이 들어 서있는 황룡고사는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듯 묵묵히 서 있다. 그러나 도를 닦는 사람은 보이지 않고 건물은 낡았다. 절 뒤로 돌아 올라가면 오채지(五彩池)가 나온다. 황룡의 하이라이트. 촛농이 녹아내리듯 수백 개의 작은 연못들이 모여 있는 오채지. 크림색의 빛깔이 몽환적이다. 특히 설산을 배경으로 명경처럼 흘러내리는 물빛은 시공을 초월하는 가상의 세계에 온 느낌은 준다.
티베트의 깃발이 나부끼는 길을 따라 다시 쟁염지로 내려가 아내를 만났다. 충분히 휴식을 취한 아내는 생생하게 기운을 차리고 있었다. 5시간의 고산 길을 걷는 것은 쉽지가 않다. 라사보다 높은 지역이 아닌가. 황룡 입구에 내려오니 오후 3시가 넘었다. 3시 30분 쑹판으로 떠나는 버스를 탔다. 황룡에서 쑹판까지는 56km. 2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중국 쓰촨성 황룡에서 글/사진 찰라)